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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69화 (69/257)

00069  (9) 일룡일사(一龍一蛇)  =========================================================================

“자의든 타의든 내가 전공을 세웠다지만 고려는 패했소.”

내 말에 우야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는 고려에 의탁한 여진이 흔들릴 수 있으니 다음 달쯤에 다시 한 번 그대를 공격하게 될 것이오.”

“장군 같은 자가 두서넛 더 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과 같이 오합지졸들이라면 하나도 두렵지 않소.”

마유주를 들이켜며 우야소는 손을 내저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였다.

“내가 예견하건대 우리 고려가 다시 패하게 되면 폐하는 대대적인 징병을 명할 것이오. 못해도 이십만의 대병이 소집될 것이오.”

“이십만? 그것이 정말이오?”

우야소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숫자였기에 이번만은 깜짝 놀랐다. 실제로는 17만이긴 하지만 20만과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단시일에 그만한 병사를 동원할 수 없으니 최소한 3년은 걸릴 것이오. 그리고 공격 시기는 11월 말에서 12월 초, 겨울의 시작을 노려 그대들의 건초가 부족한 틈을 노릴 것이 분명하오.”

사람 먹을 식량보다 말에게 먹일 건초가 더 귀한 여진이었다. 건초가 부족한 겨울, 게다가 말이 달리기 어려운 척박한 지형까지 겹쳐진다면 제대로 힘을 쓸 수 없었다.

‘윤관은 다른 것을 노렸지만……. 지금 일부러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믿지 못할 테니까.’

그때쯤 되면 내가 가지고 있었던 여러 의문이 차례로 풀릴 것이다. 그중 가장 큰 의문은 동북 9성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이다. 별무반을 출동시킬 당시 고려 조정은 이미 점령 범위를 정해놓고 있었고, 점령했을 시 행정구역을 어떻게 나눌 지까지 결정한 다음이었다.

우리가 흔히 교과서로 알고 있는 동북 9성은 일본강점기 이케우치(池內宏)라는 학자가 주장한 내용을 거의 그대로 싣고 있다. 함흥평야 일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러 검증을 거쳤으니 그랬을 수 있겠지만, 고작 그 정도의 땅을 차지하자고 17만이나 되는 병력과 군데군데 관문을 만들어 기병의 움직임을 차단하려고 했을까? 그런데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그 내용으로 아무 의심 없이 배웠었고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도 정설로 알고 있다. 나는 이번 기회가 내 눈으로 진실을 확인할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정확하게 기록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세종실록의 내용을 믿고 싶었다. 세종실록은 동북 9성의 한계를 두만강 북쪽 칠백 리까지로 잡고 있다. 세종의 명을 받들어 김종서가 육진을 개척한 것이 고려의 옛땅을 수복하기 위한 것이라는 교서 내용과 조선 초기 여진들이 자신들의 땅을 부르던 지명, 윤관이 세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 등이 두만강 유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김종서가 직접 세종에게 그 지역을 정벌하고 탐방한 후 올린 장계가 상세하게 전해졌다. 또한, 금나라 사서에서도 두만강 유역에서 고려와 치열하게 싸웠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현대 국사에서도 점차 세종실록의 내용을 근간으로 삼기 시작하는 움직임을 보였었다.

그것을 지도로 그려보면 동해안 해안가를 따라 연해주로 향하는 방향이 된다. 천리장성부터 백두산 인근 내륙 지역은 워낙 개척되어 있지 않고 험난하여 고구려 이후 기타 이민족들이 소유만 하고 있었을 뿐 변변한 도시조차 없었다. 고려 역시 그런 땅은 일찌감치 외면했고, 백성을 이주시킬 수 있는 땅에 욕심을 냈다. 그것이 현대로 따지자면 함흥에서부터 시작하여 김책, 청진, 나진-선봉지구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 인근까지의 해안 지대가 되는 것이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요나라나 여진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의 진군로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요나라는 서해를 따라 진군했고, 여진은 동해를 따라 몰려다녔다. 북부 내륙은 말과 사람이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척박하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될 것이다.

윤관은 출진하여 함흥에 다다르자 장수들을 인근 여진 족장들에게 파견해 자신들이 포로로 잡고 있던 여진인을 돌려줄 뿐만 아니라 화친을 도모하자고 제의해 안심하고 찾아온 추장 수백 명을 끌어모은 후 연회를 베푸는 척하며 그들이 취하길 기다려 모두 목을 베어버렸고, 의심하여 잔치에 참가하지 않은 자들은 대기하고 있던 척준경이 쓸어 버렸다. 인근 여진의 수뇌부나 수행하던 전사들이 단숨에 죽어버리니 거칠 것이 없었다. 그렇게 여진이 칼을 갈며 무리를 모으는 동안 9성의 축조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아마도 윤관이 다음 달에 이곳에 파견되어 전투에서 진 직후 여진에게 화친을 청한 것은 어쩌면 그때부터 밑밥을 깔아놓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 너무 무리수인가?

우야소는 내가 출전할 때마다 자신은 직접 고려의 본대를 상대할 것이고 나에게는 자신에게 껄끄럽거나 반항적인 부족들을 붙이겠다고 했다. 나중에는 어찌 될지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상부상조인 셈이다.

우야소와 헤어져 정주성으로 돌아오니 한참 전에 고려는 일패도지하여 성문을 굳게 걸어잠그는 중이었다. 돌아왔음을 알리며 내 뒤에 매달려 있는 자루를 손바닥으로 쳐서 보여주자 사기가 떨어졌던 병사들의 눈에 생기가 감도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자존심은 세웠다고 믿었을 것이다.

그건 임간을 비롯한 수뇌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가져온 자루를 보더니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워했다. 그중 부사대장군(副使大將軍) 송충(宋忠)은 죽었던 안색에 생기가 살아나며 눈을 빛냈다.

“이 정도면 비등하게 겨루었다고 장계를 올려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듯하오만.”

“어허!”

임간은 헛기침을 하고는 나에게 일렀다.

“내 너의 진가를 이제야 알아보았구나. 너에 대한 포상은 본관이 책임지고 상신할 것이니 이만 물러가 쉬도록 하여라.”

나는 미련없이 그 자리를 물러 나왔다. 김한충이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라면 내 공을 대변할 것이다. 내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실내에서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제 살았소. 행영병마사와 부사대장군의 작전이 아니었다면 어찌 일개 별가가 이런 공을 세울 수 있었겠소. 이것도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었던 빼어난 안목의 결과가 아니겠소? 병마사좌복야(兵馬使左僕射)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나는 웃음이 나왔다. 내 전공을 가로채려는 얄팍한 수작이었지만 김한충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번 일로 나를 휘하에 두고 싶어하는 욕심이 더욱 커졌을 것이니 역사대로 사람을 보내 사실대로 상황을 보고할 것이 분명했다. 이자겸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시켜 맞장구를 치도록 하겠지.

“별장이 아니라 한 직급 올려 낭장 정도는 나올 것 같은데.”

실제 벤 수급은 이틀 동안 삼백을 넘지 못했지만 우야소가 챙겨준 코는 오백에 가까웠다. 상식대로라면 김한충과 이자겸의 능력에 따라 중랑장도 넘볼 수 있는 전공이었다.

“잘하면 일본보다 송에 먼저 갈 수도 있겠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올해 여름에는 송으로 가는 사은사가 출발한다. 숙종이 후계 구도를 정하고자 예종을 요와 송에게 인정받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요와 송이 차례로 사절을 보내고 고려도 역시 답방을 가게 된다. 그 사절에 낄 수 있다면 무심코 지나쳤던 수호지의 인재들을 끌어들일 수 있게 된다. 영웅이라기보다 대부분이 건달, 불한당에 가까웠지만, 능력들은 쓸만하니 휘하로 두기에 좋았다. 앞으로 15년 뒤쯤 송강이 난을 일으키면 1년 사이에 대부분 죽게 되는 인물들이었으니 몰랐으면 모르되 알고 있는 이상 적극적으로 써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지금 송에 가지 못한다고 해도 시간은 아직 많았다.

“문무대왕릉도 가봐야 할 테고.”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어떤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가치를 떠나 순전히 개인적인 호기심이었다. 강유나 등애 이후로 출현했던 후삼국이나 진 시대의 인물들이 민나라에서 얼마나 활약했을까? 특히 문앙이나 육항, 양호 같은 무장의 열전이 궁금했다. 누구에게는 엄청난 보물이라지만 나에게는 딱 그 정도가 실록의 가치였다.

시간은 금세 흘렀다.

임간을 비롯한 수뇌부는 입을 맞춰 내 전공을 나눠갖기로 하고 나를 불러 좋은 말로 구슬리며 포상과 승진을 약속했다. 그러나 이미 김한충이 나의 전속과 전공을 적어 유사를 도성으로 보낸 뒤였다. 뒤늦게 도착한 임간의 장계와 김한충의 보고가 다르자 숙종은 윤관에게 조사를 명했다.

은퇴만 기다리는 골방 노인으로 취급했던 김한충이 이렇게 뒤통수를 때릴 줄 몰랐던 임간 등이었지만 일이 크게 번져 낱낱이 사정이 밝혀지자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패전하고도 모자라 전공을 조작하여 보신을 꾀한 동북면행영병마사 임간 및 병마사좌복야 황유현(黃兪顯), 부사대장군(副使大將軍) 송충(宋忠)! 또한, 죄인을 적극적으로 두둔하여 어심을 어지럽힌 호부시랑 왕공윤(王公胤), 우승선(右承宣) 조규(趙珪) 모두를 삭탈관직한다!”

김한충에게 온 조서를 읽는 것만으로도 절로 그때의 상황이 그려졌다. 그 뒤 내용은 나에 대한 칭찬이 담겨 있었는데 내 행적은 고의화를 통해 숙종에게 알려졌을 것이기에 그에 대한 배려까지 담겨 있는지 중랑장의 자리가 나에게 떨어졌다. 내심 이번에 되었으면 하던 자리가 떨어졌으니 나로서도 얼굴에 웃음꽃이 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추밀원사 윤관을 새로운 동북면행영병마도통으로 임명하고 동북면병마사 김한충과 신임 중랑장 준경을 좌우군으로 삼아 무도한 여진을 토벌하라!”

김한충은 조서를 다 읽고 난 다음에 나에게 축하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군사도 제대로 부릴 줄 모르는 노장이 애꿎은 녹만 축내나 했는데 강증과 자네가 동계에 버티고 있으니 든든하네. 폐하께옵서 내게 좌군의 중임을 맡기셨으나 새로이 오는 행영병마도통께 아뢰어 자네가 좌우군을 모두 이끌 수 있도록 해주겠네.”

“대감께서 저를 그리 믿어주시니 어찌 힘을 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온 힘을 다해 적을 몰아내겠습니다.”

김한충은 내 대답이 흐뭇한지 수염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윤관이 부임한 것은 그로부터 보름 정도가 지난 뒤였다. 이번에는 제법 정병들로 모집해온 듯싶었는데 한 달 전보다 조금 나아졌을 뿐 아직도 제대로 된 병사라고 보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다만, 윤관과 동행한 일행에 반가운 얼굴들이 끼어 있었다.

이소와 십 인의 무승이었다. 아니 이제는 무승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다들 환속한 상태였다. 이들은 아예 자신의 처자식들까지 모두 거느리고 정주성으로 왔다. 이들이 처자식까지 거느리고 온 것은 이해가 갔지만, 이소는 내심 이곳으로 오지 않았으면 했다. 내가 행할 일들은 이소가 이해하지 못할 일들 천지였다. 그것을 어찌 이해시켜야 할지 아직 방침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나는 죽기 직전까지 내 가슴에 숨기고 있는 비밀을 모두 말하지 않았다. 이 시대 사람들에게 오히려 혼란만 심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지식을 이용해 성공한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는다면 그동안의 내 노력이 부정당할 것 같다는 그런 느낌도 있었다.

“내가 온 것이 달갑지 않다는 표정인데.”

이소는 새초름한 표정을 나를 흘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쟁이 수시로 일어나는 곳이니까.”

나는 뒷머리를 긁었다. 이상하게 이소를 대하면 마음이 약해지곤 했다. 어쩌면 어린 소녀였던 이소를 노예로 삼았다는 죄책감일 수도 있었고, 이소가 가진 특유의 감성일 수도 있었지만 나와 이소를 둘러싼 열 명의 중년인들은 껄껄 웃으며 그저 즐거워하고 있었다.

정주성 내에는 빈집들이 많았다. 한 곳에 몰려 살 수 있도록 입지를 정하자 한동안 새로 보금자리를 꾸미느라 여념이 없었다. 나는 그들을 도와주지 못했다. 윤관에게 부름을 받아 그동안 겪은 이야기와 여진의 동태를 밝히며 부대를 재편하느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윤관에게 성심성의를 다했지만 내가 이길 생각이 없다는 것을 그가 알았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이번 한 번의 패전이 갈림길의 분수령이었기에 눈치채이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했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우야소는 며칠간 윤관의 마음이 동할 만큼 빈틈을 보여주어 윤관이 전투할 결심을 굳히도록 했다. 윤관이 출진을 결심하고 중군을 지휘할 때, 나는 김한충의 추천으로 좌우군을 모두 통솔하게 되었다. 중군은 대략 사천 정도였고, 좌우군은 합쳐서 일천에 불과했다. 우야소의 병력은 그가 직할로 이끄는 삼천에 타 부족 일천 정도를 합쳐 사천 정도였다. 건초가 부족하자 휘하에 모여 있던 절반가량의 여진 부족을 각지로 떠나 보냈기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우야소는 나에게 승리를 자신하고 있었다. 실제 역사도 그러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인 것을 보면 애초에 숙종이나 윤관도 여진 섬멸을 들고 나온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존심을 세울 수 있을 정도의 승리면 충분했던 것이다. 그마저도 실패하는 바람에 별무반이 결성되었지만 말이다.

“중군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좌군과 우군에 지침을 내려주십시오.”

낭장 두 명이 내게 와서 명령을 물었다. 하나같이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만큼 이번 진급이 나름대로 파격적이란 뜻이었다.

“병사를 오십으로 묶어 한 명의 적을 상대한다. 적이 강하다고 판단되면 그냥 막기라도 해라. 동료가 둘 이상 죽는다면 뒤로 물러나 후군이 나아간다. 좌우군이 합쳐 일천이니 오십으로 대를 이루면 정확하게 이십 개의 소진형이 나온다. 좌전 오, 좌후 오, 우전 오, 우후 오로 나누어 교대하도록 한다.”

내 방침이 기상천외하다고 느꼈는지 낭장 두 명은 놀라는 눈치였다. 쉽게 말해 좌우 합쳐 오백 명이 먼저 공격해서 그 중 스무 명이 죽으면 물러나서 후군과 교대하란 뜻이었다. 나는 사망자를 아예 일천 명 중 사십 명으로 정해놓고 전투를 치르는 셈이었다.

“물론 그전에라도 중군이 후퇴한다면 우리도 후퇴한다. 내가 명령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그것은 꼭 지켜라.”

어이가 없는지 두 명의 낭장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전투 결과가 어찌 될지 알고 사망자 숫자를 정해놓고 전투를 벌이는 법이 고금 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중랑장께서는 대체 무슨 일을 꾀하고 계십니까?”

“무슨 일이긴.”

나는 북쪽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해가 아침부터 강렬한 것이 이제 곧 봄이 오는 징조처럼 여겨졌다. 3월 초순이니 남쪽은 봄바람이 불겠지만, 이곳은 4월은 되어야 초봄이라 할 수 있었다.

“너희는 버티고 내가 공격한다. 하나 약속하겠다. 내가 명령한 데로만 지켜준다면 최소한 좌우군은 승리한다.”

“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좌우군이 승리한다는 뜻이 이상하게 들렸던 모양이다. 중군은 그럼 패배라도 하느냐는 의문이겠지. 좌우군 사십 명이 전사할 것이라 가정한다면 승리를 위해서는 그 숫자 이상을 내가 베어야 한다. 두 낭장은 그것을 떠올리자 입만 벙긋하고 있었다. 이렇게 무모한 자는 처음 보았다는 그런 표정이었다. 나는 그저 웃음만 흘리고는 흑우의 배를 차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 작품 후기 ============================

설정란에 동북9성 참고 지도를 올려놓았습니다. 보시면 한눈에 이해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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