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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66화 (66/257)

00066  (9) 일룡일사(一龍一蛇)  =========================================================================

어느새 성 곳곳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아침밥을 짓기 위해 부산한 움직임들이 보이자 나 역시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섰다.

임간은 장계를 올리기 전에 오늘 나를 앞세워 한 차례 공격을 시도할 것이다. 면피를 위한 공격이지만 그 공격에서도 본대는 패하고 나만 공을 세운다.

“오, 이게 누군가? 어제의 영웅인 준경 별가가 아닌가?”

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한충이었다. 그의 나이가 환갑을 넘겨 동북면병마사를 맡기기에는 노쇠한 몸이었지만 조정의 고위 신료들이 국경을 맡으려 하지 않으니 이 나이가 되도록 계속 유임되어 있었다. 그러니 본래 여진족의 침입을 일차로 막아야 할 동계를 대신해 조정에서 따로 원정군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번 패전에도 전혀 책임을 지지 않고 계속 동북면병마사로 재직하게 된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혼인과도 연계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는 문종의 숨겨진 첩이 낳은 딸과 혼인했는데 그것 때문에 그를 요직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껄끄럽게 생각하는 관리들이 많았다. 그것이 왕실의 위엄에 손상을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얻은 실제 최고 관직은 상서좌복야까지였다. 정2품의 고위직이긴 하지만 정무 권력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현장을 뛰어야 하는 고달픈 직책이다.

그는 내가 이곳에 온 것을 알자 강증과 함께 가장 반겨준 인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전, 근 1년을 함께 보냈으니 내 능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당시 나를 믈라카에 내려주고 떠났는데 그 후 우마르를 만나 임무의 수행을 마치고 고려로 돌아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

“준경 별가라면 틀림없이 공을 세울 것이라 짐작했지. 그나저나 참으로 이상하군. 근 10년이 흐르는 동안 전혀 승진하지 못했다니. 나는 중랑장 정도는 능히 달았으리라 예상했건만.”

고려의 군제는 일천 명을 거느릴 수 있는 사람을 장군이라 부르고 그런 장군 휘하에 두 명의 부장을 둘 수 있었다. 그 두 명의 부장을 중랑장이라고 불렀다. 대략 500명 정도는 지휘할 수 있을 정도의 직급이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대답이 있었다.

“제가 복이 없는 탓입니다.”

“오래전 요나라가 개경 도성을 휘저을 때도 남도는 평안했지. 하도 평안하다 보니 자네가 뛰어놀기에는 너무 조용했을 것이야. 하지만, 이곳은 다르지. 어제 그토록 뛰어난 전공을 세웠으니 자네의 승진은 떼놓은 당상일세.”

“다 병마사 대감 덕분입니다.”

“하하하, 자네가 내 얼굴에 금칠하는구먼.”

김한충은 통쾌하게 웃었다. 지금 조정에서 파견된 자들이 죄를 면하기 위해 서둘러 출군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제대로 교련(敎鍊)되지 않은 보졸들을 이끌고 나가봐야 필패라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원래 이번 원정도 직사관(直史館) 이영(李永)이 이익은 없고 해만 있다며 성문을 굳게 잠그고 있으면 적들이 절로 지쳐 물러나리라고 간언했지만, 내시 임언(林彦)이 한사코 출병하여 적을 물리치는 것이 고려의 위엄을 보이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숙종의 마음이 동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자존심이 센 숙종의 성격상 원정의 실패는 또 다른 원정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기에 김한충은 답답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자네와 남만해를 종횡하던 때가 재미있었네. 강력한 수군과 달리 육군은 날이 갈수록 여진을 당해낼 수 없으니 참으로 마음이 답답하네. 행영병마사(行營兵馬使, 임간)께 더 이상의 출군은 피해만 볼 뿐이라고 몇 차례 간언했지만 아무래도 위신이 걸려 있다 보니 마음을 돌리기가 쉽지 않으신 듯 보이는구먼. 어제 패전에 대해 도성으로 유사(有司, 서무담당)를 보내지 않은 것을 보니 작심하고 승전을 올려 공과를 상쇄시킬 모양이다.”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제가 선봉에 서서 승리를 가져오겠습니다.”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

할아버지가 있다면 이런 분이었을까? 갑주를 걸치고 있지만, 뒷짐을 쥔 김한충은 위압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인자한 표정이었다. 나는 두 손을 모아 그를 배웅했다. 그는 가기 전에 갑자기 생각났는지 나에게 다가와 은근하게 말했다.

“혹시 이번 전쟁이 끝나고 이곳에 남을 생각은 없는가? 자네 같은 인재가 이곳에 남아 준다면 참으로 든든할 것이네.”

동북면병마사를 노리는 처지이니 이곳에 무조건 남아야만 하는 필연성이 있었다. 김한충이 알아서 먼저 제의를 해주니 고맙기만 했다. 아니 원래 역사가 이런 것인지도 몰랐다.

“이곳은 제 고향과도 가까워 기꺼운 곳입니다. 차라리 남도를 전전하지 않고 이곳으로 바로 왔더라면 좋았을 것을 참으로 후회스럽습니다. 대감께서 힘을 써주신다면 저 역시 이곳에 남아 일익을 담당하겠습니다.”

그러자 김한충의 눈가가 펴졌다. 그는 어제 전투를 보고 어떻게든 나를 남기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긴 날이 갈수록 여진의 세력이 강성해지는 상황에서 국경 지휘관으로서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김한충이 몸조심할 것을 신신당부하며 떠나갔다. 그는 아마도 관저로 돌아가 유사에게 일러 내 전속을 부탁하는 서신을 도성에 띄우지 않을까 싶었다. 국경에 오기를 좋아하는 자는 없으니 바로 통과가 될 것이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이자겸도 내가 중앙 요직을 맡는 것보다 실질적인 병권을 잡는 것을 선호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임간에게 가니 그는 상당히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어제 패전에서 보여주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그러나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미 대화가 끝났는지 한쪽으로 물러나 있는 여진족들이 보였기 때문이다.

“서여진이 감사의 인사로 토산물을 들고 왔다. 어제 전투가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우야소가 남하하면서 그 세력에 밀려 고려에 의탁한 여진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들은 고려가 지면 죽음을 당할 처지기에 고려가 우야소를 밀어내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어제 전투는 패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적군의 기세가 나로 말미암아 꺾인 덕분에 지켜보던 여진들은 지휘관의 기를 돋워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들의 선물은 장계에 기록되어 패전을 무마하는 좋은 변명거리가 될 것이기에 임간으로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늘은 준경 별가를 선봉에 내세우겠다. 어제와 같은 전공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작전은 실소가 나올 정도로 단순했다. 나를 보내 일만에 이르는 적진을 흔들고 흐트러진 적을 상대로 각개격파를 시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진은 오히려 각개 상태일 때, 더 강했다. 무엇보다 당연하다는 듯이 일만 명의 여진기병에게 단신으로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현실감각이 없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 결국 탄핵당하여 파면되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러면서도 다음 달에는 인왕도량(仁王道場)을 회경전(會慶殿)에 베풀면서, 전국 승려 1만여 명을 구정(毬庭)에서 밥 먹이는 사치를 누리기도 하지.’

별무반을 양성하면서 고려가 쓴 재원도 엄청났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법회를 열어 낭비되는 재원은 더 많았다. 차라리 그 돈으로 무신들을 우대했더라면 최소한 더 잘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숙종은 괜찮은 왕이었지만 혁명적인 왕은 아니었다. 고려의 폐단은 계속 곪아 갔고, 이자겸 같은 세도가의 득세와 토지 제도의 문란이 시작되고 있었다. 대지주와 관리들의 수탈이 심해지니 백성은 자신의 땅을 절에 시주로 내놓고 그 땅에서 소작농으로 살아가는 일도 생겨났다.

특히 남경(서울)을 새로운 수도로 삼고자 대대적인 토목 공사에 들어간 명분은 훗날 묘청이 인종에게 제시한 도참설과 한 글자의 오차도 없이 똑같다. 단지 남경을 서경으로 해석한 것을 빼면 말이다. 이미 이 시기에 풍수와 도참이 깊게 스며들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어쩌면 남경이나 서경 천도를 생각한 것이 개경의 권력을 줄여 왕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심증은 있지만 말이다.

“맡겨주십시오.”

일단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나를 쫓아오는 여진인이 있었다.

“내게 무슨 할 말이 있는가?”

그는 서른 정도로 보였는데 그 나이 때 여진인이라면 전사로서 한창때의 나이였다. 그 짐작대로 그는 탄탄한 몸매를 갖추고 있었다.

“저는 마포(麻浦)라 합니다. 완안(完顔) 추장의 명으로 장군을 찾아왔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우야소가?”

실록에서는 서여진 무리가 토산물을 바치고 물러간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것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다른 부족으로 위장하고 고려군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한 방문이었을 수도 있었다.

완안부는 동여진의 일부로 현재 우야소와 아구다 두 형제가 뛰어난 실력으로 여러 부족을 통합하는 중이었다. 우야소가 남쪽, 아구다가 북쪽을 맡았는데 이번 전쟁의 시작을 보면 우야소가 고려를 먼저 공격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부족 패권을 두고 시작한 전쟁에 고려가 우야소 반대 측 손을 들어 끼어들었다가 낭패를 본 경우였다.

한적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단둘이 마주 보게 되자 그가 말했다.

“행영병마사가 또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고려 국경을 넘은 일천의 서여진을 제외하고 이번 전쟁의 원인이 된 나머지 부족들이 우리에게 복속하여 더 전쟁할 이유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우리에게도 자존심이 있으니까 나라고 하여 막을 도리가 없네.”

“막아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추장은 약속이 유효한 것인지를 묻고자 하십니다.”

나는 약속을 떠올렸다.

‘부족 간의 다툼에서 내가 이기게 해주겠다고 했지.’

내 외침에 우야소가 손을 잡았다. 그가 부족 간의 전쟁에서 일시적으로 밀렸던 것은 완안부의 전력이 우야소 본인과 동생, 아구다로 나뉜 탓도 있었고, 전 추장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내부 권력 투쟁이 시작된 탓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모두 극복하고 결국 고려를 제외한 전 지역의 여진을 모두 통합하게 된다. 내가 도와주겠다는 말은 그저 요식행위였던 것이다.

일시적인 어려움이 해소되는 것은 바로 고려가 형편없이 패하면서부터이다. 고려에게 의탁하려고 했던 여진 부족들이 고려의 힘에 회의를 느끼며 우야소 밑으로 들어가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번 전투에서 선봉에 선다. 내가 전공을 많이 세우면 세울수록 나는 동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빠르게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희생양을 만들라는 말입니까?”

마포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나는 너희의 강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너희보다 내가 더 강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믿던 믿지 않건 나는 홀로 일만의 여진을 향해 달릴 것이고, 전공을 세울 것이다. 나의 선전에 고려군은 신이 나서 뒤쫓을 것이지만 기병도 제대로 없는 보졸이 진형도 갖춰지지 않는 상태에서 너희를 이기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도 안다.”

마포는 내 말이 수수께끼처럼 느낀 모양이다. 그는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그도 확실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어제 전투가 그저 우연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홀로 벤 수급은 오십 이상이었다. 보통 한 명의 장군이 이끄는 일천 명의 병사가 전공을 세운다 함은 여진 기병을 오십 명 이상 베는 것이었다. 여진 기병을 죽인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웠다. 그것을 나 혼자 해낸 것이다.

“제가 우둔하여 뜻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일단 공을 세워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함은 병마사를 노리고 계시는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병마사에 오르면 추장을 도와주실 수 있으니 그 또한 이해하겠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일만 기병에 단신으로 뛰어들어 전공을 세운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고려 조정이 믿어주겠습니까?”

“처음에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계속된다면 믿을 수밖에 없겠지.”

소아시아(아나톨리아)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치며 코레아란 이름을 남겼듯이 무엇보다 빨리 명성을 얻어야 했다. 누군가 불가능한 일을 했을 때, 저 사람은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 명성의 힘이다. 처음엔 무슨 말도 안 되는 얼토당토않은 무훈이라고 하더라도 반복하면 믿을 수밖에 없게 되고 그 믿음이 커질수록 내 권위는 더욱 커진다.

‘가만있자. 혹시 실제 척준경도 짜고 친 것은 아니겠지?’

억측이었다. 그리고 이자겸의 난에서 보여준 그의 용력은 나이를 먹어서도 과연 척준경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외침 한번에 병사들이 달아났다는 행적이 기록되었을 정도니 말이다. 따지고 보면 그 외침이 그의 명성에 짓눌려서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되지만 말이다.

“다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의문이 있습니다. 어째서 장군은 같은 고려 병사들의 안위는 생각지 않는 것입니까?”

“지금 내게 그들을 모두 보호할만한 권위와 실력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삼국지 시절도 이랬다. 승상이 되기 전까지 내가 돌볼 수 있었던 것은 세력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다. 실제 역사보다 줄이기 위해 노력은 했지만, 아예 없을 수는 없었다. 수많은 전쟁에서 백성과 병사는 숱하게 죽었다. 내가 승상의 자리에 오른 다음부터 세력을 총괄할 수 있게 되자 그때는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전쟁과 천재지변으로 말미암은 피해는 막을 수 없었다. 그것은 황제가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따지자면 전후의 역사를 모르는 자들이 나를 향해 전쟁으로 일어선 황제라고 할 수도 있었다. 전란에서 수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죽어갔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나에게 내리는 평가로서 온당한 평가일까? 내가 온 힘을 다한 것은 하늘이 알고 동료가 인정해준다. 무엇보다 내가 후회를 남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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