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56화 (56/257)

00056  (7) 척당불기(倜%26#20795;不羈)  =========================================================================

“하사신? 자네 그 지독한 자들과 엮여 있나?”

“그들에게 갚아줘야 할 빚이 좀 있지.”

“빚? 자네. 정말 재미있는 친구로군.”

타티키오스는 어느새 한 병을 다 비웠는지 손을 흔들자 한 명이 다시 새로운 병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마개를 따며 말했다.

“그들이 어떤 자들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군.”

“지독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

“그들은 수니파를 증오하고 있지. 수니파 역시 그들을 증오하고, 지금 내가 자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하사신 역시 한 집단과 손을 잡았지. 자네와 나는 꽤 인연이 깊은 것 같군.”

“십자군인가? 어느 정도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다.”

“잘 알고 있군. 그래 십자군, 그 망할 놈들. 원죄를 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사고방식이 하사신과 같지 않은가?”

한동안 술을 넘기는 소리만 났다. 기병들은 야영 준비가 끝났는지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했다. 타티키오스와 준경 앞에도 먹음직스러운 양고기가 놓였다. 타티키오스는 양의 다리를 거칠게 뜯으며 말했다.

“이곳에 온 게 하사신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인가?”

준경은 술병을 기울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뜻을 이루었나?”

“아직. 이곳이 그들의 본거지라는 말을 듣고 왔는데, 알라무트가 진정한 본거지라는군.”

“알라무트라, 설마 그곳까지 갈 셈인가?”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동년배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기실 타티키오스는 마흔 중반이었다. 콘스탄티노플에 있을 자식들은 준경보다 나이가 많았다. 그럼에도, 그가 준경의 반말을 받아주고 있는 것은 전장에서 마주친 한 명의 전사로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멀리 있나?”

타티키오스의 표정이 조금 놀라는 것으로 봐서는 알라무트가 이 근처에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술기운이 합쳐지며 하사신에 대한 분노가 더 치솟았다. 이러다가는 언제 고려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타티키오스는 작은 나뭇가지를 주어 땅바닥에 대략의 지도를 그린 후 선을 긋기 시작했다. 험한 산맥이나 사람이 건널 수 없는 강을 제외하고 아인타브에서 알라무트까지는 1700km정도의 긴 거리였다. 말이 달릴 수 있는 한계 거리와 휴식 시간을 고려하면 꼬박 10일은 달려야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중간 경유지에서 습격을 당하지 말란 보장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하면 시간은 더 늦춰질 것이다.

“아마도 하사신은 자네가 이곳에서 저지른 일을 알리는 전령이 지금쯤 출발했다고 봐야겠지.”

그의 말이 잠시 들어오지 않았다. 중간 경유지에 준경에게 익숙한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준경은 손가락으로 그 도시를 짚었다.

“하마단을 지나가게 되나?”

“하마단? 특별한 목적지가 없다면 그곳을 지나가는 것이 최단 거리야.”

어쩌면 이것도 인연일까? 우마르는 민국실록의 마지막 원본이 하마단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예측한 바가 있었다. 비록 자신에게 별로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한 물건이기도 했기에 잠깐 시간을 내서 실존 여부 정도는 살펴보기로 했다.

“잘 마셨어. 그리고 알려줘서 고맙다. 이 빚은 언제고 갚도록 하지.”

준경은 술병의 머리를 완전히 뒤집어 남은 방울까지 모두 마신 후,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티키오스는 그런 준경을 따라 일어나며 손목을 잡았다.

“무슨 뜻이지?”

“무슨 뜻이긴, 우리도 함께 가자는 소리지.”

“지금 술에 취해서 한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준경은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비잔틴의 검이라고 불리는 중요한 장수가 비잔틴에서 멀리 떨어진 타지로 함부로 움직인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잠깐 앉아보게. 우리가 함께 가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지.”

준경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순전히 자신을 만나 그런 결정을 했다는 것인데 그 이유가 너무나 궁금했다.

“3년 전이었나?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블라헤르네(Blachernae, 콘스탄티노플의 한 구역) 종교 회의가 있었네. 그 회의는 정교회의 지침과 방향을 정하는 상당히 중요한 정례 회의지. 그 자리에서 칼케돈(Chalcedon) 교구의 담당자, 레오 주교를 탄핵하자는 안이 나왔네. 그리고 그날, 나는 고위 성직자의 서품을 받기도 했지.”

아직은 전혀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었다. 준경이 잠자코 듣기 시작하자 타티키오스는 손을 들어 술을 더 가져오도록 지시했다. 곧 술병이 준경의 손에 들렸다. 준경이 술병의 마개를 따는 사이 설명은 이어졌다.

“칼케돈이 어디 자리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 콘스탄티노플 바로 맞은편 동부 해안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네. 워낙 도성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에 둔 형제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그리고 그곳은 초대 교회 시절, 칼케돈 공의회가 열리면서 종교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도시네. 보스포루스 해협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언덕 위에 아름다운 유페미아 교회가 있는데 기독교로서는 상징적인 곳이지. 레오 주교는 그곳을 담당했다. 불행은 그가 정교회를 저버리고 로마 가톨릭과 유대를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야. 그는 남프랑스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지 항상 그곳으로 임지를 옮겨가고 싶었지만 필리오케 논쟁으로 촉발된 동서 양 교회의 갈등으로 그럴 수 없었지. 그는 종종 그런 아쉬움을 측근들에게 털어놓았고, 종래는 로마 가톨릭의 가짜 교황 그놈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십자군 결성을 결심하고 그들은 우리보다 신앙, 문화의 우월을 증명하기 위해 레오 주교의 예를 거론하였고, 그에게 남프랑스 지역의 교회를 맡기겠다고 공식으로 제의하기도 했지. 당연히 정교회의 수호자, 비잔틴의 황제께서는 제대로 화가 나셨지.”

배경 설명이 없다면 도통 알아듣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준경은 중간마다 의문 나는 사항을 물어서야 간신히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설명은 자정이 되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는데 그런 식으로 하사신과 연결되어 있었다니 그저 놀랍다는 생각만 들었다.

로마 가톨릭과 정교회의 갈등 중 가장 첨예했던 문제가 필리오케 삽입 문제였다고 한다. 문제의 발단은 381년 세계교회의 수장이 콘스탄티노플에 모여 통합 성경을 채택하면서부터이다. 통합 성경은 그리스어로 되어 있었고, 로마 가톨릭은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성령은 성부에게서 시작되었고.’를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시작되었고.’로 바꾸었고, 정교회는 그 사실을 알고 수정을 요구했지만, 자존심, 약간의 교리 차이 등이 겹치면서 점차 골이 커지기 시작했다.

성경의 정통이 그리스어냐 라틴어냐 하는 문제까지 겹치면서 민족과 문화를 아우르는 헤게모니 싸움이 되었고, 그 와중에 터진 레오 주교의 선택을 두고 양 진영이 첨예한 대립을 벌인 것이다.

“공교롭게도 세계정교회의 총대주교, 니콜라오 3세 그라마티코스께서 피습을 당한 적이 있었네. 당시 총대주교께서는 레오 주교에게 생각을 바꿔 회개한다는 증거를 보인다면 안티오크 정교회의 총대주교를 약속하셨네.”

“안티오크 정교회?”

안티오크에서 며칠을 머물렀기에 그곳에 자리한 정교회 중 시리아 정교회를 제외한 모든 일원이 쫓겨난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었다. 그들은 무슬림에 비하면 그렇게 많다고 할 수 없었다. 그곳의 총대주교가 롱기누스의 창을 이용한 계획에 휘말려 지금 지하에 갇혀 있지 않은가?

“이름만 놓고 보자면 그렇게 오해할 수 있겠군. 정교회의 세력 중 가장 큰 곳이 다섯 곳이 있네. 그중 콘스탄티노플이 가장 세력이 크고 정교회의 중심이기도 하기에 세계총대주교가 되네. 그 밑으로 알렉산드리아를 위시한 아프리카 교구, 안티오크를 위시한 아르메니아, 아나톨리아 동부, 시리아 교구, 예루살렘을 포함한 시나이 교구, 헝가리를 포함한 북동부 교구일세. 그중 한 곳의 총대주교가 된다는 것은 성직자로서는 굉장한 영광이지. 남프랑스의 일개 교회는 상대도 되지 않지. 레오 주교의 마음이 흔들리던 차에 세계정교회의 총대주교가 피습을 당한 것일세. 과연 범인이 누구였을까? 나는 당시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똑똑히 보았지.”

“하사신들이 어째서 그를 공격했을까? 그들이 가장 증오하는 것은 수니파일 텐데.”

“단순한 이치다. 우리는 비록 수니파와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아나톨리아 일대를 상실하면서 잠시 쇠락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 국가 대 국가의 성격이 강했지. 세속적이라 비난받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말이 통하는 상대였다. 그러나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는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에 어긋나는 자들은 강제 개종을 시켰고, 따르지 않으면 죽음을 내렸다. 그들은 같은 무슬림이라도 수니파 무슬림을 많이 죽이는 것이 오히려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미친 소리를 지껄였다. 내가 아까 정교회 세력 가장 큰 곳이 다섯 곳이라고 이야기했지? 그중 아프리카 정교회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세가 강한 곳이었지만 현재는 가장 세가 약한 곳으로 전락했다.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그들은 수니파와 전쟁을 치르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는 우리를 수니파와 별다를 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최근에 와서 십자군과 그들이 손을 잡은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남프랑스 영주들이 동방 무역의 막대한 이득을 알게 되면서부터지.”

“주류는 이미 비잔틴과 손을 잡고 있었으니 그들은 차선책을 선택했다는 것인가?”

“그렇다. 총대주교 피습도 같은 맥락이었지. 레오 주교가 회개하여 마음을 돌리면 로마 가톨릭으로서는 상당히 머쓱한 상황이었으니까, 더구나 가짜 교황은 프랑스인이었다. 그를 지지하던 프랑스 일대의 영주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지.”

암살이 실패로 돌아가고 그들의 정체를 비잔틴 일부 고위층은 인식하게 되었다. 사실을 전해 듣고 실망한 레오 주교는 로마 가톨릭에서 완전히 등을 돌렸다.

그것이 로마 가톨릭이 군중십자군의 결성을 서두른 이유가 되기도 했다. 정교회 소속 국가들을 지나치면서 파괴와 약탈을 일삼도록 조장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총대주교가 피습당한 것은 우리로서는 매우 심대한 충격이었지. 하사신이 파티마 왕조의 지원을 받고 있는 이스마일파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콘스탄티노플에 거주하던 시아파, 특히 이스마일파 상인은 재산을 강제 몰수하고 국외 추방을 시켜버렸지.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콘스탄티노플까지 그리 유유하게 오지 못했을 테니까. 이제 그들의 본거지도 알았겠다, 막강한 아군도 있으니 과거의 수모를 갚아줄 때가 아니겠는가?”

자신을 막강한 아군이라 추켜세워주는 타티키오스의 언변에 준경은 피식 웃고 말았다.

“비잔팀의 검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자의대로 외부를 돌아다녀도 됩니까?”

타티키오스의 황금마스크가 실룩거렸다. 준경의 어투가 존대로 바뀐 것이다.

“총사령관이 니케아를 잘 지키고 있으니 나 같은 사람은 당장 할 일이 없네. 기껏 해봐야 콘스탄티노플로 되돌아가는 것인데 그것보다는 지금의 이 일이 훨씬 보람찬 일이지. 폐하에게는 내가 따로 사람을 보내 상황을 알릴 걸세. 폐하도 이번 일이 잘 처리되면 총대주교에게 면목을 세울 수 있으니 좋은 일이네.”

준경은 술병을 내려놓고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합니다. 저는 고려의 무관, 준경이라 합니다.”

“허, 코레아가 그대의 국가를 가리키는 것이었나? 그건 미처 몰랐군.”

타티키오스는 준경이 내민 손을 잡았다.

그렇게 육로를 통한 1700km의 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1097년 이후 타티키오스의 행적은 사서에 기록되지 않는다. 그의 후손이 여전히 고위 귀족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아마도 십자군에서 떨어져 나간 후 콘스탄티노플로 돌아가 간간이 소규모의 진압을 주도하는 정도로 여생을 마친 것으로 추정된다. 어떤 이들은 테헤란과 카스피해 남부 연안에서 타티키오스가 이끌던 비잔틴 정예 기병 특유의 문양이 새겨진 갑옷들이 소수 발견된 것을 두고 십자군 이후 이곳으로 원정을 왔던 것은 아닌가 추측하고 있는데, 대규모 접전의 기록이 중동과 유럽 양쪽에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비잔틴 황제의 밀명을 받은 외교 사절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anonymous, Historia Hierosolymitana(sacred Jerusalem)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