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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55화 (55/257)

00055  (7) 척당불기(倜%26#20795;不羈)  =========================================================================

쾅!

등 뒤에서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자 준경은 본능적으로 옆으로 피했다.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렸고, 준경이 심문하려고 했던 자의 전신에 날카로운 단도가 꽂혀 있었다.

-하사신이라는 자들도 계급이 있네. 일반적인 전사는 맘루크와 다를 바가 없지만, 전문적인 암살자들은 지금 자네가 보고 있는 그 단검을 쓰네. 그들을 잡아서 회유하거나 묻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좋네. 그들은 임무 수행에 나서면 대마를 쓰네.

대마는 주로 의복을 얻기 위해 재배했다가 마취, 흥분 작용이 있음을 알고 이 지역에서는 상당히 흔하게 보급된 상태라고 했다. 오히려 이슬람 계율 상 대마 흡입보다 음주를 더욱 죄악시하는 상황이라 하니 어쩌면 준경에게 있어 대식국행이 의미가 있었다면 그건 술을 마실 날이 거의 없었던 것이리라.

준경은 탁자를 문쪽으로 걷어찼다. 탁자가 날아가는 사이 그 뒤로 바짝 붙었다가 탁자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떨어지자 칼을 휘둘렀다. 분명히 스치는 소리가 났지만 이내 잠잠한 것을 보니 자객은 자신을 공격하기를 포기하고 물러난 것 같았다.

그러나 뒤에 남아 있던 자 중 다시 비명이 연이어 터졌다.

“젠장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나!”

지붕을 뚫고 얼굴을 훤히 드러낸 자객 하나가 준경이 쓰러트린 다섯 명의 사내에게 단검을 던지고 있었다. 이미 죽은 녀석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살아남은 자에게 증언을 들어야 했다.

-하사신은 충성과 극기를 대마로 훈련받네. 종교적 신념이야 물론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교조(敎祖)에 대한 철저한 충성이 우선이지. 종교적 신념과 교조의 충성을 동일시하는 가르침 때문이네. 그래서 나는 그들이 우리와 같은 무슬림이라고 전혀 생각지 않는다. 폭력을 가르치는 종교는 세상에 없네.

야기 시안이 설명했던 것을 되새겼다.

전문 자객이 되면 회유하기 어려우니 그들의 임무를 돕는 동조자를 찾아 비밀을 캐야 한다고 말했다. 안티오크에서도 자객이 아닌 동조자를 찾아 심문했기에 지금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만약 하사신이 동조자가 그들의 유일한 약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그들에게 감시의 눈길을 붙였을 것이다.

안티오크에서는 워낙 세력이 부족했지만, 이곳은 그들의 근거지라 했으니 어쩌면 자신은 거대한 거미줄에 매달린 것인지도 몰랐다.

“그거 재밌겠는데.”

전장에서는 제약이 있었다. 아군의 전황을 살펴야 하고, 조금이라도 많은 아군을 살리기 위해 전장을 스스로 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하사신들과의 전투는 다르다. 자신 역시 자객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마음대로였다.

단검 세례 속에서 간신히 한 명의 사내를 수패로 보호했다. 그랬더니 이제는 아까 문 앞에서 사라졌던 자객이 문쪽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준경의 등을 노렸다.

“말은 하지 못해도 손목에 흐르는 피로 글을 쓸 수는 있겠지. 말해라. 저들의 본거지가 어디야! 네놈이 이대로 죽는다면 나는 반드시 네놈의 가족을 찾아 다 죽여버릴 테다!”

준경은 몸을 돌려 자객의 공격을 받아냈다. 그들은 준경이 근접전에 강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좀체 접근하지 않았다. 준경은 이들의 목적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라기 보다 알선, 또는 동조자의 역할인 다섯 명 사내를 입막음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사실을 깨닫고 단검만 방어하며 마지막 살아남은 한 명의 멱살을 쥐고 흔들자 더 유인은 어렵다고 보았는지 두 명의 자객이 동시에 준경의 앞뒤를 포위하며 한 명이 시간을 끄는 사이 한 명이 사내의 숨통을 끊어놓는 전술을 구사했다. 그러나 그들은 짐작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크륵!”

준경의 도가 자객의 목을 반쯤 가르자 괴이한 신음와 함께 허물어져 내렸다. 날아 차기를 하듯 몸을 반대로 회전하며 삽시간에 반대편 자객에게 도를 휘두르자 거리상 도저히 한 번에 접근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 자객의 예상이 단숨에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고려를 떠나기 전 칼을 잡고 두 팔을 벌린 거리에 더해 몸을 회전시켰을 때 최대한 크게 벌린 보폭만큼, 약 2장 이내가 준경의 사정거리였다면 이제는 같은 시간에 두 배의 거리를 사정거리로 삼을 수 있었다.

만약 해남도에서 강자들을 만나 자극받지 못했더라면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사정거리가 무의미한 적들도 있긴 하지.’

준경은 타티키오스를 떠올렸다. 고려나 송의 장수, 또는 무인들은 빠른 몸놀림을 중시해 그렇게 육중한 갑옷을 입지 않았다. 그래서 무기로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사정거리가 길수록 유리해진다. 그러나 준경은 이곳에서 중장 기사들과의 전투를 통해 꼭 사정거리가 중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무승부로 끝났던 타티키오스를 쓰러트릴 수만 있다면 그것이 중원의 이탁을 상대로 승산을 점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생각했다.

어쨌거나 지금 상대하는 자객들은 사정거리에 한번 들어오면 준경의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 저들은 거미줄을 쳤다고 생각하겠지만, 준경은 거미줄을 헤집는 참새(雀)였다.

삽시간에 두 명의 자객이 허물어지자 마지막으로 남은 자는 준경을 보며 경악하고 있었다. 말을 할 수 있었다면 ‘괴물 같은 놈’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두 명의 자객과 시끄러운 난전을 벌였는데도 주위가 조용한 것을 보니 이 일대는 모두 소개된 것 같았다. 또 다른 적들이 몰려오기 전에 자백을 받아내야 했다.

“장소를 밝힌다면 네놈의 가족은 건드리지 않겠다. 다섯 세겠다. 만약 그때까지 밝히지 않겠다면 나는 다른 놈을 찾아보겠다. 그리고 맹세하건대 너의 목을 잘라 너의 가족 앞에 던져 놓고 네놈의 머리통이 똑똑히 지켜보는 가운데 모두 죽여주마. 단칼에 죽이지 않는다. 피부를 포 뜨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체험시켜주마.”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었는데 사내는 별반 반응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 자는 결혼하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준경은 협박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네놈의 부모를 잡아다 양 사지를 자른 후, 시아파 모스크에 던져 놓을 테다. 피로 성전이 물드는 불경은 네놈이 자초한 것이다. 네 늙은 부모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무쇠솥 팔팔 끓는 물에 평생을 지져야 하는 신세로 만들어주지.”

사내의 눈이 더할 나위 없는 경악을 담고 있었다. 결혼은 하지 않았어도 부모는 생존해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이 도시에.

준경은 협박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상대로 이런 협박을 한다면 정말 참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은 모두 가정이다. 사람들이 모두 상대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역지사지가 보편화하였다면 전쟁이나 복수 같은 것이 일어날 리 없다. 그래서 역지사지를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훌륭하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누구나 실행하는 평범한 마음가짐이었으면 그것을 하자고 외칠리가 없다.

불행히도 자신은 그렇게 따지면 ‘범인’이자 ‘소인’에 불과했다. 자신이 마음먹은 것을 도덕 규제나 관습에 얽매어 제대로 하지도 못할 바에는 차라리 욕을 먹더라도 ‘소인’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자신이 ‘대인’이 되는 순간은 오직 칼을 휘두를 때가 될 것이다. 양규 장군이 수패에 적은 ‘대인불사’의 그 의미처럼.

사내는 잘린 팔목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글자를 그리는 동안 울고 있었다. 눈앞의 악마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명의 자객을 삽시간에 처리할 정도로 실력도 좋았다. 이제는 그저 지인의 피해 없이 자신 혼자 죽는 것 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리고 그제야 왜 준경이 입속을 찢었는지 알 것 같았다. 손목을 자르고 발목까지 잘라 자살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없앴다. 지독하리만치 철저한 자였다.

“이곳에 근거지가 있었으나 그것은 임시였다. 지금은 알라무트(Alam?t)다.”

그는 준경이 자신이 피로 쓴 글을 읊조리자 간절한 시선을 보였다. 그만 자신을 죽여달라는 의미일 것이다.

“알라무트, 알라무트라.”

준경은 처음 듣는 지명이었다. 아마도 마방에 물어보면 알 수 있으리라. 눈매가 절로 일그러졌다. 중원과 고려로 돌아갈 일이 점점 늦춰지고 있었다.

준경은 칼을 휘둘렀다. 사내는 오히려 편안하게 죽음을 받아들였다.

집 밖으로 나오자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담벼락에 숨은 꼬마 몇이 다였다. 칼부림이 난 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도 이 도시를 담당하는 병사들이 달려오지 않는 것을 보면 치안이 그리 좋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쩌면 하사신의 행사를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준경이 도시 외곽에 자리한 마방을 향해 걷자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이 일반인들의 생존 방법이었을 것이다.

준경은 피식 웃으며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려였다면 지금쯤 늦은 가을 정취를 즐겼을 것이지만 여기는 여전히 여름처럼 뜨거웠다.

마방에 도착하자 준경은 전혀 생각지 못한 사람과 마주쳤다.

잽싸게 칼을 뽑아들자 그 역시 잔뜩 굳은 얼굴로 창을 움켜쥐었다. 그의 주위에서 한가로운 태도를 보였던 기병들 역시 당장에라도 공격할 준비를 했다.

“코레아, 네놈이 어째서 이곳에…….”

“그건 내가 돌려주고 싶은 말이군. 내 말 앞에서 뭘 하는 건가? 마음에 들어 흥정이라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지.”

“코레아, 네놈의 말이었나?”

준경의 짐작대로 타티키오스는 준경의 한혈마를 우연히 보고 탐이 나 마방의 주인을 상대로 흥정 중이었다. 마방의 주인은 맡겨논 말이라며 거부했고, 그것이 값을 올리기 위한 수작이라고 생각한 타티키오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아느냐며 한껏 화를 낼 기세였다.

준경은 타티키오스의 주변을 살폈다. 직속 비잔틴 기병 외에 십자군 일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지금쯤 안티오크에 있어야 할 자가 이곳에 있는 것도 이상했다.

“십자군한테 버림이라도 받았나?”

“버림? 하하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황금마스크는 웃고 있었다. 오히려 주변의 기병들이 분개한 표정이었다.

“맞아, 나는 버림받았네.”

순순히 인정하는 타티키오스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준경은 아직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타티키오스가 마음만 먹으면 흑우를 빼앗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다. 아무리 자신이라도 오백에 달하는 기병을 지금 상태로 싸울 수는 없다.

“술 좋아하나?”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타티키오스는 투르크인이긴 하지만 어려서부터 비잔틴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자랐다. 무슬림이 아니니 능히 음주를 즐길 수 있었다.

그래도 준경이 경계를 풀지 않자 타티키오스는 주변을 돌아보며 경계를 풀 것을 명령했다. 그의 행동이 거짓으로 보이지 않자 준경은 칼을 밑으로 내렸다.

“맛좋은 술이겠지?”

1년 만에 맛보는 술이다. 준경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타티키오스가 그 정도로 치사한 인간은 아니리라고 믿었다.

“물론.”

흑우를 타고 타티키오스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도시에서 북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야트막한 산이었다. 그곳에서 하룻밤을 유숙했었는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어제 이곳에서 묵었지.”

기병들이 능숙한 솜씨로 말을 인근 나무에 매고 숙박과 식사 준비에 들어갔다. 그들이 투구를 벗자 마치 인종전시장의 축소판을 보는 것처럼 서양인과 투르크인이 뒤섞여 있었다.

“이들은 맘루크와 처지가 같다네. 나 역시 다를 바 없지. 나는 이들을 형제처럼 여기고 있고, 이들 역시 나를 형제로 여기고 있지.”

기병 중 한 명이 그에게 양가죽으로 둘러싸인 술병 2개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그중 하나를 준경에게 던졌다.

“진중이라 잔은 없네. 손님대접이 시원치 않지만, 자네도 이 정도는 이해하리라 믿네.”

“왜지?”

“뭘 말인가?”

“흑우를 탐냈지 않는가? 그리고 나는 너의 적이다. 그런데도 나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유가 뭐지?”

“이유? 꼭 이유가 있어야 하나? 그렇다면 하나 떠오르는군. 자네는 십자군과 척을 지고 있고, 나 역시 십자군과 척을 지게 되었다. 적의 적은 동료가 아닌가?”

술병에 박힌 나무마개를 따자 ‘퐁’ 하는 맑은소리가 청량했다. 그는 술이 아무 이상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듯 먼저 입을 대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동안 술을 들이켜자 입 주변으로 벌건 색의 액체가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자네도 어느 정도는 사정을 알겠지? 우리는 처음부터 옛 땅을 되찾고 싶었던 것이지, 빌어먹을 십자군 따위를 돕고 싶은 마음은 요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의 적이지. 처음에 그들이 콘스탄티노플로 진입하려 했을 때, 폐하께서 얼마나 놀랐는지 자네는 모를 거야. 가짜 교황은 생각보다 많이 모인 십자군에 놀라고 기뻐하며 이 정도의 병력이라면 콘스탄티노플도 능히 함락할 수 있다는 개소리를 내뱉었지. 그 소리를 듣고 도성으로 들일 사람이 있겠는가? 폐하께서 기지를 발휘하시어 그들을 도성 밖에 머무르도록 조치하지 않았다면 콘스탄티노플은 탐욕에 이글거리는 십자군의 먹잇감이 되었을지도 모르지.”

생각보다 비잔틴과 십자군의 불화는 크고 넓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종교적 갈등과 영토 분쟁이 수백 년을 이어오며 격화될 대로 격화된 것이 지금에 이르렀다. 면전에서는 서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조금만 틈을 보이면 언제든지 칼을 들이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지금의 기독교 국가들의 모습이었다.

“레몽 등을 비롯한 십자군 수뇌부는 안티오크에 거의 다다를 때쯤에 공성을 위한 식량이 매우 부족한 것을 걱정했네. 해안가 도시들이 너무 쉽게 항복한 것이 오히려 그들에게는 악재가 되었던 거야. 항복한 대상을 약탈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무리 뻔뻔한 십자군이라 해도 무리한 일이었지. 자발적 징발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줄 수 있는 곳은 오직 우리밖에 없었지.”

타티키오스는 다시 술을 벌컥 들이켰다. 준경도 타티키오스가 술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목이 탔다. 나무마개를 따서 자신 역시 힘차게 들이켰다. 청량함과 톡 쏘는 기분이 입안을 알싸하게 메우며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술맛이었다.

“내가 수송 물자와 지원군을 데리고 오겠다고 제안했네.”

“그리고 니케아와 같은 방식을 안티오크에도 제안하려고 했나?”

“맞아. 우리는 평화적으로 안티오크를 얻고 싶었네. 예루살렘은 솔직히 우리가 담당하기에는 멀고, 파티마 왕조와 셀주크 왕조의 틈바구니에 끼어 쓸데없는 손해만 입을 것이 분명했으니 우리는 안티오크까지를 욕심을 부릴 수 있는 마지막 경계선으로 생각했지. 그런데 십자군도 니케아에서 이미 한 번 당했기에 두 번 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겠지. 그들은 나를 인질로 삼아 폐하께 원조를 얻으려고 했네. 내 몸값을 요구한 셈이지. 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내가 떠나려고 마음먹었을 때는 그들이 먼저 움직였을 때였지. 그들은 내가 그렇게 과격하게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을 것이네. 레몽이 수뇌부를 대표해 나를 협박하러 왔을 때, 나는 일언반구도 없이 창을 휘둘러 앞으로 달려나갔지. 그때 얼빠진 레몽의 얼굴을 자네가 봤어야 했는데, 하하하.”

그는 다시 술을 들이켰다. 결론은 십자군을 피해 이곳까지 도망쳐왔다는 말이었다.

“이제 코레아, 자네 이야기를 들어보세. 킬리지는 어쩌고 이곳에 와 있는지 말이야. 안티오크를 구원하기 위해 지원군이라도 얻으려고 왔나? 그렇다면 잘못 찾아왔네. 이곳은 오래된 교역 도시답게 철저한 중립을 표방하고 있네. 그것이 도시의 명맥을 이었지.”

혹시 타티키오스는 하사신에 대해 알고 있을까? 준경은 술을 다시 벌컥 들이마셨다.

“하사신을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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