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9 (7) 척당불기(倜%26#20795;不羈) =========================================================================
“아직도 신종(臣從)의 맹세를 하고 있지 않다니. 그러나 군중십자군이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하니 그 뻣뻣한 태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알렉시우스 1세는 십자군을 아나톨리아에 상륙시켜주는 조건으로 자신의 신하로 전쟁에 참가하라고 요구했다. 1077년 니케아를 셀주크에게 빼앗기며 비잔틴은 휘청였고, 이제 금쪽같은 아나톨리아 서부 일대를 대규모 십자군 원정으로 탈환할 가능성이 커지자 자신에게 돌려주기를 원한 것이다.
십자군의 지휘자들은 처음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곧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전쟁 물자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줄 수 있는 곳은 비잔틴 제국밖에 없었다. 그들은 알렉시우스 1세에게 함께 참전하여 땅을 찾아가라고 제안했고, 알렉시우스 1세는 후방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십자군의 실제 전투 인원은 십만이 넘는 참가자 중 3만에서 4만 정도였다. 나머지는 귀족을 시중들기 위한 시종, 요리사, 또는 곡예단 같은 존재들도 있었다. 또한, 그들을 상대로 장사하기 위해 제노바, 피사, 베네치아의 상인들까지 모여들면서 콘스탄티노플은 극심한 치안 부재에 시달렸었다. 황제는 이들이 어서 빨리 신종의 맹세를 하고 아나톨리아로 사라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던 판에 군중십자군의 전멸 소식이 전해지면서 십자군이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의견이 지휘관 사이에 대두하자 극적인 타협이 이루어졌다.
십자군 지휘자 중 오직 한 명, 툴루즈의 레몽만이 땅을 돌려준다는 약속 대신 비잔틴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문구로 교묘하게 황제의 의지를 피했지만, 대다수 지휘자가 땅을 돌려줄 것을 약속한 이상 홀로 반대하기란 어려울 것이 뻔했기에 황제는 그 사실을 덮었다.
그렇게 아나톨리아에 십자군이 도착하고, 그때를 기다리고 있던 군중십자군의 피에르와 추종자들까지 합세하자 12만에 달하는 대규모 인파가 완성되었다.
십자군은 전열을 정비했다. 본격적인 전투를 위해 일반인과 군인을 분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종적으로 보병 3만, 기병 5천이 가용 병력이 되었다. 거기에 비잔틴의 후방 지원군 2천까지 합쳐져 총 병력 3만 7천이 첫 번째 목표 니케아를 노렸다.
한편, 킬리지 아르슬란은 군중십자군을 궤멸시킨 것에 고무되어 십자군의 위용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그는 십자군 정도는 언제든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끼게 되었고, 서부보다 동부 방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멜리테네(Melitene, 현 터키 말라티아Malatya)였다. 그곳은 다니슈멘드 왕조가 다스리고 있었는데 시리아의 중심 도시 중 하나인 알레포로 가기 전에 거점으로 삼을 수 있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그곳을 얻으면 아나톨리아를 석권하는데 유리할 뿐만 아니라 차후 시리아, 아르메니아 일대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 요충지였다.
킬리지는 3만의 정예 병력 중 1만을 니케아에 주둔시키고 2만을 이끌고 멜리테네 원정에 나섰다. 준경에게도 원정에 함께 참여할 것을 권했는데 마침 식중독에 걸려 한동안 운신하지 못할 정도가 되자 쾌유를 빌며 떠났다.
식중독이 치료되고 준경은 킬리지에게 갈까 했지만, 십자군이 아나톨리아 상륙을 시작했다는 말을 듣고 니케아에 남았다. 킬리지의 상대보다 십자군과의 전투가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들 중 기사들이라는 자는 온몸에 중갑을 두르고 무식할 정도로 호쾌한 질주를 통해 길을 열었다. 그들을 통해 중장기병 다수를 효과적으로 이기는 방법을 체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군중십자군의 고티에를 상대해보았지만, 그가 거느린 기사들은 너무 수준이 낮았다.
지금 도착한 자들은 하나같이 이름을 날린 기사들이라고 하니 절로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준경의 바람은 하나였다. 그들 중에 중원의 이탁 같은 자가 존재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상륙이 완료된 것은 해를 넘어가서였다. 워낙 많은 인원인지라 제노바, 피사, 베네치아의 무역선까지 총동원되어야 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십자군 지휘관들이 영토를 얻게 된다면 그곳의 무역을 관장할 수 있는 권한을 받기로 한 것이었다.
킬리지의 원정은 밀고 밀리는 접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십자군의 진군이 예상보다 느리자 준경은 잠시 원정에 참가해볼까 하고 운을 띠어보았지만 ‘가족을 지켜주게.’라는 킬리지의 말에 그냥 니케아에 눌러앉았다. 지금까지 승승장구했던 킬리지였던지라 자신의 친우에게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탓이라고 해석했다.
대신 사흘에 한 차례씩 홀로 성을 빠져나가 십자군의 선봉대를 상대로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준경이 니케아의 정찰인가 싶었던 십자군 선발대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한 달이 지났을 때, 본진의 십자군 지휘관들은 선발대를 책망하는 사자를 파견하게 되었다.
선봉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진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코레아란 자가 그리 강한가?”
진상을 알아보니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였다. 한 명의 기사에게 가로막혀 본래 예정 속도의 삼 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행군을 보였다. 선발대는 그 기사의 이름이 코레아라고 했으며, 그 강함은 직접 눈으로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소리높였다.
준경이 그들에게 코레아라고 불린 이유는 ‘내가 고려의 준경이다!’를 외치며 돌진하는 모습에서였다. 그들은 ‘고려의 준경’이라는 것이 이름을 나타내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아직 고려의 존재는 유럽에서 아는 사람이 드물었던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름난 기사들이 대거 선발대에 포함되었고 마치 한 마리의 사자를 잡기 위한 몰이식 수렵 진형이 도입되자 준경은 자신의 한계를 느꼈다.
“오십 명이 한계인가?”
오십 명의 기사가 제각각으로 덤벼들면 그래도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진형을 짜는 순간, 오십 명은 마치 수백 명과 같은 효과를 나타냈다.
준경은 킬리지에게 경고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정도의 정예라면 일만의 수비군이 버티고 있는 니케아가 자칫 위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킬리지가 보낸 답변은 곧 멜리테네를 함락할 수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는 말이었다.
1097년 5월. 군중십자군의 시체로 가득 메웠던 니케아 인근 평원은 정규 십자군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니케아가 믿고 있는 구석도 있었다. 옛 비잔틴의 도시답게 200개에 이르는 높은 수비탑이 공격하는 측을 질리게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니케아와 인접한 후방 이즈닉 호수의 영향으로 완전한 봉쇄도 어려웠다.
준경은 그런 니케아의 방비를 인정했다. 그러나 군중십자군의 광기에 실력까지 갖춘 정규 십자군이라면 무수한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니케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염려되었다. 이미 그들이 지나온 도시가 어떻게 되었는지 똑똑히 목도했기 때문이다. 무슬림을 대량 살육하는 것은 오히려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며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졌다.
니케아 수비를 책임진 대장 모함마드는 준경이 술탄과 친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준경의 우려를 계속 무시할 수도 없었다. 더구나 니케아에는 술탄의 가족과 재보가 모두 있는 중심 도시였다.
군중십자군과는 실력이 다르다는 준경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날랜 투르크 기병 일천 기를 거느리고 막 행군을 끝내 지쳐 보이는 십자군을 공격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하던 십자군이었지만 쟁쟁한 지휘관들, 고드프루아, 탕크레드, 레몽 등이 기사단을 거느리고 준경을 통해 익숙해진 몰이식 사냥으로 압박하자 이백 명의 손실을 보고 후퇴해야 했다.
니케아 수비탑 위에서 준경은 그 상황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자신도 함께 출진하려고 했지만 모함마드는 그래서는 제대로 된 실력을 볼 수 없다며 투르크 기병만 출진시켰다. 기습의 이점까지 더해졌지만, 적들의 피해보다 이쪽의 피해가 더 컸다.
준경은 무엇보다 후방에서 십자군의 전투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비잔틴 군의 기사에게 시선이 갔다. 그는 유독 이질적인 존재라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준경이 십자군에게 이질적인 대상이었다면 유럽인 사이에 투르크 기사의 출현 역시 이질적일 수밖에 없었다.
용병일까?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비잔틴의 지원 병력 2천이 황제 직속의 근위군이라는 말을 들었기에 고개를 흔들었다. 옛 땅을 되찾기 위한 파병이니 황제가 허술한 자를 보낼 리 없었다. 준경은 주먹을 쥐었다. 어쩌면 지금 위용을 보여준 십자군 지휘관들보다도 저자가 가장 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르크 기병이 기습에 실패하여 니케아로 돌아오자 모함마드는 킬리지나 자신이 정규 십자군을 너무 얕보았음을 인정했다. 그는 즉시 킬리지에게 전령을 보내 원정을 중단하고 니케아로 회군하여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킬리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선발대를 니케아로 먼저 급파하고 본대 역시 원정을 중지하고 뒤를 쫓았다.
그 기간에 니케아는 치열한 수성을 경험했다. 준경으로서는 매우 생경한 경험이었다. 비록 해남도에서 공성과 비슷한 경험이 있었지만, 반대편의 처지가 되어 수성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려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공성 병기 등이 등장하자, 오늘은 어떤 색다른 병기와 전술이 나올지 흥분될 정도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전장 체질인가?”
가끔 죽은 자매나 소동파와 함께 있을 이소가 떠오르긴 했다. 고향의 아버지도 간혹 떠올랐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면 준경의 머릿속은 온통 전장의 상황이 떠나지를 않았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흥분되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자신과 겨루었던 맘루크가 죽어나가고, 공성 병기를 통해 떨어지는 낙석에 이제야 안면을 익히기 시작한 시장 상인이 죽어나갔음에도 연민이나 슬픔보다는 절제된 흥분이 가슴을 채웠다.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 막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구할 수 없는 죽음도 있다. 그런 죽음에 연연하여 지금 당장 적을 죽일 기회를 망설이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냉정하게 마음먹었다. 이쪽의 목숨을 취했다면 저쪽의 목숨도 똑같이 취해주면 되는 것이다. 아니, 이자까지 쳐서 톡톡히 받아낼 것이다.
5일간의 공방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니케아를 지키던 수비군들이 먼 동쪽을 보며 함성을 질렀다. 뿌연 먼지를 동반하며 선발대의 선두에 선 용맹한 킬리지에게 보내는 환호였다.
십자군은 즉시 툴루즈의 레몽에게 대응군을 맡겼다. 공성이 한창인 와중에 외부에서 온 지원군이 옆구리를 찌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나도 간다!”
모함마드에게 소리치고 준경은 단숨에 수비탑을 뛰어내려갔다. 수성도 재미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기다림을 동반한 수동적인 전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말 한 마리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쪽문이 후방, 이즈닉 호수 쪽으로 열렸다.
“준경!”
킬리지는 자신에게 합류하기 위해 달려오는 준경을 보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인사는 나중에 하자고, 지금은 선발대를 막기 위한 대응군을 부숴버리자!”
“마음에 드는 소리군. 가세!”
레몽은 자신들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오는 선발대를 외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는 젊은 시절 전투 중에 눈을 부상당해 외눈이 되었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전술에 눈을 뜨게 되었다. 개인적인 무력보다 집단의 움직임을 기민하게 살리는데 능해진 것이다. 그가 대응군을 맡은 것은 바로 그런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였다.
“로베르 백작, 자네의 책임이 막중하네.”
레몽의 곁에는 오백 명의 기사가 고삐를 조이며 출진만 기다리고 있었다. 오백의 기사 선두에는 생김새부터 용맹하게 생긴 게르만 출신의 중년 기사가 있었다. 그는 오늘날의 네덜란드 남부에서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 북부 지역에 이르는 플랑드르의 백작 로베르였다.
레몽이 십자군 중 가장 많은 병력을 소집한 것에 비해 로베르는 불과 5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십자군에 참가했다. 그러나 누구도 로베르와 500명의 기병을 우습게 보는 이가 없었다. 남프랑스 따뜻한 곳에서 농노들을 대거 소집하여 숫자만 많은 레몽과는 비할 수 없는 정예 병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휘관들이 레몽에게 대응군을 맡겼을 때, 레몽은 휘하에 로베르를 넣어달라고 청했다.
레몽은 킬리지의 전력과 자신들의 전력을 비교했다. 킬리지가 이끄는 선발대는 대략 이천 정도였다. 빠른 이동을 위해 전원이 투르크 기병이었고, 경기병 형태였다.
자신들은 오천의 보병에 오백의 기병이었다. 기병의 숫자가 적긴 하지만 오백 명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흉포한 게르만 기병이다.
오천으로 이천의 경기병이 뛰어놀기 어려울 정도로 몰이망을 구축하고 오백 명의 들개를 그 안에 풀어 넣는다는 것이 레몽이 세운 계획이었다.
“응?”
킬리지와 나란히 달리는 한 명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이내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코레아인가?”
이미 몇 차례 마주친 경험이 있었다. 실로 영악한 놈이었다. 일부러 미끼를 던져 보았지만 무리하게 물려고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상당한 피해를 주는 바람에 전술가라는 자부심에 금이 갔다. 수성에 참가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느새 킬리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아마도 니케아 후방에 자리한 이즈닉 호수의 샛길을 통해 합류한 것 같았다.
이제 킬리지의 본대까지 도착하면 십자군이 공략할 수 있는 방향은 세 곳에서 두 곳으로 한정된다. 레몽은 앞으로의 공성이 어려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리고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후방에서 잠자코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비잔틴의 이천 병사를 쳐다보았다. 근 일주일간 저들은 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만이 일이었다. 움직이는 경우는 비잔틴에서 수송되는 물자의 전달이었다. 저들을 지휘하는 기사가 얼마나 뛰어난 자인지 잘 알고 있는 레몽이었기에 알렉시우스 1세의 이런 행동이 불만스러웠다. 자신들의 피로 니케아를 거저 얻으려는 속셈이 너무 노골적이지 않은가?
물론 알렉시우스 1세도 핑계는 있었다. 아직 십자군의 수송이 다 끝나지 않았기에 후방 병력을 함부로 전투에 돌릴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실제로 거리가 멀어 뒤늦게 도착한 십자군들이 있었다. 그들을 모두 수송한 후, 황제가 직접 마르마라 해의 진입을 막고 있는 스미르나의 해상 포위망을 걷어내고 니케아로 직행할 것임을 예고했다. 그리스의 불까지 동원하겠다는 말에 십자군 수뇌부는 알렉시우스 1세를 더 몰아붙일 명분이 없었다.
잡념에 빠진 사이 어느새 킬리지가 이끄는 선발대는 전투 거리에 들어왔다.
“로베르 백작.”
출진하라는 허락이 떨어지자 로베르는 호탕한 웃음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가자, 용맹한 사자들아!”
본진에서만 계속 있었던 덕분에 코레아란 이름만 들었을 뿐, 한 번도 겨뤄보지 못한 것이 아쉬워하던 참이었다. 로베르는 킬리지보다도 준경을 노리고 있었다. 그를 따르는 게르만 기병은 일견 무질서하게 달리는 것 같았지만, 전투에 임하면 본능적으로 무리 사냥에 능했다. 제대로 된 사냥을 보여주겠다고 로베르는 다짐하고 있었다.
로베르가 저들의 예봉을 잠시 늦춰주는 사이 레몽은 오천의 보병을 움직여 경기병의 날랜 움직임을 방해하는 울타리를 만들 작정이었다.
“기욤 시작하자꾸나.”
조카인 기사 기욤이 손을 휘젓자 오천의 보병이 둘로 나뉘어 중앙은 텅 비고 날개만 있는 진형이 이루어졌다.
“직선으로 달릴 공간만 있으면 된다.”
경기병의 약점과 중장기병의 장점을 그대로 취하기 위한 진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