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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47화 (47/257)

00047  (6) 유월비상(六月飛霜)  =========================================================================

한 달의 시간이 금세 지났다.

그 사이 준경이 활약한 것이라고는 무모하게 돌진하는 소선에 뛰어들어 백병전을 몇 차례 벌인 것뿐이었다. 고려 수군은 놀랍도록 강했고 황정견은 예상보다 뛰어난 고려 수군의 실력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동서 화산의 영향으로 육로 공격이 어려운 상황에서 케디리를 수상으로 우회 공격할 수밖에 없는 장갈라와 스리비자야 왕국은 고려 전선에게 철저하게 농락당했다. 케디리는 뜻하지 않은 구원자의 등장에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응대했다.

교역을 통해 송과 고려의 이름은 들었지만, 지금까지 이슬람 상인이나 인도 상인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교류할 뿐, 직접적인 교류가 없던 탓에 정복을 위해 출현한 것이 아닌가, 겁을 집어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송과 고려는 특산품인 청동제 장신구를 지배자들에게 안겨주고 그들에게 정복의 뜻이 없음을 수차례 확약했다. 송은 젊은 황제, 철종의 업적으로 남기기 위해 명분상 조공 무역이 필요했고, 고려 역시 숙종을 흠모하는 동남아 열방(列邦)의 대표라는 이름값이 필요했다.

송의 증포와 포면이 숙종에게 상황을 설명할 것이지만 최소한 그 정도의 성과가 아니고서는 함부로 군대를 움직인 죄를 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항해기간보다 짧은 10일 만에 장갈라의 왕이 항복을 선언하고, 스리비자야 왕국의 도성, 팔렘방 해상을 봉쇄하여 스리비자야 왕국의 배만 속속 공격하자 더 버티지 못하고 강화를 요청했다. 그들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셈이 되었다.

스리비자야 왕국이 점유하고 있던 순다 끌라파를 케디리에게 양도했고, 그로 말미암아 자바섬 전체가 케디리 왕조의 품에 안겼다. 스리비자야 왕국의 불행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고려 전선이 팔렘방을 떠나고 약한 지진이 팔렘방에 생겼다. 피해는 얼마 없었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팔렘방으로 들어오는 입구, 무시강 하류에 토사가 쌓이면서 대형 상선이 입항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결국, 수도를 팔렘방 북쪽 잠비(Jambi)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김한충과 강증이 숙종에게 보고하고 정식으로 실록에 기록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4월 남만해(南蠻海) 열방의 수좌(首座), 아우구(兒憂具)가 내조하여 토산물을 바쳤다.

선정전에 나가 해가 저물도록 조회를 하였다. 중서성에서 아뢰길, ‘안남국과 친교를 맺자 남만해 소국들이 고려의 위세에 절로 내조를 청하였고, 탐라 성주(星主)까지 따로 사람을 보내 왕의 즉위를 축하하니, 이는 명성(明星, 샛별)이 더욱 흥할 상입니다. 또한, 송은 아국의 사정을 헤아려 왕의 어려움을 덜어주었으니 이는 열조의 덕입니다. 아무쪼록 무고한 자의 죄를 헤하려 사면을 내린다면 민정(民情)이 더욱 복록을 가져올 것입니다.’ 하니 왕이 받아들였다.

-형부시랑 김한충에게 당분간 좌서자(左庶子, 동궁 교육)를 겸하게 하여 기이한 항해 경험을 전하고, 군기주부동정(軍器注簿同正) 강증은 영인진판관(寧仁鎭判官)으로 승급시켰다.

숙종이 즉위하자마자 그동안 고심했던 개혁정책들이 속속 준비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화폐 주조와 왕족 간 근친혼을 금하는 것, 토지 제도의 정비 등이었다. 반대가 만만치 않았는데 대외에서 좋은 소식들이 연이어 들려오자 숙종의 개혁에 힘이 실렸다. 숙종으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잔칫집인 고려와 달리 시피와 시아파는 날벼락을 맞았다. 송과 고려가 스리비자야 왕국에게 강화를 조건으로 내건 것은 불교의 융성과 시피, 시아파의 공식적인 축출이었다. 그 때문에 스리비지야 왕궁은 한때 내전에 가까운 피바람이 불기도 했다. 불교를 옹호하는 무리와 시피, 시아를 옹오하는 무리 간에 알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부 힌두 신자들은 불교는 인도에서 파생된 종교라 하여 그다지 적대시하지 않았지만, 이슬람은 여러모로 다른 종교라 꺼렸다. 힌두교가 불교의 편을 들고, 팔렘방이 상업항으로서 명성을 상실하면서 시아파와 시피는 오랜 시간 음지에서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고려 전선은 일찌감치 떠났지만, 준경은 홀로 팔렘방 건너 믈라카에 남았다. 고려가 팔렘방을 해상 봉쇄하는 사이 예상하지 못한 손님을 만난 것이 시발점이었다.

바로 롬 술탄국을 재건하며 소아시아(터키)의 새로운 지도자로 떠오른 킬리지 아르슬란 1세가 우마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보내는 선단이었다. 송과 고려는 그들에게서 대식국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지금 대식국은 혼란 그 자체입니다. 선왕의 동생인 투투쉬가 선왕의 삼남, 베르크야룩과 왕위를 놓고 내전을 벌인 것이 일 년 전입니다. 삼남이 삼촌을 이겨서 다시 하나로 합쳐지나 했는데 투투쉬의 장남 리드완이 알레포를 근거로 다시 반란을 일으켰고, 투투쉬의 차남, 두카크가 다마스커스에서 자신이 유일한 정통이라며 역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이집트의 파티마 왕조가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을 점령하여 고토를 되찾았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지금은 또 어떻게 변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현재 바티니는 그 신경이 온통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의 방비에 쏠려 있습니다. 수니파의 혼란이 끝나면 그들이 다시 진격하리라고 보고 있는 탓이지요. 문제는 십자군의 침공도 본격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술탄께서는 난국을 타개하고자 이제 우마르 선생님에게 증표를 받고자 하십니다.”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우마르의 배에 경고문까지 새겼던 무리였다. 그런 그들의 신경이 온통 다른데 쏠려 이곳까지 신경 쓸 수 없다는 말에 어찌 허탈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준경을 믈라카에 남게 하였다. 이들을 따라 우마르를 보내면 그만이건만 온통 전쟁으로 가득 차 있다는 광란의 대식국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만약 해남도에서 우마르를 만난다면 이소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다오. 대식국에서 나를 완성하겠다.”

동남아시아에서의 경험이 아예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었다. 해전의 이해와 수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익혔다. 김한충과 강증이 준경에게 이미 임무가 완수되었으니 함께 고려로 돌아가자고 권할 때도 우마르가 안전하게 롬 술탄국까지 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하면 임무를 완수한 것이 아니라고 강짜를 부려서 그들을 질리게 하였다. 우마르가 처음에 약속했던 수학과 천문학을 전달해주면 고려로서는 받을만한 것은 다 받은 셈이다. 어린 군관 한 명을 투입한 대가치고는 대단히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나중에 다시 되돌아갈 것을 생각하면 김한충, 강증, 고의화 또는 송의 인물들이 자신의 복귀가 늦는 것을 잘 변명해주기만 바랄 뿐이었다.

우마르를 데리러 간 선단이 도착할 때까지 준경은 여러 나라의 문물, 언어를 닥치는 대로 배웠다. 한 달이 지나 우마르가 믈라카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몇 개의 단어를 이용해 손짓 발짓을 곁들이면 그럭저럭 말이 통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우마르는 준경에게 서신 하나를 내밀었다.

소동파가 남긴 서신이었다.

-이소가 떠나고 싶다고 했지만, 간신히 붙잡았다. 한동안 같이 있으니 마치 친딸이 생긴 것처럼 적적하지 않고 좋더구나. 이소는 내가 잘 돌볼 것이니 중원으로 나를 찾아오너라. 되도록 빨리 와야 할 것이다.

이소의 고집에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땀을 흘렸을지 짐작할만했다. 그러나 자신 역시 고집을 피워 먼 대식국까지 가게 된 것이 아닌가? 따지고 보면 둘 다 주변 사람에게 민폐를 끼친 셈이다.

준경은 항해하는 동안 우마르에게서 미진한 언어를 더욱 배웠다. 말이 어느 정도 통하자 우마르에게 물었다.

“술탄에게 약속한 물건이 뭡니까?”

“무척 귀한 물건이다. 술탄 그 자신에게는 별로 필요 없지만 다른 이에게는 보물이나 다름없지.”

자신에게는 필요 없지만 다른 이에게는 보물이 될 수 있다니, 참으로 아리송한 대답이었다. 본래 롬 술탄국을 배로 가려면 지중해를 돌아와야 하는 먼 길이었다. 미리부터 준비되어 있었는지 홍해에 당도하여 곧장 일직선으로 항구도시 다미에타로 향한 일행은 7월 무렵 소아시아의 군항, 스미르나에 당도할 수 있었다. 비잔틴 제국과 견줄 수 있는 해군력을 자랑하는 군항답게 선박은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끝이 없었다. 그곳에서 육로로 롬 술탄국의 주도인 니케아로 향했다.

“오오, 우마르!”

반가운 표정으로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우마르를 단숨에 안은 킬리지 아르슬란 1세였다. 준경은 불과 몇 년 사이에 잃어버린 왕국을 되찾은 뛰어난 왕이라 하여 기대를 했는데 자신과 동갑이라는 말에 할 말을 잃었다. 한편으로는 웅심이 솟았다. 불과 6살의 나이에 나라가 망해 인질 생활을 시작했고 13살의 나이에 풀려나서 3년간 종횡무진으로 뛰어다니며 예전보다 뛰어난 성세를 이룩했고 한다. 그에 비하면 아직 자신은 멀었다고 생각했다.

우마르는 준경도 소개를 해주었다. 뛰어난 무사로 우마르 자신을 훌륭하게 지켜줬다는 말에 킬리지 아르슬란은 깊은 호감을 보였다. 자신과 동갑이라는 사실이 동질감을 일으켰던 것이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음에도 더 강해지기 위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준경의 소개가 끝나자 우마르는 어쌔신의 행방을 물었다.

“단언하건대 하사신은 아나톨리아 일대에는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 있소. 모든 시아파를 아나톨리아에서 추방하고, 그들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한 덕분이오. 나를 암살하기 위해 이를 갈고 있긴 하겠지만,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에 신경이 팔려 있으니 걱정할 것 없소. 또한, 대비도 철저하게 하고 있지. 이제 그대만이 위치를 알고 있는 그 물건의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하겠지요?”

“아나톨리아 대부분이 술탄의 손에 들어온 것을 확인했으니 물건을 가질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러나 부디 기억하시길. 그 물건은 소유자를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준경은 그 물건의 정체가 궁금하기만 했다. 대체 어떤 물건이기에 소유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는 것일까? 킬리지 아르슬란 역시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잊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지금은 충분하오. 당장은 필요한 물건이 아니니, 나는 저 더러운 이교도들에게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노려 재앙을 내릴 참이오. 그보다 우선 내가 상대해야 할 자들이 있소. 한 달만 늦게 도착했다면 좋은 구경을 놓쳤을 것이오.”

“그들이 누구입니까?”

“군중십자군이오.”

“군중십자군?”

교황 우르바노 2세는 정식 십자군이 출전하기에 앞서 선봉대 역할 및 바람잡이를 할 만한 부대가 필요했다. 광신도 피에르라는 자가 자신이 앞장서겠다며 헛된 망상을 품은 몇 명의 기사와 일반 군중 수만을 모아 출발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약탈을 자행하며 공분을 샀다. 비잔틴 제국에 이르자 그들의 악명을 미리 들은 황제는 이들을 어서 빨리 아나톨리아에 내려주고 오도록 신속하게 함대를 동원하기도 했다.

그들은 아나톨리아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약탈과 광신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술탄은 자신의 영역을 어지럽히는 것을 잠자코 지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이 도성인 니케아 인근까지 다다르자 모든 병력을 동원해 일거에 섬멸하려는 작전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 전투 저도 참가해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킬리지 아르슬란은 흔쾌히 수락했다. 자신과 동갑인 먼 이국의 무사가 얼마나 강한지 궁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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