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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45화 (45/257)

00045  (6) 유월비상(六月飛霜)  =========================================================================

김한충은 풍랑에 파손된 배가 제법 있어 며칠 간 머무를 수 있도록 간청했고, 나름 꿍꿍이가 있었던 포면과 적설은 통 크게 허락했다. 그들은 관아로 돌아와 자신들이 초청한 인사를 대면했다. 그 이후에 고려 함대를 어찌 이용할 수 있을지 논의하기로 한 것이다.

“산곡(山谷), 어서 오시게.”

산곡이라 불린 이는 코밑 가는 흰 수염이 인상적이었다. 머리에는 유생건을 두르고 황포로 몸을 두른 그는 얼굴이 길어 마치 말을 연상케 했다.

그는 포면을 보더니 예를 취했다.

“촉 땅에 있는 저를 이리로 부르신 연유가 궁금합니다.”

“자네의 도움이 필요하여 불렀네. 이곳과 가까운 곳에서 적당한 인물을 떠올려 보니 자네밖에 떠오르는 사람이 없더군.”

“선왕의 실록을 잘못 편수(編修)하여 요직에서 물러난 지 만 이 년이 되어가는군요. 죄인으로 유배 생활에 처한 저를 어디에 쓰려 하십니까?”

“그것이 자네의 실수가 아님은 천하가 알고 있네. 자네를 중앙으로 복권하려 했지만 파선께서도 유배를 당한 마당에 자네를 먼저 구할 수는 없었지. 이번 일만 잘되면 파선과 자네 모두 복권할 수 있을 것이네.”

“파선께서 이곳 해남도로 귀양오신 것은 소문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만나뵐 수 있을는지요.”

“그분께서는 정정하시네. 오지에 서원을 열어 여족과 묘족을 교화시키는데 힘쓰고 계시지. 지금 이곳의 사정이 급해 파선을 만나는 것은 좀 미뤄두도록 하세.”

“제가 해야 할 공무가 대체 무엇입니까?”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산곡은 그의 호였다. 본명은 황정견, 자는 노직(魯直). 1096년 2월 현재, 51세의 중년인이었다. 그는 소동파를 선생처럼 따랐는데 그의 서, 화는 결코 소동파에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사서에 기록되길 그는 소동파와 함께 북송 최고의 시인이자 서예가, 서화가로 남은 인물이었다.

문제는 그가 소동파와 같이 구법당으로 분류되어 신법당의 견제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신법당, 구법당의 존재가 모두 탐탁지 않은 포면으로서는 안타까운 사실이었다. 현신이라고 불리는 채변조차 파벌 싸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황정견을 파면하고 유배 보내는데 앞장을 선 것을 보면 정치란 참으로 더럽고 치사한 면이 있었다.

포면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설명을 다 마치자 황정견은 놀랍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흥미로운 고전 한 편을 읽은 느낌입니다. 마타람 왕국에 추밀원부사를 대행하여 뜻을 전하라는 임무는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유배지를 비운 것을 어떻게 무마하실 생각이십니까?”

“천하는 구법과 신법의 대립으로 당쟁이라는 불필요한 단어가 생겨났네. 구법은 사마광의 몰락과 파선의 유배로 지금 영도하는 지도자를 상실한 상황이지. 신법이 득세하는 것은 세력이 앞서서라기보다 과거 구법의 실태를 폐하께서 책하는 의미가 강하네. 결코, 구법에 속한 인물이 무능해서 그런 것이 아니지. 지금 구법은 도학자(道學者)인 정이(程이), 사학자인 유지(劉摯)가 중심이 되어 낙당(洛黨), 삭당(朔黨)이라는 파벌을 만들고 구법의 주체가 되기 위해 대립하고 있네. 나는 원칙적으로 파벌의 폐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반대하는 견해지만 파선을 따르는 인사들이 능력과 인품을 갖춘 것을 알고 있고, 그들이 구법의 당을 만든다면 눈에 띄지 않게 지지해줄 의사를 가지고 있네.”

황정견의 눈빛이 달라졌다. 포면은 형벌을 다루는 직책답게 공정함을 제일 가치로 두고 있었다. 판관 포청천이 세웠던 가치를 철저하게 신봉하고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파벌이 서로 다른 인사들, 예를 들어 증포나 소동파 같은 인물들과도 잘 소통했다. 그것은 파벌을 떠나 그들의 청렴한 인간성에 기인한 바가 컸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친분이나 호감은 있어도 파벌이야기가 나오면 그것이 송을 망치는 원흉이라며 극도로 경계하던 포면이었다. 그런 포면이 직접 소동파를 중심으로 당을 만들라고, 그리고 그 당을 지지해주겠다고 넌지시 권하는 것이다.

“파선의 문하는 대부분 유배 중이지. 그리고 산곡 자네처럼 촉에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러하니 촉당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괜찮겠구먼.”

“대체 그런 생각하신 연유가 무엇입니까? 제가 알고 있는 대인과 오늘의 대인은 너무 다른 듯합니다.”

“그렇게 보이나?”

포면은 씁쓸한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은 숙부인 포청천의 뒤를 이어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법을 공정하게 집행했다고 자부했다. 때로는 권한을 벗어난 적도 있었지만, 그 선택이 옳은 결과를 만들어냈고, 그런 선택에 자부심을 느꼈다. 법은 만능이 아니라 그 법이 본래 품었던 진정한 의도를 행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치도 결과적으로 그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요즘 들어 느끼고 있었다. 정쟁은 심각한 권력 투쟁을 몰고 왔지만, 그 정쟁을 주도하는 자가 누구냐에 따라 국가 운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왕안석이 그렇고, 요즘 들어 신법을 주도하고 있는 증포가 그랬다. 만약 구법이 정권을 잡았더라도 소동파나 황정견 같은 이가 당수로 있다면 포면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도 자체가 애초 악을 목적으로 나온 것이 어디 있겠는가? 제도의 선한 목적을 악용하는 인간이 나쁜 것이다.

최근 들어 신법의 권력을 노린 이상한 자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언제고 신법은 그들로 말미암아 구법, 또는 다른 정치 세력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이후 권력을 잡는 집단은 될 수 있으면 올바른 사고방식을 가진 자들이길 원했다.

그래서 황정견을 점지했고, 소동파와 앞으로 송의 국운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동파는 포면에게 말했다.

“식자들은 왕희지와 안진경의 뒤를 이은 서예가로 나와 채양을 꼽았지. 채양은 기교를 중시하여 아름다운 글자를 보여주는 것에 주력했다면, 나는 그 속에 담긴 뜻을 보여주고자 했다. 글씨를 쓸 때, 처음부터 아름답게만 쓰려고 하기보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써야 좋은 글씨가 된다고 믿었지. 획이 조금 비뚤어지고 구부러지면 어떠한가? 전체적인 조화를 통해 그 단점마저 포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신법을 싫어했다네. 일찍이 나는 ‘독서가 만 권에 달해도 그중에 율(律)은 하나도 없다.’라고 단언했었지. 사람이 만든 법으로 사람을 속박한다는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네. 그래서 반대파는 나를 구법으로 몰아세웠고, 쫓아내야 할 대상으로 삼았네. 내가 벼슬길에 오르며 ‘임금을 요순에 이르도록 올바른 다스림을 전한다.’라는 목표는 그들 안중에 없었지.”

소동파의 말은 가치관이 확고한 포면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와 헤어지는 날 소동파는 한마디의 말을 더 남겼다.

“구슬이 아름다우면 그만이지 타원형이라고 무엇이 다를 것인가?”

당쟁을 막으려고 했던 것은 당사자들의 권력욕을 막을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격자들은 어디에든 있었다. 그런 사람을 권력의 중심부로 발탁했을 때, 나라는 태평성대를 이루었다. 당쟁은 싫지만, 그것이 필요하다면 차라리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재들을 끌어모아 당을 만들기로 했다.

“알다시피 나에게는 형벌을 재심의하여 상고할 수 있는 권한이 있네. 자네가 유배를 오게 된 이유, 선왕(신종)의 실록 편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그저 사소한 지적에 지나지 않았지. 자네가 떠나면 나는 ‘죄를 지은 자에게 공을 세우도록 일임하여 죄과를 없애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의 권한을 발동시킬걸세.”

보통은 명나라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구해준 공을 두고 재조지은을 갚으라며 윽박지르는 모습을 생각하게 되지만 재조지은은 여러 의미로 쓰였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 세종 시대, 부정함이 드러난 관리의 자손에게 과거를 볼 수 없도록 하자, 이들이 ‘허물을 고치어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나, 그 길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부디 재조지은을 베풀어주십시오.’라고 상소를 올린 데서도 나타난다.

포면의 조건은 너무나 파격적이었다. 죄과를 없애주고 오히려 소동파를 중심으로 하는 당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겠다니? 그 말은 자신뿐만 아니라 소동파의 문하라 자처하여 중앙으로부터 불운한 대접을 받은 문인들이 집결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황정견으로서는 꼭 하고 싶은 기회였다.

“파선께서는 일찍이 제 초서에 속필(俗筆)이 많은 것이 흠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동안 부단한 노력으로 속기(俗氣)를 벗어버리고 창신(創新)했다고 자부합니다. 이번 임무는 기꺼운 마음으로 받고자 합니다. 다만, 한 가지. 당을 만드는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자 합니다.”

“그건 무슨 연유에서인가?”

“제가 파선께 인정을 받는 날, 기꺼이 촉당의 대임을 받겠습니다. 공을 세우고 다시 해남도로 돌아오는 날, 파선께 나아가 초서를 선보이겠습니다.”

황정견은 문자 자체에 대한 이해는 오히려 소동파보다 뛰어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선(仙)을 체험하기 위해 과거 불교에 투신한 전력이 있었다. 그것은 앞서 황정견이 언급한 소동파의 충고에서 시작되었다. 속기를 빼라는 조언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기꺼이 삭발하고 절간에 몸을 맡긴 것이다. 그 정도의 의지가 있음을 알기에 포면도 소동파도 황정견의 이름을 대번에 떠올렸다. 소동파는 황정견을 다시 보게 되는 날, 자신을 능가하는 필법을 완성했을 것으로 예상했다. 기예에 익숙한 자가 마음공부마저 얻는다면 일필휘지, 천하명필은 바로 그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 예상대로 황정견의 태도는 더할 나위 없이 흡족했다. 이 정도라면 자신의 신념을 꺾으며 촉당을 만들 수 있도록 후원해주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황정견이 포면의 제의를 받아들이는 사이, 적설은 그들의 대화에 끼지 않고 고려 수군에 관한 생각만 골몰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무릎을 쳤다.

돌연한 그의 행동에 이야기가 마무리된 포면과 황정견이 시선을 주목했다.

“자네들이 답이 이미 나온 이야기를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풀어놓고 있을 때, 나는 고려 수군을 어찌하면 마타람 왕국으로 보낼 수 있을까 고심했네. 명분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 한 가지가 있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의기양양한 적설을 보며 포면은 미소를 지었다. 이럴 때는 영락없이 치기 가득한 젊은이 같은 모습을 보이곤 했기 때문이다.

“고려에 신왕(新王)이 등극하여 요나라로 사신을 보냈는데, 요나라에서는 고려에게 이 년의 기한을 두고 우리 송에게 통보할 것을 강요했지. 그때가 11월이었고, 이제 신년이 되었으니 일 년이 지난 셈이나 다름없지. 그럼 내년 초쯤에나 우리에게 즉위사실을 통보하게 되겠지. 그런데 엄밀히 따져 만 이 년이 안 되었으니 아마도 요나라에서 트집을 잡을 수도 있을 게야. 아니, 그놈들은 무조건 트집을 잡겠지. 그런데 고려는 우리와의 관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니 난감하겠지. 그럼 아예 우리가 고려의 걱정을 덜어주세.”

“만 이 년의 기한을 약속해주자는 말입니까? 우리가 먼저?”

“어차피 요나라가 강짜를 놓으면 만 이 년이 되는 것은 기정사실일세. 차라리 지금 확정되지 않았을 때, 우리가 먼저 괜찮다고, 그따위 일로 송과 고려의 관계는 변치 않는다고 확약해주자는 말일세. 그럼 새롭게 보위에 오른 왕도 심적 부담이 덜하지 않겠는가?”

포면은 턱을 괴며 적설의 제안을 생각해보았다.

확실히 그럴듯했다. 고려 처지에서야 송과의 사이를 참작하여 요나라의 제안을 최대한 소급 적용할 것이 뻔했다. 이쪽에서 먼저 그 부담을 덜어주면 고려로서는 분명히 고마워할 일이다. 문제는 황제가 어찌 생각할지 모른다는 것인데 올해로 약관인 젊은 황제는 보수적인 권위에서 조금은 벗어난 편이었다. 일 년 전부터 황제가 신법을 우대하면서 증포의 신임이 많이 올라갔으니 그를 통해 설득하면 별 탈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은 고려왕의 교지를 받아야 움직일 가능성이 크네. 우리의 말만 믿지는 않을 거란 말이지.”

“우리에게는 고려의 어린 군관이 있지 않은가.”

포면의 우려에 적설은 이미 그 대처 방안까지 생각한 듯했다. 고려 군관이라면 준경을 가리키는 것이었기에 적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여 의견을 재촉했다.

“우마르를 보호하라고 최종 명령을 내린 것은 새롭게 보위에 오른 왕의 의중이라고 했지. 그런데 왕은 그런 우마르의 보호로 얻는 대가를 자신의 공적으로 하고 싶었는지 신하 대다수에게 알리지 않고 은밀하게 진행했단 말이지. 준경을 포함해 그 사실을 아는 신하는 세 손가락에 꼽는다고 했으니 말이야.”

이미 증포를 통해 알려진 이야기였다. 대체 그것이 어쨌단 말인가? 명석한 포면도 적설의 생각을 감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보호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건 정해주지 않았지. 그렇다면 이쪽에서 해석하기 나름 아니겠는가? 우마르가 대식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보호하는 역할 말이지. 지금 준경은 왕명을 받고 움직이는 밀사 같은 존재란 말일세.”

“정말 많이 생각했구먼.”

평상시 포면의 일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는 것이 적설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활기찼다. 위기라고 생각했던 상황들이 그에게는 오히려 즐거운 유희로 작용했던 것이다. 도중에 슬픈 일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즐거워하는 본질을 모두 앗아가는 요소는 아니었다.

“이왕 일을 벌인 거 지장 없는 약속을 남발하세. 고려 수군이 거센 풍랑을 만나 해남도에 기항하지 않았더라면 안남과 친교를 맺었는지도 몰랐을 걸세. 그들도 본국으로 돌아가 이 사실을 알리면 어느 정도 질책을 각오했겠지. 비록 안남국을 불가피하게 인정했지만 안남국왕을 정식으로 인정하는 외교 문서를 보내지는 않은 우리니 말일세. 사실 조정에서는 최근 안남국왕을 인정하고 교역에 힘쓰자는 의견이 대두하고 있지 않은가? 안남국은 쌀이 무척 싸서 군량미로 쓰거나, 혹은 빈민 구제용으로 사용하기에 그만한 수입처가 없다고 들었네. 조만간에 수교가 결정될 것이라면 고려가 안남국과 먼저 친교를 맺었다는 사실을 눈감아주자는 말일세. 고려 수군은 이곳 해남도에 들리지 않은 것이지.”

이렇게까지 월권을 해도 되는 걸까? 만약 숙부인 포청천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런 되지도 않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호통을 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자신들은 황정견 한 명을 보내는 것만으로 동남 지역에 송의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약관의 황제, 철종이 직접 친정에 나선 것은 불과 일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0살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19살이 되기까지 9년간 할머니 선인태후(宣仁太后)가 정권을 잡았었다. 선인태후는 구법당을 신임했고, 철종은 9년간 그들의 정치를 지켜봐 왔다. 그렇게 친정에 나서자 신법당을 신임하기 시작한 것은 신법당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만큼 구법당에 대한 반발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황제로서 첫발을 내디딘 철종의 위세를 살려 줄 만한 사건이 있다면 그보다 좋아할 일이 어디 있을까? 만약 마타람 왕국의 일이 잘 풀려 송나라의 인정(認定)을 구하는 사신이라도 와준다면 그건 곧 젊은 황제의 위신으로 연결될 것이다.

“결심하지 않았다면 모르되, 결심한 이상 이번 일은 반드시 성사되어야 하네.”

송, 고려, 우마르, 준경 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일이었다. 포면의 결심에 황정견과 적설이 동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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