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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42화 (42/257)

00042  (6) 유월비상(六月飛霜)  =========================================================================

“아까 휘파람을 분 사람은 만랍(滿拉)이라 한다. 이상한 단어라고 생각하겠지? 그들의 언어를 그대로 한자로 옮긴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로는 물라(mullah), 뜻은 성직자를 뜻한다.”

종교 다툼 때문에 일어난 일일까? 우마르의 사정을 통해서도 대식국의 종교가 서로 증오하며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우마르를 노리지 않았다면 자신들을 공격할 이유가 별로 없어 보였다.

“또한, 이들은 시아파도 수니파도 아닌 수피(Sufi)파다.”

준경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 때문에 우마르가 먼 이곳까지 피난을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수피파라니?

수피라는 단어에 우마르가 연신 같은 단어를 말했다.

“타사우프(Tasawwuf), 타사우프(Tasawwuf).”

“우마르가 말한 타사우프가 수피 사상을 대식국어로 가리키는 것이라는구나. 나도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한참을 물어야 했다.”

이때부터 소동파의 설명이 죽 이어졌다.

이슬람에는 시아파와 수니파 외에 여러 분파가 있는데 그중에 수피파가 있다. 그들은 양 교단으로부터 정통으로 인정받지 못한 신비주의 사상을 신봉하는 분파인데 이들은 거대 교단과 맞서지 않고 은둔하며 조용히 세력을 넓혀갔다.

이들은 코란의 해석을 현실적이 아닌 신비주의 관점에서 풀어가며 몰입의 방법으로 명상에 의한 도취를 중요하게 여겼다. 200년 전부터 은밀한 포교를 통해 점차 세를 불리기 시작한 그들은 상대적으로 이슬람의 관심이 덜한 동쪽으로 시선을 돌려 육지와 바다를 통해 포교뿐만이 아니라 수피주의가 만연한 이상적인 국가 건설에 힘을 기울였다.

수피주의를 신봉하는 이슬람 상인들이 바다를 통해 동방과 교류하면서 많은 곳에 거점을 만들고 그 거점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워나갔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한 포교로 시작했지만, 이 지역에서 세력이 점차 강성해지자 일국의 정치에 개입할 수 있을 정도까지 성장했다.

스리비자야 왕국.

수마트라 섬, 팔렘방에 수도를 두고 있는 해상 무역 국가였다. 처음에는 힌두교의 영향을 받았고, 지리적인 이점을 살려 동서양의 무역을 중계하며 번영을 누리고 있었으나 그런 번영을 노리는 곳곳의 무리로 말미암아 조금씩 쇠락하고 있었다.

믈라카 해협과 순다 해협의 중앙이라는 유리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이슬람의 상선들은 중국으로 가기 위해 이곳을 무조건 통과할 수밖에 없었고, 곧 이 지역은 이슬람 상인들로 북적이며 동남아 포교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당나라는 의정 대사를 보내 그 나라의 성쇠를 기록으로 남긴 적이 있지. 당시는 불교가 크게 융성하여 힌두교가 쇠락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수피가 불교와 거의 대등한 위치까지 올랐다고 하네.”

수피가 수니파나 시아파, 정통 교단에 비해 빠르게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은 일부 기독교 신자까지 포섭했기 때문이다. 과거 민 제국 당시부터 중원에 종교 자유화가 선포되었고, 그맥락을 따라 기독교 역시 전래하였었다. 그 교리가 상당히 배타적이라 다른 종교에 비해 크게 신장하지 못했으나 믿는 자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수피파가 그런 기독교 신자까지 끌어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독특한 교리 때문이었다. 수피파에서는 기독교의 구원자인 ‘예수’를 자신들과 같은 신비주의 율법의 계승자로 보고 존중하는 자세를 취했다. 예수가 이룬 기적들이 그들이 원하던 신비주의 방향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수피와 동일시하는 교리 때문에 기독교도의 개종이 다른 종교인들보다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그들은 계속해서 세력을 넓혀 마침내 중원을 향한 교두보를 마련했지. 바로 이곳 해남도에 말일세.”

수니파와 시아파라는 거대한 정통 세력에게 아직 반기를 들 마음이 없었던 수피파는 이슬람 상인들이 주로 거래하던 송나라 등주나 고려의 벽란도로 향하는 대신 송 남부의 이민족과 빈민 계층을 공략한다는 계획을 세워 ‘성전(지하드)을 위한 북진.’이라는 구호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해남도에는 기존 수니파 회족이 존재했다. 수피파는 대대적인 침공을 펼쳐 수니파 회족을 굴복시키고 강제로 개종시켰다.

그렇게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생각했지만, 도교와 불교, 유교 등이 뒤섞인 토착 신앙을 믿는 묘족과 여족이 해남도로 귀양온 명사, 소동파를 위해 서원을 연다는 말을 듣고 오해가 증폭되었다. 중원에서 가장 활성화되어 있는 유학, 그 유학을 퍼트리기 위해 존재하는 서원.

자신들이 가는 곳마다 모스크를 세우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했다. 만약 해남도 일대가 중원의 기풍에 모두 오염된다면 해남도에서 현재 소수에 불과한 자신들의 계획은 전면 수정되어야 했다.

“그래서 서원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기습을 감행했단 말입니까?”

진실을 알게 되자 준경은 주먹을 꽉 쥐고, 이빨을 악물었다. 종교가 대체 무엇이기에 피를 불러야 했는가? 불교 신봉 국가인 고려의 백성답게 준경은 어려서부터 불교 교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자비와 포용을 외쳤지, 배척을 외치지 않았고, 나와 남을 가르지도 않았다. 물론 불교가 오랫동안 그 땅에 영속하며 남긴 폐해도 있긴 했다. 정치와 결탁하자 화엄종과 천태종으로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은 폐해의 일종일 것이다.

그러나 수피의 행동은 그보다 더 과격했고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난 것이었다.

“이미 그들이 거점으로 삼고 있는 청진사(淸眞寺, 모스크)의 위치를 알아냈다. 대략 총원이 800명 정도라고 하는구나.”

묘족이나 여족에 비교하면 너무나 소수였다. 겨우 그정도로 자신들을 공격했단 말인가? 묵묵히 듣고 있던 묘족과 여족 사이에서도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어딥니까? 그곳이.”

당장에라도 달려가 닥치는 대로 도륙하고 싶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이 오지산을 경계로 남동쪽이라면 그곳은 정서(正西) 방향에 있는 황우봉(黃牛峰) 밑자락이다.”

묘족과 여족 사이에서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지산은 해발이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황우봉은 무척 험한 산세라고 했다.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유용한 작물도 없어 길도 없는 곳이라고 했다. 그런 곳이니 회족이 은거하기에 안성맞춤이리라.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포면이 끼어들었다.

“이런 일은 본관도 원치 않았지만, 먼저 공격해온 이상 묵과 할 수만은 없다. 본관의 재량으로 회족에 대한 공격을 승인하겠다. 그러나 항복하는 자는 포로로 잡기를 원한다. 도성으로 끌고 가 이번 난동에 대한 증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모든 지휘는 적설 장군에게 맡긴다.”

추밀원부사의 명령에 적설을 비롯한 모든 송군이 화답했다. 포면 등이 물러나자 적설은 준경의 팔을 강하게 잡았다.

“지금 당장에라도 가고 싶어하는 마음을 안다. 그러나 조금 기다려야 한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들은 신앙의 원천인 청진사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곳을 중심으로 굳게 수비를 할 것이 분명하다. 또한, 그들에게 부족한 물자를 전달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팔렘방에서 배가 온다고 한다. 나는 부대를 둘로 나눌 것이다.”

“그렇다면 제가 황우봉으로 갈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너를 그쪽으로 보내려고 했다. 그러니 이제부터 조금 기다려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마.”

죽은 회족의 증언을 토대로 황우봉 지리에 능한 묘족, 여족을 불러 적설은 공격 진로를 이미 검토했다. 땅바닥에 그림을 그려보니 황우봉으로 오르는 길은 매우 비탈지고 지그재그 형태로 되어 있다고 했다. 그것도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길이었다. 만약 위에서 돌을 굴린다면 막아내며 전진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공성 경험이 있느냐?”

성을 공격해본 적이 있느냐는 말에 준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나무나 절벽을 올라본 적이 있느냐?”

그것 역시 준경은 경험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누구도 자신에게 그것을 가르쳐준 사람이 없었고, 그것을 권하는 사람도 없었다. 사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요와 여진을 상대로 하는 전투는 제대로 된 공성전보다 야전에서 승패가 대부분 갈렸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에서 방패를 가장 잘 쓰는 사람은 너라고 할 수 있다. 즉, 황우봉에서 가장 선두에 서야 할 사람이 바로 너란 말이다. 산을 오르는 것은 공성과 비슷한 경험이다. 이제부터 그것을 묘족과 여족에게 배우도록 해라.”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적설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준경이 뒤를 돌아보자 손을 드는 사람이 있었다. 자매의 남동생이었다. 그의 눈망울은 비분을 담고 있었다. 준경은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 이소는 그것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그날부터 준경은 나무를 타고, 암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바위의 재질을 구분하기 시작했고, 확보물이란 개념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확보물이란 본인이 방어, 또는 지지할 수 있는 안전 지형, 지물을 가리켰다. 거대한 암석 중에 어떤 것은 쉽게 흔들리기도 했고, 깨지기도 했다. 적이 공격했을 때, 선택의 순간, 어떤 지형, 지물로 몸을 옮기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라질 정도로 중요한 배움이었다.

등산에 필요한 근육을 더욱 단련하는 것도 중요했다. 고정된 지물(地物)에 계속해서 매달려 있을 손가락의 힘. 오래도록 버틸 수 있는 지구력, 고산지대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호흡 장애를 막기 위한 심폐기능의 강화, 모든 것이 지금의 수련 방법에 묘족의 수련 방법이 더해져 준경을 한층 진보하게 하였다.

단 하루만은 수련을 쉬었는데 그날은 죽은 자들을 애도하기 위한 추모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관계있는 모든 이들이 모여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복수를 다짐했다. 그것을 보며 포면은 정식으로 도성에 상주를 결심했다.

해남도 지휘사의 권한을 대폭 올려 병력을 충원하고 해안가 곳곳에 경비 초소를 만드는 방안이었다. 한가지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섬의 회족을 일소하면 추후 회족이 불순한 목적으로 원주민들에게 접근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란 사실이었다. 섬 최대 세력인 묘족과 여족의 눈 밖에 난 이상 말이다.

금세 보름의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 적설은 증언을 토대로 해안가에 임시 초소를 설치하고 지원 선박이 다가오는 것을 염탐했다. 그들이 접선하는 순간을 노려 일거에 습격을 감행했고, 세 척의 배 중 두 척의 배를 불사르고 이백 명에 달하는 회족을 죽였다.

한 척의 배가 도주한 것이 아쉽기는 했지만, 한동안 그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큰 타격임이 분명했다. 남은 것은 황우봉에 웅크리고 있는 회족이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난 오늘, 준경은 마침내 적설에게 출전의 뜻을 밝혔다. 전신에 긁힌 상처로 가득한 준경을 보며 얼마나 가혹하게 수련했는지 적설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병력이 꾸려졌다.

송군 오백 명이 소집되었고, 여족과 묘족에서 무려 일천 명의 청년이 자원했다. 황우봉으로 가는 길이 소로(小路)임을 생각하면 병력이 많아도 효율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적설은 이들을 모두 포함했다. 이번 결전으로 말미암아 해남도는 굳건한 송의 강역으로 들게 될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다.

황우봉 어귀에 이르렀을 때, 회족은 이미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종교적 신념에 의해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기에 더욱 어려운 싸움이 예상되었지만, 준경의 눈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오직 자매의 고운 얼굴만이 잠시 스쳐 지나갔을 따름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준경은 성큼성큼 황우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오른손에는 묘족이 정성 들여 날을 세워준 곡도가 있었고, 왼손에는 이소가 손을 찔려가며 기워준 소가죽으로 전신을 덮고 있는 수패가 있었다. 점차 걸음이 빨라지며 준경이 산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자, 지켜보던 적설 역시 손을 올려 진군을 명령했다.

“원한이 있다고는 하나 그토록 빨리 배운 사람은 처음 보았습니다. 우리 중에서도 그처럼 능숙하게 나무와 암벽을 탈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적설은 중간마다 준경의 수련 상황을 보고받았다. 보고자는 자매의 남동생이었다. 가르치는 사람이 놀랄 정도로 빠른 진전에 적설보다 동평과 호연작이 더 자극을 받았다. 나이 어린 동생에게 질 수 없다며 그들 역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에 열중했다. 해안가에서 격전이 일어났을 때,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바로 이 둘이었다.

돌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를 셀 수 없는 창과 화살, 비침이 오직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퍼붓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치 날랜 다람쥐처럼 준경은 지형지물과 수패를 적절히 활용하며 빠른 전진을 이어나갔다. 그 속도는 공격하는 회족마저 놀랄 정도였다.

준경 자신도 놀랐다. 분노의 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말을 탈 때와는 또 다른 감각이 느껴졌다. 예전과 다른 것은 나무와 암벽을 타는 훈련을 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거대한 암석을 보며 저곳이 공격의 사각지대인지, 아니면 위험한 곳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본능으로 알아챘다. 선택을 잘못했다면 큰 상처를 입을 뻔한 경우도 여럿 넘겼다.

그렇게 수십 명이 버티고 있는 소로의 끝까지 올라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산을 타는 것은 체력이 필요했다. 하물며 공격을 피하려고 쉴 새 없이 움직였다면 더 많은 체력 소모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 준경의 가파른 호흡이 그것을 증명했다. 그러나 참았던 분노가 쓰러지고 싶을 만큼 힘든 것을 잠재웠다.

자신을 향해 창을 겨누고 있는 회족을 보며 허벅지가 욱신거렸다. 자매가 죽던 날, 독연을 이겨내고자 수패에 달린 창날을 허벅지에 꽂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때의 기억이 단숨에 떠올랐고, 준경의 눈엔 귀화가 피어올랐다.

수피의 본래 뜻은 양모로 짠 옷을 가리킨다고 한다. 그 말과 같이 그들은 하얀 양모를 모자부터 전신을 두르고 있었다. 습격 당시 그들이 전통 모자를 쓰지 않고 가면을 썼던 이유는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기 위함이었고, 전통적으로 머리를 드러내는 것을 불경스럽게 생각하는 교리에 따라 얼굴이라도 가려 하늘에 죄를 피해 보고자 하는 심정을 담고 있다고 했다.

준경은 청진사 입구에 우뚝 서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남자와 마주친 순간, 그가 바로 습격을 주도했던 성직자임을 깨달았다. 중원과 확연하게 다른 이목구비가 그것을 증명했다. 그는 우마르와 같은 인종이었다.

그는 전체적으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준경의 곡도와 달리 중간 부분부터 끝 부분까지의 날만 구부려져 있는 샴시르를 높이 치켜들고 외쳤다.

멀찍이서 뒤쫓던 적설이 들릴 정도의 우렁찬 외침이었다. 혹시 몰라 우마르의 통역을 대동했는데 그가 외침을 번역했다.

“형제들이여, 뱀이 그 허물을 벗는 것과 같이 우리의 허물을 벗는다. 이건 코란의 잠언(箴言)입니다.”

그러면서 그 뜻의 원어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뱀이 허물을 벗는 것과 같이, 나 역시 허물을 벗어버렸다. 그러자 나의 본질을 나 자신이 꿰뚫어 보았다. 나에게서 신을 보았다.

설명을 듣자 적설은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큰 코웃음을 쳤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건가? 오냐 소원대로 해주마.”

증언할 수 있는 자는 심약한 몇 명이면 충분했다. 저들 모두가 끝까지 옥쇄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고려의 군관이 용맹을 보였다. 이제 너희가 송군의 기개를 보여라.”

적설이 따르고 있던 두 사람을 지목했다. 동평과 호연작이었다. 그들은 명령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산비탈을 올라 질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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