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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34화 (34/257)

00034  (5) 각자도생(各自圖生)  =========================================================================

그런 갈색마의 등을 준경은 어루만졌다. 갈색마는 기분이 좋은지 가벼운 울음을 냈다.

“말은 험한 곳을 올라가지 못합니다. 자갈이 많은 장소에서도 싸우기 어렵지요. 모래가 많은 곳에서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말 역시 급격히 체력이 저하됩니다. 이런 약점은 어찌해야 합니까?”

말을 이용한 공격은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많았다. 단정홍은 준경을 빤히 쳐다보더니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악!”

갑작스러운 공격을 미처 방어하지 못한 준경은 이마를 부여잡으며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준경이 항의하자 단정홍은 혀를 차며 말했다.

“걷지도 못하는 놈이 날려는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한심하지 않을 수 없구나. 잘 들어라.”

단정홍은 지금까지 느긋한 표정과는 달리 처음으로 진지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도덕경에 이르기를 만물시어미이후성(萬物始於微而後成),시어무이후생(始於無而後生), 귀종야(歸終也)라 했다. 수많은 나무줄기의 본체는 결국 한 뿌리와 한 몸에서 시작되었듯이 하나의 줄기가 대성에 이르면 자연 뿌리로 가는 길을 탐구하게 마련이다. 뿌리를 찾은 자는 근원을 아는 자이니 나머지 다른 줄기를 파악하는 길이 수월해진다. 이탁의 예를 들어볼까? 이탁을 병과로 치자면 그는 중장보병 같은 이다. 중장보병은 일반 보군보다 타격과 방어가 월등히 뛰어난 존재다. 그러나 기동성은 떨어져 뛰어난 기병 집단을 소유한 유목 민족에게는 쉽게 후방과 측면을 내주었다. 그래서 기병에 대응할 방법을 고안한 것이 방진이다. 그런 방진을 기병이 무너트리려면 대열의 혼란을 부채질하여 그 틈을 노리는 것이 절대적인 조건이 되었다. 기병을 능숙하게 다루는 장수들은 하나같이 그런 혼란을 일으키는데 능했을 뿐만 아니라, 이용해야 하는 때를 정확하게 알았다. 내가 처음에 너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장소에서 상대보다 나은 장점을 가지고 상대할 수 있다면 그가 강자라고. 뛰어난 자는 주어진 상황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전에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단정홍의 말은 폭풍같이 쏟아졌다. 단정홍이 설명한 것은 도덕경 1장의 주해로 만물은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하여 완성되어가고, 그것은 무에서 시작해서 유가 되는 것으로 그 과정은 같다는 뜻을 적고 있었다. 준경과 양욱은 반도 소화하지 못할 내용이었지만 마음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누구도 수렵민족은 왜 밀림을 정복하지 않느냐고 투정하지 않는다. 중원의 힘이 강대할 때도 중원 이상의 땅을 탐내어 본 적이 없었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과한 욕심은 결국 파멸로 이어졌다. 만약 말의 육감을 손에 넣어 말에서 내린 뒤에도 발현할 수 있다면 그때야 네놈이 말한 제약이 사라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먼 거리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명궁까지 된다면 그때는 이탁을 능가했다고 봐도 좋다. 아니 삼절오은을 뛰어넘어 절대자라 칭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가 뛰어난 사람은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단정홍은 이탁을 중장보병에 비유하면서 그의 맷집과 저돌적인 공격, 숙명처럼 따라붙는 느림의 약점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탁과 마주쳐서 도망갈 수 있는 이는 드물다. 이탁은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약점을 자신의 장점으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준경은 갑자기 노준의가 떠올랐다. 오직 묵죽봉만을 병기로 삼아 그것을 수족처럼 다루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을 때, 왜 그것만 다뤄야 하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전에 만났던 왕진은 십팔반 병기의 달인이라 준경의 부러움을 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언제 자신의 병기를 잃어버릴지도 모를 상황에서 어떤 병기든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이 아닌가? 그런데 생각해보니 왕진 역시 자신이 주종으로 쓰는 무기는 정해져 있다고 말했었다. 정말 생사지경에 이르면 사람은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하나가 극에 달하면 약점도 장점이 된다.’

지금까지 준경은 자신이 익힐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수련하며 만능의 길을 지향했다. 단정홍은 그것이 수련 방법으로서는 나쁘지 않지만, 각 병과의 달인들을 만났을 때 과연 통용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내가 지법과 보법에 능한 것은 대리가 대부분 산지와 수림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나는 자부할 수 있다. 삼절오은의 누구도 대리에서만은 나를 이길 수 없다. 고향에서만은 절대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이탁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소림의 수련법과 관부의 실전 무예를 함께 익혔다. 그는 느린 발걸음을 보완하기 위해 병사를 이용해 두껍게 벽을 치고 상대의 발을 묶은 후 처리했다. 다른 삼절오은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니 너 역시 너만의 장기를 가져라. 처음 서예를 배울 때 질 좋은 붓과 먹을 사용하면 본래 실력보다 낫게 쓸 수 있지만, 명필의 경지에 이르면 붓과 먹을 탓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런 상황에서 명필이 질 좋은 붓과 먹을 잡게 되면 천하에 이름을 남기는 명작이 나올 수 있게 된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충고는 여기까지다.”

단정홍은 옷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휘적휘적 수풀을 헤치며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 준경과 양욱은 그 뒤로 포권을 하며 깊은 감사의 예를 취했다.

준경은 문득 아구다가 생각났다. 여진족은 대대로 수렵민족이었고, 하나같이 말을 기가 막히게 탔다. 그들은 말이 가지 못하는 곳은 될 수 있는 대로 공격을 삼가고 말이 생활할 수 있는 초지를 영역으로 삼았다. 거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은 대대로 물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농경민들은 그런 그들의 약점을 노려 강을 방어선으로 삼았지만 단단하게 마음먹은 수렵민족의 창칼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들 역시 그것이 자신들의 약점이란 것을 알기에 오랜 시간 그 약점을 극복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창, 곡도(曲刀), 수패, 말.”

준경은 극에 이르겠다고 마음먹은 네 가지를 조용히 읊었다. 활이 빠진 것은 수패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 수렵민족이 말을 타며 활과 창, 도를 들지 방패를 들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특이한 조합이기는 했다.

그러나 준경은 자신의 성향을 살폈다. 이탁과 단정홍을 놓고 보자면 자신은 이탁에 가까운 편이었다.

“이탁이 중장보병이라면 나는 중장기병이 될 것이다.”

준경은 생각하지 못했지만, 일찍이 수벽타를 익힌 자 중 일부는 말을 타며 만주를 질타했다. 그들을 개마무사라 했다.

활을 익히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것만 달랐는데 지금 와서 활을 배우는 것보다 수패를 잡은 이상 오히려 적극적인 방어를 통해 적의 종심을 꿰뚫고 상대를 따라잡는 것이 준경의 성격에 더 맞았기 때문이다. 창은 돌진에 효과적인 무기였고 가장 기본적인 병기라 손에 익었기 때문에 버릴 수 없었고, 곡도는 창보다 더욱 근접한 전투, 또는 포위당한 상태를 가정한 무기였다. 곡도는 직도보다 살상력이 강하고 베기 공격에 최적화된 무기였다. 같은 힘을 쓰더라도 찌르기보다는 베기가 여럿을 상대하는데 여러모로 유리한 방법이었기에 주저 없이 결정했다.

단정홍이 사라지고 난 뒤 잠시의 휴식을 취한 준경은 밤이 올 때까지 수련에 집중했다. 양욱 역시 준경의 눈치를 살피다가 단정홍이 남겨준 발걸음을 짚으며 땀을 흘렸다. 나름대로 실력이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부끄러울 정도로 양욱 역시 자존심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자정이 되어서야 말도 사람도 녹초가 되어 거처로 돌아왔다. 이소와 자매는 그때까지 잠이 들지 않고 준경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그렇게까지 강해지려는 이유가 뭐죠? 지금도 충분히 강하잖아요.”

이소가 생각하기에 준경은 일개 별가치고는 차고도 넘치는 무위였다. 비록 이곳에서 연달아 강한 사람을 만나기는 했지만, 그들은 정말 특수한 경우였다. 평생 가도 만나기 어려운 자들이었다. 특히나 준경이 장수의 길을 걷는다면 무위도 무위지만 병법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본적인 육도삼략을 모르고 어찌 장수로서 병사를 지휘하겠다는 말인가?

준경은 그런 이소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약하다. 더 강해져야 한다.”

“고려의 장군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닌가요? 글자도 제대로 몰라 병법서도 익히지 못했죠? 혼자 아무리 강해져 봐야 모두 지킬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한비자(韓非子)는 일수독박 수질무성(一手獨拍 雖疾無聲)이란 말을 남겼어요. 한 손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신랄한 비판이었지만 그것을 말한 사람이 이소였기에 준경은 그리 마음이 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충고를 해주는 이소가 귀엽게만 보였다. 그런 준경의 반응이 이소의 생각 밖이었는지 약오른다는 표정으로 더욱 거세게 말했다.

“명장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요? 한비자는 명장의 조건을 네 가지 물건에 비유했어요. 본인은 북채가 되고, 휘하 장수는 북이 된다. 병사는 수레와 같고, 치중은 말과 같다. 협력하면 간단한 일도 혼자는 어렵다. 예컨대 오른손으로 원형을 그리고, 왼손으로 삼각을 정확하게 그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나는.”

준경은 양쪽 검지에 마시던 물을 살짝 묻혀 나무바닥에 그리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원형, 왼손으로 삼각을 완벽하게 그려내자 이소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도 몇 번 해보았지만 지금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완벽하게 그려낼 수 없었다.

“내가 북채가 되고, 내가 북이 되며, 내가 수레가 되고, 내가 말이 된다. 백 명을 희생하여 천 명을 베어야 하는 전장이라면 나는 홀로 천 명을 베고 백 명을 지키겠다. 그것이 잘못된 것인가?”

이소는 말을 잇지 못했다. 준경의 꿈이 너무나 허무맹랑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단연코 자신이 읽었던 고전 중에서 준경과 같은 위인은 없었다.

“대체 그렇게까지 강해지고 싶은 이유가 뭐죠? 그냥 강해지고 싶다는 이유 말고, 다른 이유 말이에요.”

“글쎄.”

준경은 지금까지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냥 강해지는 것이 좋았으니까. 이소의 질문을 듣고 보니 갸우뚱하기는 했다. 대체 자신은 무엇 때문에 강해지려는 것일까? 정말 강해졌다고 생각한 다음에는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루가 그렇게 저무는 사이 북쪽 포구에 자리한 동관 처소 인근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이탁과 갈송이 소고의 시신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고, 호연작은 그 옆에서 무릎을 꿇고 죄를 청하고 있었다. 한동안 시신을 살핀 이탁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목을 자른 것이 섬전수 답지 않지만, 아예 도를 쓰지 않는 인물은 아니니 역시 섬전수의 소행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동조자도 몇 있는 것 같습니다. 섬전수가 애용하는 철환 역시 현장에서 발견되었고 호연 별장 역시 그 철환에 맞아 기절했던 것을 생각하면 확실합니다.”

“섬전수.”

동관은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며 턱을 괴었다. 섬전수는 삼절오은 중 중원인이 아닌 유일한 인물이었으며 노왕이라는 고귀한 핏줄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활동반경은 대리, 촉, 귀주 일대까지였기에 송의 비위를 건드릴 일이 그다지 없어서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던 인물인데 이렇게 뜬금없이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다.

“대리에서도 실록을 노리는 것일까?”

섬전수가 해남도에 나타난 것을 도저히 우연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하얀 분을 발라 창백하기까지 한 동관의 인상이 잔뜩 구겨졌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이탁이 눈을 빛냈다. 삼절오은 중 누가 강한지에 대한 여론은 이미 십 년 전, 자신이 가장 마지막으로 삼절의 일인이 되었을 때부터 흘러나왔던 이야기였다. 당시 삼절의 일인이었던 소림승이 노환으로 죽으면서 자연스럽게 그 뒷자리를 이은 이탁을 두고 세인들은 실력을 알 길이 없다며 헐뜯었었다. 숱한 전적을 통해 불신을 불식시켰지만 정작 삼절오은은 한 명도 만나보지 못했었다. 오은 중 몇 사람은 서로 교류를 나누며 실력을 겨룬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자신은 장수라 시간을 내서 일부러 찾아다닐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이곳, 해남도에서 섬전수라는 대어를 만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나서도록 하지요.”

장수답지 않은 날렵한 체구의 갈송 역시 동관에게 청했다. 이탁이 삼절오은 중 최강이라고 믿고 있는 갈송으로서는 이탁을 제외한 나머지는 자신이 해볼 만한 상대라고 생각했다. 지금껏 이탁을 제외하면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기에 생긴 자신감이었다. 지금 목 잘린 시신으로 갈송 자신 앞에 놓인 소고 역시 한 수 아래였다.

동관은 고민했다. 동관 역시 이탁이 삼절오은 중 최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쉽사리 자신의 곁을 떠나보낼 수 없었다. 만약 섬전수가 관아로 들이닥친다면 막을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갈송을 보내자니 갈송이 섬전수를 상대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아무리 섬전수라도 수백 명을 단신으로 상대할 수 없습니다. 소고는 자신의 용력을 믿고 홀로 있는 상태에서 당했지만 저는 적을 경시하지 않습니다. 청컨대 소고에게 주었던 오백의 병력 외에 비궁대(碑弓隊) 일백을 추가해주시면 실록을 찾는 동시에 섬전수의 목을 가져다 바치겠습니다.”

“비궁대를?”

비궁대는 동관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정예 사병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뛰어난 궁술을 자랑했는데 일격에 일인을 격살하지 못하면 자체에서 비웃음을 던질 정도였다.

동관이 이탁과 시선을 마주쳤다. 갈송에게 맞기면 어떻겠냐는 뜻이었다. 이탁은 자신이 나설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동관의 우려를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동관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이는 자신뿐이었다.

오백의 보군과 일백의 비궁대. 지휘관은 갈송. 자신이라면 이 조합을 깰 수 있는지 고심해보았다. 갈송의 장점은 시위에 두 개의 화살을 걸어 두 명의 상대를 맞출 수 있는 놀랄만한 궁술 실력과 뛰어난 지휘능력이었다. 그런 인물이라면 의례 근접전을 멀리하게 되지만 권장도 나쁘지 않았다.

섬전수와 비슷한 성향이지만 이쪽은 갈송의 궁술을 보조해줄 수 있는 병사들이 모여 있는 상황, 소고와 같은 암습을 당하지 않으리라고 가정하면 섬전수를 죽이지는 못해도 물리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이탁이 고개를 끄덕이자 갈송의 얼굴에서 희색이 돌았다. 강적을 만나보지 못해 무료하기만 했는데 제대로 된 사냥을 할만한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소고가 버텨준 덕분에 병사들이 소란을 듣고 도착하여 섬전수가 호연 별장을 죽일 여유가 없었던 것은 참으로 천운이었다. 다시 한 번 그 천운을 발휘해보도록 하라. 갈송의 길잡이가 되어라.”

소고가 죽고 호연작 자신은 살아남아 의심하지 않을까 잔뜩 긴장했었는데 생각 외로 호연작의 변명이 먹혀 동관과 이탁 등은 호연작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위기를 넘어간 것도 잠시 호연작은 갈송이란 인물이 소고와는 전혀 다른 인물임에 전전긍긍했다. 매우 조심스럽고 여우같이 교활하며 활의 고수였기에 좀체 따로 떼어놓을 기회를 잡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때 처소로 동관의 심복 환관 하나가 들어와 귓속에 대고 속닥거렸다. 펴지려던 동관의 표정이 다시 구겨졌다.

“증포가 그놈을 보냈다고?”

증포가 사람을 보낼 것이란 말은 이미 호연작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대식국 일행이 소동파에게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어차피 철권을 가지고 있는 자신의 권위에 대적할 수는 없기에 잠자코 있었는데 그 철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인물을 증포가 파견한 것이다.

이탁은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동관이 허연 이를 드러내 보이자 도대체 누구를 보냈는지 궁금했다. 그 이름을 묻자 동관이 씹어먹을 듯한 표정으로 읊었다.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포면(包勉).”

그 이름을 듣자 이탁도 갈송도 크게 놀라고 말았다. 여간해서는 잘 움직이지 않는 거목이 움직인 것이다. 포면은 개인적으로도 상당한 명망이 있었지만, 집안이 더 대단했다. 포면의 숙부는 사후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널리 회자할 정도로 유명했는데 숙부의 이름은 포증(包拯), 다른 이름으로는 포청천(包淸天)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포청천이 사망하자 당시 황제였던 인종은 후로 올리고, 시호를 내리니 효숙(孝肅)이라고 했다. 세인들은 포청천을 가리켜 효숙공이라 부르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포청천을 따르던 인물이 많았음은 불문가지였다.

동경(개봉) 효숙 포가의 당대 가주가 바로 포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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