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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31화 (31/257)

00031  (4) 식해(食%26#37282;)  =========================================================================

‘삼협을 모두 죽이는 수밖에 없다.’

동관의 군대가 강한 것은 삼협이라는 걸출한 무인들이 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관의 수족이 되는 삼협만 지울 수 있다면 동관은 이곳에서 별다른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다시 사람을 보충할 수는 있을 것이나 그때의 위급한 상황은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삼협 중 가장 위협이 되는 자는 하북삼절의 일절인 이탁으로 그는 천하제일인에 가까운 자라고 소문이 나 있었고, 그 소문만큼이나 기도가 출중함을 동관과 만나는 자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갈승과 소고는 그에 비해 한 수 아래라고 여겨졌는데 호연작 자신이 온 힘을 다한다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준경이란 고려 무관이 지닌 눈빛만큼이나 실력이 있어야 할 텐데.’

묘족 마을에서 떠나올 당시 준경과 겨뤄보지 못한 것이 이렇게 아쉽게 여겨질 줄은 몰랐다. 그러나 고려 무승들이 하나같이 준경의 강함을 이야기했었다. 그 정도라면 무승들의 도움을 받아 소고를 이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팽 교위, 자네가 수고를 좀 해줘야겠다. 내가 오지산 동쪽 묘족 마을까지 이들을 이끌고 가는 것을 최대한 늦출 것이니 그대가 앞서 출발하여 파선에게 이 사실을 전하거라.”

“맡겨주십시오.”

그렇게 호연작의 비호를 받으며 팽기가 떠나갔다. 그로부터 두 시진이 흐른 뒤에 송군 오백과 소고가 첫 번째 목적지인 묘족 마을로 향하기 시작했다. 앞장서는 호연작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그것은 포구에 매여 있는 우마르의 상선 때문이었다. 동관은 뜻밖에 눈썰미가 예리하여 그 배의 정체를 묻는 것도 빠트리지 않았다. 호연작은 우마르가 증포의 귀빈인 것처럼 설명하며 증포의 위세를 빌리고자 했으나 동관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해남도에 존재하는 어떤 인간도 철권의 권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러니 앞장서는 호연작의 표정이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이라도 삐끗하면 역적으로 몰리게 될 판이었다.

호연작의 도움으로 몰래 포구 군영을 빠져나온 팽기는 지금껏 살면서 가장 빠른 걸음으로 오지산 중턱까지 올랐다. 호연작이 알려준 신호법을 이용하여 묘족 마을까지 들어서자 참았던 호흡을 급하게 토해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급해 보여 소동파를 비롯한 일행들이 모두 모여 이유를 물었다.

그 이유를 팽기가 설명하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묘족의 마을이 비록 외지고 험한 곳에 있다고 하나 오백 명의 병사가 들쑤시고 다니면 결국 발각 날 수밖에 없었고, 그 길잡이로 호연작이 붙어 있다고 하니 오래 시간을 끌 수도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팽기는 호연작의 의견을 덧붙였는데 소동파는 그런 호연작의 의견에 무릎을 치고는 준경에 물었다.

“삼협이란 자들의 면면은 다 알지 못하나, 그중 금군교두 이탁은 정말 무서운 실력을 갖춘 자이다.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여덟 사람 중 한 명이니 그 강함을 어찌 다 짐작할 수 있겠는가? 다행인 것은 그런 자를 처음부터 내보내지 않을 것이니 각개격파의 묘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호연 별장은 소고라는 장수의 무위가 자신과 엇비슷하거나 조금 떨어지리라고 했는데 과연 그런 자를 준경 자네가 이길 수 있겠는가?”

호연작이 세운 계책은 매우 단순했다. 준경이 소고와 일대일 대결을 벌여 그를 죽이는 것이었다. 소고와 일대일을 붙을 기회는 자기 하기에 따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묘족보다 준경을 잡기 위해 다른 삼협이 연이어 나설 가능성이 컸다. 자존심이 높고 섬세한 동관이라면 찝찝함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준경을 쫓을 것이다. 전제는 준경이 고려 출신 무사라고 자신을 밝혀 동관의 목표가 될 수 있도록 확실하게 처신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준경을 생사위기로 빠지게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호연작으로서는 다른 좋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저 이틀간 준경을 지켜보며 느꼈던 실력을 믿기로 했다.

준경의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호연작이 자신과 동수를 이룰 수 있는 상대를 지목하며 이겨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그런 일은 자신이 바라던 일이었다. 또한, 그보다 강한 상대가 아직 둘이나 더 남아 있다는 사실에 더욱 흥분되었다.

“저, 바보.”

이소와 자매는 그런 준경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들이 아는 준경은 무예에 목숨을 건 남자였다.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위험을 찾아다니는 남자였다. 그런 남자를 지켜보는 이소와 자매의 마음은 당연히 걱정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삼협 중 이탁이란 자가 가장 강하다고 말씀하셨지요?”

“직접 실력을 본 적은 없지만,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삼절오은의 일인이고 그 명성이 십 년 전부터 계속되었으니 정말 강한 자임에 틀림이 없겠지.”

소동파의 대답에 준경은 노준의와 왕진을 떠올렸다.

“금군교두 왕진과 비교하면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북경대명부의 노가와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소동파는 관직에서 물러난 지 오래인지라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그러나 현역에서 활동 중인 금군 위사는 준경의 대답에 바로 답할 수 있었다.

“어찌 그 이름들을 잘 알고 있는지 모르나, 왕진 교두와 이탁 총교두가 대련을 몇 번 겨루었고 왕진 교두가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는 것은 알고 있네. 일백 수를 겨루면 대략 승부가 날 정도라고 하더군. 그리고 북경대명부의 노가는 노준의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 그가 정말 강한 것은 인정하네만 이탁에 비하면 아직 잠룡에 불과하다는 것이 내 생각일세.”

준경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왕진의 강함은 그를 만나면서 충분히 체험했다. 그런데 그토록 강한 그도 이탁에게는 일백 합 상대라니 얼마나 강한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었다.

‘결국, 이탁을 꺾는다면 송의 팔대 고수 중 한 명을 꺾는 셈이 되는 것이다.“

왕진도 노준의도 모두 넘어설 기회였다. 준경의 눈이 번뜩였다. 무승들도 며칠 간 제법 묘족에게 신세를 진지라 묘족이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에 같이 돕겠다고 나섰다. 준경은 이제야 수련을 시작한 그들이 나서기에는 피해가 크다고 생각하고 양욱만을 대동하길 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소동파는 묘족 중 어리고 약한 자들을 급히 피신시키도록 하고 지금의 위기를 여족에 알리게 시켰다. 소동파 역시 준경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소동파는 품에서 하나의 물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선대 황제는 소동파를 아껴 역모죄가 아닌 이상 하나의 죄를 사면해줄 수 있는 철권을 내린 바가 있었다. 귀양을 명받았을 때 그 철권을 쓰지 않은 것은 이번 귀양이 그저 단순한 귀양이 아니라 일의 연장 선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만약 일이 틀어져 마지막에는 그것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준경과 양욱은 자매의 도움을 받아 얼굴에 문신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옷도 갈아입었는데 조금이라도 정체를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소동파와 의논하여 그럴듯한 등장 이유도 만들었다. 준경이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지만 소동파와 금군 위사는 이유가 먹힐 것이라며 그대로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 준경은 잠시 은밀한 이야기를 나누자며 야영지에서 소고를 벗어나게 한 호연작의 기지로 기다리고 있던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등장할 수 있었다.

소고는 야밤에 갑자기 사람이 나무에서 뛰어내렸음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자신이 겪은 남방의 이민족들은 나무를 원숭이처럼 타는 자들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소고는 준경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호랑이 문신이 얼굴을 뒤덮고 초의(草衣)로 몸을 감싼 준경의 차림새는 분명 남방 민족의 그것이었으나 생김새는 마치 북방 민족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고려에서 강자를 찾아왔다. 이미 섬 안의 모든 강자를 꺾어 시시함을 느끼며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참에 네놈들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았다.”

준경으로서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고역이었다. 낯이 간지러움을 느끼며 부끄러움마저 들 정도였지만 뜻밖에 소고는 준경의 발언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구도자인가? 이깟 섬에서 강자를 찾아본들 쭉정이만 상대했겠지? 심심하던 차에 참으로 잘되었구나. 어디 내가 네놈을 상대해주마.”

“소 중랑장님이 나서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소장이 나서겠습니다.”

“호연 별장, 네가 나설 자리가 아니다.”

호연작이 일부러 나섰고, 소고는 마치 자신의 먹잇감인 양 호연작을 질타하며 뒤로 물러 세웠다. 소고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혀를 날름거리며 준경에게 다가왔는데 마치 덩치 큰 구렁이를 보는 것 같은 형상이었다. 준경은 두 자루의 단도를 단단히 부여잡았다.

본래 고영창에게 받은 수패를 이곳까지 가지고 왔던 준경이었지만 아직 그 수패를 자유자재로 다룰 자신이 없었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수패를 다루느니 익숙한 권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단도를 선택했다.

소고는 여유롭게 허리춤에서 송 무관으로는 특이하게 달처럼 휘어진 만도(灣刀)를 잡았다. 그는 만도의 날을 혓바닥으로 어루만지며 말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내 만도는 무게 중심이 앞에 있다. 그래서 내가 가볍게 휘두른 칼질 한번에도 사람의 몸통을 일격에 가르지. 즉, 스치면 네놈은 죽는다는 거다.”

“흥!”

준경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른 방향으로 든 단도와 역으로 든 단도를 현란하게 움직이며 마치 새가 모이를 쪼아먹듯이 치명상을 입히기 위해 찔러 갔다.

그러나 상대할수록 거구의 소고보다 자신이 빠르기에서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히 무거운 만도보다 단검을 다루는 자신이 더 빨라야 함에도 조금씩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두 개 단검으로 만도를 막아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크윽!”

준경은 결단코 이토록 일방적으로 밀려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 어쩌면 대련과 실전의 차이일지도 몰랐다. 소고의 만도가 번뜩일 때마다 치명적인 공격이 이어졌고 그 공격을 막고 역공에 나설 시간을 주지 않았다.

지켜보고 있던 호연작도 눈을 점점 크게 뜨기 시작했다.

“이 정도인가?”

자신이 상상하고 있던 것을 뛰어넘는 상황이었다. 거구의 소고가 이토록 날렵할 줄 몰랐고, 준경의 공격을 단 일 수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절묘하게 초식을 이어나갈 줄은 몰랐다.

‘대체 소고가 이 정도라면 나머지 두 사람은.’

천하제일에 가깝다는 이탁의 무위는 대체 얼마만 한 크기란 말인가? 호연작은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호연작의 나지막한 한숨이 들렸는지 소고는 대소했다.

“하하하, 호연 별장, 이 몸이 생각보다 강하여 놀랐는가?”

호연작이 별장치고는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음을 소고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실력이 너무 정직했다. 감출 수 없다면 남을 능가할 정도로 강해야 하고, 강하지 못하다면 감출 수 있어야 했는데 마치 호랑이를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린 늑대였던 것이다. 이제 자신의 위대함을 알았을 것으로 생각하니 뿌듯했다. 강함에 대한 선망의 시선. 그리고 그 강함이 주는 권력. 이 맛에 무예를 익힌 것이 아니겠는가?

호연작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소고는 자신의 실력을 너무나 믿었기에 평소 호위를 두지 않았고, 병사들 역시 소고가 멀리 나가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호연작은 허리춤의 흑봉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준경은 첫 상처를 허용했다. 허리를 베는 만도의 공격을 뒤로 피하며 복부에 살짝 금이 그어졌다. 금세 붉은 피가 흘렀고, 준경은 한 손으로 복부를 누르며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런 준경의 꼬락서니가 우스운지 만도를 어깨에 두르며 소고가 비웃었다.

“이 섬에 그토록 무사가 없었구나. 네놈 정도의 실력으로 강자들을 이겼다니? 그것이 사실이라면 병사들을 끌고 다닐 것 없이 나 혼자서도 해남도를 휩쓸겠구나. 혹시 네놈이 겨룬 것은 아랫도리 실력이 아니었더냐?”

준경의 얼굴이 붉어졌다. 언제 이런 수모를 당해본 적이 있었을까? 그런 준경을 소고는 더욱 희롱했다.

“고려에도 무사가 없구나. 네놈 정도가 감히 구도자를 자청하고 있으니, 언제고 시간이 나면 고려 무사들과 겨루고 싶었으나 그 뜻을 접어도 될 것 같구나.”

“닥쳐!”

준경은 복부의 출혈이 멈춘 것을 느끼자 다시 달려들기 시작했다. 고의화나 고영창이 보았다면 자신을 얼마나 한심하게 여겼을까? 수련을 꾸준히 해왔지만 생각해보니 치열함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실전을 경험해본 것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만약 어쌔신이나 무승을 상대한 와중에 소고 같은 자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분노에 필사적으로 공격을 퍼부었지만, 단도는 번번이 빗나가기만 했다. 오히려 몸을 움직일수록 복부의 상처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옷이 핏물을 더 흡수하지 못하고 배꼽을 따라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흥도 나지 않는구나. 이젠 그만 죽어줘야겠다.”

소고는 지금까지의 만도와는 전혀 다른 세기로 준경의 좌측을 후려쳤다. 단도 두 개를 모두 방어에 썼지만, 준경은 손목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단도 두 개를 모두 바닥에 떨어트렸다. 일부로도 아니고 충격으로 무기를 떨어트리는 일은 처음이었기에 준경이 받은 심적 타격은 매우 컸다.

“호랑이 문신이 너무나 아깝구나.”

그 소리와 함께 준경을 향해 소고의 만도가 수직을 갈랐다. 호연작과 때를 노리고 숨어 있던 양욱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험을 느끼고 정신없이 땅을 구른 준경이 원래 있던 자리에 만도가 떨어지며 깊숙이 패인 사이 호연작의 채찍이 소고의 등을 후려쳤다. 후려친 충격이 먼저였기에 준경의 행동이 만도보다 늦었음에도 가까스로 만도를 피할 수 있었다.

소고가 호연작의 공격이 믿기지 않는지 눈을 크게 뜨는 사이 양욱이 진각을 밟으며 소고의 가슴을 노렸다. 이미 등의 충격으로 양팔을 벌린 소고였는지라 그 공격은 반드시 적중할 것 같았다.

“으악!”

그러나 나가떨어진 것은 양욱이었다. 고통에 악귀 같은 형상을 지으며 소고는 가까스로 양욱의 공격을 발로 차서 저지한 것이다. 육중한 몸이 번개같이 움직이자 양욱도 미처 피할 수 없을 정도였다. 소고는 재빠르게 몸을 돌려 호연작의 채찍을 오른손목에 휘감았다. 그리고는 힘껏 잡아당겼다.

채찍을 놓으면 되지만 순간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독문병기를 일부러 내버릴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순식간에 호연작의 신형이 소고에게 딸려오자 소고는 호연작 역시 앞발 차기로 복부를 후려쳤다.

“커억!”

깊숙한 통증과 함께 호연작의 몸이 잠시 허공에 떠올랐다. 채찍을 잡고 있는 상태에서 소고가 앞발로 후려쳤던 것이기에 뒤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허공으로 잠시 떠올랐던 것이다. 구토와 함께 신물이 나오더니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소고는 위기를 넘기자 자신감이 생겼는지 이마의 살짝 흐른 땀을 닦으며 광소했다.

“늑대가 셋 모여봐야 호랑이를 당해낼 수는 없다. 그리고 실망이구나 호연 별장, 네놈에게는 별 감정이 없었거늘 감히 나를 공격해? 고려 놈과 결탁을 한 것을 보니 모든 것이 계획적이었구나? 동파거사가 시킨 일이냐?”

쓰러진 호연작의 몸에 발을 얹고 힘을 가했다. 복부의 고통 속에서 등에서 또 다른 고통이 몰려들자 호연작의 신형은 달궈진 냄비에 들어간 생선처럼 뛰었다. 고통도 있었지만, 소고가 사실에 근접했다는 두려움이 몸을 절로 떨게 하였던 탓도 있었다.

그때 소고는 흠칫하며 재빨리 몸을 피했다. 피한 자리로 한 자루의 단도가 스쳐 지나갔고, 그것이 소고의 볼에 실금을 내었다. 소고의 눈에 흉성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감히 내 몸에 상처를 내?”

소고는 호연작의 등에 다시 한번 발길질을 하여 실신시키고는 준경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준경은 비틀거리며 남은 단도 하나를 들고 대항 자세를 취했다. 이건 준경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결과라 그저 실소만 나왔다. 실력 차이가 나도 너무 났다. 도대체 무엇의 차이일까? 준경은 죽음을 앞두고 있음에도 자매나 이소보다 그것이 제일 궁금했다.

“무엇이.”

준경의 입이 열리자 소고의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저쪽 어딘가에서 양욱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지만, 소고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진각 이후 발경 밖에 할 줄 모르는 반쪽 짜리 임을 한 번의 공격으로 간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한 신장을 믿고 보법을 게을리하는 자들이 답보(踏步)하면 바로 양욱과 같은 이도 저도 아닌 삼류 무인이 됨을 소고는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이 그대를 그렇게 강하게 만들었나?”

“죽음을 앞두고 그것이 궁금한가?”

“그렇다. 그것을 풀지 못하면 죽어도 억울할 것 같다.”

소고는 준경의 마지막 질문이 너무나 엉뚱하다고 생각했는지 크게 웃고 난 다음에 만도를 질끈 부여잡았다. 대답이 끝나면 곧 저 만도가 면전으로 날아들 것을 생각하니 준경은 그저 더 치열하게 단련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을 자책했다. 고영창에게 받은 수패를 제대로 써먹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선택의 결과였다.

“다음 수를 생각하는 놈은 약하다.”

“뭣이?”

“한 수에 혼신을 담는다. 그것이 내 강함이다. 네놈은 혼신을 담았는가?”

준경은 무뢰한 같은 소고의 입에서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강함을 자랑하며 그것이 재능이나 수련의 차이라고 말하리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도 심오한 이치를 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고려 편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수호지와 고려사를 접목시켜 본 것은 오래전부터 그런 유형의 글을 생각해왔기도 하고, 또한 익숙하지 않은 고려사와 수호지, 또는 당시 세계 정세를 통해 삼국지 때와 마찬가지로 몰랐던 역사를 배우고, 당시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또한 의의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만약 그런 의도가 실패한다면 그것은 소재의 문제가 아니라 제가 독자분들이 요구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일것이기에 이전 삼국지보다도 더 많은 객관성있는 자료를 찾고 재미를 더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끝마쳐질 때쯤에 삼국지편보다 지금의 고려편이 더 익숙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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