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0 (4) 식해(食%26#37282;) =========================================================================
기실 민국실록 그 자체의 내용은 동관이 관심을 둘만 한 내용이 없었다. 동관은 품 속에서 한 권의 서책 꺼냈다. 책은 새것처럼 보였는데 겉에는 태조대왕 임진 원년(212년) 제1권이라는 제호가 똑똑히 적혀 있었다. 설산에서 얻었다는 민국실록의 필사본이었다.
그는 책장을 넘겼다.
“가을 9월 을해일에 태조께서 장안 선위단(禪位團)에서 황위에 올라 국호를 민이라 하고, 연호를 홍익이라 했다. 과거 세조(世祖, 이풍)께서 태조를 얻으시매 고매한 유학자, 채옹이 직접 성인이 되어 받을 ‘수한’이란 자를 지어 주었으니, 그때는 아무도 채옹의 깊은 뜻을 짐작하는 자가 없었다. 태조의 나이 17세가 되어 자를 받게 되면 다시 한 번 만나뵙기를 세조께서 권하셨으나 ‘족하(足下)의 최후는 장수다울 것이고, 그것이 복룡(伏龍)을 일깨울 것이니 그저 창생(蒼生)의 구제로 인연을 갚는다 생각하시오.’하고, 홀연히 떠났다. 이때 한의 정치가 문란하여 뭇 도적들이 다투어 일어나던 때로 그 도적에 관부와 토호가 이름을 올렸고, 백성이 도탄에 빠졌다. 세조께서는 여남의 명문가, 원술을 따르며 깊은 용맹을 발휘하여 그 신임이 두터웠으나 천하에 할거하는 군웅의 장수로 정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세조께서 전공을 세우고 귀환한 자리에서 간하길 ‘제 아들에게 양신의 재질이 보여 공 대신 감히 천거하고자 하니 받아들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원술이 그 말을 따라 태조를 받아들였으니 이때 태조의 나이 20세였다.”
여기까지가 첫 장의 내용이었다. 동관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책장을 거칠게 덮고 품 속에 넣었다.
“몇 번을 읽어봐도 특별한 내용이 없는데 고작 이까짓 책 하나에 목을 맨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동관은 원전이 꼭 필요했다. 그것은 번번이 자신들의 발목을 사로잡는 신법당이나 구법당, 더 윗 존재인 황제에 이르기까지 관심이 지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법당과 구법당 모두 개혁의 방향을 놓고 정쟁을 벌였다면 자신들을 비롯한 일부 고위 귀족들은 오로지 자신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력 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민국실록은 살아생전 무소불위의 권력을 그들에게 선물해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라 할 수 있었다.
“요나라도, 서하도, 대리도, 심지어 동돌궐, 서여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민국실록을 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소유한 자만이 진정한 이민족의 왕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지. 오랜 세월 숱하게 명멸한 왕조 중 하나에 불과하면서도 이민족들은 민나라만은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
요나라의 힘이 강성해지자 송이 공물을 바치며 평화를 사려 했을 때도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민국실록이었다. 그러나 이미 오래전에 행방이 묘연한 민국실록을 송나라도 구할 수는 없었기에 지금껏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왕안석이 신법을 시행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요 도종은 매해 송으로 사신을 보내 민국실록을 달라고 했고, 왕안석은 고려와 군사 동맹을 굳건히 하며 민국실록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얻은 것은 율가의 잔재이지 민국실록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해명한 것이다.
왕안석이 죽고 구법당 영수인 사마광이 잠시 권좌를 찾은 후에도 그 요구는 계속되었지만, 사마광은 모르는 사실이었으므로 끝까지 모른다고 버텼다. 그때부터였다. 신법당과 구법당 양쪽에서 미움을 사고 있던 채경이 제 삼의 세력인 환관, 부패 귀족 세력과 접촉하며 아직은 신법당, 구법당 사이에서 세력이라 말하기 어려운 지금의 상황을 역전시킬 방법으로 민국실록을 찾아 요나라에 건네주자고 제안한 것이다.
작년, 채경은 송의 사신으로 요나라를 방문하여 도종과 친견했고, 그 자리에서 민국실록을 찾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약속을 했다. 도종은 그 약속이 계속되는 동안 채경과 그 일파가 권력의 중심부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힘을 써주겠다고 약속했고, 만약 민국실록을 찾게 된다면 채경은 태사(太師, 승상)의 자리에 오르게 될 것이고 10년간 송을 침범하지 않을 것이며, 송이 부담해야 할 공물을 그 기간 반으로 줄이고, 그 반은 채경 일파가 가질 수 있도록 해주기로 했다.
그것은 실로 엄청난 이권이었다. 돈이면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세상에서 막대한 이권의 획득은 곧 세력 확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것으로 이민족들을 다스릴 수 있다면 무엇보다 엄청난 힘이겠지만 민의 적통을 이어받은 자가 아닌 이상은 한족출신은 인정하지 않겠다고 하니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군.”
이미 송 이전에도 민나라의 적통을 이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말만 그럴 뿐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그렇게 5대 10국 70년의 세월이 흘렀고, 마침내 후주(後周)의 명군, 세종(世宗)이 천하에 공표했다.
-민국실록을 가진 자가 곧 민국의 유지를 잇는 자이다.
유일하게 행방이 묘연했던 마지막 사고의 민국실록이 남아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기실 세종의 이런 선언은 민국실록이 영원히 사라졌을 가능성에 더 방점을 두고 있었다. 세종의 선언으로 누구도 창업의 명분으로 민국의 유지를 더 주장할 수 없었다. 그러나 거꾸로 민국실록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제국 중에서도 가장 개방적이고 중화라는 이념에 충실했던 민국의 유지를 이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마치 전설의 보물과도 같이 취급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깟 이민족의 왕이 되어서 무엇을 하겠는가?”
동관은 코웃음을 쳤다. 지금 송이 차지하는 영역만으로도 자신이 평생을 다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넓었다. 송이 오래도록 존재하며 자신들의 방패막이가 되어주고 뭇사람의 위에 서서 호의호식을 누리면 그것이야말로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호사가 아니던가?
10년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송은 무너진 군대를 정비하고 더욱 국경을 탄탄히 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무너진 군대를 정비하는데 들어가는 자금은 본래 요나라로 가야 할 공물에서 나가게 될 것이었다. 군대를 손에 넣는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기필코 손에 넣어야 한다. 반드시!”
동관의 얄팍한 손가락이 주먹을 말았다. 그런 동관이 포구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삼 일이 지난 뒤였다. 예정보다 하루 일찍 도착한 그는 이미 포구로 복귀한 호연작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해남도의 지형지물이 그려진 지도를 놓고 자세한 이야기를 모두 들은 동관은 지휘봉을 들어 오지산 동쪽을 가리켰다.
“여기가 묘족의 거주 구역이란 말이지?”
호연작은 내심 땀이 나고 있었다. 동관이 지휘사로 부임한 이유가 민국실록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민국실록이란 이름을 제대로 듣게 된 것은 소동파의 설명이 큰 몫을 차지했는데 그 행방을 듣지는 못했지만 어쩌면 소동파는 그 위치를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은 했었다. 사마광이 부탁한 자치통감의 진정한 완성을 위해 해남도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과연 우연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일까?
“여기부터 시작하면 되겠군.”
호연작은 가슴이 철렁했다. 동관이 말한 시작이라는 말이 예사롭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동관이 이끌고 온 병사들을 통해 대만의 원주민들이 잔인하게 살육당하고 그들의 쉼터가 파괴되었다는 것을 전해 들은 뒤였다.
“그곳에는 파선(坡仙, 소동파를 달리 부르는 존칭)께서 머물고 계십니다. 폐하의 칙명으로 귀양 중임에도 자치통감의 완성에 힘을 쓰고 계시는…… 컥!”
황급히 설명하던 호연작은 목에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 동관의 곁에 시립하전 거한의 장수가 거대한 손바닥으로 호연작의 목줄기를 잡아 버린 것이다.
“감히 별장 주제에 어디서 지휘사께 말대답이냐.”
호연작은 거한의 장수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동관의 수족 노릇을 하는 삼협 중 소고라고 하는 자였다. 그는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해 입대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잔인한 습속을 가진 자였다. 동관에게 온 것도 그것이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에 끌려서 온 것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호연작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춤에 차고 있는 흑봉을 손으로 잡았다. 지금이라도 흑봉을 빼들면 소고를 처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곧 역모죄로 이어질 것이기에 손을 떨면서 끝내 참았다.
“소고. 멈춰라.”
동관이 카랑카랑한 음성이 들리자 소고는 이내 호연작을 풀어주었다. 아직 고통이 가시지 않은 목을 손으로 매만지던 호연작에게 동관이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어쩐지 살모사를 닮은 것 같아 호연작은 오싹하기만 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 동파거사가 해남도로 귀양와있다는 말은 잘 들었지. 그런데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구나.”
호연작은 가늘고 흰 손가락을 하나 꼽았다.
“첫 번째, 폐하께서는 자치통감의 완성을 동파거사 그 늙은이에게 명령하지 않으셨다. 사마광에게 명령하신 것이었고, 사마광은 이미 그 명령을 완수하여 폐하께 자치통감을 바쳤지. 이미 그 당시에 칙명은 끝이 난 것이다. 사마광이 유언으로 자치통감의 미비한 부분을 완성해달라고 동파거사를 지목했지만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일이다. 내 말이 사실과 다른가?”
“지휘사의 말씀이 옳습니다.”
호연작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천하인 중에 그때의 일을 모르는 자가 없었으나 엄밀히 따지면 동관의 말에 틀림이 없었다.
“두 번째, 나는 폐하에게 황송하게도 해남도의 생살여탈권을 행사할 수 있는 철권을 내려받았다. 동파거사는 죄인으로 귀양을 온 몸이며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철권의 권위를 무시할 수 없다. 그 역시 맞지 않는가?”
“마…… 맞습니다.”
호연작은 작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동관이 손가락을 두 개 세우며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 자락의 품을 살짝 젖히며 황제가 친히 내려준 철권을 보였던 것이다. 철권을 가진 자는 황제가 곧 명령을 내리는 것과 같았다. 해남도에서는 동관이 곧 황제인 것이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폐하께서 허락하지도 않은 개인적인 저술을 위해 폐하의 권위를 위임받은 내가 피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대는 송의 무관인가? 아니면 동파거사의 추종자인가?”
“저는 송의 무관입니다.”
“앞으로 귀관이 나의 명에 토를 달지 않겠다는 의미로 알겠다. 그런 의미로 그대를 길잡이로 삼고자 한다.”
호연작은 혼란스러웠지만, 자신이 송의 무관임을 인정한 이상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엉겁결에 대답했지만, 아직도 이것이 옳은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호연 별장을 길잡이로 삼고 소 중랑장이 나서시게. 병사는 원하는 데로 끌고 가도록 하고. 방법은 대만과 같네.”
동관을 품 자로 둘러싼 삼협 중 이탁과 갈송이 김빠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실망감을 눈치챘는지 동관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웃음을 지었다.
“못해도 부족의 수만 서른이 넘는다고 하니 앞으로도 기회가 많지요. 설산에서 소 중랑장이 제 호위를 위해 나서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던 것이 떠올라 먼저 기회를 주고자 한 것이니 그리 서운하실 것 없습니다.”
밖을 빠져나오면서 호연작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핏물이 배길 정도였다.
‘대만에서 있었던 일을 여기서도 자행할 생각이라고?’
동관의 방식은 단순했다. 병사들을 시켜 섬 곳곳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수색하고자 하는 지역의 부족 일부를 인질로 삼고 그 부족이 수색을 전담하도록 했다. 하루가 지날 때마다 어김없이 정한 숫자만큼 목이 떨어졌고, 여인들은 간살(奸殺)당했다. 참다못한 부족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덤벼든 적도 있었고 미리 다른 부족에게 사실을 알려 습격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도 삼협을 넘지 못했다.
‘어찌해야 하는가?’
호연작은 고민을 거듭했다. 이것은 회족 자객을 상대하는 정도는 고민 축에도 들지 못할 정도로 인생이 달린 문제였다. 호연작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와 안색이 변하여 서성거리자 그의 부장 격인 한도, 팽기가 들어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호연작과 꽤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며 신뢰를 쌓은 부하들이었다.
그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간략하게 늘어놓자 한도와 팽기의 표정 역시 급변했다.
“동관이 잔인하다는 말은 들었으나 그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더구나 폐하의 철권을 소지한 몸이라 그에게 대적한다는 것은 꿈에도 꿀 수 없는 노릇이다. 대체 어찌해야 하겠는가? 맞서자니 가문이 풍비박산이 날 것이 두렵고, 명령에 따르자니 사나이의 웅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한도, 팽기가 함께 머리를 맞대며 좋은 수를 고민해보았지만, 딱히 다른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묘족에게 이 사실을 전한다고 해도 지금 이곳에 모인 병사들을 대적할 수 없었다. 축제의 부족이라 불리며 평화롭게 살아온 그들이 어찌 동관이 이끄는 송의 정병을 당해내겠는가? 더구나 소동파조차 안중에 두지 않는 동관의 태도로 보아 사고를 쳐도 크게 칠 것 같았다.
그러다 호연작의 눈빛이 크게 변했다. 호연작이 결심을 굳힌 것 같아 팽기와 한도는 굳은 목소리로 호연작을 뜻을 따르겠다고 맹세했다.
“적심살적(赤心殺敵).”
“그것은.”
한도와 팽기가 그 뜻을 짐작하고 해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연작의 오대조이자 송의 개국공신인 호연찬은 말년임에도 험한 변방 수비를 자청하였었다. 그 충성심은 높게 평가하지만 지닌 무위에 비해 지휘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태종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었다. 차라리 금군의 교두로 지내며 도성에 머무는 것이 더 낫다는 나름의 배려였다. 그러나 호연찬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나라의 은혜를 갚기 위해 꼭 거란과 싸우고 싶다고 계속 상주했다. 계속 거부당한 그는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의 몸에 ‘적심살적’이란 글자로 문신을 새겼다. ‘참된 마음으로 적을 무찌르겠다.’라는 뜻을 담은 글귀도 모자라 아들과 처첩, 노복에 이르기까지 충성스러운 글귀로 모두 문신을 하도록 했다.
궁중의 환관들은 호연찬이 궁을 드나들 때마다 매일 같이 늘어가는 그의 문신을 보며 비웃었다. 남들이 보기에 정말 쓸데없는 짓을 하는 호연찬이 그들에게는 조롱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은 호연찬이 입궁하여 허리에 찬 칼로 자기 가슴을 그어 피를 내고는 시종을 시켜 혈서로 출전을 원했는데 지켜보던 환관 중 일부가 비아냥거리며 ‘아예 가슴을 잘라 충심을 보이는 것이 어떻겠소?’라고 하자, 호연찬은 그들에게 호통치며 ‘거란이 아직 살아 있는데 어찌 내 아까운 목숨을 여기서 버릴 수 있겠느냐? 죽어도 전장에서 죽을 것이다.’라고 했고, 결국 황제의 귀까지 그 사실이 알려져 호연찬을 송과 거란의 국경 지역으로 보내기로 했다. 결국, 호연찬은 뜻을 이루었고, 거란과의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지만, 그는 홀로 소전장을 지배할지언정 전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전략이 없었다. 결국, 다시 도성으로 돌아왔고 사람들은 그의 괜한 고집이 오히려 송의 어려움을 자처했다고 비웃었지만, 그 충절만은 인정해주었다. 그것이 지금의 호연작에까지 이어졌다.
호연작은 동관의 명령이 과연 충이란 의미에서 올바른 것인지를 선조에 빗대어 결정을 내렸다. 그런 호연작의 결심에 팽기와 한도는 함께 결의하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역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별장께서 그리 결정하셨다면 저희도 따르겠습니다.”
“아니.”
호연작은 단호하게 말했다.
“역적은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호연작의 결심이 동관에 대항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한도와 팽기는 호연작의 대답을 이해할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