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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29화 (29/257)

00029  (4) 식해(食%26#37282;)  =========================================================================

첫날을 보내게 되면 보통은 남자보다 여자가 먼저 깨어난다고 한다. 이른 새벽, 자매는 몸을 뒤척이다 자신이 준경의 품 안에 있는 것을 느꼈다. 잠시 준경의 얼굴을 감상했다.

남자답게 선이 굵은 호남이었다. 그러나 아직은 성인이라기에는 체구와 비교하면 얼굴은 앳된 면이 남아 있었다.

이자위의 저택에서 자신을 지목했을 때, 그저 자신을 품기 위해 선택했으리라 지레짐작했었지만, 그 눈을 보고 사심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 자신을 선택한 이유였을까?

몇 달을 두고 준경을 관찰했지만 오로지 강함 그 하나에 매진하며 데면데면하기만 했다. 가끔 자신과 이소를 대할 때 짓는 표정을 보면 마치 오래된 가족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 사내에게 자신들은 대체 무슨 존재인가? 그저 누군가를 골라야 했으니 우연한 선택의 결과일 뿐인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준경이란 사내 역시 남자였다. 그러나 그것이 일반적인 남자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었다. 자매가 아는 준경은 특별한 남자였다. 특별한 남자는 여자를 힘들게 하지만 힘든 만큼의 진가를 가지고 있다. 자매는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자매는 준경의 얼굴을 살짝 어루만졌다. 거친 환경에서 매일 같이 수련한 덕분에 피부는 까칠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준경의 눈이 뜨여졌다.

준경은 눈을 뜨자마자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있던 자매의 손을 떼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매는 준경의 돌연한 행동에 잠시 의아했지만, 곧 수긍했다. 준경이란 사람은 이유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 무척 직선적인 성품이었다. 자신의 손길을 뿌리치고 일어난 것에는 이유가 있으리라고 믿었다.

일어난 준경의 나체는 탄탄하기 그지없었다. 준경은 바닥에 떨어진 옷을 입으며 자매에게 말했다.

“이소가 밖에 있다.”

자매는 그 소리에 급히 옷을 걸쳐 입었다. 폭풍 같은 밤을 보내느라 이소의 존재를 깜빡하고 있었다. 낯을 가리는 이소라면 자신이 정한 숙소에 머물지 않으리라고 짐작했어야 했는데 그것을 생각하지 못한 자신이 멍청이처럼 여겨졌다.

자매가 빠르게 옷을 걸치자 준경은 문을 열었다.

아무리 따뜻한 남쪽이라도 한겨울의 새벽은 추웠다. 준경은 문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잠에든 이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준경은 이소를 안아 들었다. 깊은 잠이 들었는지 준경이 안아 들었음에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매는 그런 이소의 작은 몸 위로 겉옷을 둘렀다.

준경이 집안으로 들여 누이는 사이, 자매는 다 꺼진 화덕에 불을 지폈다. 식었던 재에 온기가 살아나자 조금씩 훈훈해지기 시작했다.

자매는 준경에게 다가와 팔을 잡고 잠시 밖으로 나가기를 청했다. 준경은 이소가 가볍게 코를 골며 편하게 자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자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산중의 이른 아침은 추위도 추위였지만 그보다는 맑은 공기가 폐부를 후련하게 만들었다. 준경은 크게 호흡을 들이키며 자매와 함께 오솔길을 걸었다.

그 길은 점점 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반 시진 가량을 걷자 거대한 암석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암석을 돌자 준경은 탄성을 질렀다. 오지산 백화봉 일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 것이다. 수풀이 우거진 것을 가리켜 수해(樹海)라고 한다. 저 멀리 남쪽 바다의 푸른 빛과 수해의 초록색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준경의 가슴에 절로 웅심이 일었다.

이것을 보여주기 위해 자매가 데려온 것일까 싶어 자매를 바라보았는데 자매는 손가락으로 뒤의 암석을 가리켰다. 준경이 몸을 돌려 확인해보니 자신들이 지나쳐올 때 보았던 거대한 암석 뒤편으로 오래된 단풍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고 그 앞에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제단은 두 개의 단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음식과 향을 놓을 수 있는 하단과 이름 모를 입상(立像)이 암석에 부조되어 마치 상단에 놓인 것처럼 되어 있었다.

묘족이 단풍나무를 신성시하는 것은 자매를 처음 만나면서 이소에게 들었던 사실이기에 그리 이상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암석 입상 부조가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누구인지 모르겠음에도 준경의 가슴은 뛰었다.

자매는 준비된 향을 피우며 단풍나무와 암석 입상 부조에 절을 올리며 두 손을 모아 앞날을 기원했다. 그리고는 준경에게도 똑같은 행동을 해달라고 몸짓했다. 준경은 자매의 뜻에 따라 똑같이 향을 올리고 절을 한 다음에 손가락으로 암석 입상 부조를 가리켰다. 누구인지 알려달라는 행동이었다.

자매의 선홍빛 입술이 열렸다.

“민(民) 태조(太祖).”

묘족을 제국민의 일원으로 공평하게 받아들여 준 민 태조는 묘족뿐만 아니라 모든 이민족에게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민 이후 들어선 당 역시 국제적인 노선을 지향했지만, 당 중기 이후 사회에 대한 불평등을 한족 외의 다른 민족과의 불화를 통해 없앰으로써 한족과 이민족 간에 대립각이 세워졌다. 이후 역대 왕조들은 대대로 진한과 같은 시대로 회귀했다. 장성 이북과 중원 이남 해외(海外) 군도(群島)를 사실상 적으로 규정지어 버린 것이다. 이민족 역시 그런 중원의 정권을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했다.

현재에 이르러 요나라나 서하, 고려, 대리에 이르기까지 송나라의 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한인들에 의해 살고 있던 평야를 빼앗기고 점차 깊은 산 속으로 숨어들어 세상과 담을 쌓은 묘족은 언젠가부터 단풍나무 곁에 민 태조의 입상 부조를 놓고 함께 제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언제고 마음 편하게 세상을 활보할 수 있는 날을 그린 것이다. 그것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불교, 도교의 교리와 연결되어 옥황상제 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라고 믿고 있었다.

백화봉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자매는 가만히 생각했다. 민 태조의 본명은 이준경이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주인 역시 우연하게도 성은 없지만, 준경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준경에게 자신을 내어줄 생각을 한 것도 그런 인연이 담겨 있다고 믿었다.

정상에서 내려와 집에 도착하자 새벽이 지나고 어느덧 아침 무렵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며 활보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자매의 부모도 끼어 있었기에 준경과 자매는 꽤 긴 덕담을 듣고 나서야 묵었던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이미 이소가 잠에서 깨어 화덕에 축 늘어진 채로 걸터앉아 있었다.

“저도 나이가 어리지만 알 것은 알아요. 자매를 품었다는 것은 같이 살아야 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럼 저는 자매와 함께 있을 수 없는 건가요?”

이소의 물음은 떨림을 담고 있었다.

“우리의 관계는 일반인의 예와는 조금 다르다. 자매는 이소 네가 필요하고 이소, 너 역시 자매가 필요하다. 그러니 지금처럼 같이 생활하고 같이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해주마. 그러나 가끔 자매가 나와 지내는 것은 이해해야 할 것 같구나. 그리고 오늘부터.”

준경은 이소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쓰다듬었다.

“오늘부터는 그냥 오라버니라고 부르거라. 나는 태어나서부터 언제나 혼자였고, 너와 같은 동생이 있기를 소망했지.”

준경과 이소의 관계는 엄밀히 따져 주종 관계였다. 그러나 이소는 준경을 부르는 호칭을 따로 정하지 않고 매번 ‘이봐요.’라는 말로 대신하곤 했었다.

자매에 대한 것도 호칭에 대한 것도 준경이 이소를 크게 생각한 것이었지만 이소는 고맙다는 말을 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웠다.

이소는 자신의 머리에 손을 올린 준경의 손을 치우고 자매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그것은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준경은 웃으며 집 밖으로 나섰다. 아마도 둘이 나눠야 할 이야기가 많으리라 짐작되었다.

소동파가 머무는 마을 입구 쪽으로 향하자 이미 호연작과 무승들이 대련을 벌이고 있는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을 먹고 좀이 쑤셨던 것인지 가벼운 대련을 제안했던 모양이다.

준경이 도착하자 무승 중 가장 마른 체구를 가지고 있는 남수가 다가와 지금의 상황을 알렸다.

“어제 묘족이 준 술을 마시다가 조그만 시비가 붙었습니다. 대장의 실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놓고 실랑이가 붙었지요. 우리 열 사람이 붙어도 못 이긴다고 말했는데 호연 별장이 자신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해서 시작된 차륜(車輪) 대련입니다. 어이쿠, 지금 함보마저 쓰러졌으니 이제 양욱만이 남았습니다.”

살집이 두툼한 함보가 쓰러지는 것을 보니 호연작은 자랑하던 채찍을 펴보이지도 않고 흑봉 그 자체만으로 상대하고 있었다. 몽둥이만 한 길이의 흑봉 하나로 매섭게 함보를 몰아친 끝에 견디지 못하고 패배를 인정한 것이었다.

준경이 가까이 다가가 패한 자들 사이에 앉자 호연작과 양욱의 눈빛이 변했다. 양욱은 준경에게 호되게 패한 이후로 나름대로 나태했던 자신의 권장을 남몰래 다듬었기에 이번 기회를 설욕의 기회로 삼았다.

양욱은 신중하게 통비권의 자세를 취했다. 워낙 널리 알려진 자세라 호연작 역시 양욱이 통비권의 권사임을 깨달았다. 재미있다는 표정이 떠오르더니 먼저 흑봉을 휘두르며 다가갔다.

흑봉의 일격을 왼팔로 막아낸 양욱은 곧 진각을 밟으며 우장을 뻗어 나갔다. 팔로 막더라도 발경은 침투할 수 있었기에 왼팔이 상할 각오를 하고 단숨에 승부를 내려는 방편이었다.

삽시간에 승부가 나고 말았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 것은 호연작이 아닌 양욱이었다. 호연작이 양욱의 우장을 막기 위해 팔을 움직이는 것을 보았던 무승들이었기에 눈 깜짝할 사이에 되려 양욱이 고통스러운 표정과 손목을 잡으며 나가떨어지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 호연작과 준경의 시선이 마주쳤다.

‘놀랍군. 우장이 뻗어오는 순간을 정확히 보고 팔꿈치로 손목을 후려쳤다.’

보통은 팔을 들어 막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호연작은 우장이 뻗어 오는 순간을 계속 주시하며 팔꿈치의 사정거리 안에 우장의 손목이 들어오는 순간 바깥에서 안으로 후려치며 손목의 툭 튀어나온 뼈를 노렸다. 그러니 양욱이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각, 발경 다 좋은 수법이다. 그러나 그대는 통비권을 잘못 이해했다. 통비권은 파괴력에 근간을 두고 있지만 적을 맞추지 못하면 그 파괴력도 소용이 없다. 내공을 사용하는 무공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보법이다.”

호연작의 충고에 양욱은 아픔을 참으며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호연작의 충고는 준경이 양욱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던 때도 같이 적용되는 것이었다. 손과 발의 길이가 남보다 월등한 양욱은 이미 큰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았기에 양욱의 발경을 한 번 본 자들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양욱의 사정거리를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호연작이나 준경같이 무예가 일정 수준 이상에 오르면 그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상대의 장점을 파고들었다. 장점이란 곧 약점과도 연결된다는 격언에 충실했던 것이다.

“이왕 이리되었으니 나와 한번 겨뤄보지 않겠나?”

호연작이 먼저 대련을 청하자 준경은 기쁜 마음으로 나섰다. 무승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준경이 만회해주기를 바라며 기대감 섞인 시선으로 지금의 대련을 지켜보았다.

서로 자세를 잡았다.

“잠깐 대련을 멈추시게.”

늙수그레한 음성이 두 사람의 전의를 흐트러트렸다. 소동파가 삼남인 소과의 부축을 받으며 나타난 것이다. 그의 곁에는 우마르도 함께하고 있었는데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한 표정이 아니었다.

“내가 아직 생각하지 못한 일이 밤새 벌어진 모양일세.”

소동파가 제법 진중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호연작과 준경은 대련을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호연작이 소동파에게 다가가 이유를 물었다. 소동파는 탐스러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오지산 동쪽이라면 서쪽에는 회족(回族)이 살고 있네. 그 수가 여러 부족 중 소수지만 그래도 수백 명 정도는 되니 적잖은 세라고 할 수 있지. 작지만 그들만의 청진사(??寺)도 가지고 있을 정도라네.”

“그것이 어쨌단 말씀이십니까?”

호연작 역시 회족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해남도에 거주하는 수십 개의 부족 중 극히 소수였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회족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태연하게 있지 못했을 것이다.

회족은 7세기경부터 중국에 정착한 아라비아인들이 한족과 피가 섞이거나 한화(漢化)가 된 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생활 전체가 종교 규율과 연관되어 있었기에 한족은 이들을 멀리하였고 이들 역시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려고 일부러 떨어져 살았다. 그들이 택한 곳은 대부분 새외(塞外)로 이곳 해남도에도 일부가 살고 있다는 것이 소동파의 설명이었다.

특히 이슬람교의 사원을 중원에서는 청진사라고 불렀는데 그런 청진사가 있는 곳은 그 지역 회족의 중심지가 되었다. 소동파는 회족의 수가 수백 명이라고 추산했지만 말 그대로 그것은 추정이었다.

소동파의 설명에 그제야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일행은 깨달았다. 회족이 존재한다는 것은 곧 우마르의 정체가 들통 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호연작의 얼굴이 딱할 만큼 퍼레졌다.

“포구에는 회족 일꾼도 몇 있지요. 저는 그들이 저희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은 알았으나 그것이 귀빈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존재에 대해 우마르가 알게 된 것은 대동하고 있는 통역을 통해 소동파와 환담하다가 우연하게 나온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수니파인지 시아파인지 알 수가 없어 청진사의 모양이나 의식에 대해 잘 아는 묘족을 불러 물은 다음에야 확신할 수 있었다. 해남도에 존재하는 회족은 시아파였던 것이다.

그들은 동남아시아 군도에 존재하는 시아파를 모체로 삼고 있었는데 만약 우마르의 배가 해남도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동남아시아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는 시아파 본산에 알렸다면 대식국까지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식수나 식량을 보급하기 위해 해남도에 간혹 들리는 동남아시아 상선들이 있는 만큼 그럴 가능성은 매우 컸다.

“너무 앞서나가는 것이 아닙니까? 설혹 그들이 우마르의 배를 보았다고 하더라도 이곳에서만 살고 있던 회족이 우마르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지도 의문이고, 그것이 대식국까지 알려져 자객들이 움직인다는 것도 비현실적인 것 같습니다.”

준경의 의문은 제법 합리적이었지만 소동파가 이내 부정했다.

“내가 우마르와 대화해보니 그들은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정보망을 가지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지역 본산에 정기적으로 보고한다고 하네. 그들의 엄격한 계율을 생각하면 우마르가 해남도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하네.”

“그럼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개봉에 계실 증 대인에게 연락하여 우마르를 고려로 보내야 합니까?”

호연작의 말에 무승들이 기겁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고려는 이철의 죽음으로 한창 뒤숭숭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대식국인과 함께 나타난 고려 무승들이라면 단숨에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다. 잠잠해질 몇 년 후라면 몰라도 지금은 절대 가서는 안 되는 길이었다.

“호연 별장은 우리의 힘을 너무 과소평가하는군. 내가 비록 귀양을 와 있지만 나 역시 엄연한 송의 사람일세. 증 대인이 이 일을 맡기로 한 이상 다른 이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자객들이 천 단위로 몰려오지 않는 이상에야 오지인 이곳까지 쉽사리 찾아 들어올 수는 없네. 동파서원의 건립을 서두르고 그곳을 호혈(虎穴)로 만들 셈일세. 내가 기관진식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만약 선생님께서 직접 나서주신다면 응당 그 뜻을 따르겠습니다. 필요하신 것을 분부해주십시오.”

소동파는 자신감에 차있었고, 그런 소동파의 자신감을 호연작은 믿었다. 그러나 우마르는 걱정이 가득했다. 밤새도록 소동파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천재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쌔신 역시 암살의 천재들이었다. 그들이 수십 명 모이면 일국의 왕도 죽일 수 있다고 공언하는 자들이었으니 자연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친우였던 재상이 자신에게 맡긴 비보(秘寶)의 행방이 사라질 것이 두려웠다.

준경은 그 모습을 보며 오히려 활기가 차올랐다. 이대로 시간만 죽이며 무의미한 수련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위기가 생긴 것이다. 위기에서의 성장은 수련보다도 더 값진 결과를 낳을 것으로 생각했다. 준경은 눈을 매섭게 빛냈다.

그러나 소동파나 그 일행이 짐작한 위기와는 전혀 다른 위기가 가까운 곳에서 엄습하고 있었다. 대만을 지나 해남도로 향하는 송의 전선(戰船)이 바로 그것이었다.

일백 척에 이르는 전선의 선두에 하얀 분을 얼굴에 바른 중년의 남자가 해풍을 맞으며 서 있었다. 그 주위로는 수십 명의 장수가 시립하고 있었다.

“과연 채 동지사(同知事)가 짐작한 것이 맞았다. 장돈(章惇)과 증포(曾布)가 그토록 비밀로 하고자 했던 것을 우리가 찾았다는 것을 알면 어찌 생각할까? 아쉬운 것은 설산(雪山)에서 찾은 것이 필사본이라 다시 한번 이 몸이 번거롭게 움직여 한다는 사실이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고 높아 여성의 목소리를 연상케 했다. 남자임에도 얼굴에 분을 바르고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오직 한 부류밖에 없었다. 바로 환관들이었다.

“그래도 해남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허락한 폐하의 철권(鐵券)을 대감의 양부이신 이환 어른께서 갖은 노력 끝에 받아 내셨으니 이참에 해남도의 풍광을 구경하신다 생각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이환을 양부로 둔 자로 송의 전선을 이끌 수 있는 이는 오직 동관 한 명밖에 없었다. 그런 동관과 나란히 서 있는 자는 형형한 기도를 내뿜는 중년의 무인이었다. 그는 다른 무장들과 다르게 편안한 초록색 무복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것은 금군위사의 훈련을 책임지는 교두의 자리에 있는 자만 걸칠 수 있는 옷이었다.

“하북삼절의 일인이자 최고의 금군교두로 꼽히는 이 대협의 신위를 이미 설산에서 확인했으니 마음이 든든합니다. 이 대협의 말대로 이 몸은 해남도의 풍광을 체험하며 복락(福樂)이나 누려볼까 합니다. 남방 묘족의 여인들이 그토록 색기가 강하다던데 곧 구경할 수 있겠군요.”

동관과 감히 나란히 설 수 있는 자는 선단에서 세 명에 불과했다. 그들은 동관이 삼협이라 부르며 신뢰하는 자들로 하나같이 지휘와 무위를 겸비한 자들이었다. 그중 제일은 지금 동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탁(李鐸)이라 했다. 송 무림의 최고 고수를 꼽으라고 하면 삼절오은(三絶五隱)이라 하여 하북삼절, 하남오은으로 대표되는 8명의 고수를 말했다. 그중 하북삼절의 일인인 이탁이 동관에게 합류해 있었던 것이다.

또한, 설산은 저 먼 북쪽에 있는 설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대만에 있는 두 번째로 높은 산의 명칭이었다. 그 풍광이 아름다워 강남 일대에서는 천하비경으로 꼽히는 곳이었으나 동관은 이미 그곳을 폐허로 만들어버린 뒤였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의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지금 해남도로 향하는 것도 그런 목적의 연장선이었다.

동관은 차가운 해풍 속에서 그 목적을 중얼거렸다.

“민국실록(民國實錄)의 마지막 원전(原典)이 해남도 어딘가에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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