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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28화 (28/257)

00028  (4) 식해(食%26#37282;)  =========================================================================

차를 다 마시자 소동파는 일단 휴식을 권고했다. 종일 산지를 걸은 피로가 잔뜩 남아 있었기에 모두가 찬성했다. 산의 밤은 평지보다 일찍 찾아와 벌써 해가 저물고 있는 시기였다. 일행은 묘족이 창고로 쓰는 곳에 묵게 되었지만 그중 우마르는 특별히 우대를 받아 소동파가 머무는 거처에서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준경과 이소는 자매 친지들의 초청을 받았으므로 그곳으로 향했다. 마중을 나온 자매의 남동생이 있어 수월하게 찾을 수 있었는데 묘족의 마을 가장 안쪽까지 걸어가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자락에 나무 기둥을 이용하여 반쯤은 허공에 떠있는 듯한 신기한 집이었지만 그 주변의 집들 또한 그와 비슷한 건축 양식이었다.

집 앞에는 솟대가 세워져 있었다. 남동생의 말을 들으니 묘족은 축제의 부족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럿이 모여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음식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솟대 주위를 돌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게 되는데 솟대는 마을 공터라면 어디나 설치되어 어느 곳에서나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밤임에도 주변은 불이 활활 타올라 마치 낮처럼 여겨졌다. 이미 주변 집에서도 여러 사람이 나와 준경과 이소를 맞이했는데 그 앞에는 자매가 은장(銀匠)과 파란색 비단으로 성장(盛裝, 화려하게 차려입음)하고 있었다.

“너무 이뻐요.”

이소는 자매를 다시 본 것이 반가운지 가까이 다가가 자매의 옷을 매만지며 기쁨을 표시했다. 자매는 그런 이소에게 역시 반가움을 표시하고는 곧 준경에게 시선을 돌려 두 손에 들고 있던 물소 뿔잔을 준경의 입가로 가져갔다.

“묘족의 귀빈 대접이래요. 귀빈이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물소 뿔잔으로 술 한 잔, 식사할 때 한 잔, 집 밖을 나서며 한 잔, 최소 석 잔을 마셔야 한다고 하네요. 호의이기 때문에 남기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네요.”

술이라면 이미 어려서부터 배운 준경이었기에 자신이 있었다. 물소 뿔잔이 제법 크기는 했지만 준경은 잔을 받아 들고 단숨에 들이키려고 했는데 자매가 잔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이소가 자매에게서 듣고 설명했다.

“초청자가 직접 입가에 대준다고 하네요.”

술이 양이 많을 때는 단숨에 마시는 것이 그나마 낫다. 자매가 물을 떠먹여 주듯이 준경은 입만 대고 있으니 술이 빨리 줄지 않았다. 도수가 쎈 지 조금 먹었는데도 확 올라오는지라 준경은 잔을 조금 더 기울여 달라고 눈짓을 했다. 자매가 잔의 경사를 기울이자 더 많은 술이 준경의 목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따갑지만 짜릿한 맛이기도 했다. 준경은 알지 못했지만, 축제의 부족이란 명칭처럼 묘족은 술을 가장 잘 담는 부족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기에 독한 술임에도 그 향취에 곧 빠져들었다.

‘음? 이건.’

벌컥벌컥 마시던 도중에 입가에 이물감이 느껴졌다. 잔에서 술이 아닌 무언가가 입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두 가지나 되었다.

준경은 혀를 굴려 무엇인지 조심스럽게 촉감을 느꼈다.

‘하나는 생선 가시 같고, 또 다른 하나는 실인데 이것이 무슨 뜻이지?’

준경이 자매를 쳐다보니 자매의 눈빛에 유독 기대감이 깃든 것을 볼 수 있었다. 주변을 잠시 곁눈질하니 지켜보던 묘족들 역시 기다리는 심정으로 하나같이 준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계속 들어오는 술을 꿀꺽꿀꺽 넘기면서 가시와 실의 효용을 두고 고민을 거듭했다. 대접으로 세 대접은 될법한 물소 뿔잔에 담긴 술도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가시와 실을 뱉는 것이 정상이긴 한데.’

삼킬 수가 없으니 뱉어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준경이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마침내 물소 뿔잔의 술이 다 비워졌다. 입가에서 물소 뿔잔이 떨어지고 준경은 가시와 실 중 먼저 그래도 불편하게 느껴지는 가시를 먼저 뱉어내고자 혓바닥으로 굴려 입가로 밀었다. 준경의 입술이 살짝 열리고 가시가 보일 때쯤에 준경은 자매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건 아니다 싶어 가시를 혓바닥으로 감싸며 뒤로 끌어 오고 입술을 모아 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매의 얼굴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거구나 싶어 준경은 실을 반쯤 뽑아냈고 손가락을 이용해 실을 완전히 빼냈다.

‘붉은 실?’

준경의 손가락에 놓인 것은 손가락만 한 크기의 붉은 실이었다. 갑자기 주변에서 환호가 터져 나오더니 자매의 부모가 준경의 손과 어깨를 잡으며 연방 기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준경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라 그저 무슨 일인가 싶어 멍하니 있었다.

“세상에.”

이소 역시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곧 자매의 부모가 하는 말을 알아듣고는 작고 하얀 손바닥으로 입을 막고 놀라고 있었다.

그 사이 준경이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마치 자매의 이름을 연호하는 것 같은 자매반(姉妹飯)이란 외침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솟대 주변을 돌며 전통 악기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즐거워하는 사이 준경은 자매의 손에 손목을 잡혀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소가 잽싸게 같이 따라 들어가자 자매는 이소에게 연방 설명을 시작했다. 이소가 질문을 던지고 자매가 대답하는 사이 준경은 집안을 찬찬히 살폈다. 집안 주변으로 붉은색과 파란색 천이 너울거리며 걸렸고 자신의 앞에는 대나무 통에 담긴 술과 삶은 오리 고기, 몇 가지 채소가 놓여 있었다. 이상한 것은 젓가락이 두 개뿐이었다는 것이다. 자매의 부모와 남동생은 들어오지 않는 것이냐고 묻고 싶었던 준경이었지만 질문하는 이소의 표정이 너무나 진지하여 끼어들지 못하고 끝나기를 기다렸다.

자매와 이소의 대화가 다 끝났는지 이소는 초승달 같은 아미를 살짝 찡그리며 준경에게 말했다.

“아까 자매반이라고 외치는 것을 들었죠?”

준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소의 설명이 이어졌다.

“묘족은 자매반이란 풍습이 있데요. 술을 먹여 주는 것은 귀빈을 대하는 일반적인 환영 풍습이지만 그 속에 가시와 붉은 실을 넣는 경우는…….”

“경우는?”

이소가 채 말을 잇지 못하자 준경이 답답하여 재촉했다. 이소는 그런 준경을 한 번 흘겼다. 준경으로서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자매반이란 원하는 남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표시하는 방법이래요. 보통은 밥을 정성스럽게 지어 대접하고 그 밥 안에 가시와 붉은 실을 넣는데 남자가 그 밥을 먹다가 가시를 뱉어내면 그 처녀를 원하지 않는 것이고, 붉은 실을 보이면 상대의 마음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래요. 붉은 실은 보통 인연의 뜻으로 쓰이죠. 그것이 밥이 아니라 술일 경우에는 손님에 대한 수청 또는 묘족이 아닌 다른 부족 사람과의 혼례를 의미하는 것이래요.”

준경은 살면서 지금같이 놀란 적은 처음이었다. 준경이 입을 벌리고 자매와 이소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는 사이 이소는 가지런한 하얀 이를 깨물며 말도 안 된다는 심정을 밝혔다.

“원래 묘족은 같은 부족끼리만 혼례를 올린대요. 정말 큰 은혜를 입는 경우나 불가피한 일이 벌어질 때만 다른 부족과의 관계를 허락한다고 해요. 아까 가시를 뱉었다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서로 어울려 가무를 즐기면 끝이었단 말이에요.”

준경은 아까 전의 일을 다시 생각했다. 자신이 가시를 버리기 위해 입을 살짝 벌렸을 때 자매가 실망스러워하던 표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다른 여러 사람 앞에서 호의가 거절되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아니면 자신에게 진짜 마음이 있어서였던 것일까? 지금까지 자신은 자매에게 애정을 드러낸 적도 없고 단지 가사 돌봄을 받는 동거인이었을 따름이었다. 남자로서 아름다운 여인을 보면 느끼는 은근한 감정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런 감정에서 애정으로 커질 만한 일 자체가 없었다.

“고향에 데려주었다는 고마움 때문에?”

“그렇지 않고서야 자매 언니가 이런 자리를 만들 리 있겠어요? 저는…….”

준경의 혼잣말에 이소가 재빠르게 부연했지만, 곧 말끝을 흐리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거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소의 표정에서 준경은 읽을 수 있었다.

그때 자매가 이소와 준경을 향해 서툰 발음이었지만 똑똑히 이야기했다.

“같이 있고 싶어요.”

그리고는 묘족의 언어로 뭔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소의 표정이 복잡하게 바뀌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준경은 자기도 모르게 이소의 손목을 잡았다.

“자신이 고집을 피워 한족이 모여 있는 북쪽 평원으로 갔다가 노예 상인에게 잡혔다고, 그것이 잘못이래요.”

일어섰음에도 손목을 잡은 준경의 상체와 눈높이가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준경은 이소와 눈빛을 마주치며 깨달았다. 어린 이소의 눈빛은 희노애락의 감정을 모두 담고 있었다.

“비록 운이 좋아 험한 일을 당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계속 살기 위해서는 마을의 장로들이 말하길 홀로 살거나 남동생이나 사촌과의 근친혼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데요.”

고려 왕들도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근친혼을 했었다. 그러나 자매는 노예로 팔려갔었다는 그 흠으로 말미암아 부족의 남성들이 기피 할 것이기에 혼례를 올려 가정을 이루고 싶다면 근친혼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이미 마을의 어른들이 결정을 내린 모양이었다.

근친혼의 폐해는 고려 역대 왕들을 통해 준경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가정이 필요한 것이라 하지만 그런 식의 혼례가 자매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부모님과 남동생을 다시 보게 된 것만으로도 이미 자신은 여한이 없데요. 비록 형식은 자매반을 취했지만 자신은…….”

이소가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준경은 잡을 수 있었음에도 잡지 못했다. 이소가 나간 것은 선택을 준경에게 미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준경은 자매를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고향에서 이런 상황이 오리라고 예상했구나. 그럼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은 마지막으로 부모와 친지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 것이겠지?”

준경의 말을 알아듣기라고 한 것일까? 자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너는 이곳에서 홀로 또는 근친혼을 올려야 하겠지.”

다시 자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준경은 가만히 자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술이 담긴 대나무 통에 손을 뻗어 벌컥벌컥 들이키기 시작했다. 삼분지 이 정도를 들이키고는 자매에게 내밀었다. 반강제로 거칠게 내밀었지만, 자매는 양손으로 공손하게 받아 천천히 술을 들이켰다. 술을 완전히 비우자 자매의 두 볼에 홍조가 피어올랐다.

준경은 그런 자매의 머리 위로 양손을 뻗었다. 자매는 자신의 머리 위에 얹어져 있던 은장이 벗겨지는 것을 느꼈다.

“너를 원한다.”

자매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간략한 말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뜻은 간단하게 내린 결정이 아니었다. 준경이란 사람을 몇 달간 겪어온 자매였기에 여자를 배려하기 위한 준경의 책임감이라는 것을 알았다.

은장을 내려놓고 호기롭게 외치기는 했지만, 준경의 손은 자매의 옷고름으로 선뜻 향하지 못했다. 준경도 자매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기에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계속 바라보고만 있었다. 먼저 옷고름에 손이 간 것은 네 살 연상인 자매였다.

준경은 속으로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한 것을 자책했지만 이미 자매는 성장(盛裝)을 벗어 내리고 있었다.

서서히 드러나는 나신을 보며 준경은 여자의 몸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백설같은 이소와 다르게 자매는 남방 묘족답게 탄력 있는 구릿빛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옷을 한번 내리기 시작하자 그 속도는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준경은 그녀의 손끝이 계속해서 떨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매는 나름대로 상당한 용기를 냈던 것이다.

그녀의 가슴이 드러나자 준경은 자신도 모르게 작은 탄성을 질렀다. 그것은 여인의 신비에 처음으로 다가가며 느끼는 참고자 해도 참을 수 없는 남자의 본능일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구릿빛 피부와 비교하면 가슴은 그보다 연한 빛을 띠고 있었다. 작지도 크지도 않게 적당한 가슴은 남자라면 당장에라도 잡고 싶을 정도로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뽐냈다. 준경은 점차 자매에게 다가갔다. 가슴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지자 언뜻 비치는 푸른 색 실핏줄이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준경 자신도 느끼지 못할 사이 본능은 오른손을 움직여 자매의 왼쪽 가슴을 잡았다. 무엇으로도 형용하지 못할 따뜻함과 탄력이 느껴졌다. 준경의 손끝이 표면을 살짝 눌렀다. 땀이 맺히는 느낌이 도리어 촉촉한 기분이 들게 하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지만 본능은 능숙하게 자기의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준경은 손끝이 꼭지에 닿자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가볍게 상하로 움직였다.

자매의 입가에서 가벼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신음이 남자의 본능을 더욱 부추겼다.

준경은 자매와 밀착했다. 서로의 눈이 다시 한번 마주쳤고, 자매는 곧 눈을 감았다. 준경은 그런 자매의 입술에 입을 마주쳐갔다. 달콤한 향과 맛이 동시에 났다.

목이 마른 것을 느끼며 혀를 놀려 그녀의 입술을 열었다. 잠시 저항하던 그녀의 입술은 준경의 집요한 공격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빗장을 열었다. 설육과 설육이 뒤엉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뜨겁게 새어나오는 콧바람이 서로의 얼굴을 잔뜩 달구었다.

준경은 어느새 폭풍 속에서 배를 모는 사공이 되었다. 파도가 칠 때마다 배는 부서질 것처럼 삐걱거렸지만, 준경은 필사적으로 노를 저으며 항구를 향해 나아갔다.

항구가 보이기 시작하자 준경은 더욱 빠르게 노를 저었다. 마침내 무사히 항구에 들어섰다는 기쁨에 환희를 지르고 싶은 찰나 준경은 도취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생존의 기쁨과 폭풍 속에서 무사히 배를 이끈 자신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혼재하였고, 그 느낌의 강력함과 뒤를 돌아보며 느끼는 시각적인 여정은 지금까지 그 어떤 쾌감보다도 비교가 안 될 만큼 굉장한 것이었다.

일순간 준경은 몽롱해진 의식의 불꽃 속에서 짐승 같은 울부짖음을 발했다. 그러나 그 울부짖음은 준경 혼자만의 외침이 아니었다. 현실로 돌아오자 고양이 같은 교성을 지르며 자신의 등을 꼭 껴안고 있는 자매의 모습에 준경은 방금 느낀 희열보다 더 큰 욕망이 다시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밤이 지나자 준경은 폭풍 속에서도 노련하게 노를 젓는 능숙한 뱃사공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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