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0 (3) 거경신(居敬信) =========================================================================
(3) 거경신(居敬信)
-계림공 희(숙종)를 도운 공로를 인정받아 척준경이 추밀원 별가의 벼슬을 받은 것은 1095년이었다. 그러나 그가 다시 역사에 언급되는 것은 1104년 여진의 침입에서 공을 세운 후부터였다. 근 10년간 그는 계속해서 추밀원 별가였다. 그 10년 동안 그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10년간 그의 행적을 아무도 알지 못했던 탓일까? 지금도 그에 대해 학자들은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학자들은 소아시아 인근에서 출토된 기록을 통해 당시 척준경이 고려의 밀명을 받고 십자군 1차 전쟁에 파견된 장수였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기는 하나 그런 중대사를 고려 조정이 왜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는지는 의문으로 남기에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본다. 본 필자는 척준경이 서른 이후 김부식과 함께 송을 방문했을 때, 환대받았다는 기록에 주목한다. 당시 김부식의 문명이 송까지 알려져 크게 환대받았다고는 하지만 김부식이 가는 자리에 척준경 역시 빠지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비약하자면 김부식을 환영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척준경도 환영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송의 야사(野史)다. 척준경이 고려인인 것을 고려하면 박하게 적어 놓았을 법 한데도 그의 활약은 마치 중국의 여느 신화적인 무장들과 다르지 않다.
정말로 없었던 이야기라면 누가 그런 이야기들을 일부러 지어냈을까? 최소한 일 할의 진실은 담겨 있다는 것이 본 필자의 주장이다.
야사에서는 말한다. 척준경이 이미 추밀원 별가 시절 송을 다녀간 적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골프와 휴양지로 유명하지만, 당시는 유배지였던 해남도가 바로 그곳이다. 그곳에서 ‘그’를 만났고, ‘그’에게 인정받은 것이 훗날 김부식과 함께 송을 방문했을 때, 환대를 받았던 이유라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김부식이 아니라 다른 인물이 척준경과 함께 사신으로 향했더라면 우리는 이렇게까지 지지부진한 논쟁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최소한 환대의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할 것이니 말이다. [고려야사 中]
윤관은 준경을 잠시 노려보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 임무가 가볍다 여기느냐?”
“아닙니다.”
“그럼 모두를 보호할 자신이 있다고 여긴 것이냐? 똑똑히 들어라. 네가 상대해야 할 자들은 혹시 모를 자객보다 해남도 그 자체다. 그곳은 광활한 유배지로 정치범부터 흉악범에 이르기까지 너의 편이 되어줄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만약 적이 저 이소를 인질로 잡고 우마르의 신변을 요구한다면 너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진다면 우마르의 신변이 우선입니다.”
이소의 하얀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준경이 이토록 단호하게 선을 그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어려움이 많을 것을 알면서도 이소가 선택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일은 이소의 책임입니다.”
“인주 이씨에게 이소를 맡길 생각은 없느냐? 내가 원만하게 다리를 놓아주마. 또한, 다른 노예를 구해주도록 하마.”
그것이 윤관에게 있어 제일 나은 방법이었다. 그러나 준경의 생각은 달랐다.
“떠나기 전에 인주 이씨를 찾아가보겠습니다.”
인주 이씨가 몰락했다지만, 아직도 개경 도성에는 인주 이씨들이 여럿 남아 있었다. 그중 누가 몰락한 가문을 일으킬 것인가를 두고 세력 다툼이 한창이라고 했다. 어쩌면 이자겸이 이소를 위해 재물을 보내고 준경에게 경고를 보낸 것이 이소를 이용해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주 이씨에서 별말이 없다면 나도 더는 말리지 않겠다. 그러나 만약 인주 이씨의 아이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다면 너의 공이 지금까지 적지 않았다고 해도 큰 문책을 받게 될 것이다.”
“감수하겠습니다.”
윤관은 이소에게도 다시 한 번 다짐을 물었다. 이소는 준경의 발언이 못내 야속하게 느껴졌지만, 준경의 말대로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다고 말하자 윤관은 숙종에게 보고하기 위해 먼저 길을 떠났다.
윤관이 떠나자 증포와 노준의가 나왔다.
“본관 역시 떠나야겠다. 준의를 남겨 놓고 싶지만 내 처지가 준의를 떼어놓을 만큼 그리 좋지 못하다. 금군 셋을 남겨 놓을 테니 그들과 상의하여 해남도로 향하면 될 것이다. 동경으로 돌아가는 즉시 쓸만한 무사를 구해 보내줄 것이니 그때까지는 해남 지휘사(指揮使)의 도움을 받도록 하여라.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해남 지휘사는 워낙 본국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 독자적인 군벌이나 마찬가지다. 충성심은 의심하지 않지만, 그의 비위를 잘못 건드린다면 최악의 수가 나올 수 있으니 내가 사람을 보낼 때까지는 약간의 불화가 있어도 참거라.”
“알겠습니다.”
증포의 말이 끝나자 노준의가 다가왔다.
“아무래도 비무의 승패를 내는 것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소. 언제고 본국에 오게 된다면 북경대명부로 오시구려.”
거기까지 말한 노준의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준경이 남자 다운 체구라면 노준의는 무술과는 거리가 먼 호리호리한 체구였다. 얼굴마저 준수하여 웬만한 여인이라면 그의 눈빛에 얼굴을 붉힐 정도였다.
“아까 어린 처자를 두고 기벽에 대해 언급한 것은 잊어버리시오. 내가 비록 오래 살지 않았으나 지금의 상황을 보니 그것이 내 오해였음을 알았소.”
자신의 오해라며 깨끗하게 사과하는 노준의의 남자다운 모습에 준경은 절로 호감이 일었다.
“저야말로 오늘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형님과 같은 뛰어난 무사들이 그득하니 연계16주(燕?十六州)도 곧 되찾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형님이 생긴다면 이런 사람을 형님으로 삼고 싶었다. 빼어난 실력에 준수한 용모, 집안의 내력까지 뭐하나 빠지는 것이 없었던 것이다.
연계16주의 이야기가 나오자 증포와 노준의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준경은 자신이 말실수한 것은 아닌지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곧 열린 노준의의 음성은 밝았다.
“자네가 나를 형님이라 부르니 나 역시 자네를 아우라고 부르겠네. 연계16주를 되찾는 것은 우리의 오랜 숙원이지만 아직 제국의 힘이 완전하지 못해 그 시일이 조금 지체되고 있을 뿐이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기필코 연계16주를 되찾고 말 것이네.”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연계16주란 후당(後唐)을 멸망시키고 후진(後晉, 936년)을 세운 석경당이 도움의 대가로 거란에 할양한 땅이었다. 이후 한인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항상 찾아야 할 땅이라며 전쟁을 일으켰지만, 거란의 힘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 이르렀다. 현재에 이르러 송은 갖가지 어려움을 들어 그 땅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으나 연계16주와 국경을 인접한 북경대명부의 장수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증포와 노준의까지 떠나자 고의화는 남은 세 명의 금군과 인사를 나누고 준경이 해남도로 갈 준비를 마칠 때까지 김 대정의 도움을 받아 세 명의 금군이 우마르를 보호하고 있을 것을 합의했다.
“벽란도를 둘러본다고 나온 것이 큰일로 번졌군.”
도성으로 돌아가면서 고의화는 혀를 끌끌 찼다. 고의화는 자매와 이소를 눈짓하며 준경에게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서경 기생을 내가 앉히는 것이었는데.”
이소에게 일부러 들리라고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소는 고의화의 예상과 달리 쌍심지를 키고 달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말 없는 준경에게 달라붙어 말을 걸고 있었다.
“정말 대식국인과 제가 동시에 잡히면 저를 포기할 건가요?”
준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기가 당면해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체질에 맞지 않았다. 원칙을 한번 정했으면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최소한 전장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지는 않을 터였다.
준경이 그렇게 대답을 할 줄 알면서도 이소는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자매를 떠나보내기는 싫지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는 자매를 말릴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묘족의 틈에 끼어 생활하기에는 익숙하지도 않았고 용기도 부족했다. 그렇다면 이소에게 남은 사람은 준경밖에 없었다.
상관들의 질문에 대한 답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단둘이 있을 때는 위안이 되는 좋은 말을 듣고 싶었다.
시무룩한 이소의 축 처진 어깨에 준경의 팔이 슬며시 올라갔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럴만한 상황은 만들지 않을 것이다.”
“불가항력의 상황도 있잖아요.”
축 처진 이소의 표정이 조금은 살아났다. 이 남자는 최소한 빈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럴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말은 우마르도 자신도 놓치지 않겠다는 저 남자만의 강한 확신이기에 내심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막상 튀어나온 말은 의심이었다.
“나에게 불가항력이란.”
준경은 발걸음을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는 무릎을 굽혀 이소와 마주쳤다.
“새처럼 하늘을 날지 못하고, 물고기처럼 자맥질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나도 약속할 수 없다. 딱 한 가지만 기억해라.”
이토록 단호한 준경의 눈빛은 이소가 그를 안 이래 처음이었다.
“나는 항상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노력이 면죄부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살면서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이소의 심장에 손가락이 달렸었다면 지금 준경을 가리켰을 것이다. 이소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집에 도착했지만 사실 준경이 챙길만한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히려 준경이 긴장한 것은 이자겸과의 만남이었다.
쇠뿔도 단숨에 빼겠다며 자매와 이소를 고의화에게 잠시 맡겨두고 이자겸의 저택으로 향했다. 하늘에 별이 떠있는 시각이었다.
간신히 귀양을 면하고 넙죽 은신하고 있는 이자겸의 저택은 종전에 보았던 이자의나 이자위의 그것에 비하면 화려하지 않았다. 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다. 혹시 모를 숙종의 눈초리로부터 납작 엎드리고 있으려는 기색이 역력한 형상이었다.
“그래 종질(從姪)의 문제를 의논하러 왔다고?”
아직 마흔이 넘지 않은 이자겸이었지만 앞서 쟁쟁한 사촌들이 몰락하면서 단숨에 인주 이씨의 후계자로 급부상한 상태였다. 근신만 풀린다면 언제든지 재기할 수 있는 그이기에 눈빛에는 힘이 있었다.
“그렇습니다. 이번에 명을 받아 잠시 중원을 다녀와야 합니다. 처음에는 이소를 대감께 맡겨두려 했으나 이소의 뜻이 워낙 완강하여 함께 데리고 가려 합니다.”
이자겸의 눈빛이 준경을 샅샅이 훑었다.
“내가 조금 알아보니 이소와 그 유모에 대한 처우가 그리 박하지 않다고 들었다. 워낙 귀하게 자란 아이니 상전을 모시고 있는 느낌도 들 것이다. 단도직입으로 물어보자. 그 아이를 품을 셈이냐?”
인주 이씨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서는 집안의 신망을 얻어야 했다. 이자겸이 택한 것은 이자위와 이자의에 딸린 식솔들을 노비에서 면천(免賤) 하여 가문으로 되돌아오게 하는 일이었다. 인주 이씨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여 북방 양계로 끌려간 인주 이씨의 식솔들을 대부분 안전한 상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일부가 이미 치욕을 당한 예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당사자를 찾아내 은밀히 죽였다.
숙종의 위세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들을 대놓고 풀어줄 수 없어도 최소한 집안의 인정을 받을 정도의 조치는 해야 했던 것이다. 이소도 마찬가지였다.
양계에 노비로 간 식솔보다 이소의 경우가 더 껄끄러웠다. 숙종의 명으로 준경의 노비가 된 경우였기에 자칫 준경을 자극하면 숙종의 불벼락이 인주 이씨에게 곧바로 칠 수 있었다. 그러나 준경은 뜻밖에도 자신이 협박하기 전부터 순순히 기고 있었다. 이자겸은 그것이 인주 이씨에게 호의를 얻기 위한 수작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준경은 자신에게 상당히 괜찮은 패가 될 수 있었다.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그 말은 추후에 품을 수도 있다는 말이냐?”
준경은 이자겸의 말에서 묘한 기운을 느꼈다. 품어도 방관하겠다는 의미로 들렸던 것이다.
“그 아이가 원한다면 그리하겠으나 제 의지로 이소를 건드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그저 힘만 쓰는 무관으로 알고 있었는데 말주변이 제법이로구나.”
처음부터 준경은 이소가 원한다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럴 것 같았으면 왜 노비로 삼았을까? 이자겸의 상식으로는 이런 일이 있을 때는 무언가 반대급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 지금 눈앞에 있는 준경은 어린 나이임에도 능구렁이 같은 심기를 보여주는 것으로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