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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19화 (19/257)

00019  (2) 청풍양수(淸風兩袖)  =========================================================================

“외람되지만 한 수 배워볼 수 있겠습니까?”

언제 헤어질지 모를 사람이었다. 준경은 노준의와 꼭 겨뤄보고 싶었다. 노준의는 그런 준경의 부탁에 부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 봉술은 실전과 대련을 가리지 않습니다. 혹여 어린 친구가 다칠까 걱정이 됩니다.”

한 마디로 너는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표현이었다. 이렇게 되자 준경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물러설 수 없었다. 고의화는 재미있는 구경을 보게 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말릴 생각도 하지 않고 웃고 있었다.

“다치는 것은 제 실력이 모자라서이지 형장에게 억울한 마음을 가진다면 어찌 대장부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그래도 제법 강골입니다.”

준경이 한사코 노준의와 붙기를 청하자 노준의는 난처하다는 듯이 잠시 볼을 긁어댔다. 그때 윤관과 증포가 문을 열고 나왔다.

“어디 한번 겨루어 보아라. 듣자하니 추밀원 젊은 별가의 솜씨가 제법인 모양이다. 그를 해남도로 파견하고자 하니 실력을 한번 보아야겠구나.”

고의화도 준경도 의아한 기색이었다. 해남도라면 중원 최남단에 있는 섬으로 송의 유배지로 알려진 곳이었다. 고의화가 윤관에게 포권하며 물었다.

“우마르라는 대식국인을 그리로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해남도라면 대식국까지의 바닷길도 무척이나 가까워진다. 그렇다면 우마르를 보호하기 위해 자객들에게 생소한 고려를 선택한 이점이 없었다.

증포가 윤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의 의견이었다. 고려에서 그를 맡을 수 있으나 신왕(新王)의 즉위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나라를 소란스럽게 할 수 있는 일은 피하자는 의견을 냈다. 해남도라면 상인들도 그곳이 익히 유배지인 것을 아는 터라 보급을 위해 잠시 들르는 정도이고, 유배당한 죄수를 관리하기 위해 상당수의 군대가 머물러 있기도 하다. 특히 섬에서 가장 높은 산인 오지산(五指山) 일대는 무척 험한 곳으로 숨어 지낼만한 곳이 많다고 하니 더 없이 적격이다. 나중에 대식국으로 돌아갈 때도 이곳에 머무르는 것보다 더 빨리 갈 수 있지. 그러나 고려 조정 역시 이번 일을 넘겨버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아국에 보이기 위해 무사를 파견하여 우마르를 지키는 일에 협력하겠다고 했다.”

증포의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뒤에서 어린 소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해남도로 간다는 것이 정말인가요?”

그녀는 바로 이소였다. 자매와 함께 관아에 머물러 있다가 밖이 시끄러워지자 슬쩍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증포의 입에서 해남도란 말이 튀어나오자 자매가 격동하였고, 이소가 자매를 대신해 무례를 무릅쓰고 끼어든 것이다.

증포는 두 명의 여인이 나타나자 윤관을 바라보았다. 윤관 역시 그들이 누구인지 알 턱이 없어 고의화를 쳐다보았다. 고의화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일전에 주군께서 준경의 공을 치하하여 역모에 연루된 가문의 식솔 중 둘을 노비로 삼을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습니다. 저 어린 소녀가 이자위의 손녀로 이소란 이름을 가지고 있고, 묘족의 여인은 이소의 유모입니다.”

본래 준경에게 한 명이 허락되었던 것이지만 굳이 그런 이야기를 여기서 꺼내지는 않았다. 증포는 그 설명을 듣고 사정을 짐작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해남도에 묘족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들은 오지산을 중심으로 이남 지역 울창한 수림에 살며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간혹 노예로 잡히는 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해남도의 세력은 섬 중앙에 자리한 오지산을 중심으로 크게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 있었다. 북부는 중원과 통하는 항구가 있을 뿐 아니라 넓은 평야가 존재하여 농사를 짓기에 수월하였다. 유배형에 처한 자 중 일부 식자, 고위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농사를 짓는 노역에 동원되고 있었고, 거기에서 나온 소출로 섬을 지키는 군대를 지탱할 수 있게 되었다. 남는 식량은 일부 거상들에 의해 중원으로 팔려나가기도 했다.

남부는 거의 모두가 삼림(森林)이라고 보면 되었다. 섬의 4할이 삼림이라고 알려졌었는데 그 4할이 모두 남부에 집중된 것이다. 그곳에는 북부에 거주하는 자들도 미처 알지 못하는 이민족들이 다수 살고 있다고 전해졌다.

“비록 나라에서 허락한 것이기는 하나 이제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소녀를 노비로 삼은 것을 보니 기벽(奇癖)이로소이다. 아무래도 별가에게 가르침이 필요할 것 같소.”

송에서도 괴상한 성적 취미를 가진 자들이 적지 않았다. 한창 정의감에 불탈 때인 노준의로서는 준경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준경은 해명하려고 했지만 이내 해명하기를 멈추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달려 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실력을 보는데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것이다.

고의화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인지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았다. 승패가 갈린 후 설명해도 늦지 않은 것이다.

이소는 노준의가 준경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준경이 쳐다보자 혀만 날름 내밀며 쌤통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지만 준경의 가슴은 강적과 대적할 생각에 뜨거워지고 있었다.

노준의는 묵죽봉을 세로로 세워 비무 시작에 앞서 예를 표했다. 준경은 ‘어쌔신’이라는 자객 집단을 상대할 때 썼던 방패를 비켜 들었다.

“사람들이 봉술에 대해 오해하기를 현란하게 돌리며 적을 상대한다고 믿고 있소. 분명히 봉은 원을 가장 많이 그려야 하는 병기 중 하나요. 그러나 그것이 봉술의 요체는 아니오. 봉술은 그 어떤 병기보다 용맹스러워야 하오. 이제부터 그것을 보여 드리리다.”

묵죽봉은 노준의의 키에서 한 뼘 정도 더 긴 장봉 계열에 속했다. 지금 노준의가 말한 것은 장봉을 익힌 자들을 가장 주의해야 하는 이유였다.

봉이 순식간에 뻗어오자 준경은 방패를 들어 막았다. 방어가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방패를 잡고 있던 손에 찌릿한 충격이 찾아왔다. 하마터면 방패를 놓칠 수 있었던 정도의 힘이었다.

이번에는 묵죽봉이 준경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준경은 가까스로 방패로 옆구리를 방어했다. 다시 찌릿한 충격과 함께 두어 걸음을 옆으로 밀려났다.

‘용맹하다는 뜻이 바로 이런 뜻인가?’

근 이십여 초의 공격이 찍고, 후려치는 두 동작의 연속이었다. 대나무 특유의 탄력이 더해져 마치 채찍처럼 휘어지며 내리치는 공격은 효과음부터가 싸늘한 느낌을 더해주었다.

숨 쉴 틈 없이 공격이 계속되자 준경의 방어가 미처 쫓아가지 못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준경의 옆구리에 묵죽봉이 닿자 엄청난 고통과 함께 옆구리 살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손이 절로 쓰라린 상처 쪽으로 향했다.

노준의는 봉을 자신의 뒤로 세우며 잠시 전투를 멈추었다.

“이 정도도 쫓아오지 못한다면 실망입니다. 장봉은 기이한 변화와 속도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파괴력이 장점입니다. 힘껏 내려친 묵죽봉의 파괴력은 거석과 거목을 패이게 만들 수 있을 정도지요. 제가 상대한 자객들은 명치를 파괴하고 두개골을 함몰시켜 죽였습니다.”

장봉은 휘두르는 반경이 길어지는 만큼 단병(短兵)보다 파괴력이 센 것이 특징이었다. 그러나 안으로 파고들면 장봉은 가진 이점을 상실하게 된다. 준경은 몸을 숙이고 방패를 앞세워 노준의에게 뛰어들었다.

“봉술의 극의를 이해하지 못하시는군요.”

별안간 봉을 하늘 높이 던져 버린 노준의였다. 그 사이 그의 손마디가 벌어지며 준경을 향했다.

“봉술의 기본은 권장(拳掌)에서 비롯됩니다.”

노준의의 손바닥이 준경의 방패에 닿자 준경은 무언가가 자신을 강하게 빨아들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준경 자신이 자객을 상대했던 방법이 그대로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손바닥을 이용해 방패의 진로를 자연스럽게 정면에서 약간 우측을 틀었다.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인 것을 생각하면 후속 동작이 나오려면 지연 시간이 필요한 것을 이용한 방어법이었다. 준경의 진로가 잠시 비켜나가는 사이 노준의의 오른발이 교차하며 준경의 오른발을 밟았다.

“크윽.”

충격은 없었다. 그러나 준경은 이후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침음(沈吟)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한순간 준경은 명치 부근에 강한 충격과 함께 몸이 붕 떴다.

노준의가 준경의 오른발에서 발을 떼고 좌장(左掌)으로 잠깐 열린 준경의 명치 부근을 그대로 때린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준경이 쓰러지자 노준의의 손이 허공으로 올라갔다. 때를 맞춘 것처럼 묵죽봉이 그대로 빨려 들어왔다.

“허어.”

윤관은 깜짝 놀랐다. 준경의 무위가 뛰어난 것을 알고 있었다. 비록 고의화에게 아직 미치지 못하지만 고의화는 언제고 자신을 뛰어넘을 인재라며 칭찬을 남겼었다. 그런 준경이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쓰러졌으니 고려가 준경을 해남도로 보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되어버렸다.

“노준의의 나이가 비록 약관이나 이미 북경대명부 내에서는 당할 자가 없는 실력자입니다. 그를 이기는 자를 찾아보는 것이 오히려 어려울 지경이지요. 그러니 노준의에게 졌다고 하여 고려의 성의가 무시되는 것이 아닙니다.”

증포는 느긋한 어조로 덕담을 던졌지만, 윤관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비록 송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근 백 년간 요나라를 상대하며 보여준 고려의 힘은 어쩌면 송을 능가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숙종이 북방 고토의 회복을 흉중에 담고 있는 것도 그런 자신감의 발현이었다.

‘일어나라. 최소한 무기력하게 지는 꼴은 보이지 마라.’

윤관은 속으로 준경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이소는 준경이 맥없이 당하자 겉으로는 무심해도 속으로는 매우 놀라고 있었다. 준경이 매일같이 굵은 땀을 흘리며 수련에 매진 한 것을 지켜봐 왔었다. 준경의 심성은 몰라도 실력만은 인정할 정도였던 것이다. 그런 준경이 일장을 얻어맞고 널브러진 장면을 보자니 자신까지 은근히 화가 치밀었다. 표정과 달리 손은 그 분함을 표출하며 떨자 자매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이소의 손을 잡았다. 자매의 따스한 손에 이끌리자 이소는 떨림이 멈춘 것을 알게 되었다.

‘자매는 믿고 있구나.’

말도 제대로 섞지 못한 준경과 자매였다. 그러나 몇 개월간 겪은 준경이란 사람은 이대로 쉽게 물러날 인물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명치 부근에 충격을 받고 쓰러진 준경은 이내 눈이 뜨여졌다. 푸른 하늘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누군가를 닮은 듯한 구름이 넘실거렸다.

-내가 몇 번을 말하지 않았느냐? 네놈이 패술을 익히는 목적은 방어를 위함이 아니라 오로지 공격을 위한 것이다.

구름은 고영창을 닮아 있었다.

‘공격.’

준경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명치 부근을 가격당한 충격은 그리 쉽게 가라앉지 않았지만 그나마 노준의가 사정을 봐주어 이 정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왕진과의 대결에서 패배했던 것이 가르침을 받으려는 방편이었다면 노준의와의 대결은 비슷한 또래의 실력대결이었다. 이대로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기에는 준경의 피가 너무 뜨거웠다.

방패를 전면에 세우고 괴성과 함께 노준의에게 달려들었다.

앞서와 일치한 돌진이었지만 노준의는 봉을 겨누며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앞서 준경의 기세와 조금 달라졌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까 공격할 방법을 미리 정하고 달려들었다면 지금은 준경이 무슨 방법으로 공격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본능으로 싸우겠다는 뜻인가?’

노준의는 준경의 방패를 노리고 봉을 뻗었다. 방어 동작을 보면 적의 행동을 예상할 수 있었다. 봉과 방패가 접촉하자 방패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계속된 공격으로 피로가 누적된 방패가 파손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은 전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상관이지.’

준경의 수벽타와 패술은 이미 그 근본을 살상에 두고 익혀왔다. 가장 효과적인 대량 살상을 익히려는 방법이지 수벽타와 패술을 익히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던 것이다. 강함과 살상은 엄밀히 다른 말이었다.

“이얍!”

이미 금이 가기 시작한 방패의 가장자리를 양손으로 잡고 노준의 쪽으로 힘껏 밀어붙였다. 위태롭게 봉을 막고 있던 방패가 우지끈 소리와 함께 구멍이 생겼다. 노준의의 얼굴에 처음으로 이채가 떠올랐다.

“이거나 먹어라!”

봉에 구멍 뚫린 방패가 매달린 형상이 되자 노준의는 봉을 옆으로 휘둘러 방패를 떨쳐내려고 했다. 그러나 준경의 발이 먼저였다. 준경의 오른발이 옆차기하며 방패의 아랫부분을 힘껏 걷어찬 것이다.

순식간에 방패는 긴 창대를 따라 노준의에게 향했다. 방패가 멈춘 것은 창대를 잡고 있는 노준의 오른손에 부딪히면서였다. 오른손이 멈칫하며 약간의 고통이 있었지만, 노준의의 왼손은 여전히 창대의 뒷부분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었다. 노준의는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방패를 봉에서 빼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자신의 제어를 뛰어넘는 힘이 봉을 타고 전해졌다. 잠깐의 거리를 물러난다고 한 것이 다섯 발자국을 정신없이 물러난 다음에야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방패를 던져버리고 전면을 바라보니 준경의 왼발이 서서히 내려가고 있었다.

‘내가 뒤로 물러나려 할 때, 봉두(棒頭)를 찼구나.’

경계하며 뒤로 물러나는 것은 반복된 수련으로 말미암은 습관적인 동작이었다. 그렇게 경계하기 위해 봉두를 적의 전면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준경이 앞발 차기로 밀어내자 관성이 더해지며 뜻대로 멈출 수 없게 된 것이다.

노준의는 참으로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명가와의 대련은 형식과 체면을 중요시하여 생사를 걸고 싸운다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군부에 지원했지만, 명문 북경 노가의 후계자가 함부로 전쟁에 나가는 것을 반대하는 집안 어른들 때문에 요나라와의 전투는 꿈도 꾸지 못하고 요인들의 보호를 주로 맡게 되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자리에서 병기와 격식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싸우는 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것은 노준의의 피를 뜨겁게 만들었다.

노준의와 준경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제대로 결판을 보자는 의미였다.

“그만! 거기까지.”

증포가 비무의 종료를 선언하자, 노준의는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그건 준경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막 재밌어지기 시작한 판이었다. 준경은 자신도 모르게 증포를 노려보고 있었다. 증포는 그런 준경의 시선을 모른 척했다.

“그만하면 되었다. 시급히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이 자리에서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충이다.”

“증 대인의 말이 맞다. 그만 기세를 거두지 못할까.”

윤관까지 거들자 이 비무는 더 이어갈 수 없었다. 준경과 노준의는 아쉽다는 생각을 감출 길이 없었다. 증포가 옷자락을 말며 내실로 들어가자 노준의가 뒤를 따랐다. 따로 기회를 청해보려는 행동이었다.

그들이 사라지자 윤관은 준경을 보며 말했다.

“너를 볼 때마다 본관의 마음이 철렁하는구나. 해남도로 너를 보내야 하는 마당에 망신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으나 그래도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인상을 심어 주었으니 다행이다.”

“정녕 준경을 해남도로 보내실 작정이십니까?”

고의화가 재차 윤관의 뜻을 물었다.

“그렇다고 폐하의 측근인 고 대정, 자네를 보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폐하께서는 조용히 처리하길 원하시네. 누구의 주목도 받지 않으면서 실력까지 있는 자를 찾기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둘의 대화에 준경이 끼어들었다.

“자매를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준경의 말에 윤관의 미간이 좁혀졌다.

“묘족 여인을 고향에 데려다 줄 작정인가?”

준경은 자매를 떠나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도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남자의 심리가 그럴 것이지만 아주 정이 들기 전에 이런 기회가 왔다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라는 마음도 들었다. 이소는 그런 준경을 보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자매와 헤어진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만약 자매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홀로 남은 자신은 어찌해야 하는가?

어쩌면 준경은 떠나기 전에 자신을 종숙(從叔) 이자겸에게 맡길지도 몰랐다. 그 결과로 새장 속의 새처럼 자유를 잃은 인형이 되어야 하리라.

“싫어요! 저도 데리고 가요!”

윤관이 있는 앞에서 이렇게 큰 소리로 외칠 용기가 있는 줄은 이소 자신도 처음으로 깨달았다. 준경은 이소에게 다가가 작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매를 만나면서 여자에게 흥미가 생겼지만, 아직 자신에게는 여자를 대하는 것보다 무예를 수련하는 시간이 더 즐겁고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이소는 용기를 내어 자매와 준경 자신 곁에 머무르기를 선택했다. 어린 소녀가 까마득한 대신(大臣)을 앞에 두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밝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준경은 그 결정을 지켜주기로 했다.

“한 명 더 되겠습니까?”

윤관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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