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7 (2) 청풍양수(淸風兩袖) =========================================================================
“젠장, 망할 놈.”
고의화가 상황을 보니 김 대정은 부하의 복수를 위해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고, 준경은 그동안 수련한 패술을 시험해본다며 살려 둘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천상 자신이 상대해야 할 놈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패술이든 무엇이 되었든 훈련은 실전 같이해야 실력이 는다고 한 것은 고의화 자신이었기에 가래침을 뱉으며 반쯤 부서진 의자를 집어 들었다.
“소란을 피워 간만의 휴식을 방해한 죄가 크다. 분이 풀릴 때까지 좀 맞아야겠다.”
고의화를 지나치면 바로 입구였기에 월도를 든 대식국 무사는 괴성과 함께 거친 기세로 달려들었다. 고의화는 그런 대식국 무사의 명치를 정확하게 발로 찼다. 발이 날아오는 것을 알면서도 무사는 미처 방어할 사이도 없었다. 지금까지의 공격과는 다르게 마치 번개처럼 꽂힌 것이다.
바닥에 쓰러지자마자 고의화는 복날에 개 패듯 의자로 내려치기 시작했다. 입에 침을 물고 경련이 일 때까지 정신없이 내려치자 의자도 완전히 산산조각이 난 뒤였다.
그 사이 준경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진군무(陳軍舞)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고영창은 이미 과거부터 수패가 쓰였다고 준경에게 말했었다.
-고려 전에 신라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 것이다. 병력에서 밀렸던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양보다 질로 상대를 누르기 위해 병기의 개량을 서둘렀던 탓도 있었다. 그중 적으로부터 효과적으로 아군을 보호하기 위해 방패의 개량과 대열을 짜고 운용하는 방법이 체계화되기 시작했다. 당시 대진국 병사들이 중원으로 유입되면서 그들의 패술을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후 화랑도와 결합하며 신라만의 독특한 패술로 거듭났다. 그것은 고려에도 영향을 미쳤지.
고영창에게 받았던 수패가 상단에 단창 세 개를 꽂아둔 형상이라면 신라의 방패는 단검을 방패 안에 부착하여 근접전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차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장수들에게는 상하로 칼날을 꽂아 방패 자체만으로도 공격할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을 진군무라고 불렀다.
왕진이 가르쳐준 것은 동작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 기본의 중요성과 간결, 빠르기를 중요시하는 것이었다면 고영창은 진군무의 이론만을 남겼다.
-신라의 방패는 일부러 나무만을 썼다. 철을 다룰 수 있음에도 그리했지. 금속을 대지 않고 나무만을 쓴 방패에 적의 검이나 창을 꽂았다고 생각해보자. 또는 찌르기가 아니라 내려치거나 휘둘러 방패의 가장자리를 쳤다고 생각해보자.
검이 나무에 박히면 상대는 잠시 움직일 수가 없게 된다. 빈틈이 드러나는 것이다.
-상대의 팔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월도가 날아들자 준경은 방패로 막았다. 월도는 베기에 적합하고 방패의 가장자리를 내밀어도 날이 얇아 금세 빠지는 특성이 있었다. 준경은 팔에 두 번의 상처를 허용하고서야 월도는 평범한 방법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둘 다 방패를 들었다면 방패로 보호되지 않는 부위를 먼저 공격할 수 있는 자가 유리해진다. 그러나 같은 조건이기에 그 실행이 쉽지 않다. 허점을 찾거나, 상대가 다른 곳을 공격하게 하여 틈을 만든다.
몇 차례의 빠른 공수전환이 이루어졌다. 방패 외에는 들고 있는 것이 없는 준경이었기에 잠깐의 공격 시간이 주어져도 발과 손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곡도를 줍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오기로라도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방패 하나로 적을 쓰러트리고 싶었다. 그때 왕진의 충고가 하나 떠올랐다.
-상대방이 전진 공격하면 방패를 든 쪽의 발을 앞으로 내밀며 맞상대할 것이 아니라 뒤로 빼며 적을 사정거리로 끌어들여라. 방패로 가릴 수 없는 하단을 공격하면 상대는 무기를 물리고, 뒤로 물러나든, 방패를 들어 하단을 막을 것이다. 방패를 공격에 쓸 때가 바로 그때이다.
김 대정은 여덟 병사와 함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도륙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것을 인지한 무사는 괴성과 함께 날아올라 준경의 머리를 노리며 월도를 찍어 눌렀다.
“방패를 든 발은 뒤로 빠진다.”
준경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방패를 든 손이 얼굴을 가리며 월도와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 충격을 그대로 끌어들이며 발을 뒤로 뺐다. 부딪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그 힘을 고스란히 끌어들여 적을 품으로 잡아당긴다.
적의 상체가 정권의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지체하지 않고 주먹을 날렸다. 적도 공격을 막기 위해 자신의 상체를 방패로 가렸다.
그러나 이내 적은 자신이 허공을 좌우로 한 바퀴 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 되었다. 아무도 없었다면 고의화는 준경의 한 수에 내심 박수를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준경이 월도를 방패로 막으며 뒤로 끌어들였고, 전광석화와 같이 남은 주먹을 내질러 적은 방패를 들어 본능적으로 방어에 성공했지만, 그것은 허초였다. 준경의 방패가 가슴 안에서 밖으로 수평으로 움직이자 그것과 접촉해있던 월도의 칼날로 말미암아 반작용을 일으켰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비틀린 것이다. 반 바퀴를 돌자 적의 등이 그대로 준경에게 노출되었고, 가슴 밖으로 나갔던 방패를 팔목의 반탄력을 이용해 가슴 안쪽으로 끌어당기며 방패의 가장자리로 등을 찍었다.
충격으로 적이 바닥을 뒹굴자 준경은 다시 방패의 가장자리를 이용해 적의 목줄기를 강하게 내리쳤다.
“커억!”
외마디 비명과 함께 잠시 발버둥치던 적은 이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기어이 죽이다니.”
고의화는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자신의 손아귀에 한 놈이 아직 숨을 쉬고 있었으니 그나마 준경의 살인도 여유롭게 쳐다볼 수 있었다.
그때, 환갑 정도로 보이는 대식국인이 송나라 상인에게 뭐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것을 듣고 송나라 상인이 재빨리 고의화에게 소리쳤다.
“잡히면 품속에 있는 독침으로 자신을 찔러 죽인다고 합니다. 어서 가슴에 있는 독침 주머니를 빼앗으랍니다.”
고의화는 소스라치게 놀라 자신이 잡은 무사의 가슴팍을 헤쳤지만 이미 무사의 옆구리에는 작은 침이 반쯤 꽂혀 있었다. 고의화의 얼굴이 심하게 구겨졌다.
“망할!”
고의화에게 만신창이로 당하자 적은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고 여겨 잠시 고의화가 준경의 전투를 구경하는 틈을 타서 자살을 시도한 것이다. 침이 꽂힌 부분은 이미 거무죽죽하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곧 무사의 숨이 끊어졌다.
“증(曾) 대인!”
이미 끝난 상황에서 송나라 무사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뒤따르는 자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고의화와 김 대정은 청년의 갑작스러운 등장보다 그가 외친 이름에 주목했다. 대인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라면 일개 상인이 아니라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제야 송나라 상인들을 천천히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중 가장 연장자는 쉰 정도의 나이로 비록 송상의 옷을 입고 있었으나 풍기는 기도가 상인이라고 보기에는 강렬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청년 무사가 즉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자 그 뒤를 따르던 무사들 역시 일제히 무릎을 꿇고 청년 무사의 말을 따라 했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먼 이역만리까지 감히 자객을 보낼 줄은 꿈에도 몰랐고, 자객 일인이 감히 금군(禁軍) 셋과 당적 하리라고는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 좇아간 일은 어찌 되었느냐?”
“그들이 타고 온 배를 찾아 수부를 모두 제압하고 자객으로 보이는 열다섯 전부를 베었습니다. 그러나 금군 열을 잃었나이다. 제게 죄를 물어주십시오.”
송상과 대식국인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그 이야기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금군의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다. 도성과 황실을 지키는 임무를 가진 금군이 벽란도에 나타난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어찌 너만의 책임이겠느냐? 보지 않아도 준의(俊義), 네가 열다섯을 모두 상대했음을 알겠다.”
아마도 처음 이끌고 나간 금군의 수와 돌아온 금군의 수가 그만큼의 차이가 나는 모양이었다. 준경은 자신보다 서너 살 많은 정도의 청년 무관을 뚫어지게 살폈다. 아마도 상황을 낙관한 송의 관리가 청년 무관을 시켜 자객들이 타고 온 배를 제압하여 퇴로를 차단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는데 열다섯 명을 홀로 상대했다니 그 무위는 정말 뛰어난 것이었다.
송의 관리가 고의화와 김 대정을 보며 말했다.
“조용한 곳을 마련해주겠는가? 사정을 설명하겠네. 나는 증포(曾布)라는 사람일세.”
그 이름을 듣자 고의화와 김 대정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현재 송 철종을 보좌하고 있는 신법당의 핵심 인물 삼인 중 일인이었기 때문이다. 왕안석의 신법을 열렬히 추종하는 이들로 재상 장돈(章惇), 좌상(左相) 채변(蔡卞)과 함께 참지정사(參知政事) 증포(曾布)는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었다.
증포가 명패(名牌)를 내보이자 진짜 증포인 것을 알고 한바탕 예를 올리는 소동이 벌어졌다.
개경 왕궁으로 증포가 벽란도 관아에 머물고 있다는 파발이 달려갔고, 그 사이 관아 은밀한 내실에서는 증포를 상좌에 두고 일행이 모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우리를 위급에서 구해준 고 대정과 김 대정, 준경 별가에게 감사를 드리오.”
증포가 고개를 숙이자 다들 황망한 표정으로 맞절이 이어졌다.
“처음엔 적들이 제법 실력이 있으나 그 수가 적어 금군을 둘로 나누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라 여겼소. 본관의 오판을 일으키기 위한 자객의 술책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시간을 두고 나타난 다음에야 깨달았으니, 허어.”
실제로는 대식국인이 자객이 강하고 교활하다고 경고했으나 증포가 금군의 정예들이 그들을 당해내지 못할 리가 없다며 자존심을 세우는 바람에 위험을 자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지적할 수 있는 간담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대식국이 망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까?”
고의화가 가장 궁금한 질문을 던졌다. 대식국이 망했다는 이야기에 증포의 얼굴이 잔뜩 굳었다. 일개 대정이 그런 중대한 사실을 알았다는 것의 의미는 하나였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고려 조정에서도 이미 소식을 전해 들었나 보군. 하긴 송을 거치지 않고 고려로 바로 오는 대식국 상인들도 있으니 지금 정도라면 알 때가 되었겠지.”
“정말 대식국이 망했단 말입니까?”
“망했다기보다는 중원으로 따지자면 전국시대가 열렸다고 보아야 하겠지.”
그제야 자리에 모인 고려인들은 이해가 갔다. 제국이 여러 소국으로 나뉘어 패권을 다투는 것은 중원과 삼한을 보더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예였다.
증포는 환갑으로 보이는 늙은 대식국인을 가리키며 그의 정체도 알려주었다.
그는 우마르 하이얌(1048년~1123년)이라는 사람으로 3년 전 하사신, 또는 어쌔신이라고 불리는 자들에게 암살당한 대식국의 재상과 죽마고우라고 했다. 그는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이며 철학자이자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고의화나 준경이 그런 이력의 대단함을 이해하기에는 아는 것이 너무 부족했다.
그는 현대에서 매우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었다. 그가 만든 달력은 16세기에 나온 그레고리 달력보다 더 정확했고, 유명 시집 ‘루바이야트’를 남겼다. 무엇보다 그는 중세 최고의 수학자 중 한 명으로 2차, 3차 방정식의 기하학적, 대수학적 해법(解法)을 남긴 인물이었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종합하면 이랬다.
3년 전, 대식국을 지탱하던 명재상(宰相) 니잠 알물크가 암살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대식국은 수니파 무슬림이 정권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에 반발하여 시아파 무슬림 과격단체, ‘하사신’이 창설되었고, 수니파 주요 요인에 대한 암살을 계속 시도하게 되었다. 그렇게 걸린 대어가 바로 대식국의 재상이었던 것이다.
당시 술탄은 말리크샤 1세로 그는 재상과 동고동락하며 동으로는 중국, 서로는 비잔티움 제국과 국경을 마주할 정도로 대제국을 일구었다.
재상이 살해당한 그 해, 술탄도 병으로 사망하자, 최대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제국이 하루아침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술탄의 아들과 친척들이 각자의 지분을 요구하며 분할 통치를 선언한 것이다. 시리아가 떨어져 나갔고, 소아시아가 독립의 기치를 들었다. 또한, 제국의 젖줄인 이란을 차지하기 위해 내분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되자 대식국을 노리는 먼 서방의 나라들이 연합하여 침공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구나.”
이른바 십자군 전쟁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