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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9화 (9/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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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9  (1) 잠룡개안(潛龍開眼)  =========================================================================

연회장에 도착하니 이미 술에 잔뜩 취한 계림공은 둘에게 손수 술잔을 따랐다. 그는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잔을 높이 들며 외쳤다.

“고려의 시작은 고구려에서 연원(淵源)되었다. 이제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고, 충효(忠孝)와 인의(仁義)를 가치로 삼아 어지러워진 국가의 기틀을 바로 잡을 것이다. 내 뜻을 따르겠는가!”

만세 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잔이 허공에 올려졌다. 계림공이 사발에 가득 담긴 술을 가득 비우자 이어 벌컥벌컥 술을 들이켜는 소리가 가득했다. 준경 역시 술을 비우며 입가에 묻은 술을 손등으로 훔쳤다.

‘과연 왕이 될 사람은 다르구나.’

입신양명 정도를 꿈꾸었던 자신과 다르게 계림공은 너무나 큰 포부를 가지고 있었다. 고토 회복과 유학을 바탕으로 한 정치를 목표로 내건 것이니 유학자들의 반응은 열렬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계림공과 비슷한 연배의 두 사람이 누구랄 것도 없이 먼저 나서 외쳤다.

“파평(坡平, 파주) 윤가의 관이 집안을 대신해 전하를 충심을 따를 것을 약속하나이다.”

“해주(海州) 오가의 연총이 가문을 대행해 전하에게 충성을 받칠 것을 맹세합니다.”

준경은 처음으로 보는 광경이었다. 이름만 들었던 천하의 명문가들이 저마다 사람을 보내 계림공의 천하를 인정하고 있었다.

“경주 김가의 부식이 가문을 대신해 충성을 맹세하겠나이다.”

남양 홍가, 청주 한가, 안동 권가, 광산 김가, 경주 이가, 문화 류가, 여흥 민가, 함안 조가, 나주 박가 등이 차례로 충성을 맹세했다. 그야말로 고려라는 나라가 호족들의 연맹체임을 뼈저리게 느낀 준경이었다.

그러나 광종이 왕의 권위를 세우며 목종, 문종, 선종의 후대 왕들이 적절하게 왕권을 쥔 덕분에 권세가들도 감히 스스로 왕에 오른다거나 반란을 획책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인주 이씨도 스스로 왕이 되려 하기보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왕을 내세우려고 했던 것이니 아직 왕권은 살아 있었다.

계림공 왕희는 흡족한 표정이었다. 이제 고려가 자신의 손에 모두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왕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해야 할 일들이 산재해 있었다.

불교계와 유착이 깊었던 인주 이씨가 몰락했으나 불교계와 대놓고 등을 돌리기에는 백성에게 불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컸다. 백성뿐만 아니라 양반 중에서도 불교 신봉자들은 너무나 많았다. 당장 이 자리에도 온건한 유학자들은 불사(佛事)의 비용을 줄이되 교리의 근본 취지를 해쳐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동생을 끌어안아야 하겠지. 조언자로 곁에 둔다면 불교계도 감히 반발하지 못하겠지.’

계림공은 현실적인 인물이었다. 불교의 뿌리를 뽑는다는 것은 고려의 개국 취지를 뒤흔들 뿐만 아니라 구 신라계, 구 백제계 인사들이 자칫 반란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양날의 검 같은 개혁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문종의 사남(四男)으로 송나라에서 불교를 유학하고 돌아온 의천(義天)을 자신의 곁에 가까이 두는 일이었다.

문종의 삼남이었던 자신보다 한 살 어린 동생, 의천은 불과 11살에 개경 영통사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었다. 의천의 뜻도 있었지만, 불교에 심취해 있던 문종의 뜻도 크게 작용했다. 왕자 중에 불법을 닦는 이가 나와 왕실이 불교의 모범임을 보이고 왕실의 안녕을 빌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문종의 바람과 의천 본인의 바람이 합쳐져 매우 어린 나이부터 출가했기에 형제들과 지낸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선종 정도가 의천을 매우 아껴준 형이었다. 송나라 유학을 반대하던 어머니와 형제들을 몰래 따돌리고 송나라로 가는 배에 올랐을 때, 그를 배웅해준 것은 선종뿐이었다.

선종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송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의천은 도성 인근 흥왕사에 머물며 교장도감(敎藏都監)을 열었다. 교장도감은 의천이 송, 요, 왜 등의 타국에서 구한 불서(佛書) 수천 권을 판각(板刻)하는 작업을 전담하는 곳이었으며 목판본이 완성되자 동아시아 불교 연구의 총집대성이라 후대에 일컬어졌다.

그러나 그 이후가 순탄치 않았다. 불교 종파 간 파벌 싸움에 휘말린 것이다. 당시 불교 종파는 법상종(法相宗)의 위세가 가장 컸다. 대찰(大刹)인 개경 현화사, 김제 금산사가 주축이 되고, 세도가인 인주 이씨가 법상종의 수호자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왕실은 당연히 왕손인 의천을 밀어주려고 했기 때문에 의천을 중심으로도 세력이 형성되었다. 화엄종(華嚴宗)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분열된 불교계가 정략에 이용되는 것을 보고 의천은 모든 종파를 포용하여 원효 대사의 원융회통(圓融會通, 화쟁)을 실현하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 의도가 어쨌든 왕실 출신인 의천에게 세력이 모이는 것은 계림공으로서도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거사에 온 정성을 다했지만,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멀리 보아야 했다.

“화쟁(和諍)…….”

준경은 문득 술자리에서 흘러나온 한 단어를 되뇌었다.

잔뜩 술을 마시는 와중에도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라 온갖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불교의 처리에 대해 계림공이 한마디를 던지면 열 마디가 사방에서 흘러나왔다. 그 와중에 흘러나온 화쟁이란 단어가 친숙하게 느껴졌다.

정지상은 소년답지 않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술잔을 들었다.

“화쟁, 이상적이긴 하지. 내가 품고 있는 시감(詩感)만큼이나. 하지만, 종교의 영역에서 다루는 주제라면 몰라도 정치에 도입하려다 그 끝이 좋지 않음을 증명한 사례가 있지.”

“민나라를 말함인가?”

본래 정지상은 준경이 혼잣말한 것을 보고 참견한 것이었으나 뜻밖에도 대답은 자신의 뒤에서 흘러나오자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누구신가?”

장내에 워낙 많은 사람이 모여 있으니 인사를 나누지 못한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나타난 이는 훤칠한 키에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는 관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차림을 보아하니 종5품의 지방관이었다. 그 정도라면 부사(府使)의 벼슬이었다.

고의화도 그를 처음 보는지 눈만 껌뻑이다가 자신이 하급자였기에 손을 모아 먼저 예의를 차렸다. 준경 역시 이름을 밝히고 난 뒤야 그가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조경(趙景)이란 사람일세. 안동부의 부사로 있네.”

“함안 조가의 인물이군.”

연거푸 술을 들이켠 정지상은 혀가 반쯤 풀려 있었다. 함안 조씨는 본래부터 이 땅에 있던 가문이 아니었다. 당나라 말기의 무관이었던 조정(趙鼎)이 난을 피해 일족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오면서 시작된 가문이었다. 당시는 고려가 아직 개국하기 전으로 후백제와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던 시기였다. 조정은 고려의 개국 공신인 신숭겸, 복지겸, 배현경, 권행 등과 가까워지면서 고려의 편에 서게 되었고, 사병을 모아 직접 동경주현(東京州縣)을 공략하여 후백제를 대파하는데 일조했다. 그는 개국공신으로 추서되어 대장군(大將軍) 명예 칭호를 받았고, 그 후손들은 함안에 정착하여 인근 지역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비록 당의 후예이지만 민이 남긴 업적은 실로 지대했네. 비록 그 사료가 거의 사라져 남아 있지 않지만 알만한 자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

준경은 자매가 떠올랐다. 스스로 초민이라고 말한 그녀였다. 이름만 들어보았던 민나라를 조경이 다시 언급하니 참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백 년을 지속한 제국이 왜 사료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것입니까?”

준경은 궁금함에 물었다. 조경은 의자를 끌고 와 아예 일행에 편입하고는 빈 잔을 내밀며 말했다.

“오늘 큰 공을 세웠다고 들었네. 본관 역시 무관인지라 오늘의 전공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잘 알고 있네. 오늘에 한해서는 영웅이라 할 수 있으니 영웅의 잔을 한잔 받아 보겠네.”

오늘 준경이 베어버린 적은 채 열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같이 쟁쟁한 관직과 명성을 지닌 자들이었다. 준경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조경은 준경이 떠오르는 신성(晨星)임을 직감했다. 시조인 조정도 시류를 정확히 읽은 덕분에 신숭겸 등과 친교를 쌓았던 것이 아닌가?

준경은 쑥스러워하면서 잔을 채웠다. 칭찬이 너무 과하다고 여겼던 탓이다. 조경은 술을 단숨에 목구멍으로 털어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당이 적극적으로 대외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민의 영향이었다. 당 태종은 태평성대를 열었지만, 본질은 민의 개국 이후 백이십 년의 태평성대를 그대로 본뜬 것이었지. 그러나 태종은 당의 독자성을 위해 사서에서 그런 사실을 모두 지워버렸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민 말기, 각지의 제후와 나라들이 준동하였던 팔 년간의 신(新) 전국시대가 열리면서 민의 도성인 장안의 사고(史庫)가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것이 가장 크겠지. 소실을 염려해 천하에 네 곳의 사고를 비장(備藏)했다고 하는데 그중 세 곳은 위치가 밝혀져 마찬가지로 소실되었고, 한 곳 역시 불에 탔지만, 안에 있던 사료는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이후 당이 열리고 그 사료를 찾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찾지 못했다고 하더군. 결국, 전쟁 중에 소실된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공식적인 사료가 없어졌다고 해도 민간에 남아 있는 사료 역시 적지 않았을 것인데, 어찌 한순간에 이름만 남게 되었단 말입니까?”

“물론 식자(識者) 중에는 진실을 알고 있는 자들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유학에 밀려 유명무실해졌지만, 여전히 끈질긴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율가(律家)의 존재도 있다. 그러나 민이 멸망한 지, 벌써 오백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오백 년 동안 정권을 잡은 이들은 끊임없이 민의 이름을 지우고 싶어했지.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백성’을 위하는 나라는 그들에게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준경으로서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나라를 처음 세운 자들은 한결같이 천명을 외치고 백성을 외쳤다. 그러나 그것은 허울 좋은 포장이었다. 백성은 왕과 귀족을 위한 일개미였을 따름이다. 일개미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자신들에게 돌아올 수확을 위해서였다.

“중원에서 벌어진 팔 년의 전쟁은 연원을 찾아볼 수 없는 목불인견의 참상이 자행되었던 시기였다. 잠잠하던 북방 민족까지 일제히 준동하면서 천하 곳곳은 백성의 비분(悲憤)으로 가득 찼던 때지. 당이 천하를 얻자 요동을 지키기 위해 연한의 손을 들어줬던 고구려는 때마침 겹친 권력 다툼과 당의 날카로운 칼날을 함께 맞으며 허망하게 사직을 마감해야 했지. 김유신이라는 명장의 출현으로 백제를 멸망시키는 데 성공한 신라는 성취감에 자만하여 사치와 방탕으로 일백 년을 보냈고, 백성의 공분(公憤)을 자초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지금 고려가 신라를 대신해 이 땅에 존재하고 있었다. 준경은 짧은 시간에 마치 수백 년을 거슬러 여행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목이 타는 것을 느끼며 병째로 벌컥 들이켰다.

그런 준경이 계림공 왕희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비틀거리며 사인이 머물고 있는 탁자로 다가왔다. 사인은 황급히 술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으로 잘해주었다.”

술잔을 채워주니 먹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준경이 단숨에 들이켜니 왕희는 대소하며 준경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네 녀석의 활약이 오늘 이곳에 모인 중신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나 보더구나. 너를 달라는 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내 곰곰이 생각하여 너의 보직을 정했다.”

보직이 정해졌다는 말에 준경을 제외한 나머지 삼 인의 귀가 꿈틀거렸다. 안동부 부사인 조경이 이 자리에 합류한 것도 오래간만에 출현한 배짱 두둑한 신성과 연을 이어두기 위함이었다.

“내년에 요로 사신을 보낼 것이다. 이미 심중에 사신의 구성은 정한바, 네 녀석에게 호위를 맡길 참이다.”

요나라에게 사대하고 있는 현실에서 왕위가 바뀌면 그것을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꼭 그것뿐만이 아니더라도 고려는 요와 송에 매년 사신을 보내고 있었는데 황제의 탄신절에 맞춰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요나라의 비위를 건들지 않고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서 사신단의 인선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계림공으로서는 측근 호위인 고의화를 곁에서 떠나보낼 수 없으니 준경정도라면 사신단에 포함되기에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해서 곧 발표가 나겠지만, 너를 추밀원의 별가(別駕)로 삼아 지례사(持禮使)를 뒤따르게 할 것이니 부름이 있기 전까지 고 대정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도록 하라.”

계림공이 어깨에 두른 팔을 풀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주변에서 축하한다는 말이 쏟아졌다. 정지상만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술병을 들었다.

“여섯 명의 역신(逆臣)을 베었다는데 고작 별가라.”

“정 도령, 말조심하시게.”

고의화는 혹 남이 들을까 두려워 나직이 꾸짖었다. 정지상의 종잡을 수 없는 발언이 주군의 노여움을 일으킬까 걱정한 것이다. 정지상의 재능을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준경은 별가라는 직책을 생각해보았다.

추밀원 고관의 수행원을 별가라고 불렀다. 양반보다는 향리의 자손이 주로 맡았던 직책이었기에 정지상은 고작이라는 단어를 썼던 것이다. 양반의 대열에 끼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자리였다. 지방 향리보다 조금 나을 뿐이지만 대우는 같았다. 군인으로 따지자면 중앙군 2군 6위 소속, 마군(馬軍) 일인의 녹봉과 같았다. 기병 한 명의 녹봉과 같다는 말은 지금 고의화 휘하에서 원래 받을 수 있는 녹봉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말이었다.

고의화도 조금 의아했지만, 사정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주군은 공을 세운 자를 홀대하는 성품이 아니었다.

준경으로서는 마군보다 나은 것이 노비 두 명을 거느리고 있다는 차이뿐이었지만 별가라는 직책을 듣는 순간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예전부터 별가라는 소리를 들어왔던 것처럼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조경은 준경의 빈 술잔을 채워주며 말했다.

“동경(東京)을 가겠군. 미리 장도(壯途)를 무사기원하겠네.”

요나라의 현재 도성이 바로 동경(요양)에 있었다.

예로부터 양평(襄平)이라고 불리며 요동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던 곳이기도 하다.

“민(民) 시절에는 수한시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지. 민이 멸망한 이후 북방 민족이 발호하면서 워낙 혼란스러웠던 곳이라 지금은 자취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하지만.”

“수한시?”

준경의 가슴이 뛰고 있었다.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하여 찬물을 들이켰다. 싸한 느낌이 가슴을 진정시켰지만 그래도 가슴의 두근거림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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