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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8화 (8/257)

00008  (1) 잠룡개안(潛龍開眼)  =========================================================================

이자위 집안의 가산 목록을 얼추 확인하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한 것은 어둑어둑해지는 밤이었다. 고의화와 준경이 묵고 있는 곳은 바로 계림공의 사택이었으니 두 여인을 어찌 데려갈까 하다가 사택을 따로 받기 전이라도 데려가야 한다고 고의화가 강권하는 바람에 두 여인을 거느리고 도성을 가로질러야 했다. 잠시 이자위의 사택에 머물게 하는 것은 어떤가 하고 준경이 물었지만, 고의화가 두 여인의 눈치를 잠시 보다가 슬며시 귓속말했다.

“밤새도록 가산을 정리해야 할 무사들에게 여흥이라도 남겨주어야 했네. 그러니 그곳에 이 둘을 남겨둘 수는 없는 노릇이지.”

준경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세상에 나와보니 곡주에서 알고 있던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삶이었다. 어차피 양계로 노비가 되어 갈 이들이니 부하들에게 여흥을 허락한 것이리라.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일개 무사였다면 그 은혜를 감사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니 참으로 가슴이 답답했다.

묘족 여인, 자매는 왼손에는 이소를 붙잡고, 오른손에는 대나무 피리 모양으로 생긴 악기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가재도구를 챙기라고 하자 유일하게 챙긴 것이 바로 그 악기였다. 이소가 설명하기를 악기의 이름은 묘족의 전통 악기로 노생(蘆笙)이라고 했다.

선지교에 다다르자 아직 오전의 혈전이 채 씻겨지지 않았다. 선지교의 앞뒤로는 무사들이 불을 활활 지피며 두 눈을 부릅뜨고 지키고 있었다. 수상한 자의 왕래를 막으려는 것이다.

선지교를 반쯤 지났을까? 갑자기 묘족의 여인이 멈춰 서더니 하늘의 달을 가리키고는 자신의 악기를 가리켰다. 이소가 대신 설명했다.

“묘족은 단풍나무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어요. 보름 달빛 아래 단풍나무에서 노생으로 연주하며 춤을 추면 앞으로의 일을 무사기원 할 수 있데요.”

준경은 문득 9살의 어린 이소가 가족들과 생이별하게 되었는데도 비교적 담담하게 처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통 이맘때의 나이라면 가족과 떨어지는 것이 싫어 울고불고했어야 정상이 아니었던가?

“너는 괜찮은 것이냐?”

준경의 질문에 이소는 잠시 시무룩한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곧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삼 년 전에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말 한마디로 이소가 살아온 나날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부와 아비가 첩을 거느리며 음행에 빠진 것을 어린 이소는 어릴 적부터 보았을 것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위해주던 어머니가 병으로 죽고, 외로움을 느끼던 찰나에 만난 것이 바로 묘족 여인, 자매였던 것이다.

준경은 저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다. 이소의 손이 잠시 움직였지만 그뿐이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손을 잡아주지 않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조선 이전까지는 성관계가 비교적 자유로운 편에 속했다. 동성애도 허락되었다. 고려 7대 왕, 목종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소아성애자들도 더러 있었다.

강제로 마음먹으면 능히 욕보여도 누가 뭐라고 않겠지만, 준경은 왠지 이소를 보는 순간 그럴 마음이 사라졌다. 오히려 자신보다 불행한 아이라고 생각했던 탓이다. 가난을 지고 있었던 자신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느꼈다.

준경은 뻗었던 손을 회수하며 이소에게 말했다.

“노래를 부탁한다고 말해줘.”

고의화는 뒷짐을 쥐고 그 광경을 같잖다는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서경 가기의 아리따운 얼굴이 계속 맴돌고 있는지도 몰랐다.

은은한 달빛 아래 뜻을 알 수 없는 청아한 노랫소리가 선지교에서 울려 퍼졌다. 노랫소리가 멈추면, 노생을 불고, 춤을 추었다.

선지교의 양편을 지키고 있던 무사들마저도 넋이 나가 구경할 정도로 달빛의 여신이 강림한 듯한 춤사위였다.

“ 음력 2월 15일이 되면 묘족은 도화절(跳花節)이라는 잔치를 연다고 해요. 나무에 꽃이 만발하면 그 주위를 둘러싸고 노래를 부르고 술을 마신다고 하지요. 자매는 항상 고향을 그리워했어요. 저도 언젠가 그곳에 가 보고 싶었지요.”

이제는 물거품이 되었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말한 것이리라. 준경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할 것 같아 입안까지 올라온 ‘언젠가 함께 가자.’라는 약속을 간신히 누를 수 있었다.

환상 같은 춤사위가 끝나고 그녀가 준경에게 대례를 올렸다.

“고맙대요. 고마울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소는 지금의 상황이 북방 양계로 끌려가는 것보다 무엇이 나은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문득 이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싫어할 것 같아 참기로 했다.

계림공의 사택에 도착하기 전부터 주변이 떠들썩하도록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아마도 거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것에 대한 주연을 베풀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고의화는 두 여인을 술 취한 귄문세족에게 보여봐야 좋을 것이 없다며 준경의 방에 먼저 들를 것을 권했다. 준경 역시 그것이 좋다고 여겨 고의화가 망을 보는 사이 자신을 거소(居所)에 두 여인을 데려다 놓기로 했다.

“꺼억, 달빛에 꽃이 피니 운치로구나.”

비틀비틀 술에 취해 어둠 속에서 걸어나오던 소년 학사가 두 명의 여인을 보고 농을 걸었다. 준경이 보기에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녀석이 손을 뻗어 자매를 만지려 하자 칼집으로 손목을 들어 올렸다.

“오호, 그대는 이 꽃들의 서방이라도 되는 건가?”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자세히 보면 준수하기 이를 데 없는 용모였다. 필시 대갓집 자식일 거라는 생각에 준경은 입술을 질겅거렸다. 흠씬 패서 쫓아버릴 것인지 아니면 잘 구슬릴 것인지 내심 선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소피를 보기 위해 화장실을 찾다가 준경의 누추한 처소까지 이르렀던 모양이었다. 화장실이 가까울수록 신분이 낮은 자들이 머물렀으니 영 틀린 추측은 아니었다.

준경이 행동을 보이지 않자 소년 학사는 자매의 용모가 신기한지 다시 손을 뻗어 만져보고자 시도했다.

“어이쿠.”

이번에는 제법 강하게 손목을 칼집으로 내리친지라 소년 학사의 하얀 손목은 채찍에 맞은 것처럼 붉게 부풀어 올랐다.

“들어가.”

거처의 문을 열고 두 여인을 강제로 밀어 넣었다. 거칠게 문을 닫고 소년 학사에게 말했다.

“내가 과하게 손을 쓴 것은 미안하오. 하지만, 그대 역시 잘한 일은 아니니 이쯤에서 서로 물러납시다.”

“내가 잘하고 못했음을 그대가 판단하는가?”

손목이 시큰거리는지 손목을 계속 매만지며 소년 학사가 말했다. 뜻밖에도 소년 학사의 어투에는 악의가 없었다.

“그럼 그대가 잘했단 말이요?”

소년 학사는 아픔에 술이 좀 깼는지 흐리멍덩한 눈은 어느 정도 총기를 되찾고 있었다.

“보아하니 고 대정의 휘하인듯한데 참으로 뻣뻣하구나.”

망을 보던 고의화는 올 때가 됐는데도 준경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자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소년 학사는 그런 고의화를 잘 안다는 듯이 말했다. 고의화 역시 그를 보고 선뜻 아는 척을 했다.

“정 도령께서 이곳까지 웬일이신가? 서경에 계실 줄 알았는데.”

도령이라는 말을 들으니 아직 관직에 출사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서경의 유력가인 아버지를 따라 이곳에 온 인물인 듯싶었다.

“경주 김가와 파평 윤가가 참여했는데 우리라고 빠질까? 오늘 경주 김가의 이름난 시재(詩才)가 온다 해서 무거운 엉덩이를 이끌고 왔으나 실망만 하던 차였네.”

정 도령의 입에서 나온 두 가문의 이름은 결코 가볍게 오르내릴 수 있는 이름은 아니었다. 최소한 정 도령의 신분도 그에 따른다는 이야기였다.

“흥, 실망을 끼쳐서 미안하군.”

코웃음을 치며 고의화의 뒤에 나타난 이가 있었다. 그는 준경보다 넷에서 다섯 정도 많아 보이는 약관의 문사였다. 정 도령은 그가 나타난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말한 것이 틀림없었다. 정 도령의 얼굴에는 얄미운 미소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고의화는 그 청년과도 안면이 있는지 인사를 나누었다.

“이번에는 결심을 굳히셨습니까?”

청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님께서도 과거로 당당히 관직에 입문하셨건만 어찌 가문의 위세를 내세워 음서를 받겠는가? 두 동생에게도 본을 보이려면 마땅히 과거를 치러야겠지.”

어수선한 상황이라 과거가 계속 연기되고 있었다. 아마도 계림공 희가 선위를 받는 해에 즉위 기념으로 열릴 가능성이 큰 상태였다. 오늘은 그저 가문의 대표로 참석한 자리였다. 청년의 집안인 경주 김씨는 신라 왕가의 핏줄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가문의 세력 또한 경주에 있었지만, 권력에서 아예 발을 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가문의 인재들은 꾸준히 정계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준경이 청년의 이야기를 유추해보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편모슬하로 사형제가 자랐는데, 첫째는 과거에 합격하여 잠시 지방 관직을 거치고 있었고, 둘째가 바로 지금 보는 약관의 청년이었다.

“분하지만 시재(試才)는 내가 자네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겠네. 그러나 문재(文才)는 또 다른 법이지. 시간이 없어 문장을 겨루지 못했지만, 언제고 증명해 보이도록 하지.”

약관의 청년이 휑하니 사라지자 정 도령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술도 다 깼는데 나랑 한잔 더 마시려오? 반듯한 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대의 칼집으로 얻어맞은 것보다 술이 쉽게 깨는구려.”

준경이 보기에 정 도령이나 경주 김가의 차남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하는 말과 행동을 보니 아까의 행동은 악의가 없는 순수한 호기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 사람이 대청으로 나아가는 와중에 정 도령이 준경의 위아래를 훑으며 이름을 물었다.

“고 대정이 그대를 제법 아끼는 것 같이 보이니 이름이라도 알아두세.”

문신들은 무관들을 업신여기면서도 그들의 필요성은 인정했다. 그래서 이자의도 장군을 포섭했던 것이고, 계림공 역시 상장군을 포섭했다. 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권력은 허망하다는 것을 권력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실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이들은 가급적 연줄을 이어두려고 했다. 때에 따라서는 유망한 무재(武才)를 갖은 혜택을 조건으로 가문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준경이라 합니다.”

“준경? 어디 출신인고? 아까부터 듣자니 북쪽 어투를 쓰더군.”

“준경은 곡주 출신으로 이미 계림공께서 선택한 아이입니다. 제 휘하이니 행여 서경으로 데려갈 생각일랑은 하지 마십시오.”

성이 없다는 말에 정 도령의 눈빛이 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고의화는 정 도령의 내심을 단칼에 잘랐다. 정 도령은 입맛을 다셨다. 준경은 그런 정 도령과 아까 경주 김가 청년의 정체가 너무나 궁금했다. 그래서 슬며시 고의화에게 물었다. 정 도령에게 들으라고 하는 질문과 같았는데, 의도대로 정 도령이 질문을 낚아챘다.

“나는 서경의 정지상(鄭知常)일세. 아까 그 친구는 김부식(金富軾)이라 하지.”

준경은 그 이름을 새겨두었다. 이 젊은 인재들과 언젠가 또 마주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준경은 알고 있었을까?

원 역사에서 준경이 이자겸을 도와 난을 일으키자 탄핵을 했던 인물이 정지상이었음을. 그리고 정지상이 묘청과 함께 난을 일으키자 그 난을 평정한 인물이 김부식이었음을.

그 둘은 문학의 경쟁자이기도 했다. 정지상은 고려 시대 최고의 서정 시인으로 꼽히며 김부식조차 시에 대해서는 감히 따르지 못한다고 수긍할 정도였다. 그러나 김부식은 말년에 삼국사기를 완성하면서 고대 삼국의 역사를 집대성하는 성과를 이룬다.

조선 시대의 실학자,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은 필생의 저서,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김부식은 풍부하나 화려하지는 못하였고, 정지상은 화려하나 널리 떨치지 못하였다.

그들의 재능을 바로 보여주는 말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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