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7 (1) 잠룡개안(潛龍開眼) =========================================================================
준경은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도성의 저택이라 하여 모두가 으리으리하게 궁궐 같은 집에서 지낼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풀을 베어다 지붕을 덧댄 움막집이 대다수였던 곡주에 비하면 그래도 나았지만, 도성의 백성이 거주한다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집들이 좁고 누추했다. 서까래를 양쪽으로 잇대어 놓은 정도가 딱 백성이 거주할 수 있는 집안 크기였다. 간간이 기와가 놓이고 마당이 딸린 집이 나오면 그곳이 곧 거상이나 관헌이 사는 사택이라 했다.
“왜? 곡주와 별반 차이가 없어 실망했느냐?”
준경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은 것을 보고 고의화가 말문을 열었다. 준경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머리를 헝클었다.
“도성이라 하여 서민들까지 잘사는 것은 아니다. 이 땅에 소나 말이 흔한 것도 아니고 양과 돼지가 조금 흔한 편이지만 고관이나 거상이 아니면 일 년에 한 번 입에 대기도 어려운 형편이지. 그래도 이곳 개경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바다가 가까워 해산물은 자주 먹을 수 있지.”
처음 도성에 올라왔을 때, 고의화가 자신을 주막으로 데려가 술을 권했던 것을 준경은 떠올렸다.
먹고 살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술 먹는 것은 어찌나 좋아하는지 낮에도 주막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때 먹은 안주는 생선 말린 것과 채소가 주종이었다. 고기를 안주로 내고 싶어도 주막에서 비싼 값을 내고 고기를 사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지금 네놈이 얼마나 엄청난 공을 세운 것인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로구나. 아마도 며칠 뒤면 공신들의 이름이 주룩 열거되고 네 이름도 그 안에 있을 것이다. 최소한 종9품 대정에 어쩌면 성도 쓸 수 있도록 허락해줄지도 모른다.”
녹봉을 받고 성까지 받는다면 그것은 곡주 가난한 향리의 아들로서는 최고의 상이었다. 성을 받는다는 것은 독자적으로 가문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이고 족보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즉 양반의 반열에 오르는 것이다.
아버지가 향리이기는 했지만, 잡척이 주로 거주하는 부곡, 향, 소를 관리하는 것은 향리 중에서 가장 격에 떨어지는 편에 속했다. 군공(軍功)이 아니라면 평생 그 신분을 벗어날 길이 없었지만, 준경이 공을 세움으로써 처지가 달라졌다.
“녹봉도 받을 것이다. 쥐꼬리만큼이지만.”
고려의 관직은 정1품부터 종9품까지 한 품계에 정, 종 두 가지의 품계를 쓰는 18품제였다. 이중 국가의 정사를 주도하는 재상급은 종3품 이상으로 모두 12명에게 자격을 줬다. 관직 서열 1위는 문하시중으로 관료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이부도 겸임했다.
“녹봉이라.”
준경은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 같은 향리는 녹봉을 받지 않았다. 대신 그 지역의 땅을 일부 소작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아 그 땅에서 나는 것으로 급료를 대신했다. 중앙 관리들은 전답을 주어도 관리하기 어려우니 대신 녹봉으로 지급하는 편이었다.
“웃긴 건 재상이 녹봉을 몇십 년 모아봐야 아까 보았던 이자의 사택의 백분지 일도 못 채운다는 사실이지.”
고려의 녹봉 체계는 역대 왕조 중 가장 적은 편에 속했다. 불교와 유학의 이념을 뒤섞다 보니 청렴함이 강조되었지만 어디 현실이 그렇게 돌아가는가? 녹봉은 주니 받는 정도에 불과했다. 재상급(종2품 이상)의 녹봉이 연간 쌀 420섬, 상서(정3품)급이 250섬 정도였으니 세도가들로서는 거느리고 있는 노비에게 밥도 못 줄 양이었다.
이자위의 저택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자의에 비하면 작았지만 그래도 도성 안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호화사택이었다.
“5재(宰) 7추(樞)의 재상 자리 중 8자리가 주군을 지지하는 유학자들에게 돌아갔으니 조만간 어린 왕께서 선위(禪位)를 결심해야 할 게야.”
이자위 사택의 정문을 넘으며 고의화가 말했다.
5재(宰) 7추(樞).
12명의 재상급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들이 벌이는 재추(宰樞) 회의야말로 고려의 국운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가장 막강한 자리였다.
5재는 행정을 담당하는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과 상서성(尙書省)의 다섯 고위 관직을 일컫는 것이었고, 7추는 왕명의 출납, 궁중의 숙위(宿衛), 군기(軍機) 등을 맡아보던 추밀원(樞密院)의 고위 관직 7자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주군을 따르던 자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겠지. 과거와 음서로 출사하기 위해 줄 서 있는 인재는 많은데 자리는 한정되어 있었지. 이자의의 역모로 대거 자리가 비게 되었으니 말이다.”
과거도 과거지만 명문가의 인물이 점차 늘어나면서 그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리가 부족한 것이 당파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빈자리를 미끼로 계림공은 자신을 지지해줄 세력을 입맛대로 고를 힘을 얻게 된 것이다.
고의화는 이미 앞서 이자의의 애첩을 노비로 선택했기에 무사들과 함께 이자위의 가산을 접수하는데 앞장섰다. 준경은 가솔이 모인 마당에서 그들의 원망을 홀로 다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여인이 있었다.
“눈이 마치 고양이 같군.”
고려인과 거의 흡사했지만 반짝이는 장신구와 비단옷, 갸름한 눈매가 이질감을 느끼게 하였다. 그녀의 품 안에는 9살 정도로 보이는 귀여운 소녀가 그녀의 옷깃을 잡으며 무심한 표정으로 준경을 응시하고 있었다.
준경이 흥미를 보이자 고의화가 다가와 그녀를 가리키며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들려주었다.
“저기 표정없는 소녀가 이자위의 손녀, 이소(李昭)일세. 그리고 저 여인은 아마도 이소를 돌보는 유모일걸세. 용모와 복장을 보니 묘족(苗族)으로 보이네만.”
“묘족?”
고려 대외 수출의 창구인 벽란도(碧瀾渡)는 도성인 개경에서 불과 30리(약 12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곳에서 천하의 진귀한 물건들을 모두 볼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국제적인 무역항이었다. 그중 해상 교역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곳이 송나라였는데 서로 노예를 사고파는 것이 상설화되어 있었다. 문종 이전까지 주로 산동 등주(登州)를 통한 북부 교역이 활성화되었지만, 요나라가 송나라를 거세게 압박하면서 교역의 중심이 점차 중원의 남부로 옮겨가고 있었다. 묘족의 여인은 남부 항로를 통해 들어왔으리라고 고의화가 추측했다.
준경은 이유도 없이 괜스레 묘족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준경이 한참을 바라보자 고의화 역시 그녀를 품평하고 있었다.
“묘족의 여인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민족으로 알려졌지. 저 정도면 묘족의 여인 중에서도 최상급은 될법하구나. 사백 년 전, 민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들어서자 끝까지 자신들은 민나라 사람이라며 반항을 멈추지 않았다고 하지. 지금은 산간오지(山間奧地)에 살며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산다고는 하더라만.”
“민나라?”
지금의 송나라 전에 당나라가 있었고, 그전에 민나라가 있었다는 사실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나라였는지 아는 바는 없었다.
“으윽!”
준경은 갑자기 머리가 아파짐을 느꼈다.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고통스러워하자 고의화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의 등을 두들겼다. 극심한 고통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찰나에 사라졌다.
“이제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준경이 허리를 펴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괜찮음을 보일 때, 고의화가 입 밖에 꺼낸 민나라라는 말에 묘족의 여인이 반응했다. 자신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초민’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 싶어 고의화를 쳐다보니 고의화가 어깨를 으쓱하며 알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때 묘족의 여인 품에 안겨 있던 이자위의 손녀, 이소가 닫혔던 말문을 열었다.
“나는 초나라 사람이자 민나라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뭔가 했더니 그런 뜻이었군. 묘족이야 춘추전국시대부터 초나라의 강역이 활동 범위였지.”
고의화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준경은 ‘초민’이란 단어가 왠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스스로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묘족의 여인으로 결정한 것인가?”
그때였다. 묘족의 여인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고개를 조아리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는데 그녀의 애원을 듣던 이소가 별안간 큰 소리로 외쳤다.
“안돼요! 절대 안 돼요!”
고의화는 답답했는지 늙은 노비에게 다가가 묘족 여인과 이자위의 손녀, 이소의 관계를 조목조목 물었다. 늙은 노비는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말했다. 사정을 다 듣고 나자 어린 이소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묘족 여인의 이름은 자매(紫梅)라 했다. 자줏빛 매화라니 그 이름이 참으로 기이하여 준경을 더욱 끌어당겼다. 올해 나이는 스물로 준경보다 네 살이 많았다. 그녀는 본래 이소의 유모로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이소의 아버지, 즉, 이자위의 아들이 벽란도에서 유희를 위한 노비로 송나라 상인에게 구매한 것이라 했다. 어린 이소는 그녀의 처지가 안타까워 자신의 노비로 달라고 아버지를 보챘고, 이 년이 흐른 지금 이소와 자매는 둘도 없는 동반자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 한 명만 선택된다는 말에 묘족의 여인, 자매는 동생처럼 아끼는 이소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준경이 고의화를 쳐다보았다.
“둘을 내어달라고? 그건 아니 될 말이다. 계림공께서 약속하신 것은 한 명이란 말이다.”
계림공은 약속한 바는 반드시 지키는 성미였다. 그가 한 명이라고 말했으면 한 명인 것이다.
준경 자신도 의아했다. 왜 생면부지의 여인에게 자신이 끌리는지 그 이유가 궁금할 정도였다. 상황을 보니 묘족의 여인만을 선택했다가는 자진(自盡)이라도 할 기세였다.
“공으로 내려주실 직급도 성도 받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아니 되겠습니까?”
“직급은 그렇다 치고, 성을…… 받지 않겠다고? 그거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평민이 얼마나 성을 가지기를 소망하는지 족보를 꾸리기를 원하는지 잘 아는 고의화였다. 자신이 준경이라면 여자의 사정(事情)보다 성을 가지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더구나 성을 포기하고 이자위의 손녀를 얻는다는 것은 자칫하면 주군의 의심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을 결정하자 눈빛이 흔들리지 않는 준경을 보며 고의화는 설득할 생각을 버렸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말했다.
“남자란 때로는 남들이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것에 목숨을 걸 때가 있지. 진정으로 묻자. 어렵게 잡은 신분상승의 기회를 버릴 만큼 가치가 있는 일이냐?”
준경의 고개가 단숨에 끄덕여졌다.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하지 않겠지?”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고의화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금은 초여름으로 접어든 7월이었다. 늦은 오후의 햇볕은 따갑기 그지없었다. 그는 갑자기 땅바닥에 침을 ‘퉤’하고 거칠게 뱉었다. 걸쭉한 누런 가래를 발로 비비며 말했다.
“하긴 내 팔자에 무슨 서경 가기를 노비로 삼겠다고. 처음부터 인연이 없었던 게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혹스러워하는 준경을 뒤로하고 고의화는 무사를 시켜 두 여인을 따로 끌어내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