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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6화 (6/257)

00006  (1) 잠룡개안(潛龍開眼)  =========================================================================

혼절한 사숙태후를 뒤로 하고 계림공은 거침없이 궁내로 들어갔다. 어린 조카를 달래기 위해서였다. 그날도 왕은 위중한 환후로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그래도 돌아가는 사정은 궁인들을 통해 듣고 있었다. 이미 자신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안 어린 왕은 숙부와 타협을 결심했다.

왕을 만나고 나온 자리에서 계림공은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사숙태후와 자신의 목숨만은 살려 달라?”

사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것도 없었다. 이미 어린 왕의 앙상한 손을 붙잡고 굳게 약속을 하고 나왔다. 처음부터 병약한 어린 조카를 해칠 생각은 없었고, 사숙태후에 대해서만 양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눈물로 자신에게 애원하자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태후전을 없애고 민가로 쫓아내는 것으로 합의했다. 왕은 함께 있게 해달라고 했지만, 그것만은 허락할 수 없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궁 밖으로 나오자 변란을 듣고 달려온 대신들이 속속 모습을 보였다. 연로한 상장군은 이미 자리를 떴고, 후속 조치는 고의화에게 맡겨둔 상태였기에 그는 험상궂은 표정을 부라리며 대신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계림공이 왕을 만나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감히 우리가 누군지 알고 고작 종9품 대정이 이토록 방약무인한 게냐!”

미처 계림공이 나온 것을 모르고 고래고래 소리치던 자는 이자의의 당여(黨與, 같은 편)인 합문지후(閤門祗候) 장중(張仲)이었다. 그를 두둔하며 중추원(中樞院) 당후관(堂後官) 최충백(崔忠伯)이 나섰다. 그들 뒤로는 중앙군에 속하는 6위의 병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자의를 돕기 위해 달려왔다가 한발 늦은 자들이었다.

혼절했던 사숙태후가 정신을 차리고 그들의 호위를 받자 의기양양하여 거세게 고의화를 밀어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계림공과 소태보가 나타난 것을 보고 그들은 흠칫했지만, 뒤에 있는 군사들과 자신들을 따르는 오십 명의 대소신료를 믿었다. 그야말로 이자의의 세력이 총결집한 모양새였다.

중립을 지키는 자들은 감히 양편에 서지 못하고 구석 한쪽에서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이자의 일파 뒤에서 갑자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썰물처럼 인파가 갈라지며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흥, 드디어 나타나셨군.”

계림공 왕희는 작게 냉소했다. 모습을 드러낸 이는 소태보와 같은 재상의 반열로 이자위(李子威)라 했다. 그는 일찍이 송나라에 보내는 국서에 요나라의 연호를 적는 큰 실수를 저질러 파직되었다가 태후에게 아첨하여 다시 복귀한 인물이었다. 이자의가 사라진 인주 이씨의 세력은 차후 그를 중심으로 뭉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제거 대상이었다.

이자위는 아첨에 능하다는 평가와 달리 겉으로는 선풍도골의 선한 인상이었다. 그가 탐스러운 수염을 쓰다듬으며 계림공과 소태보에게 말을 건네려던 참에 계림공은 한발 앞서 고의화에게 명을 내렸다.

“이자위는 사로잡고, 나머지는 벤다.”

이자위의 놀란 얼굴이 선했다. 설마 사숙태후와 6위의 병력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먼저 선수를 치리라고 예상 못 했기 때문이다.

고의화와 준경은 망설이지 않았다.

합문지후 장중이 고의화에게 머리를 상납했고, 준경이 중추원 당후관 최충백의 배를 검으로 찔렀다. 6위의 병사들을 믿고 있던 오십 명의 관헌들이 삽시간에 비명을 지르며 뒤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6위가 뒤에 버티고 서 있기에 도망치기도 어려웠다. 그들은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계림공 일파를 죽이라고 명했다.

“멈춰라.”

작은 소리가 난동을 삽시간에 멈추게 하였다.

문하시랑 이자위의 목에 준경의 칼이 닿아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자의의 일파 중 이자위보다 높은 직급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어두운 미래를 그리며 전신을 떨기 시작했다.

준경은 그것을 보며 한심하게 느껴졌다.

‘참으로 나약하다. 어찌 이런 자들이 국사를 책임진 대신들이란 말인가?’

문관이 무관 위에 서자, 그것이 자신의 힘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만연했다. 이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고 있었다. 칼을 잡는 법조차 모르는 이들이 어찌 장수를 부릴 수 있단 말인가?

문종의 평화로운 치세가 너무나 길었던 것일까? 숭무 정신이 깃들었던 고려 초기의 기상은 온데간데없고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권신들이 그 자리를 꿰찬 현실에 준경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 옳았음을 자평했다.

“6위는 해산하여 본영으로 복귀한다.”

준경이 칼을 목에 닿도록 바짝 대자 이자위는 선풍도골 같은 인상을 구기며 울먹이고 있었다. 감히 자신에게 칼을 들이댈 자가 고려 천하에 있으리라고 전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6위가 물러나자 계림공은 일백 명의 무사를 시켜 오십 명에 이르는 이자의 일파를 꿇어 앉히도록 했다.

“소경(少卿) 김의영(金義英). 오랜만이군.”

오십 명 사이를 천천히 누비며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호명 당한 이들은 기겁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사정을 봐주지 않고 죽이고 있는 형국이었으니 목숨이라도 보전하려면 섣불리 객기를 부릴 수 없었다.

“이게 누군가? 평상시 궁보다 이자의 사택에 더 오래 머문다는 사천소감(司天少監) 황충현(黃忠現)이 아닌가?”

평소 이자의를 빼고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던 그도 계림공의 비꼬는 말에 감히 반박도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비대한 몸에 비 같은 육수를 흘리며 긴장을 더할 뿐이었다.

사숙태후는 화낼 힘도 없는지 두 눈을 감고 입술을 깨물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제 그만하시지요.”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계림공을 지지했던 관료들이었다. 지방의 동요를 막고 하급 관리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느라 잠시 늦었던 이들이었다.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 최사추(崔思諏)를 필두로 황중보(黃仲寶), 손관(孫冠) 등 십여 명에 이르는 관료들이 나타나자 계림공은 그제야 비웃음을 거두고 그들을 맞이했다. 최사추가 일행을 대신해 예를 올리며 말했다.

“도성의 출입을 모두 금했습니다. 이자의와 이자위의 사택을 엄중히 조사하여 재산을 왕실로 귀속시켜야 할 것입니다.”

“이들의 처리는?”

곁눈질로 오십 명의 관리를 가리키자 벼락에 맞은 것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들은 최사추에게서 자비로운 한 마디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보아하니 죽어야 할만한 사람은 다 죽은 것 같습니다. 귀양으로 끝내시지요.”

그러자 이자위를 비롯한 오십 명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역모에도 구족을 멸하지 않는 고려였지만 유일하게 조선보다 강한 형벌이 바로 귀양이었다. 조선 시대의 귀양이 단순히 유배 수준으로 삶을 최대한 보장하고 쉬는 것에 가까운 형태라면 고려의 귀양은 가는 도중에 쥐도 새도 모르는 죽음을 의미했다. 귀양지에 도착해서도 온갖 이유로 오래 머물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것은 조선에서 사약을 내리는 사형 제도가 있었던 것과 달리 아직 사약이 개발되기 전이라 멀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죽인다는 뜻으로 귀양이라는 방법이 쓰였기 때문이다.

물론 개중에는 오래 살아남는 인물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이었다.

그들은 끌려나가며 자비를 외쳤다. 그러나 계림공의 마음을 바꾸기에는 별 소용이 없는 단어였다. 계림공을 비롯해 지지하는 자들 대부분이 유학자였기 때문이다. 평소 불교의 과도한 진흥책이 국가의 재정을 좀먹고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있던 그들에게 부처님의 자비를 외쳐봐야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었다.

“수고했다. 그러나 조금 더 수고해줘야겠구나.”

“당장 이자의와 이자위의 사택을 이 잡듯이 뒤져 가산을 압류하겠나이다.”

탐관으로 유명했던 이들이니 그들의 재산을 환수하여 왕실의 재정을 건전히 만들 작정이었다. 떠나려는 고의화와 준경에게 계림공이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이자의와 이자위의 사택에 존재하는 모든 식솔을 노비로 삼겠다. 모조리 양계로 보내 남자는 죽도록 광산에서 일하도록 하고 여자는 관비(官婢)로 삼도록 하라. 그리고.”

준경은 계림공의 조치를 들으며 자못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비가 된다는 것은 가축이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잡척이 비록 평민보다 조금 대우가 떨어지지만 그래도 평민으로 쳐준다면 노비는 인간 이하로 대접받았다. 세금도 내지 않고 병역의 의무가 없는 것도 그때문이다. 가축이 세금을 내고 나라를 지킬 수는 없지 않은가?

특히나 양계로 보낸다는 것은 군인들에게 그들을 맡긴다는 말과 같았다. 여자들은 매일 같이 몸을 섞다가 지친 나머지 자살을 하거나 시름시름 앓다가 병으로 죽었다.

“둘에게는 노비를 양계로 보내기 전 하나씩 고를 수 있도록 해주마.”

“감사합니다.”

고의화는 손을 모아 예를 취했다. 준경은 그런 상황이 익숙지 않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림공은 그들을 지나쳐 소태보, 최사추와 함께 향후 일정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고의화가 준경을 이끌고 궁성을 빠져나오자 설명을 시작했다.

“명문가의 규수를 노비로 얻을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하물며 왕비가 몇이나 나왔는지 셀 수도 없는 집안이 인주 이씨다. 아무에게도 허락하지 않고 나와 너, 단둘에게 허락한 것은 그만큼 주군께서 우리의 공로를 높게 평가한 것이다. 노비를 얻어 매매한다면 사고자 하는 사람들이 제법 될 것이다. 남몰래 인주 이씨의 여인을 품어 비뚤어진 욕망을 채워보려는 자들이 적지 않게 있으니 말이다.”

마치 가축 거래처럼 노예 거래가 심심치 않게 이뤄지고 있는 세상이었다. 바다 밖 나라와 거래하는 품목 중에서도 노예는 빠지지 않고 있었다.

‘인주 이씨의 여인을 노비로 삼는다?’

준경은 당혹스러우면서도 흥분되기도 했다. 가난한 향리의 자식이 최대의 세도가인 인주 이씨의 규수를 노비로 삼을 기회가 온 것이다. 누가 그런 호사를 누려 볼 수 있었을까?

차츰 이자의의 사택이 눈앞에 들어왔다.

왕궁을 약간 작게 만든다면 바로 이런 저택이 나올까 싶었다. 이미 이자의의 몰락을 전해 들은 식솔들은 하나같이 어두운 얼굴로 체념한 얼굴이었다. 식솔을 모두 마당에 집결시키자 그 수가 일백에 이르렀다. 그중에는 주변을 환하게 밝힐 정도로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여인들도 적지 않았다.

바로 이자의의 첩들이었다.

고려는 기본적으로 일부일처를 고수했다. 그러나 세도가들이 그 원칙을 제대로 지킬 리가 없었다.

고의화는 휘파람을 불며 준경을 툭툭 쳤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느냐? 나는 정했다.”

눈길을 따라가 보니 나이는 어리나, 매우 요염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여인이었다. 고의화가 귓속말로 말했다.

“이자의가 천금을 주고 서경(평양)에서 데려왔다는 가기(歌妓)라고 하더군. 솔직히 얌전빼는 규수보다야 저런 여인이 훨씬 쓸모 있는 법이지.”

“노비가 아니라 혼례의 대상으로 삼고 계신 것입니까?”

고려의 노비 제도는 남녀 둘 중 한 명이 노비라면 호적에 올릴 수 없도록 구별하고 있었다. 같이 살 수는 있어도 자식을 호적에 올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본부인을 따로 두고 자식을 몰래 본부인 밑으로 달기도 했다. 아들을 못 낳는 집안에서는 흔히 쓰던 방법이었다.

준경 역시 찬찬히 살폈다. 그러나 눈에 들어오는 이가 딱히 없었다.

“이자위의 사택에도 들러야 하니 그곳까지 들러보고 골라도 무방하다네.”

고의화가 이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인지 준경은 처음 알았다. 서경의 가기가 그토록 탐이 났던 것일까?

마지막으로 재산을 점검하니 금과 은, 각종 비단, 도자기, 양곡 등이 쏟아져 나왔다. 하루 안에 정리될 것 같지 않아 부하들에게 맡기고 이자위의 사택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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