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같은 꿈을 꾸다 in 고려-3화 (3/257)

00003  (1) 잠룡개안(潛龍開眼)  =========================================================================

(1) 잠룡개안(潛龍開眼)

나는 가난한 향리의 아들이었다.

고려 천하에 일만 사천의 향리가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 어느 지역이냐에 따라 빈부 격차가 심하다고 했다. 저 남쪽 따뜻한 고장인, 전라도나 경상도는 사정이 그렇게 좋다 하는데 왜 우리는 그곳으로 가지 못하냐고 어린 마음에 칭얼거리기도 했다. 조금 머리가 굵어지자 옮겨 갈 수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옮겨 가고 싶어도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양반도 자유롭게 옮길 수 없는 것이 이 시대의 법이었다. 그래서 거주지는 곧 신분을 의미하기도 했다. 양인(양반과 평민)이 많은 고장은 그나마 살기 편했고, 잡척(雜尺)이 많이 사는 고장은 들어오는 것이 없으니 살기가 고달팠다.

잡척이란 천민 계층인 노비와 달리 양인의 신분이지만 부곡, 향, 소에 거주하는 특수한 직업 계층을 가리켰다. 예컨대 도척(刀尺, 백정)이라던지, 수척(水尺, 노젓는 일꾼), 광척(鑛尺, 광부) 같은 자들이었다. 사냥꾼, 도예가, 유기장, 지필묵 생산, 기와나 숯을 굽는 이들이 모두 포함되었다.

내가 사는 서해도 곡주는 바로 그런 이들 천지였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다고 하니 바꿀 도리가 없다고 했다.

태조 왕건이 지방제도를 정비하면서 그 기준을 개국 당시 협력을 했는가, 아니면 다른 이를 도와 반항했는가? 경제력이 뛰어난가? 교통의 요지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사람이라도 많이 사는가? 그런 기준으로 정했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곡주는 개국 당시 오지에 알려지지도 않았던 곳이었다. 사방이 험준하고 척박하니 유배지와 비슷한 곳이 되어버렸고, 조정은 양인이 천시하는 잡척을 이곳으로 모았다. 잡척은 세금의 부과가 자신의 생산품으로 대신할 수 있었기에 인근 광산에서 생산되는 은, 철은 그럭저럭 구경할 수 있어도 대대로 쌀이 귀해 풀죽을 먹기 일쑤였다.

나는 그런 현실이 너무나 싫었다.

가난한 향리인 아버지는 그래도 자식의 먹을 것은 제때 챙겨주셔서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이 건장하여 장군감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힘도 세서 열 살이 되었을 때는 이미 곡주에 사는 아이들의 대장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괴롭히면 먹을 것이 생겼다. 나는 악착같이 좋은 음식을 챙겨 먹었다. 아이들의 불평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 거지 같은 동네를 떠나 도성인 개경으로 가고 싶었다. 거주 이전의 자유가 전혀 없는 잡척에 비해 조금이나마 사정을 적용할 수 있는 아버지의 향리 신분이 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이 시기는 과거 제도가 있었지만, 무과(武科)가 없었다. 오직 문과(文科)만 있을 따름이다. 바다 건너 송나라란 나라의 영향이라고 했다. 옛날 옛적에는 있었다고 하는데 옛날 일을 지금 거론해봐야 무엇하겠는가? 그저 재수 없음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거란의 침입을 막은 서희, 강감찬 장군이 나중에 알고 보니 장군이 아니라 문관 출신인 것을 알고 이거 공부를 해서 문과를 치러야 하는지 딱 하루 고민도 했었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태어나서부터 책만 보면 즉시 머리가 아파지는 체질인 것을. 아버지는 진득하게 공부를 해보라고 권유해주었지만 역시 나는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주먹을 휘두르며 왈패들과 겨루는 것이 체질에 맞았다.

무과를 치르지 않는다니, 그럼 천리장성을 지키는 양계의 장수들을 비롯해 전국 수많은 장수는 어떻게 장수의 자리에 오른 것일까? 여기저기 귀동냥으로 들은 결론은 이랬다.

고려가 개국하고 공을 세운 무관들이 고위 장군직을 섭렵했고, 이들 가문이 주축이 되어 세습으로 장수자리를 물렸다. 그러나 그들의 세력이 비대화 될 것을 두려워하여 제한을 두었으니 정삼품 이상으로는 절대 승진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정삼품이면 상장군의 위치다. 정이품이 재상급으로 육부 대신 이상의 문관을 가리키는 것이니 무인들의 불만이 알게 모르게 크다고 했다.

아무튼, 장수가 되기 위해서는 개국 이후 군벌이 된 가문의 눈에 들어 사병으로 들어가 공을 세우는 것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무예가 뛰어나야 한다. 비록 남보다 용력(勇力)이 세고 싸움에도 일가견이 있었지만 체계적이지 못했다. 이대로는 사병으로 평생 살다가 전쟁터에서 죽을지도 몰랐다. 나는 그렇게 살기 싫었다.

하지만, 곡주에는 그런 체계적인 무예를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잡척과 천민이 사는 곳은 병사를 배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곡주에는 주둔하는 장수도 병사도 없었다. 단지 북계와 동계를 잇는 쉬어가는 길이 되어 오고 가는 사람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궁벽한 이곳에서 귀인을 만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나와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이었다. 서른 중반으로 보이는 귀인은 풍기는 분위기부터 걸음걸이까지 모든 것이 달랐다. 그를 따르는 문인과 장수들 역시 범상치 않았다. 덩치는 컸지만, 아직 어린아이였던 나는 그저 멀리서 조심스럽게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동경할 뿐이었다.

그러다 그들을 노리는 자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콕 집어 말하자면 귀인을 노리는 자객이었다. 그 수가 셋이나 되었다. 그들은 곡주에서 하나밖에 없는 장에 나타나 태연히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을 보이며 며칠을 머물렀지만, 장에서 매일 살다시피한 내 이목에는 어설프게만 여겨졌다.

그들이 마침내 때를 노려 장을 지나가는 귀인을 노렸다. 한 명이 칼을 빼들고 소리를 지르며 귀인의 앞을 막자 장수 하나가 귀인을 옆으로 밀치며 자객과 칼을 겨뤘다. 귀인이 밀친 자리에 있던 상인이 바로 또 한 명의 자객이었다. 그가 칼을 뽑아들며 본색을 드러내자 귀인을 지키고 있던 또 다른 장수가 재빨리 가로막았다.

“뒤에도 있습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나는 숨어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외치고는 일어나면서 집은 돌멩이를 힘껏 던졌다. 마지막 세 번째 자객은 귀인의 호위 장수가 둘뿐인 것을 미리 알고 일부러 두 명의 자객을 등장시켜 이목을 집중시킨 홀로 남게 된 귀인을 몰래 습격하려고 했던 것이다.

돌멩이를 던지고 내가 외친 소리에 놀라 귀인은 나를 쳐다보았다. 그와 처음으로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위험한 상황임에도 이미 여러 번 겪어왔다는 것인지 침착하기 그지없었다.

돌멩이가 운 좋게 자객을 맞췄지만 약간의 머뭇거림만 주었을 뿐 자객은 이미 칼을 빼고 있었다. 그때, 호위 장수들과 달리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문인 하나가 품에서 두 자루의 비수를 꺼내더니 자객의 가슴팍에 전광석화처럼 내리꽂았다. 호위 장수 두 명이 자객을 처리한 것과 거의 같은 시간이었다. 나는 그때야 이들이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소리치지 않았어도 이들은 위기를 넘겼을 것이다.

“치워라.”

고저가 없는 음성에는 권태로움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그와 시선을 마주치자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따라오너라.”

물건을 사고팔던 장터는 갑작스러운 살인에 시끌벅적했지만, 그것이 자신들과 동떨어진 세계의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금세 잠잠해졌다. 간혹 나를 아는 사람들은 혀를 차며 겁 없이 끼어든 나를 동정하고 있었다.

귀인을 따라간 곳은 그가 묶고 있는 숙소였다. 병영의 형태였지만 최소한 잡척들이 사는 움막보다는 백배 나은 곳이었다.

그가 의자에 앉았다.

“나를 지켜보고 있었더냐?”

목소리에 위엄이 있었다. 거짓말을 하고 싶어도 진실만을 말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목소리였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귀인이 다시 말했다.

“왜냐?”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제가 볼 수 없는 높은 곳은 어떤 곳인지 궁금해서였습니다.”

내 대답이 이상했던 것일까? 귀인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손가락으로 볼을 두들기며 나를 응시했다. 긴장에 오줌을 지릴 것 같은 적막감을 깬 것은 귀인의 웃음소리였다.

“하하하, 그래서 소감은 어떠하냐?”

“네?”

“볼 수 없는 높은 곳을 엿본 소감이 어떠하냔 말이다.”

그는 나의 대답을 원치 않았다. 홀로 대답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고니가 호수에 떠있으면 그 자태가 우아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가라앉지 않기 위해 물밑에서는 쉴 새 없이 다리를 움직여야 하지. 네 녀석이 본 높은 곳이란 바로 그런 곳이다.”

암살 현장을 눈앞에서 목격했으니 그의 비유가 쉽게 이해가 갔다. 지금 그는 가라앉지 않기 위해 쉴 새 없이 다리를 움직이고 있는 한 마리 우아한 고니였다.

“이곳을 벗어나고 싶으냐?”

내 소감을 듣고 내 의중을 단숨에 눈치챘던 모양이다. 내심을 쉽게 들킨 것이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나에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가 왔다고 느꼈다. 나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인은 그런 나를 보고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내 이름을 물었다.

“준경입니다.”

이 시기, 성을 가진 자들은 양반들이었다. 양인 중에서도 드물게 성을 가진 자들이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런 예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성을 붙여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고, 그것이 주는 명예도 아직은 알지 못했다.

“의화, 네가 가르쳐라. 차라리 잘되었다. 양계를 연결하는 이곳 곡주의 지리에 능한 아이 하나쯤 기르는 것도 괜찮지 않겠느냐?”

두 명의 호위 장수 중 한 명이 주먹을 가슴으로 올리며 명을 받았다. 한 명이 호리호리하게 생긴 체형의 검수라면, 의화라고 불린 이는 우락부락한 얼굴에 산만한 체구였다. 내 체구를 보고 그리 결정한 것인지도 몰랐다.

귀인이 물러나자 그 자리에는 나를 가르치기로 한 의화라는 무장만 남았다. 그는 무뚝뚝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나는 고의화라 한다. 이제부터 나를 고 대정(隊正)이라 불러라.”

북방을 지키는 양계가 특수한 목적을 지닌 상설 군인이라면, 고려의 중앙군은 2군 6위라는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2군은 왕의 금군(禁軍)이었고, 6위는 직업 군인으로, 명문 군벌들이 비용을 대고 관리했다. 그러다 보니 6위는 사병화가 심해지고 있었지만, 왕은 그들의 눈치를 보며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대정은 2군 6위 체제의 중앙군 중에서 종9품의 최하급 무관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1대(隊)는 25명의 병사를 거느렸다.

“대정이지만 실직(實職)이 아닌 허직(虛職)이다. 그래서 배치된 병사는 없다. 네가 첫 번째다.”

아마도 귀인의 호위를 쉽게 하려고 받은 직책인 것 같았다. 관직 수는 한정되어 있고, 과거제, 음서제를 통한 임관이 늘어가니 명예직으로 허직을 내리는 경우가 있었다. 근무지가 없는 이름뿐인 직책이었다. 고관 중 직책명 앞에 ‘검교(檢校)’를 붙인 자들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지금이라도 돌아가겠다면 돌려 보내주마.”

그는 내 의지를 시험하고 있었다. 그는 세 번을 연거푸 물었고, 나는 세 번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락부락한 그의 표정에 살벌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어린놈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그날 이후 나는 업화(業火)의 고통이 무엇인지 체득하였다. 고의화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 빠르고 강한 자였다. 그와 삼 개월을 같이 지냈다. 그 사이 귀인의 정체를 은근슬쩍 물었었지만, 그는 아직 멀었다며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그가 생각하는 수준에 이르러야만 알려줄 낌새였다. 나는 죽으라고 노력했다.

잠깐 시간을 내어 아버지를 찾아뵙고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아버지의 안색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내가 고위층들의 권력 다툼에 희생양으로 쓰일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사나이로 태어난 이상 저 구름 위에 무엇이 있는지 끝까지 날아볼 생각이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추락의 고통도 더욱 클 것이다. 그래도 확인하고 싶었다.

남은 것은 구름 위로 올라갈 자격을 갖추는 일뿐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