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57화 (257/260)

#257. <외전> 충성! 병장 김도준!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일어나자마자 밖으로 튀어 나가는 소대원들을 보고 있으니 웃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엊그제 전입해온 이등병은 군기가 바짝 든 탓에 불구덩이에 뛰어들라고 해도 뛰어들 기세다.

“피곤하시면 좀 더 주무시지 말입니다.”

오 상병의 양쪽 어깨에는 그가 분대장이란 걸 보여주는 견장이 보인다.

내가 며칠 전 넘겨준 것이다.

그렇다.

지금의 난 흔히들 말하는 말년 병장이다.

중대에서도 가장 서열이 높은 선임이지만, 사실상 전역을 며칠 안 남겨둔 탓에 힘이라곤 쥐뿔 없는 신세랄까.

그럼에도, 다들 날 챙겨준다고 애쓰는 걸 보면 고맙기까지 하다.

“점호는 해야지.”

“그럼 얼른 점호하시고, 들어가서 다시 주무…….”

“야이, 내가 무슨 잠충이냐? 자꾸 자라고 하게?”

“에이, 왜 그러십니까? 저 오진상입니다, 오진상! 김 병장님의 영원한 쫄따구 오진상 말입니다!”

“아이고, 그러셨어요? 오진상 상병님?”

다음 달이면 병장을 달 오진상 상병. 나하곤 꽤 달수가 나지만 그 위로는 나를 빼곤 아무도 없어서 소대 내 최고참은 그였다.

이 말은 다시 말해 내가 막내 생활을 그만큼 오래 했다는 얘기기도 하다.

하아, 그때……. 이등병 때를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땐 진짜 돌아버릴 것만 같았는데…….

다른 건 다 그렇다 치고, 틈만 나면 노래를 시켜서 목이 쉬는 줄 알았더랬다.

그렇다고 고참들이 시키는데 안부를 수도 없고.

뭐, 전입해왔을 당시 소대장부터 대대장…. 아니, 연대장까지 와서는 웃으면서 노래를 부르라고 하고 사인을 받아가던 거에 비하면 그나마 낫긴 했지만.

하기야 그것도 지나고 보니 추억이긴 하다.

이해되기도 하고.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얼마나 신기하겠냐.

밖에서 나름 잘나가던 가수가 자기 쫄따구로 들어왔는데, 같이 사진 좀 찍고 사인 좀 받는 거야 어떻게 보면 양반인 거지.

그나마 시기하지 않고 괴롭히지 않은 것만 해도 어딘가.

아무튼, 내 인생에서 그렇게 부지런한 하루하루를 보낸 건 그때가 처음인 거 같다.

밖에 있을 때도 그리 게으른 생활을 했다고 생각진 않는데, 군대에 와보니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평상시 때는 툭하면 삽 들고 나가서 진지 보수네 뭐네 해서 땅을 파야 했고, 훈련은 또 어찌나 많은지 이런저런 이유로 행군을 비롯해 사격장을 간다거나 유격훈련, 혹한기 훈련 따위를

해야 했다.

무엇보다도 시간은 어찌나 안 가던지.

무슨 말만 하면 웃으면서 ‘전역 날이 올 거 같냐?’며 농담을 던지던 고참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인상이 찌푸려진다.

진짜 그때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전역 날이 올 거 같지 않은 기분이었으니까.

오죽하면 그런 기분이 들었을까.

다시 천 년 노래방, 아니 무의식 속에 갇힌 느낌?

후우, 그래도 혼자가 아니란 게 다행이랄까.

다들 대단하다고 느꼈었더랬다.

졸지에 집을 떠나서 스무 명 남짓한 소대원들과 함께 열 평이나 될까 말까 한 내무반에서 다 큰 남자들끼리 부대끼며 지내면서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지 않는 것이.

한 달에 한 번씩 면회를 오는 희주가 아니었더라면 견디지 못했을 정도로 집이 그리운 것도 사실이었고.

아, 휴가 날도 어찌나 기다려지던지…….

물론 좋은 것도 있었다.

군가.

색다르달까.

밖에서 부르던 노래와는 사뭇 다른 노래가 내 영감을 자극하기 일쑤였다.

덕분에 처음엔 고참들 몰래 화장실에 숨어서 수첩에다가 곡을 끼적이곤 했었는데…….

그 와중에 선임들이 챙겨준 초코과자를 까먹는 건 덤이었고.

하지만, 그것도 몇 달 가지 못했다.

으으……. 군가는 이제 지긋지긋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몇 곡 되지도 않는 노래를 주구장창 부르다 보니.

진짜 너무하다 싶은 게, 열 맞춰서 밥 먹으러 갈 때도 꼬박꼬박 군가를 불러대니까.

지금도 마찬가지.

구호와 함께 연병장을 달리다가 오 상병의 외침에 따라 군가를 부르고 있다.

“전방에 힘찬 함성!”

점호 막바지에 이르러 미친놈들처럼 악다구니를 쓰며 고함을 지르는 부대원들의 모습에 픽하고 웃음이 났다.

“오늘도 형수님 오십니까?”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온다네?”

“흐흐흐. 그게 다 사랑의 힘이지 말입니다.”

오 상병의 살가운 웃음을 보다가 희주와 율이를 떠올리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

“아빠 해봐, 아빠!”

희주가 싸온 도시락은 먹는 둥 마는 둥 율이를 안고서 까꿍을 외치고 있으니, 한심스럽다는 듯 말한다.

“하아, 삼촌! 율이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애기거든? 아아! 우리 멋진 삼촌 돌려줘! 군복 입더니 진짜 이상해졌어.”

마지막 면회라고 형네 내외까지 함께 면회를 오면서 덩달아 따라온 예은이가 혀를 차고 있다.

“도련님, 이제 며칠 안 남았네요. 진짜 고생하셨어요.”

“뭘요. 남들 다하는 건데.”

희주한테 율이를 조심스럽게 넘겨주며 웃어 보이자, 이번엔 형이 한소리 한다.

“고생은 무슨! 대한민국 남자들 다 가는 건데, 뭔 유난을 그렇게 떨어?”

참네, 내가 뭐랬나?

괜히 저런다.

먼저 갔다 왔다 이거지?

하긴, 형 입장에서 보면 벌써 몇 년 전 얘기일 테니.

“아무튼,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몸조심하고.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는 거 잊지 마.”

형도 나이가 들어 그런지, 가끔 저렇게 잔소리를 늘어놓곤 한다.

“근데, 뭔 말년에 그런 걸 시킨다냐?”

그때,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묻는 형이었다.

예은이도 들은 게 있는지 눈을 빛내며 날 바라본다.

“그럼, 삼촌 TV에 나오는 거야?”

야야, 내가 이래 봬도 아티스트거든? 겨우 TV 정도로 그렇게 호들갑 떨 군번이냐고!

생각과는 달리 불쑥 튀어나온 말에는 나도 모르게 불만이 살짝 섞여 있다.

“나도 미치겠다니까. 난데없이 애국가를 부르라니…….”

한숨을 푹 내쉬는 나를 희주가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을 꼭 잡아주며 말한다.

“자기, 파이팅!”

여전히 한 미모하시는 마눌님께서 작고 앙증맞은 손으로 주먹을 쥐어 보이며 외치는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엄마가 그러는게 신기한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던 율이도 뭐라고 웅얼거리고 있었다.

그래, 딸. 아빠, 노래 열심히 할게요.

***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의 일환으로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가운데, 나는 단상 위에 올라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사회 있을 때는 그저 그런가 보다 했던 날이었는데, 막상 병장 계급장을 달고 여기 서 있으니까 기분이 좀 묘하긴 하다.

일 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이나마 군 생활을 해서인가?

나도 군인은 군인인가 보다.

뭔가 가슴이 떨리면서 꼭 무슨 콘서트라도 앞두고 있는 듯 느껴진다.

“준비되셨습니까?”

그때, 상병 한 명이 다가와 물었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날 이끌고 단상 쪽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잠시 후, 단상 위로 올라간 나는 군복차림으로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서서 마른 침을 삼켰다.

아, 이게 뭐라고 긴장되냐.

이러다가 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그게 무슨 망신이냐고.

안 그래도 내가 애국가를 부른다고 해서 이번 국군의 날 행사 방송 시청률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거라고 예상한다던데.

“애국가 제창이 있겠습니다.”

방송과 함께 전주가 흘러나왔다.

어? 뭐지?

수많은 장병들이 단상 아래에 도열해 있는 가운데 애국가를 부르기 위해 서 있던 나는 갑자기 뭉클해져 오는 감정에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내 사정 따윈 봐주지 않겠다는 듯 전주가 끝나가고 있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반주에 맞춰서 노래를 부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아니, 감겼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터다.

딱히 국뽕 체질도 아닌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나 역시 한국사람이구나…하는.

그래서 그런가?

가슴이 뛰며 목청이 높아졌다.

***

그 시각 대한민국이 들썩거렸다.

아니, 세계가 들썩거렸다고 하는 게 맞을 터였다.

방송이 실시간으로 녹화되어 인터넷에 올라가면서 댓글이 폭주 중이었다.

- 소름! 진짜 애국가 맞냐?

- 와아! 김도준, 노래 잘하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인 줄은 진짜 몰랐음.

- 나 지금 세 장째 팬티 갈아입는 중임.

- 진심 쩐다. 애국가가 명곡이라는 걸 오늘에서야 깨달았음.

- 윗분. 뭘 모르시나 본데, 주니 오빠가 부르면 학교 종이 땡땡땡도 명곡이 되거든요.

- 암요. 그렇고 말고요.

- 원래도 애국가 좋지 않나요?

- 그건 잘 모르겠고, 그냥 앞으로 애국가는 김도준이 쭈욱 부르는 걸로 했으면 좋겠네요.

- 이 기회에 청와대에 청원이라도 넣을까요?

- 오! 그거 좋네요. 앞으로 애국가는 김도준이! 그럼 국가적인 위상도 높아지고…….

- 아, 그러든지 말든지 난 모르겠고. 김도준, 대단하네! 무슨 노래를 저렇게 부르는지. 아까부터 듣고 있는데 온몸에 솜털이 곤두서는 게……. 없던 애국심도 생길 판이네요.

- 외국에서도 난리임. 이거 음원으로 출시 안 하냐고.

- 응? 그럼 저작권은 어찌 되는 거임?

- ㅋㅋㅋ 김도준, 이런 식으로 애국하나?

국가적인 행사답게 도준이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는 동안, 세상은 난리가 났지만, 그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아뇨. 그럴 계획은 없습니다.”

한참 동안 영어로 통화를 하던 조마루가 전화를 끊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딘데 그래?”

고 이사의 물음에 조마루가 어깨를 으쓱였다.

“중국이요.”

“중국?”

“예. 그쪽에서 자기네 국가 좀 불러달라네요.”

그녀의 말에 고 이사뿐만 아니라 회사 식구들 모두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러다가 전 세계 국가란 국가는 전부 부르게 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누군가 어이없다는 듯 내뱉었을 때였다.

전화가 울렸고,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집어든 조마루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는 흠칫 놀란 표정을 해 보였다.

잠시 후, 전화를 끊은 조마루.

다들 묻지는 못하고 쳐다만 보고 있을 때, 다시 한 번 고 이사가 물었다.

“왜 그래? 대체 어디서 걸려온 전화기에…….”

조마루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백악관이요.”

사무실 안이 쥐죽은 듯 고요해지며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

뒤늦게 김도준의 가치를 깨달은 국방부로선 땅을 치고 후회하는 중이었다.

어디까지나 사회에서나 잘나가는 스타일뿐, 그들이 보기엔 그저 노래 좀 하는 가수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는데 국군의 날 행사에서 보여준 김도준의 실력은 상상 그 이상이었으니까.

때문에 지금 국방부 내에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결국, 장장 세 시간에 걸친 회의 끝에 결정되었다.

녹음하기로 한 군가는 서른 곡 정도.

마지막 휴가인 말년휴가를 제외하곤 도준이 전역할 때까지 열흘 남짓한 시간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가 최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나마 도준이 아직 군인 신분이었기에 명령 한마디에 일사천리로 진행 시킬 수 있다는 게 다행이랄까.

아무튼, 전역을 앞두고 난데없이 군가를 녹음하게 된 도준이었다.

그렇게 군 생활 막판에 빡세게 작업 아닌 작업을 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도준은 좋기만 했다.

왜?

군가든 뭐든 노래는 노래였으니까.

“그동안 수고 많았네.”

녹음 작업을 모두 끝마치고 말년 휴가를 갔다가 부대 복귀한 도준의 어깨를 중대장이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도준은 함께 전역하는 동기들과 나란히 선 채로 정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중대장이 자리로 가서 서자 칼 같은 경례를 붙였다.

“추엉 서어어엉! 병장 김도준! 2029년 10월 21일. 군 전역을 명받았습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중대장의 손이 절도있게 올라가며 그의 경례를 받았다.

병장 김도준이 다시금 싱어 김도준으로 복귀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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