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55화 (255/260)

#255. <외전> 아버지의 이름으로(2)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난다.

카페에 앉아 준영이 형을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얼굴 근육이 씰룩거렸다.

아이가 생긴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구나.

그저 엊그제 희주와 나누던 대화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아이…….

내 아이다.

아니, 우리 두 사람의 아이다.

픽하고 웃고 말았다.

그때를 생각고는.

희주가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정말이지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잠시.

이내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가 세상에 대고 소리치고 싶었다.

나와 희주의 아이가 생겼다고.

내가 아버지가 된다고 온 세상에 자랑하고만 싶었다.

누군가는 부부라면 언젠가는 겪게 되는, 어쩌면 당연한 일을 가지고 유난을 떤다고 말할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

평범하지만, 전혀 평범하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일이다.

마치 내가 여태껏 숨 쉬며 살아온 것이 이때를 위해서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심지어 천 년 노래방에서 빠져나온 것도, 무의식에서 돌아와 깨어난 것도 전부 그 때문인 것만 같았다.

“여어, 오랜만이야.”

상념을 깨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시선을 들어 올리니, 준영이 형이 손을 쳐들고 웃고 있었다.

“뭐야? 뭔데 그렇게 웃어?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거야?”

형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금방이라도 목구멍을 통과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말들이 입안에서 맴돈다.

“자식이. 왜 이래? 결혼하니까 그렇게 좋아? 나참, 그럼 좀 일찍 깨어나던가. 거진 10년 동안 사람 속을 무던히도 썩이더니만…….”

자리에 앉으며 가볍게 날 타박하는 준영이 형을 불렀다.

“형.”

“응?”

자꾸만 씰룩거리는 입술을 어쩌지 못하고 결국 입가에 미소를 매단 채 말했다.

“저 아빠 된데요.”

잠시 날 빤히 쳐다보는 준영이 형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

한참 동안 웃음을 그치지 않는 형을 보며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을 때, 준영이 형이 내 어깨를 두드렸다.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은 채로.

“축하한다.”

“예. 형.”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웃자, 형이 불쑥 물었다.

“근데……. 딸이냐?”

“아, 그건 아직……. 이제 막 안 거라서.”

“그렇기도 하겠다.”

알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던 형이 고개를 내밀어 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이왕 낳을 거면 딸을 낳아.”

“예? 그게 무슨……?”

“너도 알다시피 내가 아들만 둘이잖냐? 하아, 진짜 말도 마라. 태어날 때부터 진통만 10시간씩 하면서 지 엄마를 힘들게 하더니, 세 살이 되기도 전부터 말썽을 피우기 시작해서….

사춘기 때는 진짜……. 아무튼, 딸이 좋아, 딸이.”

흠, 성차별인데 이거.

그래도 뭐라 할 마음은 없었다.

반쯤은 농담으로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뭐랄까.

준영이 형 특유의 유쾌함이랄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대꾸했다.

“전 아무래도 좋아요.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나면 좋겠어요. 아, 희주도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래, 그래. 그럼 된 거다.”

다시 한 번 내 어깨를 두들겨주는 준영이 형이었다.

그런 형의 얼굴에 기특하단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도준을 만나 밀린 수다를 떨던 노준영은 정말이자 간만에 신 나게 웃을 수 있었다.

물론 도준과 희주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건 축하할 일이지 지금처럼 계속해서 키득거릴 일은 아닐 터다.

얼마나 웃었는지 나중에는 얼굴에 경련이 나서 입이 돌아갈 뻔했을 정도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진짜 미쳤네. 아무리 여자를 몰라도 그렇지. 무슨 프러포즈를……. 나 같으면 절대 안 받아준다. 하여간 예전부터 알아봤지만, 제롬은 진짜……. 크큭. 계단에서 넘어져서 의식

불명이라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 지부장을 상대로……. 그러고도 아직 살아 있는 게 용하네!”

그걸로도 모자라 그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크크큭……크크크크큭.”

창문을 열어놓고 운전을 하고 있었기에 운전대를 잡은 채 간헐적으로 웃음을 흘리고 있는 노준영의 모습은 누가 봐도 미친놈 같았다.

오죽하면 신호에 걸려서 나란히 멈춰선 승용차의 운전자가 기겁을 하고 신호가 바뀌자마자 내뺐을까.

뭐, 그러든지 말든지 노준영은 방송국에 다다를 때까지 웃음을 그치지 못했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방송에서도 그 얘기를 꺼내고 말았다.

저녁 7시. 이젠 방송 17년 차를 맞고 있는 뮤직 스테이션.

20년도 넘은 베테랑 가수이기도 하지만, DJ로서도 관록이 제대로 붙은 그는 솜씨 좋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저 진짜 빵 터졌습니다! 크크큭……. 다시 생각해도 웃기네요. 죄송합니다, 청취자 여러분. 저만 웃고 있자니 괜히 미안해지네요. 근데 왜 웃냐고요?”

운을 뗀 노준영은 유리창 너머로 피디와 스탭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그에게서 사정을 들어 알고 있었던 그들도 피식 거리며 웃고 있다.

“제가 아는 가수…. 아니 뮤지션이라고 해야겠군요. 아, 죄송하지만 실명을 밝힐 순 없습니다. 그랬다간 저 정말 목 졸려서 죽을 거에요.”

그렇게 노준영은 도준에게서 들은 제롬의 얘기를 시작했다.

잠시 후, 뮤직 스테이션 게시판이 뒤집어졌다.

- ㅋㅋㅋㅋ 진짜 미치겠다!

- 완전 똘이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냐?

- 여자분 기겁했겠네요! 저 같으면 바로 암바 걸어서 보내버렸을 겁니다.

- 장난 아니네. 서프라이즈한 프러포즈도 좋지만, 정도라는 게 있는 건데……. 대체 누구죠? 너무 생각이 없네요.

- 준영님 얘기 들어보면, 아이돌은 아닌 거 같아요. 나이 좀 있으신 듯.

- 글쎄요.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는 몰라도 여자인 저로선 진심 화나네요. 정신 연령이 심히 의심되는 분이군요.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 그래도 기특한 면도 있지 않나요? 평생 기억에 남을 고백을 하려고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데…….

- 아이고! 고심 한번 더했다간 사람 잡겠네요. 여자분, 심장마비 안 걸린 게 다행인 듯.

벌집 쑤신 듯 들끓는 게시판. 노준영처럼 웃고 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꽤 많은 이들이 어이없어했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엔 화를 내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가 우연하게 기자 한 명이 보고는 기사화했다.

그 덕분에 온 국민이 알게 됐다.

물론 이 얘기의 주인공이 제롬이란 건 몰랐지만.

“헐! 제롬! 이거 제롬 얘기 아니에요?”

기사를 보곤 혀를 내두르며 묻는 리노를 제롬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머리통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뿐이다.

“하아, 힘내라 제롬. 그래도 반쯤은 허락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계획 잘 세워서 다시 프러포즈하면 조도 청혼을 받아들일 거야.”

레이크헬 멤버들이 안쓰러움 반 황당함 반의 눈빛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디알로가 제롬을 위로했지만…….

“헉!”

얼굴을 돌린 제롬. 콧물 눈물 할 것 없이 주룩주룩 흘리며 울먹였다.

“그럴까?”

순간 당황한 디알로가 말을 더듬었다.

“그, 그, 그렇다니까! 그…그치?”

말재주가 그리 좋지 않은 디알로였기에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청해보지만, 안타깝게도 모두들 시선을 슬쩍 돌리며 눈빛을 외면하고 있었다.

결국, 디알로는 안 돌아가는 머리를 쥐어짜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부, 분명히…. 꿀꺽! 조마루도 널 좋아하는 게 분명해. 그러니까…….”

“허엉!”

위로가 되었던 걸까?

울음을 터뜨리며 디알로에게 덤벼든 제롬이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등을 곰 같은 덩치의 디알로가 그 두껍고 큰 손으로 토닥거렸다.

***

제롬과 더불어 현재 인터넷을 휩쓸고 있는 이야기의 또 다른 당사자인 조마루 역시 기사를 비롯해 게시글들을 읽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조금도 당황해 하지 않았다.

아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또한, 제롬을 걱정하지도 않는다.

왜?

그녀가 아는 제롬은 며칠 안 지나 금세 웃는 얼굴로 나타날 사람이었으니까.

그만큼 제롬은 긍정적인 마인드의 소유자였고, 더불어 유쾌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아이처럼 순수한 면을 지닌 사람이 바로 제롬이란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이가 바로 조마루였으므로.

따라서 그녀는 그저 기다릴 심산이었다.

시간이 얼마가 걸려도 좋으니, 제롬이 조금은…적어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들 중 하나인 결혼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아이처럼 굴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녀는 믿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는 제롬이 제대로 된 프러포즈를 해올 것을.

대신 그녀는 제롬이 아닌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중이었다.

“아직도에요?”

조마루의 물음에 고현우 팀장, 아니 고 이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한숨이 조마루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안 되겠어요. 제가 들어가서…….”

연습실로 들어가려는 조마루를 고 이사가 막아섰다.

그러곤 아까완 다른 의미로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조마루가 이맛살을 찡그렸다.

“벌써 사흘째에요. 영감도 좋고, 작곡도 좋아요! 하지만, 좀 심하잖아요!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나 됐다고! 희주도 그래요! 새신랑이 집에도 안 들어오고 저러고 있으면

걱정돼서 회사로 쳐들어와야 정상 아닌가? 대체 무슨 곡을 만드는데 사흘 동안 연습실에 처박혀서…….”

그때였다.

연습실 문이 열렸다.

흠칫!

고 이사는 좀 나았지만 조마루는 화들짝 놀라서 주춤 물러서고 말았다.

열린 문틈으로 나오는 도준의 몰골이 도저히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이틀 밤을 새우면서 오직 작곡에만 매달려 있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럼에도, 눈빛은 더없이 밝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갈 것 같진 않았다.

“누나, 이거 보고 연주자들 좀 섭외해주세요.”

“어? 어, 어…알겠어.”

조마루가 도준이 내미는 USB를 받아들곤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이미 지나쳐가는 도준의 눈은 거의 반쯤은 감겨 있었다.

그렇게 도준이 떠나간 후, 조마루가 참았던 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다가 이내 쥐고 있던 USB를 보곤 후다닥 뛰어가 컴퓨터에 연결했다.

“으음…….”

뒤에서 팔짱을 끼고 모니터를 응시하던 고 이사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조마루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이틀이 넘도록 작곡에 매달려 있길래 곡이 길거나 여러 곡을 만들고 있다고 짐작은 했었지만…….

이건 상상했던 것과는 아예 궤가 달랐다.

다른 건 둘째치고, 곡만 있는 게 아니라 수십 장에 이르는 문서까지 있었던 것이다.

딸각딸각.

마우스를 움직여 빠르게 한 장 한 장 확인해가던 조마루가 급기야 마른 침을 삼켰다.

그걸로도 모자라 그녀의 입에서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이거 뭐야?”

그녀의 의문은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고 이사가 풀어주었다.

“……오페라군.”

입을 떡 벌린 채 고 이사와 시선을 주고받던 조마루가 서둘러 핸드폰을 집어들고, 고이사 역시 전화기를 들어 어디론가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조마루는…….

“아, 니콜 교수님! 이른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아직 한국이시죠? 하아! 다행이다! 예? 아, 아뇨! 도준인 잘 있어요. 다른 게 아니라…….”

별거 아니란 듯 도준이 던져놓고 간 폭탄이 사무실 안에서부터 터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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