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41화 (최종화) (241/260)

# 241

#241. 나는 싱어다(3) - 최종화

아침부터 마루 누나한테서 연락이 왔더랬다.

- 어제…….

움찔.

뭐야? 어떻게 안…….

- 예은이 학예회에 갔었다며?

휴우! 놀래라.

희주 얘기가 아니구나.

가만, 내가 왜 놀라고 있지?

무슨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인상을 팍 구기고 있을 때였다.

- 기사 나고 난리도 아니더라. 고 팀장님, 아니 고 이사님이 그러시는데, SNS에도 쫘악 깔렸다던데.

“그, 그래요?”

- 응? 너 목소리 왜 그래? 감기 걸렸어? 왜 떨고 있….

“아, 누가 떨었다고 그래요! 그냥 자고 일어나서 목이 좀 잠길 걸 가지…….”

“희주한테 프러포즈했다네요!”

언제 왔는지, 제롬이 핸드폰에 대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아놔, 이 자식이 진짜!

- 호호호. 그래? 그랬단 말이지? 그래 놓고서, 뭐? 자고 일어나서 뭐가 어째? 김도준, 많이 컸네? 누나한테 살살 거짓말이나 치고. 하아, 순진하고 말 잘 듣던 우리 도준인 어디 간 거람? 9년 동안 자고 일어나더니, 완전 다른 사람이 됐…….

“저, 전화 들어오네요. 끊어요.”

냅다 전화를 끊고선 제롬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미 녀석은 휘파람을 불며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아, 진짜! 귀신은 뭐하나 모르겠다. 저 자식…. 아니, 저 자식들 안 잡아가고.

고개를 내저으며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했다.

얼씨구. 난리도 아니다.

[학예회인가? 작은 음악회인가?]

[김도준의 조카, 김예은 양. 어머니는 씨크릿걸즈의 전 멤버 소연. 아버지는 현재 HS 엔터테인먼트 기획실장으로 밝혀져.]

[김도준, 본격적인 활동을 위한 예열인가?]

[오랜만에 올라온 공연 동영상에 팬들 환호.]

흠, 동영상이라…….

크크큭. 레이크헬이 인형 탈을 뒤집어쓰고 연주하는 거 웃기긴 하네. 근데, 이 정도를 가지고 팬들이 환호씩이나 할 리가…….

- 와! 김도준 실력 어디 안 갔네요. 단지 코러스만 넣었을 뿐인데……. 방금 팬티 갈아입고 왔음요.

- 주니 오빠아아아아아! 너무 반가워요!

- 아줌마, 여기 와서 이러시면 안 돼요.

- 아저씨는 닥치시죠. 도준이 팬에 나이가 무슨 상관?

- 흐흐흐. 그건 그렇죠. 전 세계에 김도준 팬이 몇 명인데. 나이대도 엄청 다양하니까, 말조심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만 몇 명일지 짐작도 못 함.

- 그나저나 드디어 컴백하는 걸까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 딱 보면 모르겠음? 이렇게 대외적으로 얼굴 드러낸다는 건 본격적으로 활동 시작하겠다는 얘기임.

어이구야. 탐정 저리 가라네.

근데, 눈치들은 진짜……!

“하아, 이래선 발뺌도 못하겠다.”

한숨을 내쉬곤 다시금 전화를 걸었다.

마루 누나한테.

내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서 삐쳤는지, 한참이나 신호음이 울린 뒤에야 받는다.

- 왜 전화하셨어요? 도준 씨? 끊을 땐 언제고?

“큼. 진짜 급한 전화가 와서 그랬다니까요.”

- ……이번만 믿어준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누나.”

- 지사장님.

“예. 지사장님. 바로 티켓팅 들어가야 할 거 같네요.”

- 응? 왜? 아직 준비 안 됐는데. 설마 팬들이 눈치챈 거 같아?

“아뇨. 그런 건 아닌데. 느낌이 그래요. 더 미루면 안 될 거 같아서요. 그리고…….”

- 그리고?

“사실은 어제…….”

어젯밤 니콜 교수님과 나눴던 얘기를 들려주자, 이번엔 오히려 마루 누나가 서두는 기색이다.

- 3주면 빠듯하네. 오케이. 그쪽은 나한테 맡기고. 아, 고 팀장님한테도 얘기해 놔야겠다. 무대 설치 쪽은 그쪽에서 맡기로 했으니까.

아까와 달리 마루 누나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한데, 다급하다기보단 무척이나 즐거워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오랜만에 활기찬 모습을 보니 좋다.

그래서인가?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

일주일 뒤, 니콜 교수님께서 한국에 들어오시기 하루 전날이었다.

어머니의 엄청난 추진력이 모처럼 빛을 발했다.

아무래도 ONEZ를 운영하시면서 갈고닦은 솜씨가 아닐는지.

아무튼, 갑작스럽게 잡힌 상견례 자리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워낙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야유, 회장님만 하겠습니까? 저야 그저 직원들이 짜준 스케줄대로 비행기만 타고 돌아다니는 게 다인데요.”

정겹게 얘기를 나누는 어머니와 정 회장님. 두 가족이 기분 좋게 대화를 하는 가운데 나만 가시방석이다. 희주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정 회장님이 아까부터 계속해서 날 노려보는 듯 느껴져서.

쩝, 죄송하긴 하다.

어느새 희주 나이도 서른.

나만 기다리느라 노처녀가 되어버렸으니.

요즘은 결혼을 늦게 하는 게 대세라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렇게 되어버린 터라 나로서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물론 일부러 그런 게 아닌 만큼 정 회장님도 대놓고 뭐라고 하진 않으시겠지만.

“최 회장님이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했을지.”

“안 그래도 엊그제 다녀왔답니다. 아버지께서 희주…양을 무척 예뻐하셨거든요.”

“알지요. 최 회장님께 있어서 도준 군이 어떤 손자인지. 덕분에 우리 희주도 많이 아껴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외할아버지 얘기가 나오고, 살짝 들떠 있던 자리가 잠시 숙연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에 대해 대화가 오가고 난 후, 식사와 함께 상견례를 이어갔다.

하지만, 두 집안이 서로 알고 지낸 지가 오래된 터라 특별할 것도 없는 만남이었다.

말이 상견례지, 그저 안 하면 서운하니까 밥 한 끼 함께 먹은 것 정도?

다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조금 부담스러워져서 룸을 빠져나와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흠칫.

정 회장님이 떡하니 기다리고 계셨다.

“아, 회…장님…….”

“긴말 안 하겠네. 만에 하나 희주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 날에는 내 손에 죽을 줄 알게.”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자, 정 회장님께선 내 어깨를 토닥이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셨다.

“후우!”

참았던 숨을 내쉬곤 밖으로 나오다가 다시금 굳고 말았다.

이번엔 희주 아버지가 날 가만히 바라보고 계셨던 것이다.

또 무슨 말을 들을까 싶어서 살짝 긴장이 된다.

한데, 예상과는 달리 싱긋 웃으시더니 가볍게 말씀하셨다.

“우리 딸……. 부탁하네.”

“예? 예……. 자, 잘 살겠습니다.”

“믿겠네.”

***

티켓팅이 시작되자,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티켓팅 시작 한 시간 전에야 비로소 콘서트 소식을 알렸기 때문이다.

물론 의도한 바는 아니다.

이번 공연에 필요한 준비가 그만큼 어려웠던 까닭이다.

그걸 위해서 니콜 교수님이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그 덕분에 간신히 올해를 넘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자선 콘서트.

[Song Again]

캐치프레이즈는…….

“우리 모두를 위해(For all of us)라……. 좋네.”

니콜 교수는 음미하듯 말하며 미소 지으셨다.

언제나 그렇듯 입꼬리를 광대뼈까지 끌어올리신 채로.

***

무대가 완성되고 난 후, 리허설까지 마치자 남은 시간은 불과 하루였다.

그 사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12월 30일, 31일.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치러지는 이틀간의 공연.

벌써 수만 명이 입국했고, 그중 수천 명이 공연 전날부터 주차장에 텐트를 친 채 날이 밝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공연이 시작되는 저녁때까지 그들은 그들대로 축제를 벌이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각국의 방송국에서 나온 리포터들이 실시간으로 전송 중이었고.

시간이 흘러 저녁 다섯 시가 되었을 때, 나는 형이 모는 밴을 타고 회사를 떠났다.

“굳이 형이 운전할 필요가 있어?”

“자식이. 형을 뭐로 보고. 내가 인마, 응? 널 업어 키운 사람이야, 응?”

참네. 장난하나.

겨우 두 살 차이 나는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근데 왜 가슴이 찌르르하지?

젠장!

아무래도 요즘 이상하다.

심장이 고장 난 건 아닌지.

“예, 예. 형님이 그러시다는데 이 아우가 뭐라 하겠어요. 그런 걸로 합시다.”

“어? 이 자식 봐라? 못 믿나 본데. 외할아버지께 얘기 못 들었어? 내가 인마 세 살 때, 널 딱 업고서 기어가다가 미끄러져서, 응? 여기, 여기 보이지? 턱에 흉터 진 거? 이게 그때…….”

어? 그런 일이 있었나?

놀란 것도 잠시.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동시에 떠올랐다.

외할아버지 얼굴이.

툭하면 당신께서 날 업어 키웠다고 그렇게 유세를 떠셨었는데…….

……보고 싶다.

딱 한 번만이라도.

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괜스레 가슴 한편이 먹먹해져서 시선을 돌렸다.

차창 밖으로.

그때였다.

경호원들과 경찰들의 통제하에 갈라지고 있는 팬들 사이로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아!”

내가 놀라서 소리치자, 형이 외쳐 묻는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아,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하아,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자식이, 장난하나! 너 인마…….”

형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았다.

차창 밖, 주차장 한곳에서 날 보며 웃고 있는 노인을 보느라고.

그때, 볼 수 있었다.

노인의 입술이 달싹이는 것을.

‘애썼다. 앞으로도 부탁하마.’

응? 앞에 말은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뒷말은 무슨 뜻일까?

……역시, 그런 건가?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럴게요.’

지칠 때도 있겠지만, 또 때론 게을러질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부를게요.

그러면 되겠죠?

마음속으로 말하는 사이, 차는 주차장을 가로질러 스타디움으로 들어갔다.

노인을 등진 채로.

***

대기실 안을 둘러보며 난 미소 지었다.

그러곤 한명 한명 눈을 맞췄다.

아저씨와 마루 누나, 실비아 그리고 고 팀…이사님.

형과 씨크릿걸즈.

밥 데일런.

폴 매카트넌.

베델.

멜리나.

오프라.

리노와 강나리.

준영 형과 이성원 형님.

티아라와 사이몬.

샤오린과 브레드.

브라이언.

그리고…….

니콜 교수님까지.

그들과 시선을 교환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는 가만히 그들을 보다가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게 솟구쳐, 이대로는 나도 모르게 왈칵할 것만 같아서 차마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미 밖에서는 엄청난 함성이 날 부르고 있었다.

난 나직하게, 하지만 힘주어 말했다.

“먼저 나갈게요. 이따 뵙겠습니다.”

허리를 펴는 것과 동시에 외쳤다.

“오늘 공연,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곤 돌아서 방문을 열고 나섰다.

자박자박.

발소리가 통로를 울리고…….

이윽고 무대로 통하는 계단 앞에 이르렀다.

주머니 안에서 만져지는 네 개의 코인.

이걸 또 쓰는 날이 올지, 어쩔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운명처럼 다가왔던 그날.

모든 것은 그때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다녀올게요.”

“응. 다녀와.”

마루 누나의 배웅을 받으며 무대로 뛰어 올라갔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대 정중앙에 서서 날 바라보고 있던 콜린이 미소와 함께 손짓한다.

그러자 다시금 터져 나온 함성.

스타디움을 뒤흔드는, 엄청난 환호성을 들으며 난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그러면서 보았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팬들을.

그리고 내 뒤에서 각자 맡은 악기와 함께 날 보고 있는 이들을.

레이크헬 멤버들이 보였다.

드럼에 디알로.

기타리스트 베릴.

베이스를 메고 있는 제롬.

키보드에 손을 얹고 시니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유진까지.

그들과 눈을 맞추곤 이내 시선을 돌렸다.

첼로를 껴안고 있던 조안나가 웃어 보인다.

바이올린을 턱밑에 끼고 있던 에단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아즈마엘이 저만치 서서 트럼펫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무대 뒤편 한가운데.

하늘로 솟구치듯 뻗어 올라가 있는 거대한 악기.

파이프 오르간.

지난 두 달간 저걸 구하고, 또 여기까지 운반해오느라 니콜 교수님께서 얼마나 애를 쓰셨던가.

처음에 내가 저걸 언급했을 때, 기겁하시던 교수님 얼굴이 떠올라 웃고 말았다.

어찌나 난감해하시던지.

하지만,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 기획한 공연에서 꼭 필요한 악기였으니까.

내가 아는 한, 지금 이곳에 모인 이들뿐만 아니라 방송을 통해서 공연을 보고 있을 이들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드는 데엔 저만한 악기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지금의 난 반드시 해야만 하는 말이 있었다.

그걸 지금부터 노래로 부를 터였다.

저 거대하다 못해서 웅장한 악기의 힘을 빌려서.

일시간 상념에 잠겨 있는데, 파이프 오르간 앞에 앉아 있던 크리스티나가 기척을 느꼈는지 뒤돌아보더니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그녀를 비롯해 난 모두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그런 뒤 돌아섰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으나…….

만일 계신다면, 바랄 뿐이다.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희망한다.

부디 우리의 노래가……닿기를.

빌딩숲 곳곳에서, 힘들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낙후되고 외진 땅에서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이 순간에도 힘겹게 목숨을 이어가는 이들에게도.

온 세상 구석구석 울려 퍼져, 그들 모두에게 작은 울림이라도 전해주길,

간절히 기도한다.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투다다다다다다다.

스타디움 상공에서 들려오는 헬기 로터 소리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몇 대인지 모를 헬리콥터들이 하늘에 떠서 무대를 향해 카메라를 비추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크리스티나의 연주와 함께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웅장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콘서트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 엄숙함에 모두가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나는…….

마이크를 앞으로 당겨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소리를 끌어올렸다.

- 험하고 거친 이 바위에서 당신께 간청합니다.

이번 공연을 위해 준비한 곡.

아베마리아를 편곡하고, 거기에 더해 내가 지난 9년간 구상했던 바가 더해져 완성된 노래. ‘나의 목소리가 하늘에 닿기를’이 전 세계 120여 개국 방송을 타고 20억 명이 넘는 이들의 귓가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