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
#239. 나는 싱어다(1)
집에 돌아와 보니, 형네 가족이 와 있다.
“와아! 삼초오오오오온!”
예은이가 도도도 달려와 내 품에 폭 안긴다.
그 모습을 가족들뿐만 아니라 레이크헬 멤버들도 흐뭇하게 보고 있다.
즐거워져서 나 역시 미소를 짓는데, 예은이가 종알종알 말하기 시작했다.
“삼촌 내일 학예회에 올 거지?”
“응? 학예회?”
금시초문이다.
그래서 형내외를 바라보니 대충 알만하다.
특히 형수의 난감해하는 표정을 보고 있으니…….
하여간 형도 참.
뭐, 이해는 간다.
지나간 일이지만,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던 거겠지.
우리 형제는 유년시절부터 꽤 유명인사였더랬다.
D그룹 창업주이자 회장인 외할아버지의 외손자로서.
차라리 친손자라면 좀 더 나았겠지만, 안타깝게도 외가 쪽이었고 사촌들과 같은 그늘 아래 있었어도 주변의 시선은 백팔십도 달랐다.
한마디로 무늬만 재벌가의 자식인 셈이었다.
뭐랄까.
금수저도 은수저도 아니고, 금도금이 입혀져 있달까?
이 정도가 딱 우리한테 맞는 수식어일 터다.
더 큰 문제는 외할아버지의 고집으로 어쩔 수 없이 다니게 된 사립학교. 거기에 다니는 아이들이 하나같이 금수저들이었다는 데 있었다.
덕분에 힘들었다.
어릴 때부터 줄곧 왕따 아닌 왕따를 당해야 했다.
좋지 않은 의미의 특별취급에 진절머리가 난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나야 워낙 독종이라 죽어라 공부해서 주위에서 쓸데없이 주절거리는 주둥이들을 닥치게 만들었지만, 형은 달랐다.
틀어박혔다.
자신만의 세계로.
형한테 명진이 형을 비롯해 몇 명의 친구들만 있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형은 예은이를 사립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아니, 조금도 특별하게 키우려 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예은이가 다니는 학교에선 심지어 형수가 한때 걸그룹 멤버였다는 것도 모른다.
담임만 알고 있었고, 그마저도 형수의 부탁으로 쉬쉬하는 중이었다.
형수 또한 형의 생각에 동의한 건지, 학부모들 모임에도 거의 나가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평범하게 키운다라…….
왜 그래야 하는지 난 모르겠다.
아직 아이가 없어서 그런 건가?
“힝. 친구들이 나더러 거짓말쟁이라잖아!”
응? 이건 또 무슨 소리?
“예은이가 왜 거짓말쟁이야?”
“내가 도준이 삼촌이 우리 삼촌이라고 했거든. 근데 아무도 안 믿는 거야! 씨이! 저번에 이모들이 씨크릿걸즈라고 했을 때도 그러더니!”
후우, 알만하다.
어찌 된 상황인지.
난 형을 보면서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형. 잠깐 나랑 얘기 좀 해.”
“나? 그, 그래.”
***
“도준! 이게 네가 말한……엄청난 프로젝트라고?”
무대에 올라가기 전 디알로가 기가 막힌다는 듯 묻고 있었지만, 난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아닌 거 같아? 아니면 싫어?”
“그, 그건 아니지만…….”
내가 되묻자, 벙찐 얼굴로 금붕어처럼 입만 벙긋거리는 디알로 대신 제롬이 킥킥거렸다.
“진짜 어엄청난 프로젝트지. 그렇고말고요.”
“그럼 그럼. 디알로, 저 자식이 뭘 몰라서 그렇지, 이런 무대가 진짜라고. 더구나 우리 조카기도 하잖아?”
“크큭. 그렇긴 하지.”
“좋아! 이 기회에 삼촌들이 얼마나 멋진지 제대로 보여주자고!”
제각각 한마디씩 하며 자신들의 악기를 점검하는 레이크헬 멤버들. 그들의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났다.
내 옆에 서 있던 여선생님, 예은이의 담임이라고 했던가? 선생님께서도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고 계신다.
큭큭큭. 그럴 만도 하지.
그나마 겨울이라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덥다고 또 얼마나 짜증을 부렸을지.
마루 누나가 공수해다 준 인형 탈. 털로 된 옷을 뒤집어쓰고서 한숨을 짓고 있는 디알로를 보다가 한마디 했다.
“미끄럽다고 스틱 놓치지 말고.”
“끙.”
신음을 흘린 디알로가 불뚱거리는 소리가 뒤통수에서 날아들었다.
“야이 자식아! 스틱을 쥘 수나 있어야 드럼을 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그럼 테이프로 고정시켜줄까?”
“그건 그렇다 치고! 왜 저 자식들은 인형 탈을 안 쓰는 건데!”
“역할이 다른 거에요, 역할이!”
옆에서 제롬이 키득거리며 놀리는 얘기에 피식 웃고 말았다.
***
예은은 시종일관 눈을 반짝이며 관객석 쪽을 훑고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그런 모습이었다.
“야! 김예은! 너 뭐해? 엄마 아빠 오셨나 보는 거야?”
언제 다가왔는지 친구들이 예은을 놀려대기 시작했다.
“왜? 이번에도 거짓말하려고?”
“오늘, 씨크릿걸즈 언니들도 왔어?”
자기들끼리 말하고 또 자기들끼리 깔깔 웃는 모습에 예은이 볼을 부풀렸다.
“아니거든! 오늘은 도준이 삼촌이 온댔어!”
“누구? 김도준? 호호호. 얘 진짜 웃긴다. 김도준이 니네 삼촌이면 리노가 우리 삼촌이겠다.”
“웅. 난 강나리가 더 좋은데.”
그렇게 이미 예은에게서 관심을 끈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누가 더 좋은지를 두고 한참 떠들고 있을 때였다.
짝! 짝!
“자, 이제 시작하자!”
음악 선생님이 나오셔서 손뼉을 치며 학예회의 시작을 알렸다.
그렇게 한 명씩 준비한 노래를 부르기 위해 무대로 올라가는 동안에도 예은은 관객석 쪽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우웅. 삼촌은 안 오시는 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랑 아빠 모습은 보이는데…….
도준 삼촌도 그렇고 레이크헬 삼촌들도 보이질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서러워져 눈물을 글썽거리던 예은. 선생님께서 예은이를 부른 것도 그때였다.
“자, 이제 예은이 차례. 어, 어머! 지금 우는 거니? 괜찮아?”
예은은 훌쩍거리더니 입술을 꼭 깨물었다.
어릴 때부터 도준을 많이 닮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란 예은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독해지는 건 정말 똑 닮았다고 할 정도였다.
“으응.”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고사리 같은 손을 움켜쥐곤 무대로 오르며 예은은 코를 훌쩍거렸다.
‘바쁘신 일이 있으신 걸 거야.’
그래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무대 위로 올라온 예은이 마이크 앞에 서고, 옆쪽의 피아노 앞에 반주를 해주실 선생님께서…….
‘응?’
토, 토끼?
놀이동산에서나 볼법한 모습이었다.
인형 탈을 쓴 토끼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예은이가 놀라거나 말거나.
토끼 인형을 쓴 사람은 예은이를 한차례 바라보더니, 손을 흔들어 보이곤 곧바로 연주를 시작할 뿐이었다.
반주가 나오고, 곧이어 예은이가 노래를 시작했다.
“아침 햇살이 찾아오기 전…….”
- 아침 햇살이 찾아오기 전
작은 소리로 노래하는 나무.
<나무가 부르는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학부모들을 비롯한 관객들 모두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도준의 조카이자 소연의 딸인 예은이었다.
노래를 못한다는 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더구나 예은의 목소리는 맑기만 게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 아침 햇살이 찾아오면
가슴을 펴고 햇살을 흔들며
노래하는 나무.
그때였다.
피아노 소리에 기타소리가 섞여들었다.
동시에 베이스와 드럼도.
물론 동요인 만큼 요란하진 않았다.
어디까지나 아이의 노랫소리가 묻히지 않을 정도로만 연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연주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여기 있는 사람들 중 누구 하나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
무척이나 듣기 좋다는 것.
돌아보는 예은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한 것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하나같이 동물들……. 그러니까, 호랑이라든가 여우 등의 인형을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똘똘한 예은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 삼촌들이다!’
지난 9년간 시시때때로 찾아와 자신을 예뻐해 주던 파란 눈동자의 삼촌들.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레이크헬 멤버들이 자신을 위해 연주해주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은 날씨가…….”
예은이 신바람이 나서 후렴구를 부르는 순간이었다.
- 오늘은 날씨가 좋아요.
- ∼ 좋아요!
- ∼ 좋아요!
무대 양편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러스였다.
놀란 예은이 시선을 돌리자, 콜린 삼촌과 도준 삼촌이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손짓으로 멈추지 말고 부르라고 한다.
예은은 활짝 웃으며 노래를 이어나갔다.
- 햇살이 눈 부셔요.
우리 집 나무가 노래 부르면…….
바로 그때였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 이웃집 나무가 대답을 하고.
- 이웃집 나무가 대답을 하고.
- 이웃집 나무가 대답을 하고.
뒤쪽에서 들려오는 코러스.
그것도 화음을 맞춘 노랫소리는 말 그대로 아마추어 솜씨가 아니었다.
화들짝 놀란 예은이 돌아보자, 그곳에는…….
‘이모들…….’
예은은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그러자, 주연 이모가 얼른 다가와 예은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훑으며 노래를 이어나갔다.
“탐스런 나뭇잎 마안큼…….”
뒤늦게 예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따라 불렀다.
- 가득 열린 참새들.
열린 참새만큼 고운 노래.
들려주는 나무.
예은은 삼촌들과 이모들에게 둘러싸인 채 노래했다.
어느새 강당 안에는 <나무가 부르는 노래>의 클라이맥스 부분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 하늘에 그려지는 오선지에 햇살 한 줌.
내 노래 한 가락.
- ∼ 한 가라아아악.
- ∼ ∼ 한 가라아아악.
- ∼ ∼ ∼ 한 가라아아아아아아아아악!
***
공연, 아니 학예회가 끝난 뒤 온 가족이 무대에 모여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좀 붙어봐요! 프레임에 다 안 들어가잖아요!”
언제나 그렇듯 제롬 삼촌의 구박에 디알로 삼촌이 투덜거렸고, 그 모습에 레이크헬 삼촌들과 씨크릿걸즈 이모들, 그리고 희주 숙모가 웃음을 터뜨렸다.
예은은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와 아빠 그리고 삼촌과 이모들에게 둘러싸인 채 자랑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양옆에는 예은의 손을 꼭 붙잡은 도준 삼촌과 희주 숙모가 있었다.
그 모습을 친구들과 학부모들이 넋 나간 얼굴로 쳐다보는 중이었고.
그러다가 아이들 중 하나가 중얼거리는 게 들려왔다.
“지, 진짜였네!”
“하아, 이럴 줄 알았으면 예은이한테 잘해줄걸.”
“칫. 누가 진짠 줄 알았나?”
그때, 뒤쪽에서 어설픈 한국어가 들려왔다.
“여긴가? 컥! 벌써 끝났나 보네.”
“하아, 그러니까 내가 좀 더 서두르자고 했잖아!”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온 거뿐인데….”
“내가 너 때문에 진짜! 그냥 택시 타자니까!”
두 사람의 남녀가 티격태격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헉! 리, 리노!”
“강나리…언니잖아!”
아이들이 그들 두 사람을 발견하곤 놀라서 외치자, 리노와 강나리가 표정이 급변해서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럴 만도 했다.
현재 빌보드 차트를 비롯해 세계 90개국에서 음원 차트를 휩쓸고 있는 두 사람이었으니까.
평소처럼 이미지 관리를 하는 건 너무 당연…….
“어! 저기!”
“아아! 어떡해! 우리 예은이, 그새 더 귀여워졌어! 아아앙! 예은아아아아아!”
그딴 건 한순간에 무너질 뿐이었다.
귀여운 조카 앞에서는.
“리노 삼촌! 나리 이모오오오오!”
예은도 두 사람을 발견했는지 더없이 활짝 웃으며 팔을 벌렸다.
그러곤 강나리 품에 안겼고, 그런 예은을 강나리는 볼을 부비며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리노 역시 끊임없이 예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고.
그런 그들을 예은의 친구들이 놀람 반 부러움 반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삼촌과 이모들에게서 떨어져나온 예은이 갑자기 무대 끝을 향해 도도도 달려가더니, 폴짝 뛰어내렸다.
“예은아!”
깜짝 놀란 소연이 손까지 뻗치며 외쳤지만, 예은은 돌아보지도 않고 친구들한테 달려갔다.
그러곤…….
“우리 같이 사진 찍자!”
아이들의 눈이 한차례 커졌다가 이내 얼굴에 웃음이 생겨나더니 번져나갔다.
그 모습이 도준의 눈에는…….
햇살처럼 느껴졌다.
“봐요. 엄청난 프로젝트잖아요?”
제롬의 한마디에 디알로는 픽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머지 멤버들도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긴 하네.”
“그치?”
“음, 근데……. 이게 끝?”
“설마?”
“이제 시작일 걸? 아마도.”
“하긴……. 그게 아니면 밥 데일런이랑 베델이 한국으로 온다고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아졌다.
하지만, 당사자인 도준은 그저 사랑스러운 조카만 바라본 채 웃고 있을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