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38화 (238/260)

# 238

#238. 달라지지 않은 것(5)

서서히 커져만 가는 눈.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내 눈빛은 쓸쓸해지고, 더없이 서글픈 음성이 흘러나왔다.

검은 천으로 된 히잡을 쓰고 있던 여인, 히얌의 입에서.

뭔가 묻는 듯한데, 안타깝게도 알아듣질 못하겠다.

하아. 무슨 생각인 거냐, 난.

말도 통하지 않는데, 무작정 찾아오다니.

언어를 모르면 통역사라도 데려왔어야 하거늘…….

핸드폰으로 통역기라도 돌려볼까 하다가 관뒀다.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정확한지도 의심스럽다.

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엔 보다 확실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난 지폐 한 장을 꺼내 나씨르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얼마냐고?

모른다.

1달러일 수도 있고, 5달러일 수도 있다. 어쩌면 백 달러짜리 지폐인지도 모르고.

그래도 최소한 1달러 이상일 거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씨르도 내 의도를 알아챘는지, 곧바로 통역해온다.

“우마르……. 아줌마 아들의 친구냐고 묻는데요?”

친구라…….

안타깝지만, 그와 난 친구라곤 할 수 없지.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달까.

난 씁쓸하게 대답했다.

“아니…라고 말해주겠니?”

음성에서 느껴진 걸까?

어딘지 모르게 싸늘하고 무겁다는 걸.

나씨르는 움찔하더니 이내 시선을 돌려 히얌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나직한 음성으로 얘기하고 있었다.

파르르.

얘기를 들은 히얌의 속눈썹이 떨리는가 싶더니 되묻는다.

“그럼 누구냐고……. 혹시 원한이 있느냐고 묻네요.”

날 바라보는 그녀를 마주한 채 나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눈 건 아니다.

기껏해야 20분? 어쩌면 그보다 짧을지도 모른다.

한순간 한순간이 무척 길게만 느껴졌기에.

물론 내 안에 휘몰아치는 감정을 추스르고 나서부터였다.

아무튼, 그 시간 동안 난 나씨르를 통해 히얌과 대화했다.

초반엔 히얌이 주로 묻고, 내가 대답했다.

9년 전, 테러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우마르는 현장에서 총살당했다. 즉사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테러리스트는 그만 있었던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굳이 우마르의 어머니를 찾아온 것은…….

그의 품에서 발견된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히얌이 젊은 시절 아이였던 우마르와 함께 찍은 사진.

거기엔 늠름하고 믿음직스러운 남자도 있었다.

우마르의 아버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진을 입수하게 된 경위는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테러가 일어나던 날의 일들을 알려달라던 내게 브라이언은 망설이긴 했지만, 메일을 통해 알려왔다.

어떻게 입수했는지는 모르지만, 브라이언은 꽤 상세한 자료를 보내온 것이다.

그중에는 현장 사진도 몇 장 첨부되어 있었는데, 증거품으로 늘어놓은 것들 중 섞여 있던 게 바로 이 사진이다.

그걸 얻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두 달.

따지고보면 그렇게까지 기다려가며 얻을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굳이 왜 그런 거냐고 묻는다면 나로선 딱히 대답할 게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사진이 테러리스트들의 유품 중에서 유일하게 끊기지 않고 남아 있는 끈이란 것.

어째서 그들이 총을 들었는지, 또 머나먼 이국땅에서 죽음을 불사하고 테러를 감행했는지, 그 의문을 풀어줄 유일한 단서였으니까.

그리고 그걸 알지 못하면 난 아마도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미쳐 날뛸는지도 모른다.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거다.

그래서 왔다.

이곳에.

그리고 지금.

“우마르가 남긴 겁입니다.”

내가 넘겨준 사진을 받아든 히얌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인다.

그러곤 곧바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한참을 울던 히얌이 눈물을 그치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나 역시 마주 허리를 숙였고.

“고맙대요.”

나씨르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망설이다가 물었다.

오는 내내, 아니 무의식 안에 갇혀 있는 동안 줄곧 궁금했던 것들을.

히얌은 쓸쓸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가끔 과거를 회상하기도 하는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분명 틀렸다.

적어도 행동은 그렇다.

사상이 어떻고, 이념이 어떻고…….

그런 건 상관없다.

신념이 어떠하든 사람이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

……라고 하는 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일 뿐이었다.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니, 그들은 그저 다를 따름이었다.

나, 아니 우리와 생각하는 게 달랐고, 믿고 따르는 게 다른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오히려 가벼웠고,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야말로 무거웠다.

무엇보다도 나는 깨달았다.

내 분노 또한 정당하다는 것을.

테러리스트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듯, 나 역시 더 이상은 분노를 참지 않아도 된다는 걸 확인했다.

그래서 이젠 분노할 수 있다.

화낼 수 있다.

원망할 수 있다.

비로소 울 수 있었다.

다르다는 걸 인정하지만,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심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고맙다.”

나씨르와 헤어지며 말했고, 녀석은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렇게 시리아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다.

***

사흘 만에 돌아온 한국에서 날 기다리고 있던 이들은 가족들과 희주 만이 아니었다.

거실 한가운데서 녀석들이 날 빙 둘러싼 채 따져 묻는 중이었다.

“도준! 괜찮은 거야?”

“아우씨! 서프라이즈는 우리가 했네!”

“몸은? 설마 어디 아픈 건 아니지?”

“하아, 심장이 떨어지는지 알았다고.”

“간 일은 잘된 거냐?”

레이크헬 멤버들이 걱정스레 물어오는 얘기를 들으며 난 혀를 내둘렀다.

아니, 이 자식들은 나이를 어디로 먹은 거야?

어떻게 변하는 게 없어?

이제 곧 마흔이 될 나이들인데, 아직도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난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녀석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불쑥 물었다.

“너희는 결혼 안 하냐?”

“어? 결혼?”

“귀찮게 뭐하러.”

“뭐, 연애라면 원 없이 하고 있는데?”

“브라이언 꼴 나면 어떡하려고.”

“디알로 이 자식! 거기서 왜 내 이름이 나오는 건데!”

“그야, 브라이언은 이혼남이고 소수성애자이기도 하니까…….”

쯧, 디알로가 제 무덤을 제대로 팠네.

브라이언한테서 가족 얘기는 일종의 트리거인데…….

적어도 반나절은 시달리겠군.

고개를 내저었으며 물었다.

“그래서 왜 왔는데?”

“어?”

제롬이 눈알을 굴리다가 콜린을 바라본다.

“너 솔직히 말해.”

콜린이 성큼 다가서며 압박해온다.

“뭔가 있지?”

“뭐가?”

“뭐긴 뭐야! 뭔가 엄청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거 아냐?”

피식.

난 웃으며 얼버무렸다.

“글쎄다. 난 지금 니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홱 하고 돌아서 방으로 들어가버리자, 닭 쫓던 개꼴이 된 녀석들이 뒤늦게 악다구니를 쓰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다.

“무슨 얘기들을 하는데 그래? 심각한 거 아니면, 이거 먹으면서 해.”

어머니께서 뭔가 먹거리를 가져다주셨는지, 이내 탄성과 함께 거실이 떠들썩해졌다.

***

아저씨께 만나자고 연락이 온 것은 다음날이었다.

걱정스러웠던 걸까.

아니면 의심스러웠던 걸까.

어느 쪽이 되었든 따라나오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레이크헬 멤버들을 브라이언에게 어떻게든 떠넘기곤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가는지는 묻지 않는 거냐?”

아저씨가 모는 승용차에 타서 한참을 가는데, 불쑥 물어오신다.

“차 좋네요. 이거 전기차인가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날 보시더니 한차례 고개를 내저으셨다.

그러곤 하신다는 말씀이,

“신파는 질색이긴 하다만, 가는 동안 옛날 얘기나 좀 해볼까.”

“글쎄요. 전 신파도 좋아하는데요.”

“애늙은이 같으……. 흠, 이젠 이런 말 하는 것도 우습군. 하아,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냐?”

“그러게요. 한숨 푹 자고 일어났더니 벌써 서른이 눈앞이네요. 아우, 생각해보니까 열 받네.”

“훗, 나만 하겠냐? 너 기다리다가 청춘 다 갔다.”

“지금 웃으면 되는 건가요?”

“자식하곤…….”

혀를 차시며 웃는 것도 여기까지였다.

어느샌가 차는 자유로를 달리고 있었다.

“내가 딱 네 나이 정도 되었을 때다.”

그렇게 시작된 얘기는 서글펐다.

그래. 신파였다.

알 것도 같달까.

왜 아저씨가 신파라면 질색하시는지.

옛 생각이라도 하시는 걸까.

뜨문 뜨문 얘기하시는 아저씨셨다.

그 얘기를 듣는 동안 차는 CH 공원 주차장에 진입하고 있었다.

“그럼 동생분이……?”

“그래. 여기 있지.”

함께 차에서 내려 추모관까지 이를 데까지 둘 모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차 안에서 다 했으니까.

흔한 얘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특별하다고 하기엔 아저씨 동생분은 너무 이른 나이에 죽었고.

그런 얘기다.

아저씬 어릴 때부터 음악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지니셨다고 한다.

덕분에 공부하곤 담쌓고 살았지만, 대신 일찌감치 음악에 눈을 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이태원 클럽들을 중심으로 이름께나 떨치셨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저씨가 지닌 재능은 스무 살이 되었을 즈음 정점을 찍고 한계에 부딪혔단다.

그래서 좌절하고 술에 찌들어 살다가 군입대.

한데, 제대하고 보니까 자신의 동생이…….

“천재였지.”

아저씨의 말이니, 아무리 혈육이라도 사실일 테다.

“제대로 키워보고 싶었다. 나처럼 실패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으니까.”

추모관 2층. 한곳에 안치되어 있는 아저씨 동생분의 봉안함을 보면서 나는 아저씨의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게 녀석을 궁지에 몰아넣는다는 걸 깨달았을 땐 너무 늦고 말았지. 자꾸만 엇나가는 이유가 녀석의 자만심에서 비롯됐다고만 생각했으니까.”

나이 스물둘. 한창 꽃필 나이였다.

하지만, 아저씨 동생은 천재적인 재능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앨범 취입을 목전에 둔 채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다.

음주운전이었다.

그렇게 아저씨의 꿈은 허망하게 흩어졌고, 그 후로 오랫동안 이쪽 바닥으론 얼씬도 안 하고 사셨다고. 그저 실용음악학원이나 조용히 하시면서.

그러다가 날 만나셨다는 건데…….

속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며 물러났다.

그때였다.

“아직도 묻지 않는 거냐?”

“…….”

“여길 왜 데려왔는지.”

“인사시켜주려던 거 아니었어요?”

아저씬 날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없이 웃으셨다.

그러곤 말씀하셨다.

“더이상 애쓸 것 없다.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건, 앞으로 무얼 하건, 넌 내 동생이다. 그러니……. 부담스러우면 더는 노래……같은 거 하지 않아도 된다. 후우, 너나 나나 이미 벌만큼 벌었잖냐? 이대로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고 살아도…….”

“저어, 아저씨.”

“……?”

“중간에 말 끊어서 죄송한데요.”

아저씨께 말씀드렸다.

확실하게.

내가 가진 마음을.

“저 노래할 건데요.”

“……!”

“그것도 늙어서 벽에 똥칠할 때까지요.”

더럽게 재미없는 농담을 던지고선 픽하고 웃자, 그제야 아저씨의 굳은 얼굴이 펴진다.

잠시 어떠한 대화도 없이 서로 쳐다보다가 추모관을 나왔을 때, 따사로운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겨울로 접어드는 때였다.

내 나이 서른이 코앞이었고.

“그래서 언제부터 할 건데?”

차에 타면서 묻는 아저씨께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미 시작했는데요?”

황당해하시는 아저씨 눈을 피해 차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는 내 모습이 유리에 비친다.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더없이 좋았다.

그래, 이렇게 가자.

털어버릴 건 털어버리고, 이제껏 못 부른 만큼 원 없이 부르는 거다.

왜냐면 난…….

가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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