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37화 (237/260)

# 237

#237. 달라지지 않은 것(4)

인천공항 입국장에서 다섯 명의 남자들이 선글라스 하나씩을 쓰고 서 있었다.

뒤쪽에서 브라이언이 통화하는 동안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디알로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이제 서른을 훌쩍 넘어 마흔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 제롬이었다.

“암요. 그렇고 말고요.”

“응? 너 지금 또 한국말 썼지?”

디알로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인상을 쓰자, 제롬이 손가락을 살살 흔들며 얘기한다.

“그러게 한국말 배우라고 했잖아요? 뭐, 디알로는 영영 모르겠지만, 한국말은 무척이나 흥미롭다고요. 이를테면 우리가 예스라고 말하는 걸, 한국인들은 엄청 다양하고 복잡하게……. 아, 그래서 디알로가……. 제가 잘못했네요. 앞으로 디알로 앞에선 한국어를 쓰지 않을게요.”

“응? 뭐지? 묘하게 기분 나쁜…….”

제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콧잔등을 일그러뜨리던 디알로가 뭔가 얘기하려고 했지만, 유진이 끼어들어 그의 말을 가로채버렸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자는 거지? 이렇게 몰래 와서 서프라이즈! 하겠다는 건 알겠는데, 도준이 화를 내면 어쩔 셈이야?”

“하아. 유진. 아직도 도준을 몰라요? 도준은 이런 일로 절대 화내지 않는다고요. 오히려 좋아할 걸요? 자신이 말해주지 않아도 척척 알아듣는 친구들. 얼마나 좋아요?”

“좋아, 네 말대로라고 치자. 근데, 진짜 도준이 우리 몰래 뭔가 계획하고 있다는 건 확실해?”

“제 동물적인 감각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요! 분명해요. 지난번에 통화할 때도 그렇고……. 매번 물을 때마다 얼버무리는 게 수상하다고요. 흐흐흐. 틀림없이 뭔가 있다니까요!”

제롬의 얘기가 그럴듯하다는 건 다들 인정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정확한 사실과 냉철한 분석만을 믿는 타입인 브라이언마저도.

“확실히 이상하긴 하지. 도준이 깨어난 지 벌써 석 달인 데, 음악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게.”

“그때 일로 질려버린 거 아닐까? 겁을 먹었다거나.”

“누가요? 김도준이요? 나참, 그 자식이 그럴 자식이에요?”

“하긴, 그럴 놈이 아니지.”

“음악 빼면 시체나 다름없는 놈이니까.”

“그런 거 치곤 쌩쌩하잖아.”

“거봐요. 수상하잖아요.”

전화를 끊고서 뒤늦게 레이크헬 앞으로 다가온 브라이언이 어느새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긴 한데 말이지.”

그는 레이크헬 멤버들을 한 명 한 명 쳐다보다가 마지막으로 제롬에게서 시선을 멈췄다.

흠칫.

알 수 없는 위기감에 제롬이 뜨끔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브라이언이 피식 웃는다.

“동물적인 감각이라……. 제롬, 이번엔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짚은 거 같다.”

“응? 그게 무슨 말…….”

의아해하는 제롬의 물음에 브라이언이 픽하고 웃는다.

“도준, 여기 없단다.”

“에?”

“여기라면……. 공항?”

생각지도 못했는지, 제롬과 디알로가 소리쳐 물어오자 브라이언이 고개를 내젓는다.

“그럼, 설마…….”

그동안 지켜만 보고 있던 콜린이 낭패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자, 브라이언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맞아. 한국에 없대. 젠장! 그놈의 동물적인 감각 때문에 헛걸음했군.”

“서프라이즈는 개뿔이!”

“애초에 저 자식을 믿는 게 아니었어.”

“그래도 제롬이 한국통인 건 맞잖아.”

“그럼 뭐해? 가장 중요한 도준이 없는데.”

콜린을 위시해 유진과 디알로가 돌아가며 제롬을 구박하고 있었지만, 당사자인 제롬은 멍한 표정만 짓고 있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아우, 이럴 리가 없는데……. 내가 분명 확인했는데……. 어제만 해도 서울에 있는 걸 확인했다니까요.”

그때 베릴이 물었다.

물론 제롬에게 물은 건 아니다.

그의 시선은 이미 제롬을 떠나서 브라이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어디 갔는데?”

“글쎄. 지금쯤 비행기 안이 아닐까 싶은데?”

“비행기?”

“응. 오늘 아침 떠났대. 시리아로.”

정말 느닷없이 튀어나온 지명에 모두의 눈이 치켜 떠졌다.

특히 제롬은…….

“시리아요?”

놀랐는지 목청껏 소리치는 제롬의 심정을 다들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같았으니까.

그들 모두.

길이 엇갈린 거야, 그럴 수 있다지만.

아니, 왜…….

하필이면 도준이 향한 곳이 시리아인지, 9년 전의 일들이 떠올라 어두운 표정이 되고 마는 레이크헬이었다.

***

차 문을 열고 나오며 남자가 말했다.

터번을 쓰고 햇볕에 그을려 검게 탄 얼굴이었지만 틀림없는 한국 사람이다.

“진짜 괜찮겠수?”

난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치안상태도 그렇고, 이젠 제법 안정되었다면서요?”

“뭐 그렇긴 한데……. 예전에 비해 그렇다는 거지. 여기 사람들, 이방인에 대한 경계심이 꽤 높은데…….”

머리를 긁적이던 남자가 툭하고 내뱉는다.

말투는 거친데, 정은 많은 모양이다.

“조금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연락하쇼, 아까 적어둔 번호로. 그럴 여유조차 없다 생각되면 무조건 동쪽으로 달려요. 오면서도 말했지만, 거기에 한국대사관 있다는 거 잊지 말고.”

“그렇게 하죠.”

잠시 날 바라보던 남자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내젓고는 차 문을 열었다.

하지만, 곧바로 오르지 않고, 낡은 지프 트럭에 타기 전 그가 말했다.

어지간히도 내가 못 미더운 모양…….

“아, 말한다는 걸 깜빡했는데……. 나도 당신 팬이오.”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남자는 웃어 보였다.

“부디 즐거운 여행되기를.”

덜컥!

제법 큰 덩치에 비해 빠르게 차에 올라 문을 닫고는 열려 있던 창문 사이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곤 거친 배기음과 함께 차가 출발했다.

자욱한 먼지 사이로 사라지는 차를 바라보다가 나는 돌아섰다.

드디어 왔네.

이국적인 풍광으로 가득한 알레포 시내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생각보다 외국인들이 많이 보이네.”

정확히는 백인들. 관광객인지 아니면 사업차 왔는지는 몰라도 시내 곳곳에서 백인들이 눈에 띄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는 모를 동양인들도 드문드문 보였고.

“가볼까.”

낯선 풍경 속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무슨 일이든, 시작과 끝이 있는 법이다.

그렇다.

9년 전의 그 일은 분명 이곳과는 상관없을지 모른다.

IS의 테러가 일어난 곳은 이곳이 아니었고, 더더욱이 여기 사람들로 인해 벌어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이곳, 시리아는 그때 일의 시발점이다.

그러니 매조지도 여기서 져야 한다.

그렇게 결심했었다.

무의식 안에서.

언젠가 나가게 된다면, 새롭게 시작하기 앞서서 반드시 여길 다녀가겠다고.

이유?

나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사라져버린 IS, 즉 대상조차 없어져 버려 향할 곳을 잃은 분노를 삭일 곳이 필요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였을 거다.

어머니가 결사반대를 하시며 내 앞을 막아섰을 때도, 꼭 가려거든 ONEZ 중동 지부 사람들을 붙여주겠다고 하실 때도 내가 고개를 내저은 것은.

이건 오로지 나 혼자 만의 싸움. 아니, 일이다.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IS라는 단체가 생겨났는지.

또 그들은 왜 그토록 무모한 테러를 감행해야 했는지.

하고많은 곳 중에서 굳이 자선 공연 중이던 곳을 골라 폭탄을 터뜨리려야 했던 이유를.

그게 알고 싶었으니까.

비록 흘러가버린 옛일이라지만, 과거의 일을 제대로 매듭짓지 않고선 새로운 길을 나설 수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이쯤이지 싶은데…….”

걷는 동안 빠져 있던 상념에서 벗어나 핸드폰을 통해 지도를 확인했다.

메모 앱을 켜고 주소를 대조해보니, 여기가 맞다.

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이 버석버석해질 것 같은 모래먼지 속에 줄지어 서 있는 잿빛 건물들.

이 중에 한 곳이란 건데…….

젠장. 읽을 수가 있어야지.

쯧, 이럴 줄 알았으면 아랍어라도 익혀둘 걸 그랬나?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을 때였다.

“두유 니드 헬프?”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돌아보니, 작은 키의 소년이 서 있다.

구릿빛 피부에 곱슬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순간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렸을 적 리노의 얼굴과 평소 반개한 눈을 하고 있는 아즈마엘의 얼굴이었다.

흠, 어쩐다?

어설픈 영어긴 하지만, 그래도 말이 통하니까 좀 물어볼까?

난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았다.

여덟 살쯤 되었을까?

어쩌면 그보다 더 어릴지도 모르지.

아랍인들은 체구가 크니까.

아무튼, 도와준다곤 해도, 공짜일 리가 없다.

그게 아까운 건 더더욱 아니고.

상대방이 선의를 베푼다고 해서 아무런 보수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한국에서나 통하는 얘기니까.

“이거면 될까?”

나는 윗주머니에서 1달러짜리 지폐를 꺼내 내밀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참 달라진 게 없네, 이놈의 세상은.

내가 자리를 비웠던 시간 동안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같은 선진국들은 여전히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다.

아니,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중이라는 게 더 정확하겠지.

반면 여기처럼 낙후되고, 전화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곳은 여전히 이 꼴이다.

다른 걸 얘기할 것도 없이, 아직도 아이가 길거리로 내몰려 돈을 구걸하고 있는 것만 봐도 충분하지 않은가.

그리고 변함없이 달러는 힘을 발휘한다.

“땡큐!”

혹시 말을 무르기라도 할까 봐, 아이는 잽싸게도 채 간다.

그러곤 달러를 확인도 하지 않고 빠르게 주머니 속에 구겨 넣었다.

동시에 사방을 훑으며 경계의 눈초리도 지우지 않는다.

하아, 진짜 맹수 같은 녀석이네.

무슨 사냥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 반대인가?

밀림에서 가장 하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초식동물처럼 한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건가.

난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여기로 좀 안내해 줄 수 있겠니?”

내가 보여주는 핸드폰을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아이가 씨익 웃어 보인다.

새하얀 이빨 때문인지 눈부시도록 밝은 웃음이었다.

더불어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도 흡족했고.

“여기라면, 간단. 왜냐면 이웃집이니까요.”

어디서 배운 건지는 몰라도 서툴게 이어가는 영어 실력이 제법이었다.

픽하고 웃고는 녀석을 앞세웠다.

“이름이 뭐지?”

“나씨르.”

“나씨르……. 의미는 모르지만, 좋은 이름인 거 같구나. 근데, 영어는 누구한테 배웠니?”

“미국인한테요.”

사근사근하니 꽤 사교성이 좋아 보이는데, 어디서 미군이라도 한 명 만나서 친해진 모양이군.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고, 녀석은 쫑알쫑알 입을 쉬지 않는다.

“저, 나중에 크면 미국에 갈 거에요.”

“그래. 넌 가능할 것도 같구나. 근데, 미국엔 왜 가려는 거냐?”

“부자가 되려고요.”

“부자?”

“예. 우리 아버지가 그러셨거든요. 목이 마르면 먼저 오아시스부터 찾으라고.”

아메리칸 드림인가?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만, 그렇다곤 해도 추천할만한 일도 아니다.

여기만큼은 아니지만, 미국땅도 그리 천국 같은 곳은 아니니까.

특히나 이방인들에게는.

그래도 역시 눈을 반짝거리며 웃고 있는 아이에게 해줄 만한 얘기는 아닌 듯하다.

“현명하신 분이네.”

“예. 자랑스러운 분이셨죠.”

……이셨죠라.

아무래도…….

“돌아가셨지만요.”

역시나군.

“미안하구나.”

“괜찮아요. 오래전 일인데요, 뭐. 아, 다 왔어요.”

괜스레 미안해져서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이상할 만치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내 손을 잡아끄는 녀석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나는 만날 수 있었다.

한 여인을.

“히얌 씨 되십니까?”

창가 앞 낡은 의자에 앉아 아련한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여인이 의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흘러나왔다.

내 입에서.

서글픈, 그러나 분노가 맺혀 있는 목소리가.

“우마르……가 아드님이 맞습니까?”

9년 전, 그날. 뉴욕 시티필드 스타디움에 폭탄을 설치했던 이들 중 한 명. 세상 사람들이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이의 이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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