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36화 (236/260)

# 236

#236. 달라지지 않은 것(3)

그 후로도 ONEZ의 자선봉사단과 함께 다니며 많은 이들을 만났다.

전국에 양로원과 보육원이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다.

그렇게 한반도 곳곳을 쏘다니다 보니, 희한한 기사까지 나온다.

[김도준,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는 이유.]

기사제목도 제목이지만, 내용은 더 기가 막혔다.

- ……짐작건대, 김도준의 몸 상태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는 듯하다. 일단 그가 의식불명 상태로 있는 동안 거진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평범하게 생각해도 그의 몸은 노화를 겪었을 터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고 하겠지만, 이미 서른을 앞두고 있다는 건 예전에 비해 활동적일 수가 없다는 걸 의미한다. 거기에 더해 오랜 시간 병상에만 누워 있던 그의 몸이 정상일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적어도 근육 소실만큼은 피할 수 없었을 테고, 어쩌면 폐를 비롯한 내부장기의 손상도 있었을 수 있다. 이 말은 곧 그의 호흡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의미할 수 있으며…….

아이고야. 의사 납셨네.

그동안 내가 겪은 일들이 평범했더라면 가히 틀린 얘기도 아니다.

그랬다면 이 혼자만 잘나신 기자님의 예측은 대부분은 맞아 들었겠지만, 안타깝게도 내 몸은 현재 아무런 이상도 없다.

뭐, 처음 퇴원했을 때만 해도 확실히 예전에 비해 쇠약해져 있었던 건 맞지만, 우습게도 자원봉사를 한다고 열심히 전국을 돌아다녔더니 어느새 몸 상태가 최상이 되어버렸달까.

그건 그런데…….

상당히 악의적인 기사네.

나한테 사감이라도 있는 건가?

그게 아니면 이렇게라도 자극적인 기사를 써서 주목받고 싶은 걸지도 모르지.

어느 쪽이 되었든 불쾌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저 웃고 넘겼다.

기자가 소송을 염두에 두었는지, 내 능력을 잔뜩 의심하는 논조와는 달리 기사만큼은 미묘하게 써내려가 법망을 피할 구멍을 제대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뭐랄까.

그냥 하찮게만 느껴졌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고, 한정된 만큼 소중한 시간들을 쓸데없는 데 쓰고 싶지 않다고나 할까.

더불어…….

감정은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얘기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육체와 영혼의 결합이라고 치자면, 그 사람의 영혼은 이성과 감정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당연하겠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이 시시때때로 품게 되는 감정들은 표정이 되고, 소리가 되며, 행동이 되어 표출된다.

기쁨, 슬픔, 고통, 분노, 질투, 절망…….

정말이지 많은 감정들이 있는 것이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그 사람은 더 이상 그 사람이 아니게 된다…라는 게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내가 이제껏 보아온 세상은 말 그대로 핑크빛 세상이었다는 거지.

그래서 감히 말한다.

나는 부족했다.

새로운 음악을 추구하기에 앞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야 하고, 또 그들의 감정을 깊게 파고들었어야 한다.

이 얘긴 곧 노래보다 우선하는 게, 듣는 것이라는 말이다.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고, 학생들의 투덜거림을 듣고, 어른들의 지친 목소리를 듣고, 노인들의 애잔한 가락을 듣고…….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그들의 삶을 노래에 실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모두가 내 안에서 그릇이 깨졌기에 가능한 일인지 모른다.

아무튼, 그런 까닭으로 이제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다.

왜?

내가 나이듯, 저들 또한 저들이니까.

누군가가 자신들의 목소리로 얘기한다는데, 들어주는 게 뭐 그리 어렵겠나.

피식.

“근데, 팬들이 가만있을지는 나도 모르겠군.”

어깨를 한차례 으쓱거리곤 댓글을 보니, 진짜 가관이다.

거의 테러 수준이었다.

- 뭐야, 이 기래기는?

- 이 정도면 청와대에 민원 넣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주둥이에 걸레를 물었나. 왜 가만히 있는 김도준은 물고 늘어지는 거람?

- 그래도 일면 맞는 얘기 같기도 한데……. 거의 10년이나 병상에 누워 있었으니 몸이 안 좋은 것도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기자분께서 기사 마지막에 ‘부디 완쾌되어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라고도 쓰셨고요.

- 아이고, 아줌마. 남편 뒷바라지는 집에서 하셔야죠. 왜 여길 오셔서 그러세요.

- 어떻게든 사람들 관심 좀 끌기 위해 목숨 거는 기래기들. 아니 개래기들을 어쩌면 좋을까.

- 기자는 보지도 못했나 보네. 김도준 요즘 자원봉사 다닌다고 여기저기서 사진 많이 올라오던데. 한눈에 봐도 무거워 보이는 짐을 척척 드는 건 뭐임? 얼굴빛도 완전 밝아 보이더구만.

- 근데, 왜 진짜 주니 오빠는 노래를 안 하는 걸까요? 이제 슬슬 신곡 내주면 좋을 텐데.

- 기계입니까? 곡을 찍어내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오랜 시간 누워 있었는데, 좀 쉬어야죠. 가족분들하고도 좋은 시간 보내고…….

구 할이 기자 욕이고, 일 할이 내가 왜 노래를 하지 않는지 궁금해하는 내용이다.

픽하고 웃고 말았다.

이상한 사람들이네.

난 지금도 노래하고 있는데…….

꼭 소리로 나와야 들리는 건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핸드폰을 껐을 때였다.

부르르르.

아씨! 놀래라.

진짜 죽이는 타이밍에 전화가…….

응?

“예. 교수님!”

반가운 목소리로 니콜 교수님께 인사했다.

그러면서 떠올렸다.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신 교수님의 모습을.

아마 그때가 새벽 두 시였던가?

원래대로라면 면회는커녕 병원 출입도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희주 덕분에 밖에서 만날 수 있었더랬다.

- 킴. 지금 어디?

어라? 이 기시감은 뭐지?

이런 느낌 처음이 아닌 듯한데.

예전에 레이크헬이 느닷없이 한국을 찾았을 때, 뜬금포로 물었던 것도…….

“혹시, 공항이세요?”

- 호호호. 도준은 이제 하산해도 되겠네.

헐. 저런 말은 또 어디서 들으셨대?

아무튼, 공항이라는 얘기 맞지?

“막 서울에 도착해서 쉬고 있었어요. 그제 어제 이틀간 대구에 내려갔었거든요.”

- 아, 들었어. 요즘 봉사활동 다닌다며? 후후, 한숨 푹 자고 일어나더니, 철이 들었나 보네. 그런 제자의 모습을 바라보는 이 스승의 마음은 더없이 기쁘답니다.

“제가 지금 갈게요. 바로 출발하면 두 시간 안으로 공항에…….”

- 뭐하러? 나도 택시 탈 줄 알아. 지난 9년간 한국을 뻔질나게 드나들었으니까. 어지간한 말도 다 알아듣고.

아, 요즘 왜 이러냐?

이상한 타이밍에서 자꾸만 이런다.

갑자기 훅치고 들어오는 니콜 교수님의 얘기에 내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지난 9년간 니콜 교수가 한국을 뻔질나게 드나든 이유가 뭐겠는가.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고…….

“그래도 힘드시잖아요. 제가 갈게요. 그러니까…….”

- 힘들긴. 모처럼 제자가 초대해줘서 오는 길인데, 힘들게 뭐가 있겠어. 가벼운 마음으로 달려갈 테니, 어디 경치 좋은 레스토랑이나 예약해둬. 아, 이왕이면 좋은 와인이 있는 곳이면 더 좋고.

어느새 내 입가엔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그만큼 기분이 좋은 거다.

인연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과거의 나는 그저 새로운 음악에 목이 말라 줄리아드를 찾았을 뿐인데…….

거기서 얻은 것 중에 가장 큰 건 사람이었던 거네.

웃으면서 대답했다.

“알겠어요. 그럼 조심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전화를 끊은 후, 한참이나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쥐고 있는 핸드폰이 니콜 교수님이라도 되는 듯이.

그러다가 아차 하는 마음에 서둘러 일어났다.

도심의 야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들 중에 어디가 제일 교수님 마음에 드시려나?

즐거운 고민을 하며 옷을 챙겨 입었다.

***

남산 자락, H 호텔 인근에 있는 고층 빌딩을 뒤지다가 결국 선택한 곳은 생뚱맞게도 삼청동의 한정식집이었다.

오래전 요정으로 쓰였다는 곳이었는데, 성북동으로 이어지는 길목, 산 중턱에 있는 한옥이라 나름 정취도 있고 꽤 고급스러워 니콜 교수님이 좋아하실 거라 예상됐다.

전화로 룸 하나를 예약하고, 내친김에 교수님께서 머무실 호텔까지 잡고 나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다.

“한 시간이면 도착하시겠네.”

시간 참 빨리 간다.

레스토랑 하나 알아보고, 호텔 예약하는 사이 한 시간이 흘러가버리다니.

뭐, 준비하고 나온 시간까지 합치면 그리 오래 걸린 것도 아니려나?

그동안 워낙 바뀐 게 많아서 나조차도 이젠 몰라볼 정도인 서울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이럴 줄 알았으면 희주한테 도움을 요청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뭐, 이미 지나간 일인걸.

이왕이면 내 손으로 직접 니콜 교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싶기도 했고 말이다.

“먼저 가 있는 게 좋겠지.”

여전히 면허를 따지 않은 상태라서 택시를 잡아타고 움직이며 교수님께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얼마 가지 않아 들려오는 목소리.

나는 니콜 교수님께 장소를 설명해주고, 혹시나 싶어서 메시지로 주소까지 보내드렸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삼청동 소재의 한정식집에서 니콜 교수의 탄사를 들을 수 있었다.

“좋군요. 마음에 들어요. 무척.”

고풍스러운 멋이 잔뜩 베어 있는 인테리어와 함께 방안 전체에서 풍겨오는 향이 마음에 드신 모양이다.

“나무에서 은은한 향이 나오나 보네요. 음식도 참 깔끔하고……. 술도 좋군요. 이거 뭐라고 한다고 했죠? 메이실주?”

“매실주에요. 매화나무라고 있는데, 추위가 덜 가신 초봄에 꽃을 피워서 옛사람들은 겨울에도 꽃을 피운다 하여 충의와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라고 했죠. 그 나무의 열매가 매실인데, 그걸로 담근 술이 바로 이 술이에요.”

“그렇군요. 매실이라…….”

흐뭇한 표정으로 사기로 만든 잔을 내려다보며 웃으시는 니콜 교수님이셨다.

“꼭 킴 같군요. 남들이 추워서 웅크리고 있을 때, 기지개를 켜더니 갑자기 잠들어버리고……. 다들 포기했을 때, 느닷없이 일어나 또다시 세상을 놀라게 만드는 게. 잘했어요. 도준.”

술잔에서 떨어져나와 날 향한 눈빛은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어딘지 모르게 빛나고 있었다.

말투 또한 달라지셨고.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난 알아. 혼자서 힘들었지? 그런데도 이겨낸 거야. 우리 곁으로 돌아오겠다는 마음으로. 그러니, 이젠 더 이상 혼자서 애쓰지 마렴. 네 곁엔 나도, 에단도, 크리스티나도……. 가족들과 희주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이 있으니까. 아니, 온 세상이 다 네 편이야. 그러니까……. 힘내려무나.”

울컥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돌아오기 전, 내내 바랬는지 모른다.

저 말을 듣고 싶다고.

잘 돌아왔다고…….

힘냈다고…….

이제 더는 혼자가 아니라고…….

가슴이 콱 막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코끝을 찡그렸다.

맑은 눈동자로 날 바라보시며 입가에 니콜 교수님 특유의 미소를 머금고 계시는 모습에 눈가가 촉촉해지는 걸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말없이 교수님을 보다가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자, 말문을 열었다.

“교수님.”

마치 이제야 본론을 꺼내려는 거니? 하고 묻는 듯한 눈빛을 마주하며 물었다.

“절 좀 도와주세요?”

“흠, 도와달라……. 오케이. 그렇게 하지.”

에?

아직 내용도 말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인지 듣지도 않으시고…….”

“호호호. 모처럼 제자가 부탁하는데, 뭔들 못 들어주겠어? 그러니, 다 털어놓아 봐요. 대체 무슨 꿍꿍이인 거죠?”

하아, 못 말리겠다.

누가 스승님 아니랄까 봐서.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건가 생각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