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34화 (234/260)

# 234

#234. 달라지지 않은 것(1)

내 품에 안겨서 우는 희주. 그녀의 긴 머리칼이 얼굴을 간지럽히고 있었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아니, 좋았다.

꿈이라도 꿀 수 있었다면, 나는 백만 번도 더 꿈꾸었을 터였다.

그녀와 이렇게 안고서 그녀의 체취를 맡고, 그녀의 모든 걸 느끼고 싶었다.

몇 번이나 상상했었는지 모른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래서 그녀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영혼을 팔라고 해도 팔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흑흑……. 이 나쁜 새끼야! 왜 이제…흑…이제야……. 허어어어엉!”

오열하다 못해 이젠 내 가슴팍을 두들기는 그녀를 난 말릴 수 없었다.

그녀는 내가 정신을 차린 게 너무 감격스러운지, 환자라는 것도 잊은 듯하다.

안다.

그녀가 그동안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이들의 대화를 전부 들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놔두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응어리진 한이 전부 풀릴 때까지.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을 서럽게 울던 희주가 어느 순간 눈물을 그치더니 내 품에 안긴 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부끄러운 건가?

난 여전히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듯 내뱉었다.

“……희주야.”

“응.”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대답하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얼굴 좀 보…자.”

대답이 없던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내젓는다.

“싫어. 안 보여줄 거야.”

혹시라도 내가 오해할까 봐서 걱정됐던 걸까.

그녀는 곧바로 덧붙였다.

“울어서 엉망이란 말이야.”

굳어 있던 내 얼굴에 어색하지만, 미소가 떠오른다.

“……보여줘.”

잠시 후, 희주가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엉망이었다.

마스카라는 번져 있었고, 옅게 한 화장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런데도 내 눈에는…….

“…예쁘기만 하네.”

진심이었다.

십 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달라진 얼굴.

고등학교 시절 앳되기만 하던 얼굴은 이제 완연한 성인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솔직히 예쁘다고 말하기엔 너무 아름다웠다.

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눈을 흘기며 날 바라보는 모습조차도.

아, 이제야 실감이 난다.

다시 돌아왔다는 게.

이걸 보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쳤던가.

무의식 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만감이 교차하며 지난날들이 떠오르자, 눈을 가만히 감았다.

그러자 놀란 희주가 외쳤다.

내 어깨를 흔들면서.

“도, 도준아! 도준아아아아!”

혹시라도 내가 다시 정신을 잃은 게 아닌가 걱정하는 거겠지.

천천히 눈을 뜨곤 손을 들어 올렸다.

“그만 흔들어. 머리 울려. 몸도 쑤시고…….”

화들짝 놀란 희주가 내게서 황급히 떨어졌다.

하지만, 이내 안심했는지 희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 또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사이 힘겹게 올라간 내 손이 그녀의 뺨에 닿았다.

부드럽고 따스한 감각이 손끝을 통해 전해져왔다.

“그만 울…어. 나 이제……어디 안 가니까.”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에 비로소 웃음꽃이 피어났다.

***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난리다.

뉴스에선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내가 깨어난 사실이.

[팝의 제황, 귀환하다.]

[결국, 거인은 쓰러지지 않았다.]

[의식을 차린 김도준. 병원 측에서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밝혀.]

[이제부터 다시 시작될 김도준의 행보가 궁금하다.]

[전 세계 팬들 김도준의 귀환에 기뻐하다.]

[각국 정상들과 기업들. 축하의 메시지 보내.]

[그의 귀환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들로 인해 공항 인산인해 이뤄…….]

기사뿐만이 아니라 방송사에서도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하고 있었지만, 회사 측의 완곡한 거절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대신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보도 자료를 손에 쥐여주긴 했지만.

물론 그 와중에도 어떻게 해서든 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억지를 부리는 이들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10명도 넘는 경호원들을 상주시키는 건 물론이고 내가 머무는 층 자체를 아예 통제구역으로 만들어버리는 S 그룹의 배포에 그들은 병실은커녕 복도조차 밟지 못했다.

그사이 난 가족들과 말 그대로 눈물의 상봉을 했고, 또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끊임없이 찾아오는 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삼초오오오온!”

도도도 달려와 날 향해 폭 안겨드는 예은이를 꼭 끌어안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목이 멘 음성으로 말했다.

“……고맙다.”

“응?”

무슨 뜻인지 몰라서 날 빤히 쳐다보는 예은이를 보면서 난 말을 삼켰다.

덕분에 돌아올 수 있었다고.

그러면서 떠올렸다.

지난 9년간의 일들을.

무의식 안에 갇혀서 지내온 나날들을 말이다.

노인이 떠나고 난 뒤, 홀로 남게 된 공간 안에서 난 어떻게든 무의식 밖으로 나가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그곳을 벗어날 순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노인이 말한 그릇 즉 내가 음의 시공간이라고 부르고 있는 세계가 박살이 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면 오히려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로운 상황이 이타심으로 얻어낸 에너지들 덕에 간신히 유지되고 있었단 거다.

그 얘긴 곧 금이 잔뜩 간 유리그릇 같은 음의 시공간을 완벽하게 복구하지 않고선 절대로 깨어날 수도 없었고, 깨어나서도 안 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걸 깨닫는 데다만 몇 달이 걸렸는지 모른다.

그리고 절망했다.

이런 식이라면 진짜로 50년을 꼬박 기다려야, 아니 그 정도 시간 동안 공을 들여도 의식을 차릴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그때쯤이었을 거다.

어디선가 생소한 소리가 들려온 것은.

- 까르르르르. 꺄아아아.

아기가 웃는 소리였다.

그것은 무척이나 밝았고, 또한 따스했다.

단박에 알아차렸다.

예은이의 웃음소리라는 걸.

불안하게 흔들리며 금방이라도 터질듯하던 기분이, 아니 분노가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의아해졌다.

왜지?

어째서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아직 제대로 말도 못하는 예은이의 소리만 들려오는 이유는 뭘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지만, 답을 구할 순 없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 시작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너무 밝아서, 내게로 전해져오는 그 감정이 따뜻하기 그지없어서 착각하고 만 것이다.

예은이의 소리에 담긴 감정이야말로 호의이고, 혈육에 대한 본능적인 그리움일 거라고.

그렇기 때문에 너무 쉽게 생각하고 말았다.

무의식 밖에서 타인으로부터 전해지는 긍정적인 감정들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망가져 버린 내 안의 무언가를 고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고쳐야만 하는 그 무언가는 음의 시공간. 내 의식의 근간을 이루는 무의식의 영역일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되면 언젠가는, 아니 빠른 시간 안에 깨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집중했다.

예은이의 소리에.

그 아이가 전해오는 감정에.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로도 줄곧 예은의 소리만은 들을 수 있었다.

아니,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감정 그 자체였다.

울음과 웃음 그리고 옹알이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의미의 감정들.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아이였지만, 이미 내게 있어서 예은이가 들려주는 소리는 언어였으며 일종의 대화였다.

절망으로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난 다시 한 번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한가지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진.

헛된 희망은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게 된다.

이타심이란 감정이 그릇을 보수할 수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이용하기는커녕 찾아낼 방도도 없었던 차에 들려온 예은이의 소리 또한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난 그 밝고 따뜻한 감정으로 이미 부서진 거나 다름없던 그릇을 고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지만…….

잘못 짚은 거였다.

왜냐면…….

예은이의 소리는 부숴버렸으니까.

그나마도 온전하게 남아 있던 그릇을.

하긴,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일이었을 텐데…….

안 그래도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감정들이 넘쳐서 주체못하던 그릇이었다.

그리고 그 그릇은 언제나 그렇듯 긍정적인 감정들밖에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또다시 흘러들기 시작한, 일종의 음으로 규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던 예은의 소리들이었다.

어찌 되었을지는 뻔한 일 아닌가?

맞다.

느끼지도 못할 만큼 느리게 진행된 일이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땐 이미 그릇의 한 부분이 부서져서 사라진 뒤였다.

구멍이 뚫린 것이다.

그렇게 간신히 유지되고 있던 그릇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막지 못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예은의 소리가 들려오는 걸 막을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착각의 대가는 컸다.

아이의 옹알이가 어느샌가 의미를 품은 단어가 되고, 그 단어들이 한마디에서 두 마디로, 두 마디에서 하나의 문장을 이루어가는 동안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애쓰던 방벽은 천천히……아주 천천히……허물어져 갔다.

어느 날엔가 불러온 음의 시공간 한구석에 뻥 뚫린듯한 느낌이 드는 느낌을 받았을 때, 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주의해서 의식하지 않으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작은 크기의 구멍이었지만, 위기감은 컸다.

50년?

그조차도 어렵게 됐다는 걸 직감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릇이 깨져나갈 것임은 분명했다.

물론 한두 달 만에 벌어질 일은 아니겠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십 년이 될지, 그 이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때였다.

가족들의 대화가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그들은 날 한없이 걱정하고 있었고, 또 날 영영 잃을까 봐서 두려워하고 있었으며 아들인 나를, 동생인 나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가족들 외에도 많은 이들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니, 감정들이 전해져 왔다고 하는 게 정확할 테다.

아무튼, 그것은 예은이가 뚫어놓은 구멍 사이로 흘러든 것들이었다.

하지만, 구멍이 작아서인지 몰라도 소리들은, 감정들은 명확하지 않았다.

의미만 알 수 있을 뿐, 제대로 느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알 수 있었다.

그때까지완 달리 구멍 사이로 전해지는 소리들은, 아니 감정들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오랜 고민 끝에 그것이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해주던 그릇이 깨지면서 벌어진 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난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차라리 깨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어느 날엔가, 노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런 뜻이던 건가?

그제야 난 비로소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뭐가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남의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왜 선악을 구분 지었던 걸까.

어째서 호의만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걸까.

밝고 희망찬 감정만을 느끼고 싶었던 이유는 뭘까.

방어기제였다.

그 순간, 알아차렸다.

내가 지니고 있던 그릇의 정체를.

그것은 일종의 울타리.

원하는 감정만을 받아들이기 위한 일종의 필터.

그것이 그릇이었다.

그러니 차고 넘칠 수밖에.

그릇이 아무리 큰들 결국 채워지기 마련이니까.

담을 수는 있지만, 애당초 그릇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임을 왜 몰랐던 걸까.

그때부터였을 거다.

조용히 내가 해야 할 일들, 즉 현실 속의 내 몸이 버틸 수 있도록 같은 시간에 잠을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운동을 하며 또 규칙적으로 음악과 책을 벗 삼아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외부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기울인 것은.

그렇게 오랜 시간, 많은 감정들을 느끼는 사이 방벽이던, 부서졌기에 반드시 복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그릇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부서져 갔다.

때때로 밖에서부터 전해진 감정에 반응해 억지로 의식을 차리기 위한 시도도 해보았지만, 그뿐이었다.

의지만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몇 번인가 손을 움직인다든가, 눈썹을 움직이는 정도는 가능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한동안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의 소비만 있을 뿐이었다.

그때 이후론 그저 기다렸다.

감정을 추스르고, 하루에도 몇 번씩 들끓는 분노를 잠재우며,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그리움을 노래로 달래면서.

그렇게 9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들었다.

희주의 흐느낌을.

우습게도 그 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눈을 뜬 것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다.

마치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안쓰럽게도 울먹이며 내가 보고 싶다고 외치던 그녀를 안아주고 싶다고 느낀 순간에 손이 절로 움직였다.

안아주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그녀가 미치도록 보고 싶었으니까.

완전히 무너져버린, 이젠 존재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릇. 필터링은 고사하고 외부로부터 온갖 감정들이 가감 없이 흘러들어오는 상태에서 비로소 나는 눈을 떴던 것이다.

“아들.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눈물은 이미 그쳤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또다시 정신을 잃을까 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시는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들키지 않으려고 하시는 거 같지만, 떨리는 음성이셨다.

상념에서 깨어난 나는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옛날 일들이 떠올라서요.”

내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있는 희주의 손을 놓지 않은 채, 아니 한층 더 강하게 쥐며 대답하자 어머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니? 설마 또 노래하는 건…….”

“여보!”

그런 얘기를 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느끼셨던 걸까?

아버지께서 정색을 하고 어머니의 말을 막으셨다.

그러자, 뒤늦게 실수했다고 느끼셨는지 어머닌 얼른 말끝을 흐렸지만, 이미 흘러나온 말을 주워담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할 따름이다.

나로서도 언젠가는 해야만 할 얘기였으니까.

병실 안에서 날 중심으로 둘러앉아 있는 가족들과 희주를 보면서 말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노래도…. 작곡도……. 방송도……. 하지 않으려고요.”

내 얘기가 뜻밖이었던지, 잠시 놀란 표정이 되었다가 이내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는 가족들.

이해된다.

저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째서 저런 표정들을 짓고 있는지가.

내가 쓰러질 당시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고, 그때 내가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나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생각한다는 게 고스란히 전해져 왔으니까.

오해였지만…….

그럼에도, 난 바로 잡지 않았다.

대신 작게, 마치 혼잣말이라도 하듯 말했을 뿐이다.

“이젠 아니까요. 제가 얼마나 겁쟁이였었는지…….”

그리고 비겁했는지도.

감정을 선별해서 받아들여야 할 만큼 그릇이 작았던 것도 그 때문일 터였다.

애초에 그릇이 왜 필요했는지도 이제와선 모를 일이다.

결국, 그로 말미암아 파국을 맞았고, 십 년에 가까운 대가를 치러야 했다.

설사 그때……. 자선 공연에서 테러가 일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아무리 확장된다 한들 그릇이라는 건 언젠가는 또다시 꽉 차고 말 테니까.

이젠 더 이상 그런 실수는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속으로만 할 뿐이었다.

그런 채로 나는 가족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곤, 마지막으로 희주와 시선을 교환하며 말했다.

“저 희주랑 함께 있고 싶어요.”

가족들은 물론이고 당사자인 희주조차 무슨 뜻이지 몰라 잠시 멍하니 날 쳐다보더니, 누군가 소리쳤다.

형이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외쳤던 것이다.

“너, 너……. 지금 그거…….”

많이 놀랐는지 말을 잇지 못하는 형 대신 어머니께서 물어오신 것도 그때였다.

“후우, 아들…. 결혼하고 싶다는 거니?”

난 조용히 웃어 보일 뿐이었다.

어느샌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희주의 손을 꼭 움켜잡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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