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33화 (233/260)

# 233

#233. 그가 없는 세상(5)

한번 터진 눈물은 좀처럼 멈춰지지가 않았다.

예은이 울면서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억울하다는 듯이.

“상촌……에엥……. 나…히끅……손잡아 줬쪄.”

다급한 나머지 다그치는 꼴이 되고만 민준은 무척이나 난감해다가 예은에게 사과부터 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가 미안해.”

그럼에도, 놀란 건지 아니면 서러워서 그런 것인지 계속해서 울고만 있는 아이를 엄마인 소연이 품에 안고서 달랬다.

그러길 한참. 예은이가 다소 안정이 되는 듯하자 소연이 조심스럽게 그게 언제냐고 물었지만, 좀처럼 대답을 듣기는 어려웠다.

훌쩍거리고 있는 아이는 어른들이 뭘 묻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아니, 왜 자신에게 이러는지 이해조차 하지 못하는 나이라는 게 맞는 걸 테다.

결국, 30분이 지나서야 희주가 나섰고,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예은이도 기억하지 못하는지 아니면 날짜 개념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정확한 날짜를 알 수 없었다는 게 문제였을 뿐.

그렇다곤 해도 한가지는 분명했다.

이제껏 별의별 검사에도 아무런 반응조차 없던 도준에게 변화가 있었다는 것.

울다 지친 아이를 소연이 업고서 방안을 돌고 있을 때, 부모님께서 연락을 받고 달려왔다.

이미 전화로 자초지종을 듣고 온 터라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도준의 이름부터 부르는 어머니셨다.

하지만, 그런다고 깨어날 도준이 아니었다.

몇 번이나 목놓아 부르던 어머니였지만, 도준이 눈을 뜨지 않자 또다시 눈물이 차오르는 어머니의 손을 민준이 가만히 잡아준다.

“엄마.”

그러곤 고개를 천천히 흔들자, 결국 어머닌 눈물을 흘리고 마셨다.

그렇게 한바탕 정신없는 시간이 흘러가고 나서였다.

“예은이가 거짓말하는 거 같진 않아요.”

“그래. 예은인 그런 아이가 아니니까.”

그 점은 인정하는 바였다.

예은이는 어릴 때부터 이상할 만치 민준보단 도준을 더 많이 닮은 아이였다.

아직 어림에도 자존심이 몹시 강했고, 그래서인지 거짓말은 좀처럼 하지 않았다. 대신 고집도 셌지만.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태어났을 때부터 병상에만 누워 있던 삼촌을 무척이나 좋아라 했다.

어쩌면 가족들 중에서 도준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예은이인지도 몰랐다.

가족들이 어쩌면…하고 희망을 거는 이유이도 했다.

“맞아요. 사실 도준이가 저렇게 누워 있으니 그렇지. 만일 깨어 있었으면 지 조카를 엄청 예뻐했을 거에요.”

민준의 얘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4년 전, 도준이 쓰러지기 전까지, 평소엔 잘 연락도 하지 않던 놈이 사흘에 한 번은 꼬박꼬박 전화해서 예은이부터 찾던 녀석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녀석은 꼭 일어날 거에요.”

“흐윽! 우리 아들……흑….”

또다시 울먹이는 어머닐 어깨째로 감싼 채 토닥여주는 아버지셨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오늘 흘리는 저 눈물은 이제까지와는 다르다는 걸.

벌써 4년째 깨어나지 않고 있던 도준이 조금이나마 변화를 보였다는 점에서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됐달까.

모두의 눈가는 살짝 붉어져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입가에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희망이었다.

***

안타깝게도 그 후로도 도준이 깨어나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하고 물었지만 예은이도 그때 이후로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진짜 그런 일이 없는 건지, 아니면 혼날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는 몰라도 아무튼 도준은 여전히 의식불명상태였다.

그렇게 또다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금방이라도 통일될 거 같던 남북관계는 일 년 전부터 지지부진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러시아부터 시작해 부산까지 놓일 예정이었던 철로 사업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었다.

그 까닭이 남북통일 문제가 단순히 한반도에만 국한된 게 아니란 걸, 이제는 모두가 알고 있는 국민들이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러시아와 일본, 중국을 비롯해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통일 문제가 좀처럼 진척되지 않고 있다는 건 상식이었다.

그럼에도, 아무런 진척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남북 간에 문화적인 교류가 활발했고, 그 중심에는 도준이 있었다.

정확히는 그의 노래가 북한 주민들의 굳어 있던 마음을 녹였다고 보는 게 맞을 터였다.

아니 비단 북한만이 아니었다. 도준의 노래는 여전히 전 세계 곳곳에서 불리며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그의 팬이었던 이들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었고, 이젠 제3세계라 할 수 있는 국가에서조차 도준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몰랐다.

정규 앨범 다섯 장. 데뷔 앨범을 포함해 미니 앨범 두 장. 인터넷만 뒤져봐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그의 공연 동영상. 그리고 21세기 클래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김도준 교향곡 1번과 그걸 발판으로 또다시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결합과 발전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얘기를 듣는 교향곡 2번까지. 세계 곳곳에선 그가 작곡한 노래가 울려 퍼지지 않는 날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거기에 더해 그가 만든 곡을 들고 나왔던 씨크릿걸즈가 어느샌가 국민 걸그룹으로 우뚝 서면서 그의 주가는 한층 더 뛰어오른 상태였다.

뿐만 아니다.

크리스티나와 조안나, 에단 그리고 아즈마엘까지 합류한 4인조는 벌써 3집째 앨범을 내고 벌써 5년째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S 전자 역시 N10의 후속 모델마다 계속해서 김도준 앱을 탑재한 채 출시하는 중이었고, 갈수록 국내외의 많은 싱어들이 참여해 김도준 앱을 통해 곡을 발표 중이었다.

그런 가운데 리노와 강나리가 연달아 데뷔했다.

물론, 그전에 리노가 아메리칸 갓 탤런트에 출연하고 결국 우승까지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한차례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도 빼먹을 수 없는 일일 터다.

어쨌든 두 사람은 김도준의 곡을 바탕으로 엄청난 실력을 선보이며 빠르게 인기를 얻어가고 있었다.

더욱이 그 두 사람이 한때 김도준에게 노래를 배웠다는 게 뒤늦게 밝혀지며 모든 이들이 ‘역시’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ONEZ의 활동 역시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 곳곳에서 크나큰 영향력을 과시하는 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재단 자체가 워낙 투명한데다가 갈수록 늘어나는 재단의 자금규모 덕분에 재단 이사장인 도준의 어머니가 제시하는 비전을 실현하기에 충분했던 까닭이다.

덕분에 시리아를 비롯해서 빈민국에선 거의 도준이란 이름은 신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기야 외진 곳에 있는 마을까지 들어선 학교들과 철마다 무상으로 전해지는 구호품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각 지역의 특색을 제대로 조사해 세운 새로운 사업모델로 현실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미래의 비전까지 제시하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 때문에 이제 ONEZ는 유니세프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그러면서도 조금의 부정부패도 없이 깨끗한 자선단체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렇게 9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도준이 쓰러진 그날로부터.

***

달칵.

문을 열고 들어선 예은이 한쪽 구석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책가방을 내려놓고선 도준 앞에 앉는다.

그러곤 마치 도준이 듣기라도 하는 듯 투덜거렸다.

“삼촌. 나 너무 속상해.”

당연하겠지만, 도준은 말이 없었다.

그럼에도, 예은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다.

마치 대화라도 하듯이.

“진욱이 알지? 내가 지난번에 말했잖아. 이번에 내 짝이 된……. 걔가 자꾸 괴롭혀.”

이젠 씩씩거리기까지 하는 예은이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일 년 전의 일까지 꺼내들곤 진욱일 욕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일러바치는 중이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선…….

“진짜 웃기지? 걔가 뭐가 잘생겼다고 다들 그렇게 난리인지 모르겠어. 흥! 우리 삼촌 반의 반에 반에, 반도 못한 주제에! 유빈이도 그래. 요즘 들어 자꾸 묻는 거 있지. 진짜로 진욱이한테 관심 없는 거 맞냐고. 그래서 내가 삼촌이랑 찍은 사진 보여주면서 말해줬어. 난 나중에 크면 삼촌이랑 결혼할 거라고. 헤헤헤. 나 잘했지. 아, 이건 희주 언니한텐 비밀. 히힛. 알았지?”

그렇게 한참 동안 떠들어대던 예은은 도준의 손을 잡고서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다가 갑자기 놀라 소리쳤다.

“앗! 학원 갈 시간인데!”

후다닥 일어난 예은이 책가방을 집어들었을 때였다.

문이 열리며 희주가 들어섰다.

흠칫 놀란 예은이 눈치를 보는데, 희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예은이 와 있었구나. 어때? 3학년 되니까?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어?”

“으, 응. 조, 좋아…요. 아! 나 학원 늦어서 얼른 가봐야 하는데…….”

“그래? 언니가 태워다줄까?”

“아…아니. 혼자 갈 수 있어…요.”

오늘따라 안 하던 존댓말까지 하며 시선을 피하던 예은이 잽싸게 인사를 하곤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희주는 말없이 웃었다.

이미 밖에서 예은이 하는 말을 전부 들은 그녀였다.

요즘 애들은 사춘기도 빨리 온다고 하더니…….

그런 것치고도 조금 빠른 거 같지만, 그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예은이가 삼촌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으니까.

요새 들어 은근히 희주를 피하면서 어려워하는 이유도 짐작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일찌감치 도착했음에도 병실에 들어오지 않고 기다려준 것이기도 했다.

“수염이 많이 자랐네.”

그녀는 가방을 내려놓은 후 외투부터 벗고 소매를 걷어올렸다.

그러곤 수납장에서 면도기와 쉐이빙 폼을 꺼내 도준에게 다가갔다.

전기면도기도 있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손수 도준의 수염을 깎아주는 걸 더 좋아했다.

사악…사악…삭.

하얀 거품 사이로 면도기가 지나가며 거뭇거뭇하게 자라있던 수염이 사라지고, 도준이 점차 말끔한 얼굴을 되찾아가고 있을 때 희주가 혼잣말처럼, 아니 도준에게 말하듯 얘기했다.

“할아버지께서 많이 편찮으셔.”

대꾸는커녕 여전히 말이 없는 도준.

그럼에도, 그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좀 힘드네.”

나직한 한숨을 내쉬는 그녀였지만, 면도기를 쥔 손만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집에서 자꾸만 선을 보래. 어떻게든 버티곤 있지만……. 나 어떡하지, 도준아?”

집안에서 결혼하라고 성화를 부리는 것도 하루 이틀 된 얘기가 아니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하고 집안에서 유학을 가라는 것도 거부한 채 S그룹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냥 괜찮은 사람 있으니 만나보라는 얘기는 나왔지만.

당연히 거절했다.

할아버지인 정 회장도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고.

하지만, 요즘은 그 정도가 아니다.

서른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난리가 아니다.

여전히 정 회장은 그녀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지만, 문제는 주변의 시선이었다.

특히나 요즘 들어 할아버지의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면서 가족들의 성화가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결혼하는 모습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혹여 이런 일이 있을까 봐서 희주는 그동안 미친 듯이 일에만 매달렸었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면, 결혼 얘기 따윈 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하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였다.

그동안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이미 그룹 내에서도 꽤 단단한 입지를 마련하고 올 초엔 패션브랜드 하나를 성공적으로 런칭하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걱정 마. 알잖아. 나한텐 너밖에 없다는 거.”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어느새 멈춰진 손길.

도준의 턱밑에서 멈춰져 있는 면도기가 그녀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살짝 떨리는 손.

숙여진 고개와 함께 그녀의 어깨도 조금씩 들썩이고 있었다.

9년이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5년 전 예은이가 했던 말 때문에 다들 희망을 품었던 적도 있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은 그녀를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녀의 눈에서 한 방울 눈물이 떨어져 치마를 적셨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꾹.

면도기를 다소 강하게 움켜쥔 그녀가 말했다.

담담하지만, 흔들림없는 음성으로.

“난…믿어. 네가 돌아올 거라는 걸. 그러니까…기다릴 거야.”

이렇게 말한 그녀는 이번엔 다른 의미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흑…도준아……. 너무 보고 싶어.”

옆에 있어도 그립다는 말이 이렇게 가슴에 와 닿은 적이 있던가.

그와 함께 했던 지난날들이 그렇게나 소중하다는 걸 시간이 갈수록 절절히 깨닫게 되는 그녀였다.

그때였다.

툭.

뭔가가 그녀의 새끼손가락에 부딪히는 감각에 희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스륵.

뿐만 아니라 천천히 꿈틀거리는 손은…….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이제 더할 나위 없이 커진 희주의 눈은 서서히 들어 올려져 도전의 손으로 향하고 있었다.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 아닌가 의심했지만.

분명 움직였다.

희주가 입술을 잘근 씹으며 울어서 엉망이 된 눈으로 도준의 손을 보고 있…….

꿈틀.

확실히 움직이는 도준의 손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손을 틀어막은 희주.

그녀의 시선이 급하게 들어 올려져 도준의 얼굴을 향했을 때였다.

파르르.

속눈썹이 떨리며, 도준의 눈이 서서히 뜨여졌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준의 입술이 열렸다.

메마르고 갈라진 음성이 그녀의 귓가로 흘러든 것도 그때였다.

“미…….”

희주의 눈가에 습막이 생겨나는 듯하다가 이내 눈가에 물기가 차오르고 있을 때에도 도준이 힘겹게 말하고 있었다.

“미안…해. 오, 오……래…기다……리게…해서.”

“흑!”

막아놓았던 댐이 터지듯, 희주가 오열하며 도준의 품에 안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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