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32화 (232/260)

# 232

#232. 그가 없는 세상(4)

문이 열리고 민준이 병실에 들어섰다.

그가 의자에 앉아 익숙한 손길로 리모컨을 잡고 TV를 틀자, 소연이 도준의 가슴 위로 담요를 끌어 올리며 타박한다.

“오자마자 그러기야?”

“가만있어봐. 지금 막 종전 선언하고 있단 말이야.”

TV에선 IS가 그동안 점령하고 있던 지역을 완전히 수복한 유엔 평화유지군과 러시아군이 종전을 선언하고 있었다.

소연은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민준을 보면서 안쓰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해 못 할 바가 아니었으니까.

민준에게 있어서 도준은 하나밖에 없는 동생, 그 이상의 존재란 걸 그녀라고 모르지 않았기에.

그런 동생이 IS의 테러 때문에 지금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의식불명 상태다.

직접적으로 폭발에 휘말린 건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 그때 일어났던 폭탄 테러가 원인인 것이 확실한 이상 민준에게는 IS가 불구대천의 원수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IS에 관련된 뉴스만 나오면 눈에 불을 켜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동안 IS가 워낙 잘 피해 다녀서 금방이라도 끝날 것 같던 전쟁이 벌써 석 달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 IS가 근거지까지 공략당해 완전히 토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까먹진 않았지? 오늘 예은이도 병원 가는 날인 거?”

“어, 그…그럼. 설마 그걸 잊었겠어?”

유모차 안에 누워 있는 예은이가 도준을 보며 까르르 거리는 게 보인다.

“꺄르르르르. 까아아아.”

늘 저렇다.

도준이만 보면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예은이는 웃으면서 옹알이를 해댄다.

“어엉, 삼촌이 그렇게 좋아요?”

예은이와 대화라도 주고받듯 말하고 있는 소연을 보면서 민준은 잽싸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 지금 막 도착해서 주차하고 있어요.

“어? 그래. 병실에 있으니까, 바로 올라오면 돼.”

전화를 끊자마자, 소연이 물었다.

“누군데?”

“누군 누구야? 유나지.”

민준의 얘기에 살며시 웃는 소연이었다.

“결국, 컴백하긴 컴백하는구나.”

“왜 너도 다시 활동하고 싶어서 그래?”

고개를 내젓는 소연.

“당분간은 예은이 키우는 데 집중하고 싶어.”

두 사람이 잠시 예은이에 대해서, 그리고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해서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병실 문이 열렸다.

“언니!”

제일 먼저 뛰어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팀의 막내인 주연이었다.

“주연아!”

소연이 반갑게 외쳤다.

“요즘 바쁘다며 어떻게 왔어?”

이번에 영화 <행주산성>에 캐스팅되면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까지 올 줄은 몰랐기에 소연의 반가움은 한결 더 컸다.

“헤헷. 언니랑 예은이 보고 싶어서 왔지.”

혀를 쏙 내밀며 애교를 부리던 그녀는 민준에게 인사를 하곤 곧바로 예은이를 안아 들었다.

“어구! 우리 예은이 잘 있었어요? 이모 왔어요, 이모.”

예은이부터 챙기며 다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주연이었다.

“이번 앨범 잘 뽑혔다며?”

“누가 준 노래인데, 당연한 거지.”

팀의 리더를 맡고 있는 유나는 소연에게 웃어 보이곤 도준에게 다가갔다.

“덕분에 다시 활동할 수 있는 힘을 얻었어요. 저희도 열심히 할 테니까, 꼭……. 깨어나시길 바래요.”

갑자기 진지 모드로 들어가는 유나였지만, 다들 타박하거나 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눈시울을 붉히며 도준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럴 수밖에.

이미 저간의 사정을 다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만일 도준이 아니었다면, 전에 있던 회사에서 낙동강 오리알 꼴이 되었던 그녀들이 다시 컴백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아니, 퇴물 취급을 받다가 서서히 사라졌을 공산이 높다.

그런 그녀들을 회사에 영입하고 또 자신의 노래까지 주어서 컴백 준비를 해놓았던 게 바로 도준이었다.

게다가 민준까지 함께 회사로 오면서, 강혁수 대표 이사를 비롯한 회사 식구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거의 신인 아이돌을 미는 것과 같은 지원 속에서 컴백을 하고 있었기에 벌써부터 이슈 몰이 중이다.

한마디로 씨크릿걸즈에게 있어서 도준은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벌써 겨울이 코앞이네.”

“그러게. 여름 지난 지 언제라고…….”

시간 참 빨리 간다고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렇게 속절없이 지나간 시간 속에 아직도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도준을 안타깝게 쳐다보는 그들이었다.

***

씨크릿걸즈의 컴백은 성공적이었다.

그녀들의 앨범이 도준이 작곡한 곡으로만 이루어진 덕분이기도 했지만, 거기에 더해 노준영의 콜라보레이션이 이목을 끈 것도 한몫했다.

좀 더 격렬한 안무를 곁들인 네 사람의 무대가 연일 방송가를 강타했고, 그 결과 연말 시상식에서 씨크릿걸즈는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김도준 앱을 통해 도준의 마지막 곡이 발표되었다.

그럼에도, 김도준 앱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김도준 앱은 단순한 애플리케이션의 영역을 벗어난 지 한참 되었으니까.

레이크헬을 비롯해 밥 데일런, 멜리나 등을 비롯해 근래엔 베델까지. 거기에 요즘은 클래식 쪽에서도 간간이 김도준 앱을 통해 신곡을 발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발표되는 곡들의 음원 수익은 고스란히 기부금으로 처리되어 ONEZ 재단의 기금으로 활용된다는 기존의 원칙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많은 음악 팬들의 찬사 역시 지속적으로 따라붙었다.

웃긴 건 경쟁사인 피치사 쪽에서도 새로운 버전의 기기에서 N10처럼 기부형태의 음원 어플을 탑재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김도준 앱을 따라잡기엔 무리였다.

이미 김도준 앱은 뮤직비디오까지 발표하는 등 새로운 시도로 새롭게 변화 중이었던 까닭이다.

무엇보다도 음원 시장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단순히 돈만 바라고 음악을 하지 않고 진정으로 세상을 위해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는 인식이 굳어져 거의 원조로 취급받고 있었다.

아무튼, 이제껏 준비해두었던 도준의 모든 곡들이 소진되고 나자 곧바로 앨범 발표에 들어갔고 또다시 빌보드차트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음원 시장이 들썩거렸다.

그렇게 해를 넘기고 있는 동안, 도준은 마침내 미성년자에서 벗어나 성인이 되었다.

“도준, 널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도준의 손을 가볍게 잡고서 나직이 말하는 콜린의 얘기에 레이크헬 멤버들은 평소의 그들답지 않게 숙연한 표정들이었다.

“아, 우리 아직도 그 집에 살아. 그래도 괜찮지?”

“뭘 그런 걸 물어요. 당연히 괜찮지. 도준이 우릴 쫓아낼 리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거긴 도준이 집이기도 하지만, 우리 집이기도 하잖아. 그렇지, 리노?”

이미 눈이 벌게진 리노가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이자, 디알로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의 눈은 어느새 한쪽 편에 서 있는 강나리에게 가 있었다.

“이 녀석들은 걱정 마. 꼭 데뷔 시킬 테니까.”

“아참. 깜박했는데……. 내년 초에 밥이랑 폴, 그리고 몇몇 싱어들과 함께 헌정 앨범을 낼 생각이야. 뭐, 베릴은 네가 별로 안 좋아할 거라고 했지만. 그래도 낼 거야. 내가 고집 좀 부렸거든. 어쩌면 콘서트를 할지도 모르고.”

얘기를 계속 이어가는 콜린. 도준의 손을 잡고 있는 그의 손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

“……또 올게. 그땐 꼭 웃으면서 보자.”

김도준을 위한 헌정 앨범 의 녹음을 앞두고 레이크헬과 리노 그리고 나리가 한국을 찾은 것은 눈이 한참 내리고 있던 연초의 일이었다.

병원에서 내내 아무 말이 없던 브라이언이 차에 타자마자 꺽꺽거리며 울음을 터뜨린 건 레이크헬로서도 너무 뜻밖이었고 그래서 그들을 무척이나 난감하게 만들었다.

***

헌정 앨범인 이 발매된 것은 레이크헬이 한국을 다녀가고 석 달이 넘어서였다.

한창 봄꽃이 화사하게 피는 계절.

한 장의 앨범이 전 세계를 휩쓸었다.

도준이 그동안 냈던 노래 중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던 노래 스물 여섯 곡이 실렸고, 참여한 아티스트만 무려 13명. 그중 유일한 밴드인 레이크헬을 제외하더라도 8명이나 되는 싱어들이 도준의 노래를 커버해 불렀다.

당초 수익금은 도준의 병원비에 보탠다는 계획이었지만, ONEZ의 재단이사이기도 한 도준의 어머니가 그럴 필요 없다고 거절하면서 앨범 판매와 음원 수익을 통해 벌어들인 돈들은 모조리 기부금 형태로 곳곳의 기부단체에 전해졌다.

재밌는 것은 그중 단 한 푼도 ONEZ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마음만 받아요. 그 돈이 좀 더 많은 곳에서, 아직도 우리 손길이 뻗치지 않는 소외된 이들에게 쓰인다면 도준이도 분명히 기뻐할 거에요.”

도준의 어머니가 한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 인터넷과 SNS에서 회자되며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인들은 도준이 다시 일어나기를 기원했다.

그 사이, 니콜 교수가 한국을 찾았다.

“킴. 말해줄 게 있어서 왔어요.”

그녀가 도준의 단 한 명의 스승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고 있던 가족들의 배려로 병실에서 도준과 단둘이서만 남겨진 니콜 교수. 그녀는 평소와는 달리 다리를 꼬지도 않았고 특유의 매혹적인 미소도 짓지 않았다.

오히려 푸석푸석하달까.

며칠간 잠도 제대로 자지 않았는지, 그녀의 예전 모습을 알고 있는 이들이라면 놀라 자빠질 정도로 형편없는 몰골이었다.

그럼에도, 눈빛만은 여전히 강렬해서 초롱초롱하다 못해서 보석보다 빛나는 눈동자로 도준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드디어 두 번째 교향곡도 공연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알죠? 지난 연말, 교향곡 1번이 독일에서 성황리에 공연한 것은?”

도준이 다 듣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는 얼굴로 차분하게 얘기를 이어가는 니콜 교수였다.

그녀의 말투가 바뀐 것도 그때였다.

무례함과는 거리가 먼 대신 어딘지 모르게 선을 긋고 있던 어투에서 친근하면서도 다정한 음성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번 곡은 평이 좋아서 그런가, 공연하겠다는 곳이 많아. 그래서 어쩌면 한동안 들르지 못할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알아주었으면 좋겠네. 여전히 넌 내 제자고, 난 네 스승…이라는 걸. 언제나 난 여기 있을 거야. 내 마음만은. 그러니까, 너도 힘내라고 해줄래?”

그녀는 도준의 손을 꼭 잡은 채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니콜 교수가 살짝 붉어진 눈을 한 채로 병실을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여 분 정도가 흐른 뒤였다.

***

세월은 빠르게 흘러갔다.

4년.

도준이 시리아 난민들을 위한 자선공연에서 쓰러지고, 정신을 잃은 채 의식불명 상태가 된 후 흘러간 시간이었다.

그동안 세상은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정치적으론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지금도 세계 각지에선 분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적어도 한반도에선 평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햐, 진짜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네.”

“그러게.”

민준이 자신의 무릎에 앉아 있는 예은을 끌어안은 채 탄성을 지르며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럼 이제 곧 통일되는 건가?”

소연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민준이 아니었다.

“아뇨. 조금은 더 시간이 걸릴 거에요. 아무래도 곧바로 그렇게 되긴 그동안 너무 오래 갈라져 있었으니까요.”

“아!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종전 선언이 되었으니 점진적으로 해나가면 되는 거지. 쯧, 이제 도준이만 깨어나면 되는데…….”

“후우, 그러게. 서방님이 움직이시기만 하면 좋을 텐데.”

소연이 한숨을 내쉬면서 희주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대학에 입학한 희주가 어떤 심정으로 이곳을 드나들었을지 짐작 못 할 소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이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실을 찾았던 희주였다.

많은 이들이 도준이 깨어나길 기원하고 있었지만, 희주만큼이나 간절히 원하는 건 가족 말고는 없을 터였다.

지금도 그렇다.

희주는 도준 옆에 딱 붙어 앉아 틈만 나면 물티슈로 도준의 얼굴을 닦아주며 안타까운 눈빛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우웅. 아닝데. 상촌 움직영는데.”

아빠 무릎에 앉은 채 다리를 흔들면서 엄마인 소연이 깎아놓은 사과를 먹고 있던 예은이 던진 말에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 민준이 놀라서 눈이 커진 채 되물었다.

“예은아! 그게 무슨 말이니?”

“웅? 뭐강?”

“방금……. 방금 뭐라고 그랬니?”

다그치듯 묻는 아빠의 물음에 놀랐던 걸까.

이제 갓 다섯 살이 된 예은이 울먹거린다.

혼나는 줄 아는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하더니 급기야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러면서 서럽다는 듯 말했다.

“에엥……. 상촌이 저번에 나, 손잡아 줬쪄! 에에에엥. 징짜양…….”

손을 들어 올려 입을 가리고 예은을 바라보는 희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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