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1
#231. 그가 없는 세상(3)
희주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그날……. 도준과 마지막 나누었던 체팅을 보고 또 보며 울었다.
그런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을 테지만, 그녀는 그게 또 서러워 눈물이 났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도준의 꿈……. 이제껏 없던 음악, 새로운 메시지가 될지도 모를 음악을 만들겠다던 그의 꿈을 더는 응원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
자신을 향해 웃고, 팬들 향해 손을 흔들며, 기타 하나를 매고 정신없이 피크를 휘두르던 그 모습이.
아니, 그 정도까진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도준이 자신과 함께 손을 잡고 걸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족할 터였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벌써 일주일이 넘었지만, 도준은 도통 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래서야 의사로부터 뇌사 판정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테다.
물론 의식만 없다 뿐이지, 뇌파도 정상이고 혈압이며 장기도 아무 이상이 없기에 뇌사라고 할 순 없었다.
그럼에도,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걸 희주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다.
사람의 몸이란 게 그렇다.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근육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혈관까지도 자칫하면 막힌다.
정상적으로 먹고 운동하고 자고 노폐물을 배설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도준이 이대로 쭉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 누워만 있게 된다면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걸 알기에 희주는 오히려 힘을 낼 수 있었는지 모른다.
며칠째 방에서 나오지 않고 울기만 하던 그녀가 마침내 새장을 벗어나듯 방을 나온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도준이에겐 내가 필요해.’
그녀는 굳은 결심을 한 채 병실 앞까지 이르렀지만, 차마 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처음 도준이 쓰러지고 나서, 이틀 뒤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보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기에.
‘……난 물러서지 않아.’
그녀는 입술을 앙다물고, 작은 손을 말아쥐었다.
그러고 나서야 그녀는 문 손잡이를 돌릴 수 있었다.
“도준아, 나 왔…….”
도준이가 의식이 없는 상태인지라 듣지 못할 거라는 걸 알지만, 그럼에도 애써 웃으면서 쾌활하게 말하며 들어서던 그녀가 멈칫했다.
작은 키에 늙수그레한 의사 한 명이 뒷짐을 진 채, 침대 위의 도준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안녕하세요. 혹시 진료 중이신가요?”
“아니오. 난 볼일 다 봤으니, 들어와도 좋소.”
그렇게 말하곤 나이 지긋한 의사는 그녀에게 옅은 미소 한줄기만을 남겨놓고 돌아섰다.
의사가 나가고 나자, 희주는 도준에게 다가서다가 흠칫하고 말았다.
의사의 가운에 이름표가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잘못 본 거겠지.’
그녀가 알기로 어떤 의료진도 이름표를 달지 않고선 대학병원에서 근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여기선 그랬다.
S그룹 산하, 할아버지가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곳에서는.
희주는 이내 잡생각을 떨쳐버리고 도준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이내 멈칫했다.
그제야 병실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방안에 가득한 화분들.
누군가 놓고 간 커다란 액자가 보였고, 그 안에는 도준의 공연하는 모습과 평상시 사진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쾌유를 비는 글들이 적힌 엽서나 편지 등이 즐비하다.
그것도 전 세계에서 온 것들이었다.
그중에는 한국은 말할 것도 없고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을 비롯해 이름도 생소한 나라에서 온 편지들도 있었고, 특히 중국의 팬들이 보내온 편지는 수백 통에 이르렀다.
레이크헬을 비롯해 도준과 친분이 있는 가수들, 오프라 완다와 마가렛 헤라시오네, 티아라와 사이몬 그리고 에단 3인방 등 줄리아드에서 잠시나마 함께 시간을 가졌던 이들이 보내온 카드들도 보였다.
그 사이에 앙증맞게 놓인 카드도.
꼭 일어나실 거라 믿어요!
삐뚤삐뚤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한국어로 쓰인 리노의 글귀였다.
희주는 편지와 카드들을 떨리는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하나같이 도준가 어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기를 비는, 진심 어린 말들이 적혀 있다.
그 편지와 카드들이 꽃다발 속에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만일 여기가 병실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환자에게 혹여라도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었다면 몇 송이의 꽃이 아니라 수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꽃들이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을 거 같았다.
더욱 놀라운 건, 중국의 사진 타오 주석이 직접 보내온 화분이었다.
请再次听到你的歌. (부디 그대의 노래를 다시 들을 수 있기를.)
짧게 쓰인 문장이었지만, 희주는 가슴이 북받치는 느낌과 함께 말했다.
음성은 촉촉했고, 잔잔히 떨리고 있었다.
“도준아, 봐봐. 다들…네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어. 그러니까……흑.”
희주는 천천히 병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떨리는 손을 뻗어 그의 뺨을 만져갔다.
***
병실을 나온 의사, 노인은 걸음을 빠르게 걸어 복도를 빠져나갔다.
그 와중에 숱한 의료진들을 만났지만, 누구 하나 그를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여기 이 병원에서 누구도 그를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음에도 마주치는 이들은 조금도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고, 한번 보고 돌아선 뒤엔 기억에조차 남지 않는 얼굴이었으니까.
당연히 직급이나 이름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였다.
“깨진 그릇을 이어붙이는 게 어려우면…….”
엘리베이터 앞에 이르러 중얼거리던 노인은 문이 열리자 반대로 내리고 있던 간호사와 교차하며 마저 말했다.
“아예 깨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란 걸 말해줄 걸 그랬나?”
문이 닫히는 순간, 간호사가 뒤를 돌아보며 한차례 고개를 갸웃하고 사라졌을 때, 아래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노인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뭐, 그건 지난번에도 말해줬으니……. 기억해내는 것도 그 아이의 몫일 테지.”
띵!
1층까지 내려간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고 문이 열렸을 때, 안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
이만 가네…라고 말하곤 사라져 버린 노인을 떠올리며 난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은 채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와, 진짜!”
노래방 때랑 어쩜 이렇게 똑같냐?
결국, 노인은 자기 할 말만 하고 사라진 거잖아.
그래도 그때는 코인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해보니, 어떤 면에선 지금이 나을 수도 있겠구나.
뭐든지 원하는 걸 떠올리면 떡하니 눈앞에 생겨나니까.
그럼 보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면……. 나타날 리가 없지.
그렇다면 핸드폰은? 그래, 그게 되면 여기가 천국일 테지.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TV도 안 되겠지?
뭐, 생겨나긴 하는데 깡통이나 마찬가지다.
모양만 똑같지, 작동을 안 하니까.
결국, 불러올 수 있는 건 한정되어 있다는 건데…….
그래도 다행인 건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 않다는 것 정도?
그럼 심심한 건 어쩌고?
아, 젠장!
지금 그게 문제냐!
50년이라잖아! 50년!
그 안에 못 나가면 끝이다.
아니, 그전에 50년씩이나 여기 있을 순 없지!
그때 돼서 나간들 내 나이가 몇이냐? 다른 사람들은 시집장가가서 애 낳고 잘사는데, 나만 여기 처박혀서 좋은 시절 다 보내고, 죽자고 나갈 방도만 찾고 있으라고?
후우, 그 정도 시간이면 예은이가 다 커서 우리 어머니보다 나이가…….
그러고 보니까, 그때쯤엔 부모님께서 안 계실 수도 있겠구나!
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우울해지네.
더불어 화도 나고.
“후우! 릴렉스! 릴렉스! 김도준! 이럴 때일수록 진정하고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리는……. 으아아악! 이게 뭔 꼴이냐고오오오오!”
***
그래도 노래방 때보다 확실히 좋은 게 한가진 있다.
바로 날짜를 헤아릴 수 있다는 것.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다.
바를 정(正)자를 써가며 날짜를 헤아린 지도 벌써 한 달.
밖은 이미 한여름일 테다.
하아, 밖이라고 하니까 진짜 여기가 어딘가의 안인 거 같네.
아, 안 맞나?
내 무의식의 안.
그럼 지금의 난 뭐지?
신체도 없는 난 영령? 심령? 귀신? 뭐 그런 건가?
몰라, 몰라. 그런 것까지 생각하기엔 머리가 너무 아프다.
것보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몰두하는 게 백배 낫다.
“어쩐다?”
긍정적인 마인드.
그리고 이타심.
이게 지금의 상황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란 건 알겠다.
긍정적인 마인드는 지금의 내가 미치지 않기 위해 필요한 요소고, 문제 해결을 위해 실제로 필요한 건 이타심이란 건데…….
그 이타심이 어떤 면에선 결정적인 역할을 해줄 거란 것도 알겠다.
문제는…….
이걸 이제 와서 깨져버린 그릇을 다시 붙이는데 써먹을 만큼 모은다는 건 불가능하단 거다.
당연하지 않냐고.
여기서 벗어나 의식을 차려야 남을 돕든, 남을 위하든 할 거 아니냐고.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와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아쉬워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고.
그럼 현재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 즉 그동안 이타심이 만들어낸 에너지를 가지고 음의 시공간을 어떻게 복구하느냐인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는 거지.”
일단 음의 시공간을 불러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악기를 불러낼 것도 없이, 그저 노래 한 소절만 불러도 바로 눈앞에 펼쳐지니까.
다만…….
깨진 부위가 어마어마하다.
도저히 손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다는 게 바로 느껴진다.
눈에 보이진 않지만, 딱 봐도 잘못 건드렸다간 와장창 부서져 버릴 것만 같다.
굳이 설명하자면 수백 개의 금이 가있는 유리그릇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왕 비유한 김에 한 번 더 하자면, 내가 생각한 방법은 두 가지.
유리를 고열에 녹여 다시 굳히듯, 그릇 자체를 통째로 재구성하는 방법과 이타심이란 아직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종의 에너지를 가지고 금 간 곳을 이어붙이는 방법이 있겠다.
어느 쪽이든 엄두가 안 나는 건 마찬가지.
재구성하는 건 방법 자체도 모르겠거니와 설사 안다고 해도 그 자체로 두렵다.
자칫 실수라도 해서 그릇이 통째로 박살 나기라도 하면 그걸로 끝일 테니까.
반면 금 간 곳을 보수하는 방법은 나쁘지 않은 거 같지만…….
젠장! 그러니까 이놈의 이타심인지 뭔지, 그게 어디 있는 거냐고!
그걸 알아야 뭘 어떻게든 할 텐데, 지난 한 달간 아무리 음의 시공간을 펼쳐내도 도무지 찾지 못하겠다.
“좀 쉬자. 이러다간 내가 먼저 죽겠다.”
진짜 기가 막힌 건, 무의식 안에 있는 주제에 이놈의 몸뚱이(?)는 밖에 있을 때랑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먹고 싸는 것만 빼면 말이다.
하루 24시간, 그중 16시간 정도는 깨어 있어도 무방. 하지만, 일정 시간은 잠을 자야 한다. 거기다가 운동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몸이 굳는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그냥 안다. 시험 삼아 한 일주일 정도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 위에서 굴러다녔더니 몸이 굳는 느낌이더라.
잠도 그렇다.
처음엔 힘든 줄도 모르고, 아니 현재 내가 맞닥뜨린 상황이 하도 기가 막혀서 한 사흘 정도 잠도 안 자고 고민했더니 당장 몸에 무리가 왔었다.
온몸이 안 쑤신 데가 없고, 머리가 멍해지는 게 몸살 걸린 것처럼 몸이 무거워졌었다.
그 후론 이렇게 적시에 쉬고, 적시에 운동하면서 몸을 재충전하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 중이다.
“우선 한숨 자고 나서 다시 고민해보자.”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제기랄! 현실 세계도 아닌데 잠은 잘만 오네.
눈을 감자 마자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졸음이 쏟아졌다.
***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사의 얘기를 들으며 가족들은 희색이 만연했다.
그럴 수밖에.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도준이지만,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는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지만, 정작 현실적인 문제가 그들을 괴롭히는 중이었다.
돈?
당연히 아니다.
일단 이 병원의 재단 자체가 S그룹 소유인데다가 설사 병원비가 필요하더라도 그동안 도준이 벌어놓은 게 있는지라 조금도 부담되지 않았다.
뭐,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앨범과 음원이 팔리고 있으니 경제적으론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것보다는 도준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처음에 의사들이 말했던 것처럼 갈수록 그의 몸이 쇠약해질 거라는 것.
그게 문제였던 것.
하지만, 지금 의사는 달리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체중 변화도 없고, 근육도 딱히 소실되는 게 없다는 말씀이신 거죠?”
“맞습니다.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인데……. 큼, 아무튼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환자분의 상태가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러니, 다들 포기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의사의 얘기에 어머닌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눈물을 흘리셨고, 희주는 도준이 옆에 꼭 붙어 앉아 훌쩍거리고 있었다.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
말만 안 했다 뿐이지 모두 같은 심정이었다.
언젠가는 자신들의 곁으로 도준이 돌아오리라고 굳게 믿으며 슬픔을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였다.
“꺄르르르르. 까아!”
소연의 품에 안겨 있던 예은이만이 아무것도 모르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도준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었다.
“삼촌이야, 삼촌.”
소연은 애써 눈물을 참으며 예은이를 도준에게 가까이 데려갔다.
그러자 예은은 마치 말귀라도 알아듣는 듯 고사리 같은 손을 뻗쳐 도준의 뺨을 가볍게 토닥거렸다.
“꺄아아아! 꺄아아!”
“그래. 삼촌도 예은이 보고 싶대. 응. 그래. 곧 일어날 거야.”
그렇게 잠시 예은이가 삼촌인 도준에게 장난 아닌 장난을 치고 난 뒤였다.
“감사합니다.”
“우리 도준이 잘 좀 부탁 드릴게요.”
“저희야 최선을 다할 뿐이죠.”
모두가 의사를 따라 병실 밖까지 나왔을 때였다.
파르르르.
도준의 눈가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봤는지 예은이가 또다시 까르르거렸지만,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의사가 간 후에 다들 돌아왔을 땐 이미 도준의 눈꺼풀은 더 이상 떨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