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30화 (230/260)

# 230

#230. 그가 없는 세상(2)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반면 말은 나오질 않고 있었고.

짧은 순간에 하도 많은 생각이 떠오르다 보니 뭐라고 물어야 할지 몰라서였다.

피식.

노인이 웃는 걸 보니, 왠지 부아가 치민다.

어째 지금 이 상황이 전부 그의 탓인 것 같아서.

“아, 진짜! 지금 웃음이 나옵니까!”

울화가 터져서 외친 소리에 노인이 빙글빙글 웃기만 한다.

열불이 나서 재차 고함쳤다.

“이거 영감님 짓이죠!”

의심이 아니다.

확신이었다.

왜냐?

전적이 있으니까.

당연히 노인의 술수에 놀아나 또다시 어딘가에 갇힌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닌 것이다.

한데, 노인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날 빤히 쳐다만 본다.

여전히 입가엔 미소를 머금은 채로.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불길이 이는 기분이라, 다시 한 번 소리치려는 순간이었다.

노인이 불쑥 물었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느냐?”

알면 내가 묻겠냐고, 이 영감탱이야!

“고 녀석, 말본새하곤. 어째 안 본 사이에 버르장머리가 더 고약해졌누?”

응? 설마 내 생각을…….

픽하고 웃는 모습을 보니 맞나 보다.

아놔. 옛말에도 안 보이는 데선 나라님 욕도 한다는데.

까짓 머릿속으로 좀 투덜거릴 수도 있는 거지.

“네 말이 맞다. 까짓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난 이만 가마.”

어?

간다고?

아 진짜!

그냥 가면 난 어쩌라고!

최소한 날 여기서 꺼내주던가, 그것도 아니면 뭔 방법이라도 알려주고…….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난 재빨리 노인 앞을 막아섰다.

그러곤 애써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우리 사이에 왜 그러세요.”

“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데?”

“그야…….”

미친다.

또 말려들 뻔했다.

난 정신을 바짝 차리곤 노인을 바라보았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심각한 표정으로.

“장난 그만 치시고요. 그래서 여기가 어딘데요?”

날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인이 간단하게 내뱉었다.

“무의식 안.”

“예?”

듣기는 들었는데, 이해 불가다.

어디?

무의식 안?

누구?

설마 나?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그럼 현실에서의 전 의식불명 상태겠군요?”

“호오. 여전히 머리는 잘 굴러가는구나.”

내가 돌머리가 아니란 것쯤은 나도 안다.

그런 칭찬은 지금의 상황을 타파하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도.

것보다는,

“왜 이렇게 된 거죠?”

머릿속에 떠오른 수많은 질문 중에 가장 근본적인 걸 물었다.

노인이 재밌다는 듯 말했다.

“용케 요점은 제대로 짚는구나.”

“이런 위기 상황에 그 정돈 당연한 거죠.”

노인은 끌끌 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당연하다는 듯 의자가 생겨나며 바닥에 널브러지는 꼴은 면하고 있었고.

“별거 있겠느냐? 네가 짐작하는 대로지.”

“……쓰러진 거군요.”

“알면서 뭐하러 묻는 거냐?”

“확인이죠.”

“그래. 확인했으니, 이제 어쩔 테냐?”

“어쩌긴요. 여기서 나가야죠.”

내가 말해놓고도 묘한 느낌이다.

노인의 말에 따르면 여긴 내 무의식 안인데, 여기서 나간다라…….

참네, 꼭 갇히면 절대 못 빠져나올 천해의 고도에 갇혀서 탈출을 계획하는 것 같네.

“그런 거 같은 게 아니라 딱 그런 거다.”

“예?”

“아, 어린놈이 벌써 귓구멍이 막힌 거냐? 한번 말하면 재깍재깍 알아들을 것이지. 잘 들어라, 이놈아. 그냥 놔둬도 알아서 잘 나갈 거 같으면 내가 여기 뭐하러 왔겠느냐? 자칫하면 평생 여기서 나가지도 못하고 헤맬 것 같으니 온 게지.”

뭔 소린지 모르겠다.

현실에서 깨어나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나가고 못 나가고가 어딨단 말인지.

혹시…….

“제가 어디 다치기라도 한 건가요?”

노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쳤지.”

“……?”

“몸이 아니라 마음이. 정확히는 심상에 커다란 문제가 생겼다.”

딱히 뭐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렇게 한번 일어난 불씨는 금세 불꽃을 피워내며 불길로 타올랐다.

그러곤 설마 하는 마음이 커져만 간다.

에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이, 씨! 아니어야 하는데!

차마 묻지 못하고 인상을 팍 구기고 있자, 노인이 혀를 차며 대놓고 말해버린다.

“예전에 말했지 않느냐? 그릇이 문제라고.”

진짜 돌겠네.

기어이 그놈의 그릇이 이런 사달을 일으키는구나.

한숨을 폭 내쉬자, 노인이 날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았다.

“잘하고 있기에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가능하겠다 싶었더니만. 역시 세상사가 만만치 않은 게지. 하필이면 그때 폭발이 일어날 건 또 뭐람.”

“…….”

“네놈은 음의 시공간이네 뭐네 하면서 부르는 모양이다만, 어떻게 이름을 붙였든 간에 확실한 건 거의 성공할 뻔했던 그릇의 확장이 단 한 번의 실수로 박살이 날 지경에 이르렀다.”

난 멍하니 노인을 바라보다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요! 아니, 그전에 왜 그렇게 된 건데요?”

“숨넘어가겠다, 이놈아.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죽자고 덤벼드는 건지.”

다시 한 번 혀를 차고는 노인이 날 쳐다보며 말해준다.

“사람마다 그릇의 크기도 다르고, 그 안에 채울 수 있는 감정도 다른 법이다. 굳이 얘기하자면, 네 경우엔 희망과 애정 따위의 긍정적인 에너지라고 할 수 있겠지.”

노인은 다리가 아픈 건지, 아니며 습관인지 주먹으로 가볍게 무릎을 두들기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야 한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바짝 귀를 기울인 상태였고.

“한데, 이번에 폭발이 일어나며 네 그릇을 파고든 것은 지극히 부정적인 감정들, 그중에서도 공포와 좌절, 그리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따위였다. 뭐, 사실 그런 감정들이야 살면서 늘상 마주치는 것이니 별 문제가 안 된다마는, 하필 네 그릇이 한껏 확장되기 시작해 가장 방어력이 약해져 있을 때 그런 일이 생겼다는 게 문제지.”

“그러니까, 뭐에요. 모처럼 기회를 맞아서 그동안 징그럽게도 안 커지던 그릇이 막 커지려는 찰나…….”

“그렇지. 제대로 한 방 맞은 거지.”

아놔! 뭐 이런…….

“제가 재수가 없는 겁니까? 아니면 세상 일이 원래 이런 겁니까?”

“글쎄다. 둘 다 아닐까?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불행이란 단어 자체가 왜 있겠느냐?”

“아, 진짜! 절 도와주러 오신 거에요? 아니면 복장 터지게 하려고 오신 거에요?”

“이놈이! 기껏 말해주러 온 사람보고!”

“……죄송해요. 화가 나는 바람에.”

아무리 흥분했다곤 하지만, 지금으로선 믿을 사람이 노인밖에 없다는 걸 모르지도 않거니와, 실제로도 내게 도움을 주러 온 사람한테 너무 무례하게 굴었다는 생각에 곧바로 사과했다.

그러자 노인이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나마 너니까, 가능하겠지.”

“예?”

“솔직히 말하자면, 네가 그릇을 키울 수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굳이 얘기하면 성공확률은 1% 미만. 한데, 봐라. 네놈은 기어코 그릇을 확장시켰다. 그 이유가 뭐겠느냐?”

다른 때 같으면 ‘잘생겨서?’ 따위의 농담을 하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난 곰곰이 생각하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긍정적이어서?”

“흥. 그런 모호한 말로 때우기엔 사안이 너무 크단 생각이 들지 않느냐?”

“그럼, 역시 잘…….”

“쯧, 아직 살만한가 보구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라 할 말이 없어서.

노인이 말한 그 이유란 것도 모르겠고, 갑자기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져서였다.

아니, 사는 게 뭐 이래?

노래방에서 나온 지 2년하고 조금 더 되었을 뿐이다.

근데 뭔 인생이 이렇게 다이나믹하냐고.

그릇을 안 키우면 죽는다기에 시한부 인생을 사는 심정으로 버티고 버텨 간신히 그릇을 키울 수 있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그런 일이 벌어져서 또다시 이런 꼴이 되었다고?

운명의 신이 있다면 확 그냥 달려들어서 멱살잡이라도 할 판이다.

노인은 픽하고 웃더니 중얼거렸다.

“그 말은 꼭 전해주마.”

“예?”

“아니다. 그건 그렇고. 아직도 모르겠느냐?”

날 물끄러미 쳐다보는 노인.

빨리 대답하라는 눈빛이었지만, 뭘 알아야 대답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난 고개를 내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노인이 다시금 혀를 차며 말했다.

“제 놈 속도 모르는 놈이 누굴 위해 노래를 하겠다고. 하긴, 이런 놈이니 그럴 수 있는 건가?”

이렇게 얘기한 노인이 날 보며 차분한 어조로 얘기했다.

“이타적이기 때문이다.”

“…….”

지금 내가 무슨 얘기를 들은 거지?

누가 이타적이라고?

“제가요?”

“크크큭. 그래, 네놈은 그런 놈이지. 겉으로는 몹시 냉정해 보이고, 아니 이것도 그렇게 보이려는 방어기제겠지만, 아무튼 겉모습과 달리 네놈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알지. 아니, 정확히는 그게 느껴지는 거겠지. 다른 사람의 마음이. 그러니 어쩌겠느냐? 어쩌다 보면 어느새 누군가의 힘이 되어주려고 애쓰고 있는 것을.”

헐. 살다 살다 별소리를 다 들어본다.

외할아버지의 피를 고스란히 옮겨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 나인데, 누굴 돕고자 한다고? 그것도 매번?

기가 막혀서 난 노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노인이 되묻는다.

“왜 아닌 것 같으냐? 그럼 그땐 왜 그랬느냐? 네놈 회사 앞에 팬들이 진 치고 있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나선 이유가 뭐더냐? 그리고 공항에서 늦은 밤까지 널 기다린 팬들은? 기껏 휴양지에 놀러 가서는 리노에게 따스하게 대해준 것은? 뿐만 아니라 네놈 주위 사람들한테 여차하면 기회를 준 것은? 네놈 형의 결혼식 때도 그렇고, 김도준 앱을 통한 기부는? 그리고 이번에 월드 투어를 하면서 벵가지를 가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 중국에서의 일도 있겠구나. 돌이켜보면 위험천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 보자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지. 네놈이 그렇게나 되기 싫어하는 호구 짓인 게고. 아니더냐?”

와, 노인네 기억력도 좋지.

그걸 다 기억하고 있네.

뿐만 아니라 조목조목 따져오니까 뭐라 할 말이 없다.

근데, 진짜 듣고 보니까, 딱 호구 잡히기 좋은 성격이네. 나란 놈은.

하아, 내가 호구였다니.

칭찬을 하는 것 같은데, 이걸 진짜 칭찬으로 들어도 되는 건지.

갑자기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묘한 기분도 들어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을 때였다.

“칭찬 맞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네 경우엔 정말이지 칭찬받아 마땅하지. 암, 그렇고말고. 그건 이번 경우를 보면 답이 나오는 거 아니겠느냐? 그동안 쌓이고 쌓인 이타적인 감정들이 끝내 터진 거라고 할 수 있는 게야. 이번에 시리아 난민들을 위한 콘서트를 하면서 말이지.”

참네, 노인의 말대로라면,

“……천사네요. 천사. 호구천사.”

“비아냥거릴 거 없다. 쑥스러워할 것도 없고. 그 덕분에 네놈이 간신히 살아남은 거니까.”

“예?”

“원래 이 정도 타격이었으면 죽어도 벌써 죽었다. 한데, 살았지 않느냐? 그게 왜일 거 같으냐? 그동안 네가 남들을 도우며, 혹은 누군가를 생각하며 얻어온 감정들이 붕괴 직전의 네놈 의식을 강제로 잡아주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 잘 생각해라. 네놈이 살 방도 역시 거기에 있으니.”

흠, 너무 추상적인 거 아닌가?

나로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제대로, 정확하게 물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저더러 여기서 자선 콘서트라도 하라고요?”

“방법이야 네가 생각해봐야겠지. 단,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만 알아두어라.”

시간…….

그래, 뭐든 시간이 문제다.

방법도 방법이지만, 노래방에서처럼 천 년씩 걸린다면 그전에 내 육체는 늙다 못해서 썩어서 뼈마저 삭아 흙으로 돌아가게 될 테니까.

“얼마나 주어졌는데요? 그 시간이라는 거.”

노인은 별스럽지 않다는 듯 말했다.

“네 육체가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한숨밖에 안 나온다.

“하, 미치겠네.”

눈살을 찌푸리며 노인을 보다가 되물었다.

“그래서 그게 얼만데요?”

노인이 싱긋이 웃었다.

그러곤 한 손을 활짝 폈다.

“설마 5일?”

다음 이어진 말에 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50년.”

“에? 얼마요?”

“그 이상은 무리다.”

자, 장난하나?

지금 그 안에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면 끝장난다는 거야? 아니면 못해도 그 정도 시간은 걸릴 거라고 못을 박는 거야?

어느 쪽이 되었든, 협박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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