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29화 (229/260)

# 229

#229. 그가 없는 세상(1)

세상이 발칵 뒤집혔다.

콘서트 도중 터진 폭탄.

그것도 자선 공연 중 폭탄이 터졌다.

뿐만 아니다.

테러가 일어난 곳은 뉴욕 시티필드 스타디움만이 아니었다.

파리, 런던, 마드리드, 로마, 도쿄, 서울, 그리고 이스탄불과 모스크바까지. 테러 시도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중 절반이 사전에 발각되거나 불발되어 실패로 돌아갔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머지 반은 폭탄이 터지며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중에서도 특히 도쿄의 모 백화점에서 터진 폭발로 인해 무려 200명도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알자지라를 통해 IS의 즉각적인 성명이 발표되었다.

화면에는 각지에서 터진 테러 장면이 고스란히 보이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테러범들 말고도 영상을 찍는 이들이 따로 있었다는 얘기다.

정말이지 치가 떨릴 만큼 치밀하고 또 교활한 술책이 아닐 수 없었다.

- 지금 당장 IS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의 전사들은 서방국가에 대한 응징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응징이라니!

말 그대로 테러를 뜻하는 협박에 모든 이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시리아 난민을 돕기 위해 자선 공연 중이던 시티필드 스타디움에 대한 테러는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자선공연장에서 폭탄을 터뜨린 것은 악마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잘못된 신념이 어디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이번 테러로 전 세계적으로 사망자만 123명. 중상자도 수백 명에 달해.]

[뉴욕 시티필드 공연장에서 울린 비명. 32명의 사상자 발생. 그나마 주최 측의 발 빠른 대처로 2차 피해 막아.]

[김도준 의식 불명.]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 공연 중 터진 테러 장소에서 김도준은 멀찍이 떨어져 있었던 걸로 말해.]

세계가 들끓고 있었다.

곳곳에서 규탄이 줄을 이었다.

테러가 일어난 곳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 외의 지역에서도 사람들이 쏟아져나와 피켓을 들고 가두시위를 벌였다.

물론 평화시위였지만, 얼마만큼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고 할 수 있었다.

그건 온라인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테러로 인해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빌며 다친 이들이 무사히 쾌유하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도준의 팬들은 말 그대로 충격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 어떡해요! 우리 주니 오빠…….

- 진짜 미친놈들 아냐? 왜 거기서 폭탄을 터뜨리냐고!

- 이슈가 되니까요. 당시 사람들의 이목이 가장 많이 쏠린 곳이었고.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악마도 그렇게는 못하겠네요! 어떻게 자선공연을 하고 있는데, 폭탄을 터뜨려요!

- 관종도 뭣도 아니다. 그냥 놈들은 정신병자들이야.

- 근데, 왜 김도준이 쓰러진 거지? 몇 번이나 영상을 봤는데, 김도준이 있던 무대하곤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던데?

- 잘은 모르겠는데, 의사들 소견으로는 정신적인 충격과 함께 심장마비가 온 게 아닌가 싶다네요.

- 하긴, 그럴 만도 하죠. 김도준이 팬들을 얼마나 챙기는지는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니까.

- 그래도 조금 이상하긴 해요. 그 정도 충격에 아직도 의식불명상태라는 건…….

의혹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도준이 쓰러진 게 없었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황당한 건 그동안 도준을 고깝게 보고 있던 이들은 때는 이때하곤 기회를 틈탄 자작쇼라는 둥 헛소리를 지껄였지만, 전 세계적으로 비난이 쏟아지자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자취를 감췄다.

“버러지 같은 놈들!”

노준영은 이를 박박 갈아대며 들고 있던 핸드폰을 탁자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진짜 너무들 하는 거 같아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씨크릿걸즈의 현아가 거칠게 소리치자, 노준영이 한층 더 인상을 쓰며 씨근덕거렸다.

“이러니 사람들이 갈수록 자기만 생각하게 되는 거지. 좋은 일 한다고 나섰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다 자기 손해니까. 젠장! 도준이가 그동안 어떻게 했는데…….”

참지 못하겠던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노준영이 화를 못 참겠던지 한쪽 벽에 세워져 있던 자판기를 발로 걷어차려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찬다고 부서지겠냐? 창고에 가면 망치 있으니까, 그걸로 치던가.”

“아, 고 팀장님!”

“마루 언니!”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에 노준영은 물론이고 씨크릿걸즈 멤버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도준이는요?”

“아직 안 깨어났어요?”

“괜찮은 거죠? 그렇죠? 그런 거죠?”

어떻게든 괜찮다는 말을 듣고 말겠다는 듯 매달리는 그들을 조마루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술을 살짝 깨문 그녀가 시선을 돌려 그들의 눈길을 피했다.

언제나처럼 난감한 역할을 떠맡는 건 고 팀장이었다.

그는 고개를 무겁게 내저으며 말했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는구나.”

모두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느새 팀의 막내이자, 가장 여린 심성을 지닌 지연, 아니 이젠 자신의 본명을 쓰기 시작한 고주연의 눈에선 눈물이 차오르다 넘쳐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휴게실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것은 금방이었다.

***

뚜우……뚜우……뚜우…….

흑백의 스크린에 포물선이 이어지는 가운데, 규칙적인 기계음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다행히 맥박도 정상이고 뇌손상도 없습니다. 다른 장기들도 전혀 이상이 없고요.”

의학적으로야 좀 더 복잡할 테지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검사 결과를 말해주는 의사의 소견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전혀 이상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왜 아직 안 깨어나는 건데요!”

민준의 외침에 의사는 뭐라 할 말이 없는 듯 보였다.

하긴, 벌써 며칠째 같은 일이 반복되는 중이었으니까.

검사만 세 번째였다.

그것도 매번 정밀검사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까지 옮겨가며 최첨단 의료기기를 다 동원했고, 나름 외과 쪽으로 유명하다는 의사들은 죄다 불러다가 검사했다.

S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은 결과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준은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였다.

원인도 밝혀내지 못했고.

그러니 답답하긴 의사들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사실 보호자들에겐 말하지 못하고 있지만, 애당초 이런 환자가 있다는 게 의아할 따름이었다.

오죽하면 학술적으로 희귀 사례로 분류하고 연구하려는 의사들까지 있을까.

쓰러질 때의 정황이나, 그 후의 신체 상태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는 상황. 그렇다고 뇌혈관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벼운 뇌진탕조차 일어나지 않은 걸로 밝혀졌다.

더 황당한 건, 도준이 쓰러진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이번에 알게 된 일이었는데 뉴욕에 머무를 당시 도준이 쓰러진 적이 있었고 그때도 지금처럼 원인불명이었다고.

스트레스와 과로라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사실상 의학적으로 보자면 원인불명으로 치부될 원인으로 쓰러졌었다…라는 게 당시 의사의 소견이었고, 지금에 와선 그조차도 신빙성이라곤 1%도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저희도 원인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조만간 이유를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다들 진정하시고…….”

장황하게 이어지려는 의사의 설명에 민준이 입술을 짓씹고는 되물었다.

“그러다 못 찾으면요?”

“그, 그건…….”

“선생님들한테 책임이 없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저희 마음도 헤아려주십시오. 말 돌리지 마시고 제대로 얘기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지금으로선 저희로서도 손쓸 방도가 없습니다. 자연적으로 깨어나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대로라면…….”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의사의 얼굴에 안타까운 기색이 흐르는 순간이었다.

“아……!”

“어, 어머님!”

크게 휘청하곤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어머니를 민준의 처인 소연이 얼른 붙잡지 않았으면 진짜 큰일 날뻔했다.

“간호사! 간호사!”

의식을 잃고 쓰러진 어머닐 보곤 의사가 황급히 의료진들을 부르며 민준과 함께 보조 침대에 눕히는 걸 보면서 도준의 아버진 고개를 쳐든 채 눈을 감고 말았다.

***

언젠가 들어본 얘기다.

정신병원에 오래 있다 보면, 정상적인 사람도 미치기 일쑤라고.

그 얘길 들었을 땐 그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해서 웃고 말았더랬는데…….

아, 진짜 미치겠다.

차라리 병원이 낫지.

이건 뭐…….

내가 앉아 있는 곳을 제외하면 온통 세상이 하얗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어딜 둘러봐도 하얗기만 하다.

게다가 그 끝을 알 수 없는 경계, 이게 지금 제대로 된 설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방으로 지평선이 보인다.

대체 얼마나 넓은 거야?

이것만 해도 돌아버릴 지경인데, 더 미치겠는 건 땅도 하늘도 모조리 하얀색이란 것이다.

그런데다가 진짜 웃긴 건, 내가 앉으려고 하면 떡하니 의자가 생겨난다는 것.

더 웃긴 건?

눕겠다고 마음먹고 누우면 침대가 생겨난다는 거지.

이쯤 되면 내가 지금 제정신인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냐고.

생각해봐라.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공간, 그것도 끝도 시작도 알 수 없는 무지막지하게 넓은 공간에 혼자 내팽개쳐졌는데, 손만 내밀면 원하는 게 다 생겨난다.

책상도, 옷장도, 냉장고도. 심지어는 악보와 연필도 얼마든지 생겨난다는 거다.

어디 그뿐인가.

악기들도 마음만 먹으면 원 없이 칠 수 있다.

며칠간의 실험 아닌 실험 끝에 알 수 있었던 건…….

내가 심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건 모조리 만들어내고(?) 사용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근데, 딱 거기까지다.

다 좋은데, 여길 나갈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내가 살아 있는 건지, 아니면 꿈을 꾸는 건지조차 불명확하다는 게 진짜 미칠 노릇.

이래서야 예전에 노래방에 갇혔을 때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을 게 조금도 없다.

아, 한가지는 그래도 나은가?

적어도 배가 고프진 않으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생리현상까지 포함해 생체적으론 아무런 활동도 안 해도 된다.

이걸 봐선, 현실이 아닌 거 같지만…….

쯧, 그것도 확신할 수가 없는 게, 천 년 노래방에 갇혔던 건 어디 정상인 일이었냐고?

젠장!

그래도 그땐 타임 루프란 걸 알 수나 있었지.

지금은 그마저도 확신할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겁난다.

지금 현실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만일에 하나지만, 여기가 꿈속이고 내가 정신을 잃은 상태라고 한다면…….

“후우! 다들 걱정하고 있을 텐데.”

모르긴 몰라도 우리 어머닌 지금쯤 쓰러지지 않으셨을까.

아버진 속으로 꾹꾹 눌러 참으며 끊으셨던 담배를 다시 피우시지 않을까 싶고.

형은…….

하아, 좀처럼 화를 안 내지만 한번 화나면 다 엎어버리는 성격인데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그 외에도…….

아저씬 또 어떠실지 모르겠다.

묵묵히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애써 참으시려나?

마루 누나야 남들 앞에선 웃고 떠들지만, 혼자 있을 땐 펑펑 울 테고…….

아우, 미쳐 내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분명 콘서트 도중이었고, 폭탄이 터진 건지 뭔지는 몰라도 폭발이 일어난 것까진 기억하는데…….

그 후론 기억이 뚝 끊겨버렸다.

“뭔 일이 벌어진 거야! 대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의자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그걸 보지도 않은 채 서성거리고 있을 때였다.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거냐?”

어?

뒤쪽에서 들려온 음성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여, 영감님!”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는 노인이 눈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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