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7
#227. 자선 공연(4)
공연 시작 한 시간 전.
세 시간이 넘도록 뉴욕 시티필드 스타디움 주차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통제하느라 진이 빠진 통제요원들에게 일제히 전달된 지시.
- 치이이익……. 지금부터 관객들 입장시킵니다.
무전기를 통해 통제본부로부터 시달된 지시사항에 보안요원들은 이제 살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럴 수밖에.
주차장이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가득한 인파.
어둠으로 물들기 시작한 하늘에는 방송국에서 띄운 헬기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끊임없이 함성과 노래를 반복하고 있는 사람들의 극성에 치를 떨던 그들이다.
그 때문에 주차장 한쪽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뉴욕시의 경찰들이 늘어서 있었고, 다섯 대나 되는 구급차까지 대기 중이었다.
“후우, 이제야 끝나는 건가?”
“그러게. 일 끝나고 맥주나 한잔…….”
입장을 허용한다는 방송과 함께 밀려들기 시작하는 관객들을 보면서 보안요원들이 슬그머니 긴장의 끈을 놓으며 농담을 던지고 있을 때였다.
“뭔 소리야? 이제 시작이지. 정신들 차리고, 철저하게 통제해!”
언제 왔는지 보안팀장이 소리치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보안요원들이 다시금 긴장의 고삐를 당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만일에 하나지만, 오늘 저녁 작은 사고라도 터지면 전부 옷을 벗는 건 물론이고 앞으로 이 바닥에 절대로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 테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번 공연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만 무려 47명이었다. 참여 인원도 참여 인원이지만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욱더 기가 막히다.
밥 데일런을 비롯해 폴 매카트넌, 거기에 김도준까지.
심지어는 베델과 레이크헬까지 참여하는 초대형 공연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실수가 있어선 안 되는 엄청난 공연이었다.
내일 당장 실업자 신세가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1번 게이트 입장 시작합니다!”
“2번 게이트 입장 시작합니다!”
“3번 게이트…….”
정신을 바짝 차린 보안요원들이 무전을 통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보고하는 가운데 마침내 ‘SINGING FOR SYRIA’ 자선 공연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타다다다다다다다다.
공중에 떠서 공연장인 뉴욕 시티필드 스타디움 상공을 날고 있던 헬기에서 리포터가 고함친다.
- 지금 막 관객들의 입장이 시작되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이미 공연장 일대는 사만 명이 넘는 인파로 넘쳐나고 있으며, 흥분과 기대에 넘친 사람들의 함성과 노랫소리로 스타디움이 무너질 지경입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완전무장한 보안요원들이 뉴욕 시 경찰들과 공조해 철저한 보안태세를 이룬 가운데, 관객들이 각 게이트로 몰려드는 모습이 장관입니다. 이번 공연의 무대가 되는 뉴욕 시티필드 스타디움은 내셔널 리그팀인 뉴욕 메츠의 홈구장으로 원래 4만 석이 정원입니다만, 추가좌석까지 풀어서 오늘 저녁엔 4만 5천 석을 가득 채우게 될 예정으로…….
흥분했는지, 리포터의 목소리가 스타디움을 비추는 화면과 함께 미 전역으로 퍼져 나가는 방송을 타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다.
이미 방송 계약을 따낸 각국의 방송사들 역시 이번 공연을 실황 중계 중이며, 전 세계의 수없이 많은 이들이 TV 앞에 앉아서 곧 있으며 시작될 공연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와아, 사람 진짜 많네.”
“지금 잘 찍고 있는 거지?”
“크크큭. 걱정 붙들어 매지? 말했잖아? 오늘을 위해 마련한 카메라라고.”
“보안요원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에이, 뭘 또 그렇게까지. 요즘 같은 때에 뺏기라도 할까 봐?”
그렇긴 하다.
예전 같으면 공연 중에 카메라를 들고 설친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지만, 요즘은 어지간해선 눈감아주는 추세였다.
휴대전화기를 가지지 않은 이들이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대는 걸 일일이 막을 수도 없는데다가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유투븐에 올라가는 영상들이 실시간으로 인기를 끌면서 어떤 면에선 이슈몰이를 해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또 다른 문제라는 걸 그들이라고 모르진 않았다.
“오늘, 30배 줌이라 그런가 제대로인데?”
“저쪽으로 한번 잡아봐! 그렇지. 무대 뒤쪽……. 오케이. 좋네. 야아, 얼굴 주근깨까지 보이겠다!”
그들의 말대로다.
금발의 청년이 보안요원들의 시선을 피해 외투로 감싼 채 낄낄거리며 돌리고 있는 카메라의 화면에선 무대 위에서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있는 스탭들의 얼굴이 가득 찰 정도 잡히고 있었다.
그때였다.
부르르르.
웃고 떠들고 있던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그러곤 재빨리 확인하는 핸드폰.
- 상황은?
곱슬머리의 청년이 눈을 반짝이는가 싶더니 서둘러 답문자를 보냈다.
- 무사히 입장. 현재 촬영 중.
그러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또다시 낄낄거리는 그들이었다.
***
브라이언은 감격스럽다는 눈빛으로 공연장 내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강혁수가 다가와 차가운 아이스 커피를 내밀었다.
“그동안 고생했어.”
커피를 받아들며 브라이언이 고개를 내젓는다.
“뭘. 공연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긴 하지.”
두 사람이 나란히 선 채로 공연장을 바라본다.
그때, 뒤에서 조마루의 음성이 들려왔다.
“시리아 사태가 거의 끝나가는 거 같네요.”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강혁수가 말했다.
“그쪽도 큰일이긴 하지. IS의 근거지 점령이 거의 목전에 이르렀으니…….”
모르긴 몰라도 오늘 밤 안에, 어쩌면 한두 시간 안에 전쟁은 끝날 터였다.
솔직히 규모로 보나 전력으로 보나 전쟁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지경이지만.
IS가 제아무리 악명이 높은들, 러시아를 비롯해 강대국들이 대거 참전한 전쟁이었다. 무기도 우수했으며 병력도 수십 배가 넘는다. IS로선 이겨낼 재간이 없다.
한마디로 말하면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끝난 거나 진배없었달까.
“아이러니하군. 한쪽에선 전쟁 중인데, 또 한쪽에선 그로 인해 발생한 난민들을 돕기 위한 자선 공연이라니.”
“그래도 다행이지. 전쟁이 장기화되면 죽어나가는 건 아무 죄 없는 민간인들이니까.”
“그렇긴 한데…….”
걱정스러운 눈빛이 된 강혁수가 고개까지 내저으며 말했다.
“과연 IS가 이대로 물러날지 모르겠군.”
“왜? 놈들이 테러라도 일으킬까 봐?”
“글쎄…….”
“걱정 마. 그놈들 지금 내빼느라 정신없을 거야. 그리고 테러 문제는 다들 조심하고 있으니까. 봐, 오늘 우리도 보안 문제에 엄청 신경 썼잖아?”
“그럼 다행인데…….”
그렇게 두 사람이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뒤쪽에선 보안요원들로부터 현장 상황이 속속 전해지고 있었다.
- 7번 게이트 입장 완료. 이상 없습니다.
- 2번 게이트…….
슬슬 입장도 마무리 단계.
아직 공연까지는 30분 정도 남았지만, 이미 뜨겁게 달아오른 공연장을 보면서 브라이언이 돌아선 것도 그때였다.
“슬슬 준비시켜야겠군.”
그를 따라 유리창에서 떨어지는 강혁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대기실 안에서 공연 준비에 한창이던 레이크헬 멤버들을 보면서 나는 픽하고 웃고 말았다.
진짜 질긴 인연이다.
벌써 쟤들하고 몇 번이나 공연을 함께하는 건지.
처음 한국에서 저들을 만났을 때만 해도 이렇게 될 거라곤 조금도 상상치 못했었다.
하긴, 그땐 내가 음악을 할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때이니까.
까똑!
그때, 핸드폰이 방정맞은 소리를 내뱉는다.
희주다.
- 긴장돼?
피식.
--- 엄청.
까똑!
- 웅. 그럼 안 되는데, 역시 내가 갈 걸 그랬나?
--- 집안 행사 있다며?
- 그래도…….
토끼를 닮은 캐릭터가 안절부절못하며 몸을 꼬는 이모티콘이 화면에 떠오르는 걸 보면서 다시 한 번 웃고 말았다.
뒤이어 톡이 울리고.
- 집안일보단 네가 더 중요한 걸.
큭!
불시의 일격에 비틀거렸다.
온몸에 닭살이 돋으며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는 순간이었다.
“도준! 여기서 뭐 해? 응? 희주하고 채팅 중이야?”
뒤에서 갑작스레 들려온 제롬의 목소리.
화들짝 놀라 얼른 핸드폰부터 감추었다.
망할 자식!
기척이나 좀 내고 다닐 것이지.
후우, 만에 하나라도 이 자식한테 방금 온 톡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아우,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하다.
아마 사방팔방 떠들고 다니겠지.
장담하는데, 오늘 밤이 지나기 전에 다들 알게 될 거다.
밥 데일런을 비롯해 나를 제외한 46명의 아티스트들 뿐만 아니라 스탭들까지 몽땅.
하아, 저 자식은 뭐하러 한국어는 배워가지고…….
눈살을 찌푸리며, 호기심이 가득한 눈을 반짝이고 있는 제롬을 애써 무시했다.
그때였다.
부르르르.
전화가 걸려 온다.
응?
이번엔 어머니시네?
- 아들, 바쁘지?
“예. 이제 곧 공연 시작할 거 같아요.”
- 그래…….
어째 목소리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음성에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그래요?”
대답이 없다.
잠시 머뭇거리시던 어머닌 한숨과 함께 말씀하셨다.
- 그, 그게……. 어젯밤 꿈에 네 할아버지께서 나오셔서……. 후우, 새하얀 빛 속에서 네가 아버지랑 같이…….
“에이, 좋았겠네요. 외할아버지도 뵙고.”
뭔가 안 좋은 꿈이라도 꾸신 모양인데.
난 일부러 더 밝게 웃으며 얘기했다.
“제 걱정은 마세요.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돌아갈 테니까요.”
- ……그래도 조심하고. 알았지?
“예.”
- 사랑한다, 아들.
“저도요.”
전화를 끊고 나서 픽하고 웃고 말았다.
오늘따라 다들 왜 이러나?
하긴 요즘 IS 때문에 뒤숭숭하기도 하니까.
그래도 뭐, 별일 있겠어?
그리고 솔직히 여기가 무슨 백악관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도 아닌데 무슨…….
게다가 여기에 투입된 경찰들하고 한껏 무장한 보안요원들은 눈뜬장님인가?
“오히려 내가 문제지.”
한차례 고개를 내젓고 중얼거렸을 때였다.
“자! 다들 준비됐나요?”
문이 열리며 오프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 저녁, 이번 공연의 사회자로 나서준 그녀였다.
물론 무보수였다.
감사의 눈빛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 역시 나와 시선을 교환하곤 씨익하고 웃어 보인다.
“다들 프로그램대로 순서 지켜주시고요. 도준! 오프닝 잘 부탁해요. 제 소개 멋지게 부탁하고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아니, 잘 할거라고 믿기는 하는데 또다시 무대에 올라가자마자 기억이 끊길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크크큭. 첫 테이프 잘 끊어라, 오프닝 전문 싱어.”
“그러니까, 진짜 웃기지 않아? 왜 만날 도준이가 오프닝일까?”
“그야 현재로선 저 자식이 제일 인기가 많으니까 그렇지.”
글쎄다.
과연 그 이유 때문일까?
그렇게 따지면 예전에 내가 저 자식들보다 인기가 없었을 때는 왜 맨날 오프닝을 서야 했던 건데?
디알로를 비롯해 유진까지 낄낄거리며 날 놀려대는 걸 들으며 난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묻는 건 잊지 않았다.
“이거 전 세계로 방송되는 거지?”
“그렇지. 왜, 문제 있어?”
“아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짜 걱정이네.
공연이 끝나고 기억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건 둘째치고, 공연 중에 쓰러지거나 하면 안 될 텐데…….
진짜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입술을 살짝 짓씹으며 몸을 일으켰다.
스탭들이 들이닥치며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킴! 대기하세요! 10분 뒤에 무대로 올라갑니다!”
***
무대로 통하는 계단을 바라보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머릿속은 이미 하얗게 물든 상태.
가슴도 엄청 뛰고 있었고.
어떻게 매번 공연 때마다 이러는지.
늘 설렌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엔.
꾸욱, 꾹.
손을 강하게 쥐었다 폈다 하면서 흥분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오늘 공연의 하이라이트이며 타이틀이기도 한 ‘우리의 노래가 이 땅 위에(Our song is on this land)’는 제일 마지막에 부르기로 되어 있었다.
그전에는 47명의 싱어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한 곡씩 부르기로 되어 있었고.
그중에는 레이크헬과 같은 밴드들도 세팀이나 있었기에 공연 자체는 30번 남짓이지만 그것만 해도 세 시간이 넘는 엄청난 규모의 공연이었다.
그 공연의 포문을 여는 게 바로 나였다.
- 킴! 지금 올라갑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밖에서 들려오는 함성이 들리는 가운데, 나는 크게 들이쉰 숨을 길게 내뱉고선 계단에 발을 올렸다.
타다다다닥.
가볍게 뛰듯이 단번에 계단을 올랐다.
화아아아아악!
강렬한 조명이 비추는 가운데, 무대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응?
뭐지?
이 느낌은?
아까부터 활성화되어 있는 음의 시공간은 여전한데, 어째 이제까지와는 느낌이 다르달까.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엄청난 환호가 스타디움을 뒤흔드는 가운데, 난 무대 한가운데로 걸어나갔다.
그러면서 느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함성 속에서.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느낌의 뜨거운 열기를.
이거 아무래도…….
오늘 저녁엔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데?
난 한껏 고양된 기분에 마이크를 움켜쥐었다.
“안녕하세요! 김도준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관중들의 환호에 활짝 웃어 보이곤 한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오케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연 중에 쓰러질 일은 없을 것만 같다.
더불어 공연이 끝나고 나서 기억을 잃을 것 같지도 않고.
어쩐지 그럴 것만 같달까.
내가 소리쳤다.
“갑니다! 세상의 중심에서!”
외침과 동시에 뒤쪽에서 세션들의 연주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