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26화 (226/260)

# 226

#226. 자선 공연(3)

녹음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준비됐으면 바로 시작하지.”

물론 곧바로 녹음에 들어간 건 아니다.

연습은 해야 했기 때문에 다들 맡은 부분부터 불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 나선 함께 부를 부분도 연습한 뒤에 녹음에 들어갈 예정.

가이드는 내가 미리 불러서 녹음해놓은 상태였다.

가사 없이 그저 흥얼거리는 수준의 가이드송이었기 때문에 그저 어떤 식으로 부르면 되는지 감만 잡을 수 있겠지만, 다들 한두 번 작업해본 게 아니라 문제가 될 건 없을 터였다.

가장 먼저 부른 건 베델이었다.

햐아, 진짜 잘 부르네.

감탄이 절로 나온다.

어찌나 잘 부르는지, 역시나 세기의 디바라는 생각이 들며 엄지를 치켜세우지 않을 수 없다.

괜히 세계적인 스타가 아닌 것이다.

내가 그렇게 납득하고 있을 때, 베델의 표정이 바뀌는 게 보였다.

뭐지?

마음에 안 드나?

악보는 이미 보았을 텐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베델이 감정을 실어서 노래하는 걸 보면서 눈을 감았다.

새하얗게 시야가 변하며 음의 시공간이 나타나는 걸 느끼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베어 물었다.

***

베델은 반주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가 보다 했다.

레이크헬이 연주했다고 하더니 연주솜씨가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지, 별다른 감흥은 가지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부를 소절에 집중하면서 도준이 부른 가이드송에 귀를 기울…….

‘……!’

첫 음이 들려오는 순간, 눈이 커졌다.

이게 가이드라고?

곡 분위기와 멜로디를 익혀두기 위해서 작곡을 맡았던 도준이 감정을 담아 부른 흥얼거림에 불과할 텐데…….

‘어, 어떻게 이런……!’

놀랍다.

아니 그 정도로는 표현이 부족하다.

소름이 돋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녀가 프로페셔널이란 점이었다.

덕분에 음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놀란 건 놀란 거였다.

가사 없이 허밍에 가까운 도준의 노래가 들려오는 걸 들으며 그녀는 곧바로 노래하기 시작했지만, 머릿속에선 마치 번개가 치는 느낌이었다.

동시에 귀에서부터 시작되어 머리를 울린 후 등골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가는 전율에 그녀는 몸을 떨고 있었다.

가사가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게 더 그녀를 놀라게 했다.

마치 천상의 소리 같달까.

심지어는 차라리 가사를 입히지 않고, 아니 자신이나 다른 이들이 부르지 않고 이대로 곡을 발표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 탓에 그녀는 노래를 부르는 동안 도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시종일관 한 사람에게 시선을 던진 채 첫 번째 노래 연습을 끝냈다.

“한 번 더 불러보죠.”

팔짱을 낀 채 듣고 있던 폴 매카트넌의 말에 그녀는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세 번인가 불렀을 때 폴이 됐다고 말했지만…….

“아뇨. 한 번 더 갈게요!”

오히려 베델이 부탁하고 있었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폴이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픽하고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잠시 후, 몇 번인가 더 부른 뒤에 헤드폰을 벗고 녹음 부스를 나오는 그녀의 눈동자는 뜨거운 열망과 함께 잔잔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채로 아무 말도 못하고 도준만 바라볼 뿐이었다.

한데 당사자는 그녀의 마음이 어떤지도 모른 채 다가오더니 감동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하고 있다.

“진짜 잘 부르시네요. 괜히 가이드를 제가 했나 싶을 정도에요. 혹여 방해가 된 건 아닌지……. 아무튼, 잘 들었습니다.”

‘아, 이 남자……. 진짜 모르는 건가? 아니면…….’

이건 단지 잘 부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 소울.

말 그대로 정신을 통째로 흔드는 목소리다.

그런 목소리로 한껏 감정을 담아 부른 가이드 송을 따라부르다 보니, 묘하게 갈증이 일었었다.

자신의 실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됐던가?

몇 번이나 집중해서 노래를 불러도 도준의 가이드송을 뛰어넘지 못하는 감각에 이를 악물었었다.

덕분에 마지막에 부른 건 그나마 나았지만, 여전히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럼에도, 연습을 끝내고 부스를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건 그녀에 할당된 두 소절을 반복해서 부르는 동안, 어느새 시간이 반 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오늘 안에 녹음이 끝날지 의문이 들 정도.

마음에 안 들지만 하는 수 없이 부스를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놀람과 자괴감을 채우지 못하는 그녀였다.

그런 그녀를 향해 연방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는 이 남자. 도준이 얄밉다기보단 오히려 대단하게 느껴졌다. 동시에 순수하다는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리곤 고개를 내젓고 마는 베델이었다.

“와, 베델! 오늘 장난 아니네?”

상황을 모르는 이들이 하나둘 다가와 그녀에게 칭찬 아닌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단 한 사람만은 예외였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멜리나가 슬그머니 다가와 속닥이듯 묻고 있었다.

베델은 몇 번인가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아무런 말도 못한 채 시선을 돌렸다.

도준을 바라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쉰 후 그녀가 말했다.

“곧 알게 될 거야.”

“응?”

의아한 눈빛을 해 보이는 멜리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멜리나는 베델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녹음부스에 들어서서 헤드폰을 끼고 20여 초쯤 되는 반주가 끝나기 무섭게 들려온 가이드송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고 마는 그녀였던 것이다.

그러곤 베델과 같은 모습을 보이는 그녀였다.

겨우 몇 소절에 불과한데 거의 삼십 분가량을 소비하고 말았던 것이다.

웃긴 건 이게 단지 그녀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단 거였다.

다들 같았다.

처음에는 의아한 표정들이었지만, 이내 상황을 알아차렸고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기 시작하니 녹음실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버렸다.

그렇게 연습이 끝나고 난 뒤, 모두의 시선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말문을 열지 못한 채 그저 도준만을 바라볼 뿐.

기묘한 침묵이 녹음실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였다.

정적을 깨며 그들의 심정을 대변해준 것은 다름 아닌 디알로였다.

그것도 거칠기 짝이 없는 암바로 도준의 목을 조르면서.

“야, 이 자식아!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응? 네가 마법사야? 가이드송을 부르랬더니, 감히 이런 장난을 쳐?”

“그냥 다 집어치우고, 저 자식 혼자서 녹음하는 걸로 하죠.”

“녹음은 무슨. 이대로도 충분하겠는데.”

“와아! 이거 진짜 가이드송 맞아? 난 듣는 순간 소름이……!”

“하아, 진짜 괴물이 따로 없네!”

둑이라도 터진 듯 다들 한마디씩 하는 소리를 들으며 밥 데일런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고 말았다.

“자극이 좀 심한데?”

그의 말에 폴 매카트넌이 여전히 팔짱을 풀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아마 이번 기회에 다들 느꼈을 거야. 자신들이 스타가 되어 영광을 누리고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동안 세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김도준이란 괴물이 탄생했지. 그리고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는 중이고.”

피식.

“이런 거 좋잖아? 훗, 모르긴 몰라도 이번 노래는…….”

“엄청나겠군.”

두 사람이 마주 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폴 매카트넌이 팔짱을 풀고 손뼉을 쳤다.

“자! 이제 녹음에 들어갑니다!”

모두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녹음실을 태워버릴 듯한 뜨거운 열기와 함께.

***

녹음은 원래 예정했던 것보다 다섯 시간을 초과해서야 끝이 났다.

무려 16시간.

철야를 해가며 끝내고 나니, 다들 초주검 상태가 되고 말았다.

절반 이상이 스케줄 때문에 찰리스 건물을 떠났고, 나머진 4층과 5층에 있는 방을 두세 명씩 차지하고선 늘어져 버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

거의 12시간 정도를 죽은 것처럼 자고 나서 일어난 뒤, 샤워를 하고 집을 나온 건 저녁 무렵이었다.

이미 퇴근했던지라 줄리아드가 아닌 인근의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던 니콜 교수님을 발견한 난 반가운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다가갔다.

“오랜만에 뵙는 거 같아요.”

“글쎄. 보름쯤 됐나? 느낌은 한 일 년은 지난 거 같지만.”

“죄송해요. 자주 연락드려야 하는데…….”

“뭘. 나도 바빴어. 알잖아? 이번에 앨범 나온 거. 그거 들고 뛰어다니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어.”

감사의 눈빛을 담아서 니콜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조카를 대하듯 편하게 얘기하고 있었지만, 교수님 특유의 카리스마가 어디로 간 건 아니다.

깔끔하면서도 우아하게 느껴지는 정장 차림으로 다리를 꼬고 앉아서 커피잔을 들고 있는 모습은 단연 압도적이다.

장소와 상관없이 언제나 한결같은 분위기로 주변을 압도하는 니콜 교수님이셨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멋지신 거 같아요.”

“흥.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입에 발린 소리는 사양이야.”

“진짜라니까요. 제가 열 살만 많았어도 프러포즈하지 않곤 못 배겼을 거에요.”

“안타깝네. 난 연하엔 관심이 없어서 말이지. 그리고 제자 녀석은 남자로도 안보여서.”

“크크큭. 말이 그렇다는 거죠. 저라고 스승님이 여자로…….”

어?

눈썹이 살짝 올라간 거 같은데?

뭔가 머릿속에서 위험 신호가 울리는 걸 느끼며 말을 돌렸다.

“후우. 오늘 녹음 끝났는데, 진짜 장난 아니더라고요.”

“흠. 콘서트가 한 달 뒤라고 했나? 곧 티켓팅 들어가겠군.”

“내일인 걸로 알고 있어요.”

“내 껀 챙겨뒀겠지?”

히죽 웃으며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공손히 내밀며 말씀드렸다.

“당연하죠.”

만족스럽다는 듯 콘서트 티켓을 받아들곤 웃어 보이던 니콜 교수님이 소중하게 표를 갈무리하곤 물어왔다.

“한데, 이것 때문에 날 보자고 한 건 아닐 테고…….”

“아, 그건…….”

난 잠시 망설이다가 가방에서 서류철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도 머뭇거리고 있자,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낚아채 가는 니콜 교수님이셨다.

“뭔데 그래? 뭐 좋은 거라도……. 응? 이건?”

서류철 안에 든 악보들을 꺼내서 한참을 살펴보던 니콜 교수님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

니콜 교수님께 악보를 전달한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폴 매카트넌에 의해 프로듀싱된 음원이 발표되었고, 그 순간 전 세계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듣자마자 소름 끼치는 노래. 47명이 부르는 평화의 노래가 팝의 역사를 바꾼다.]

[발표와 동시에 각국 음원 차트를 휩쓰는 위엄.]

[캠페인 송이라곤 믿을 수 없는 엄청난 노래에 전 세계가 전율하고 있다.]

[음원 판매가 급상승하며 삼 주 후에 있을 콘서트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진 상태…….]

[‘우리의 노래가 이 땅 위에(Our song is on this land)’의 음원 판매 수익, 전액 기부 예정.]

[거의 반 년간 빌보드 순위 정상을 지켜온 김도준, 자신이 참여한 프로젝트 송에 밀려 마침내 1위 자리를 내어주는가?]

[김도준, 올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수상할 가능성은?]

그런 가운데, 시간은 흘러 아메리칸 갓 탤런트는 벌써 5주차째 방송을 이어가는 중이었고 미국 내 콘서트도 끝나 이제 2주간의 휴식기간을 가진 후 캐나다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물론 그전에 ‘SINGING FOR SYRIA’ 공연, 즉 자선 콘서트부터 해야겠지만.

“진짜 대단했지.”

브라이언의 말에 마루 누나가 혀를 내둘렀다.

“그러게요. 2분 13초라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누나의 말에 나 역시 웃고 말았다.

콘서트 티켓팅이 시작되고 공연장의 4만여 석이 2분 13초 만에 매진. 인터넷 트래픽에 부하가 걸리는 바람에 그 정도지, 실제로는 판매 시작과 동시에 매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나?

“이제 출발할까?”

운전대를 잡으며 묻고 있는 고 팀장을 바라보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후! 공연 중 어떤 일이 벌어질지 혹은 공연 후 또다시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릴지 모르지만, 설레는 가슴만은 진짜다.

“자, 그럼 간다.”

공연장이 있는 뉴욕 시티필드 스타디움을 향해 차가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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