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1
#221. 생명의 무게(1)
생각했던 거랑은 다르다.
피부는 빨갛고 쭈글쭈글하며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채 찡그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예쁘다.
특히 도톰한 입술이 그렇게 앙증맞을 수가 없다.
손발은 또 어떤지…….
내 팔뚝만 한 크기의 아이한테 달릴 건 다 달렸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귀여워 미치겠다.
꼬물거리는 손에 달려 있는 다섯 개의 손가락을 콱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다.
죽어라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서 시종일관 눈을 떼지 못하겠다.
아마도 그건 아이가 터뜨린 울음소리가 만들어낸 빛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딱 짚어서 표현하긴 어려웠지만, 그래……. 아이는 그 자체로 너무나 예쁘게만 느껴졌다.
“예쁘지, 우리 예은이.”
언제 왔는지 뒤에서 들려온 형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응.”
그때였다.
“호호호. 아들, 고생 많았어.”
어? 어머니?
그제야 돌아보니 부모님께서 서 계신다.
어머닌 이제 막 태어난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계셨고, 아버진 형의 어깨를 두드리고 계셨다.
“언제 오셨어요?”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늦었지 뭐니.”
어머니께선 안타깝다는 표정이셨다.
유리창을 향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선 아버지의 눈에서 아이가 더없이 사랑스럽다는 눈빛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 아이가…….”
목멘 음성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예은이라고?”
확인하듯 묻는 어머니의 질문에 형이 활짝 웃었다.
“예쁘죠?”
대답은 세 곳에서 동시에 들려왔다.
“응.”
부모님과 내 입술이 절로 벌어지며.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예은이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
산모가 안정되었다는 얘기에 병실로 간 우리를 맞이한 것은 형수만이 아니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를 안고 있는 형수가 보였던 것이다.
한데…….
덜컥하는 느낌으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예은이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처럼 빛이 나는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아이를 안고 있는 형수에게서 환한 빛이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뭔가 뭉클하다.
대체 이 느낌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 말로 얘기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그래선 안 될 것 같달까.
노래를 시작한 이후로 점차 예민해지다가 요즘 들어선 감정 하나하나가 민감해져 있는 지금으로선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느낌.
그 때문에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서 있을 때 부모님께선 형수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가. 미안하다. 혼자서 얼마나 고생했니? 이 엄마가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아, 아녜요. 저희 어머니도 계시고…….”
아! 그러고 보니…….
뒤늦게 사돈댁 어르신들을 발견하곤 난 급히 인사를 했다.
“오랜만이네요. 요즘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습니다.”
“자주 봬야 하는데, 죄송하네요.”
두 집안의 어른들이 정답게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뒤로 물러났다.
여전히 형수가 안고 있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그렇게 문을 열고 나와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후우. 이런 느낌이라니…….
한 아이가 태어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단지 새로운 생명의 탄생… 따위의 말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병실 밖 복도에 오도카니 서서 나도 모르게 북받치는 감정을 추스르고 있을 때였다.
“오빠!”
오, 오빠?
갑작스러운 외침에 돌아섰다.
“어?”
씨크릿걸즈 멤버들이 서 있다.
애교 만땅에 눈웃음이 매력적인 유나.
래퍼 출신답게 다소 거칠고 평소 언사에 거침이 없는 현아.
그리고 오목조목한 이목구비에 갈수록 예뻐지는 막내 지연까지.
그녀들을 관리하던 차도식 매니저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내 납득했다.
요즘은 우리 형이 관리한다고 했던가?
어라? 씨크릿걸즈, 원래 소속 되어 있던 회사랑 계약 끝내고 우리 회사로 왔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우리 형도…….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멍한 표정을 짓고 말았을 때였다.
“오빠는 바빠서 못 오실 줄 알았는데.”
유나의 얘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도 조카가 태어났는데 안 올 수야 있나요. 음, 근데……. 왜 제가 오빠죠?”
내 질문에 유나와 현아가 동시에 지연을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까르르 웃는다.
영문을 몰라서 바라보니 지연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어찌할 줄 모르고 있다.
“얘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해서요.”
“예?”
“호호호. 김도준은……. 도준 오빠는 영원한 오빠라고 빡빡 우겨서요.”
큭! 귀를 씻어야 해.
봐! 손발이 오그라들고 있잖아.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려는 걸 애써 참으며 재빨리 거부했다.
“아뇨! 그건 아니죠! 제가 여러분보다 훠얼씬 어린데요!”
“어머! 훨씬 까진 아니죠!”
“맞아요! 몇 살 차이나 난다고.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큽! 이제 이십 대 초반의 나이에 그게 할 말인가?
황당했지만, 그보단 연탄불에 구워지는 듯하는 이 오글거림부터 어떻게든 해야…….
그때였다.
“오, 오, 오빠. 축하해요. 아이가 너무 예뻐요.”
아, 예은이 얘기다.
“고맙습니다.”
뭐지?
이 분위기는?
꼭 내가 예은이 아빠가 된듯한 느낌이다.
한데, 나쁘지 않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며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느껴진다.
“우리 예은이 보셨어요?”
“예!”
세 명이 동시에 대답하는 소리를 들으며 난 웃고 말았다.
“진짜 예쁘죠?”
“그러니까요!”
“완전 천사라니까요!”
“아앙! 꼬물거리는 게 너무 앙증맞아요. 어떡해! 애기 얼굴이 자꾸 떠올라. 아무래도 나, 사랑에 빠진 거 같아.”
닭살 돋는 표현을 거침없이 해대는 유나였지만, 이번에는 전혀 오글거리지 않았다.
같은 감정이었으니까.
좋네.
다들 이렇게나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식을 낳으면 필연적으로 팔불출이 된다고 하더니만.
삼촌에 불과한 내가 이럴 정도인데, 형이 어떨지는 보지 않아도 눈에 훤하다.
“식사들은 하셨어요?”
“하아.”
응?
세 사람이 제각기, 그러나 거의 동시에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트레이닝이 너무 빡세요.”
“체중 조절……. 오빠가 얘기해서 식단 좀 바꿔주세요. 이제 닭가슴살만 봐도 토 나올 거 같아.”
우는듯한 표정으로 부탁해오는 그녀들을 보다가 그만 픽하고 웃고 말았다.
“뭐, 생각해볼게요. 앞으로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다고 약속하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들려왔다.
“그건 안돼요! 오빤, 영원히 우리…….”
지연이 소리를 빽 지르다가 창피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기어들어가는 음성을 토해냈다.
“……오빠예요.”
입을 살짝 벌린 채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자, 유나와 현아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
다들 연예인인지라 함부로 돌아다니기도 뭣하고, 그게 아니라도 현재 상황에선 멀리 가는 것도 이상해서 그냥 병원 내에 있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참 잘들 먹는다.
누가 보면 회사에서 엄청 굶기는 줄 알겠……. 음, 굶기는 거 맞나?
“곧 컴백하기로 했다고요?”
“예. 대표님께서 여자 아이돌은 공백기가 길면 안 된다고 하셔서.”
“덕분에 우린 지금 죽어나는 중이고요. 하아, 식단조절도 그렇지만, 연습량이 장난 아니에요. 꼭 연습생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라니까요.”
유나와 현아가 한숨과 웃음을 뒤섞어 얘기하는 걸 들으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저렇게 끊임없이 말하는 가운데서도 잘들 먹는다.
설렁탕 한 그릇이 불과 오 분도 안 돼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웅. 그러다 걸리면…….”
“안 걸리면 되죠. 그리고 만일 나중에라도 누가 뭐라고 하면 제 핑계 대세요.”
뜻밖의 타이밍에서 환호성을 내지르는 세 사람이었다.
특히 막내인 지연은 제자리에서 방방 뛸 판이다.
“요즘 쟤가 유독 힘들어하거든요.”
“예?”
뭔 말인가 싶어서 바라보자, 현아가 툴툴거렸다.
“대표님께서 지연이한테 연기 한번 해보라고 하셔서, 요즘 연기수업도 받고 있거든요.”
“지연…씨만요?”
“예. 연기는 주연이만. 대신 우린 이번에 유닛 결성하고…. 아, 얘기 들으셨나 모르겠네요. 준영이 오빠랑 유닛하기로 한 거. 아무튼, 그 후론 기회를 봐서 각각 솔로 앨범 내는 걸로 방향 잡았거든요. 아! 전 어쩌면 뮤지컬에 출연하게 될지도 몰라요.”
형수가 그룹에서 탈퇴한 이후, 리더 역할을 도맡게 된 유나가 고주알미주알 다 일러바치는 모습이 귀엽기만 하다.
흠, 다시 말하지만 다들 나보다 누나들인데 이런 표현 써도 되나 모르겠다.
“바쁘시네요. 근데…….”
“……?”
“다들 본명이 아니신가 봐요?”
“아, 그거요?”
“저흰 본명 맞고요. 지연이만 본명이 아니에요. 한데, 대표님이 그러시더라고요. 그냥 본명으로 가자고. 그게 낫겠다고요.”
“아, 그래서…….”
드르륵.
갑자기 일어선 지연이 허리를 숙여 보였다.
“고, 고주연이에요.”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는 그녀를 보면서 나머지 두 사람이 또다시 까르르 웃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사인 좀 해주세요. 이왕이면 사진도 좀 찍어주시고요. 얘, 도준 씨 완전 팬이거든요. 호호호. 숙소에서도 만날 도준 씨 노래만 듣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김도준 앱을 들여다보는지 몰라요. 나머지 시간엔 틈만 나면 팬카페에 들어가고. 것도 아니면 유투븐에 올라온 도준 씨 콘서트 영상…….”
“꺄아아악! 그만! 그만!”
손을 내저었으며 어찌할 줄 모르는 주연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웃고 말았다.
***
형의 인망이 아주 엉망은 아닌 모양이었다.
형수야 말할 것도 없었고.
제왕절개를 해서 곧바로 퇴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족들이 돌아가며 병실을 지키는 동안,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
“넌 좀 집에 가서 쉬어라.”
“그럴까?”
“그래 인마. 아까부터 너한테서 땀내가 나는 게……. 하유! 내가 못 참겠다. 얼른 가, 자식아! 우리 예은한테서 떨어져!”
형의 구박에 못 이긴 척 병실을 나왔다.
그러곤 집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무도 없는 집안이 날 맞는다.
역시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티가 나는 걸까?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돌아오신다는 부모님인지라, 어째 집이 무슨 모델 하우스 같은 느낌이다.
깔끔하게 치워져 있지만, 생활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낯설 정도다.
그럼에도,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집은 집인 거다.
단순히 하우스가 아닌 홈.
픽하고 웃고는 소파에 몸을 던졌다.
그러곤 몸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가 문뜩 떠오른 생각에 핸드폰을 꺼냈다.
- 지금 집에 들어왔어.
톡을 날리자, 곧바로 답톡이 날아왔다.
-- 피곤하겠다. 잠은 좀 잤어?
- 이제 자야지. 좀 씻고 나서.
-- 그래. 얼른 씻어. 여기까지 냄새가 나는 거 같아.
- 큭큭. 진짜?
-- 내가 갈까?
뭐야 이 흐름은? 너무 뜬금없잖아?
나야 그러면 좋지만,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럴 순 없지.
- 아냐. 한숨 자고 연락할게. 그때 봐.
-- ㅇㅇ 기다리고 있을게.
희주와 까똑을 하고 난 뒤 다시금 소파에 늘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갑자기 외할아버지가 떠올랐다.
아이를 보셨다면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
꾹.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다.
동시에 예은이의 앙증맞은 모습도 떠오른다.
엄마의 품에 안겨서 꼬물거리던 그 모습이.
난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오선지를 꺼내 들었다.
슥슥슥.
씻어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연필을 놀리기 시작했다.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시간의 흐름조차 잊고서 작곡에 몰두했다.
두 사람, 외할아버지와 조카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