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0
#220. 벽(3)
기가 막혔지만, 그보단 당황스러움이 먼저였다.
눈치 하난 기가 막히게 빠른 누나가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일단은 당장의 상황부터 모면해야 했다.
“와아! 오늘 저 완전 타올랐나 봐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끝이라니!”
환하게 웃었다.
최대한.
마루 누나가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날 보고 있는 가운데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너무 업 됐었나? 아직도 흥분이 가시질 않네요. 브라이언! 어땠어요? 이제까지 한 공연 중에 오늘이 최고인 거 같지 않아요?”
저만치서 아저씨랑 얘기 중이던 브라이언이 씨익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있다.
아저씨 또한 미소를 지어 보였고.
그 모습을 보면서, 하품을 했다.
“확 피곤해지네. 얼른 가서 좀 쉬죠.”
“그, 그럴래?”
누나가 조심스럽게 날 살피며 되묻고 있었다.
한층 더 밝게 웃고는 슬그머니 돌아섰다.
아무도 보지 않는 사이, 나도 모르게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
호텔로 돌아왔지만, 말과는 달리 잠이 오지 않았다.
그저 뭔가 싶었다.
공연이 시작되고, 눈앞이 번쩍하는 느낌이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공연은 끝나 있었다.
후우! 미치겠네.
이게 대체 뭔 일이지?
기억이 통째로 날아가?
몸이 떨린다.
까닭은 모르지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거 아무래도 일이 잘못되고 있는 느낌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달까.
뭘까?
그냥 피곤해서 그런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째야 하지?
지금이라도 아저씨와 얘기를 나눠봐야 하나?
아니면 가족들하고 상의해볼까?
그것도 아니라면 병원에라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어느 쪽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니, 그럴 수 없다는 걸 직감했다.
그랬다가는 다들 말릴 것이다.
당장 월드 투어는 중지될 거고, 어쩌면 다시는 무대 위에 올라가지 못할지도 모르지.
최악의 경우엔 진짜 몸에 이상이 온 걸지도 모르는 일이고.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확 두려워진다.
달리 그런 게 아니다.
다른 건 둘째치고…….
더는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지금 내게서 모든 걸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꾸욱.
불도 켜지 않은 방안에서 침대 끝에 걸쳐 앉은 채,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곤 생각에 빠져들었다.
***
다음 콘서트까지는 일주일가량 남은 상태였기 때문에 잠시지만 여유는 있었다.
그동안 내가 한 일은 모니터한다는 핑계로 LA에서의 공연을 찍어놓은 영상을 보는 일이었다.
기억은 되찾지 못하지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살펴봐야 했으니까.
흠, 나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가 봐도 끝내준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공연 내내 내가 보인 모습은 그야말로 최상이었다.
말 그대로 타오르고 있었으니까.
꼭 이번 공연이 마지막인 것처럼.
에너지가 흘러 넘치다 못해서 보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참네. 내가 한 공연을 보면서 이런 감정이라니.
무슨 나르시스트도 아니고.
화면 속에서 공연이 끝나고 내려가는 내 뒷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영상에서는 앵콜을 네 곡이나 부르는 동안 팬들의 함성이 공연장을 뒤흔드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공연이 끝나고 더 이상 녹화된 게 없는지, 화면이 검게 변하고 무음 상태가 되었지만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돌겠다.
어쩜 이렇게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 거지?
이게 지금 말이 되나?
아니 애당초 기억이 안 나는 상태인데, 공연은 어떻게 한 거냐고.
입술을 잘근 씹으며 생각을 거듭했다.
노인의 말들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그릇이 너무 작다는 게 문제지. 그 탓에 차고도 모자라 넘치는 지경에 이르렀음이니 몸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신도 버티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니겠느냐?”
이건가?
노인이 했던 경고가?
눈앞에 음의 시공간이 나타나는 건 분명 오감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고 했었다.
그처럼 감정의 선이 보이게 되고, 소리까지 보이게 된 것은 그릇이 가득 찼기 때문이라고도 했고.
이대로라면…….
방법은 둘 중 하나라고 했었지, 아마.
그릇을 다시 비우던가, 아니면 그릇 자체를 키우던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너무 낙관적이었던 건가?”
음의 시공간이 갈수록 확장되는 느낌에 난 내가 지닌 그릇이 조금씩이나마 커져 가고 있어서 그런다고 생각했었는데…….
젠장!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무래도 그릇이 비워지는 거 같다.
비워진 만큼 기억이 날아가는 거 같고.
아니 정확히는 더 이상 담기지 않는 걸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아무래도 내가 어쩌지 못하는 벽에 가로막힌 거 아닌가 싶은데?
제기랄!
벽이라…….
그렇다면 어째야 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지만, 이렇다 할 답이 나오질 않는다.
“……아무래도 병원엘 한번 가봐야겠네.”
뭐가 문제일지는 감이 잡히지만,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 할 테니까.
그저 몸이 안 좋은 걸 수도 있고, 혹은 스트레스나 과로 때문일 수도 있는 거니까.
다만…….
아무도 모르게 가야 한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혹은 누가 봐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도록 다녀오거나.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
자칫했다간 다들 눈치채는 수가 있을 테니.
하는 수 없나?
어떻게든 기회를 보아서 움직이는 수밖에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속아주면 좋으련만.”
과연 가능할지.
다들 날 얼마나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는데.
아저씨를 비롯한 회사 식구들. 심지어는 브라이언조차 날 아끼고 또 아낀다는 걸 너무 잘 아는지라 그들 몰래 병원 한번 다녀오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여기선 어렵겠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내뱉었다.
***
그 후론 별일 없었다는 듯 행동했다.
평상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움직이고, 또 웃고 떠들면서 노래 연습도 하고 작곡도 했다.
그래서 그런가, 며칠간은 날 보는 눈빛에서 걱정을 떨쳐내지 못하던 마루 누나조차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런 가운데, 다시금 공연날이 되었다.
오클랜드 오라클 아레나.
2만 석의 객석이 가득 찬 가운데, 무대로 향하는 복도에서 심호흡을 했다.
“괜찮아?”
벌써 몇 번째 물어오는 건지.
마루 누나가 걱정스럽게 날 보고 있다.
“좀 긴장했나 봐요.”
“……낯빛이 안 좋아. 진짜 괜찮은 거지?”
거듭해서 되묻는 누나에게 옅게 웃어 보였다.
“참네. 누나도 참. 공연 한 두 번 하나요? 저, 김도준이에요, 김도준!”
허세 한번 부려보는데, 내가 생각해도 더럽게 어색하다.
그래서 그런지 말끝에 나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 한줄기가 걸친다.
“혹시라도…….”
누나가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난 두 손으로 양볼을 찰싹 때렸다.
화들짝 놀라는 누나와 스태프들을 보면서 씨익 웃어 보였다.
“좋아! 기합은 넣었고! 이제 올라갈게요! 오케이?”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는 누나를 보면서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함성이 들려오는 가운데, 또다시 눈앞이 하얗게 물들었다.
***
예상대로였다.
또 날아갔다.
공연 내내 뭘 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는 것이다.
와, 뭐 이런 개떡같은 경우가 다 있는지.
미치고 환장한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다.
진짜 모를 것이다.
이런 기분…….
기억을 통째로 도둑맞은 기분.
더 큰 문제는,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게다가…….
“여어! 오늘 공연 죽이던데?”
“와! 진짜 원더풀 했어!”
“아주 날아다니더만!”
“이제 하산할 때가 된 거죠.”
언제 왔는지 레이크헬이 대기실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가 해다는 소리들.
어휴! 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것들 안 잡아가고.
안 그래도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다들 엄지들을 치켜들고 있다.
저놈의 손가락들을 확 부러뜨려버릴까 보다.
인상이 절로 구겨지는 걸 애써 참으며 웃어 보였다.
“후후후. 어떻게? 다음 공연엔 오프닝 한번 서 줄 테야?”
농담까지 던진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쳇! 건방 떠는 거냐?”
“뭐, 이젠 그래도 되지. 솔직히 인기도 우리보다 많잖아?”
“발표한 곡도 두 배가 넘지.”
“괴물 같은 자식!”
다들 한마디씩 하면서 내 어깨를 두드리고 있다.
말로는 툴툴거리면서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녀석들의 모습에 오히려 난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런 날 보던 베릴이 슬그머니 물어온 것도 그때였다.
“괜찮은 거냐?”
자식이.
눈치는 빨라가지고.
씩 하고 웃어 보였다.
“괜찮냐고?”
“…….”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만연에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였다.
부르르르.
전화가 울렸다.
대기실 한쪽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핸드폰이 진동을 울리는 걸 보다가 손을 뻗었다.
어? 형이네?
“무슨 일…….”
- 도, 도준아!
얼래? 대체 무슨 일이기에 목소리가 벌벌 떨리는……. 설마?
“지금 어딘데?”
- ……병원. 도준아, 어쩌지? 지금…….
형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그려진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형수는?”
- 지금……. 분만실로 들어갔어!
“잘못……. 아니, 산모는 괜찮은 거지?”
- 모, 모르겠어. 갑자기 양수가 터져서……. 도준아, 어쩌지? 소연이한테 무슨 일이라도…….
“형!”
빠르게 이어지던 형의 목소리가 그쳤다.
깊게 숨을 들이쉬곤 말했다.
“아무 일 없을 거야. 아니, 괜찮아. 그러니까, 침착해. 아이가 조금 빨리……세상을 보고 싶어하는 거뿐이야. 그러니까 정신 차리라고!”
- 그, 그치? 그런 거겠지?
“응. 분명 그런 거야.”
예정일보다 일주일이나 빠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곧 산모가 위험하다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알고 있다.
그걸 강조하며 얘기했다.
“지금 갈게. 바로 출발하면 내일 아침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야. 아, 엄마랑 아빠는?”
- 지금 오고 계시는 길이셔.
“알았어. 너무 걱정하지 말고. 곧 갈 테니까.”
잠시 침묵이 이어지다가 형의 떨리는, 아니 조금은 안정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도준아, 고맙다.
“뭐야? 미친 거야? 닭살 돋게시리.”
손발이 없어지는 기분에 얼른 전화를 끊고선 서두르기 시작했다.
아저씨와 브라이언에게 사정을 설명하곤 비행기표부터 수배했다.
벽이고 나발이고,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란 생각에.
이제껏 기다려온 아이가 세상에 나오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어느새 방금까지 온몸을 옥죄어 오던 두려움이 사라져 있었고, 대신 새로운 두려움이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동시에 설레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난다.
형을 닮고, 형수를 닮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 아이의 얼굴을 애써 떠올려보다가 눈을 치떴다.
가야지.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난 숙소로 가지도 않은 채 곧바로 공연장을 빠져나갔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
공항에서 내려, 고 팀장님이 모는 밴을 타곤 미친 듯이 달려갔다.
와, 진짜 어떤 녀석이 태어나려고 하는 건지.
월드 스타를 이 새벽에 정신없이 날아오게 만들고.
그걸로도 모자라 카메라 따윈 무시한 채 과속해서 도로를 질주하게 하네.
누굴 닮아 그렇게 성격이 급한 거냐고.
그래, 다 좋다.
다 좋으니까, 제발 무사하기만 해라.
형수도, 아이도.
아, 진짜! 뭐가 급하다고 그렇게 빨리 나오려는 건지.
인천에서 서울까지 한 시간 만에 주파해 병원에 도착한 후, 정신없이 내달렸다.
“도, 도준아!”
복도를 달려 도착하니, 분만실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형이 날 발견하곤 외치고 있었다.
“후욱, 훅! 어떻게 됐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되묻자, 형이 걱정 가득한 얼굴로 더듬거렸다.
“지, 진통 중인데…….”
아직 태어나지 않은 거 같네.
어지간한 녀석인가 보다.
형수 나이가 젊어서 괜찮을 줄 알았더니만.
“어머니랑 아버진……?”
“아직 안 오셨어.”
입술을 뜯어먹으려는지 거칠게 잘근거리는 형의 얼굴이 푸석푸석하다 못해서 초췌하기 그지없다.
그때였다.
분만실 문이 열리며 의사가 나왔다.
“보호자분 되십니까?”
흠칫.
놀라는 형의 얼굴. 낯빛이 하얗다 못 해서 파랗게 변한 형이 다급히 물었다.
“소연이는요?”
“산모는 아직 괜찮습니다.”
“아이는…….”
“아이도 괜찮습니다.”
안심했는지, 형이 가슴을 쓸어내렸을 때였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좀…….”
말끝을 흐리는 의사였다.
또다시 핼쑥해진 형이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그, 그게 무슨……?”
“아무래도 자연분만으론 힘들 거 같습니다.”
뭐라 대꾸하지 못하는 형에게 의사가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제왕절개를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눈을 치뜬 채 숨을 멈춘 형.
난 그런 형을 보다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시선을 돌려, 날 바라보는 형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다.
‘괜찮을 거야.’
‘그, 그렇겠지?’
눈빛으로 대답했다.
‘틀림없어. 형수도,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날 거야. 그러니까….’
고개를 끄덕이자, 형이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이내 돌아서 의사를 본다.
“부탁드립니다.”
허리를 깊게 숙이며 말하는 형이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돌아서는 의사.
그 후로 일분일초가 마치 십 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이가 태어났다.
산통을 시작한 지 13시간. 끝내 자연분만 유도에 실패하고 제왕절개를 통해 태어난 아이였다.
유리창 안쪽, 간호사가 데려온 담요에 쌓인 아이를 데려와 요람에 눕혔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
그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가만히 손을 가져가 유리창에 대어본다.
저 아이가 내 조카구나.
알 수 없는 감정이 치밀며 뭔가 울컥해졌다.
그때, 갑작스레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악.
눈앞에 빛이 터졌다.
더할 나위 없이 환하고, 또 따스하면서도 신비롭게 느껴지는 빛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