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16화 (216/260)

# 216

#216. 싱어입니다만(3)

극비였다.

작년, 13시즌이 시작할 때부터 이번에야말로 마지막이라고 엄포를 놓던 사이몬이 갑자기 시즌이 거의 끝나갈 즈음 느닷없이 들고 온 이름. 김도준이란 듣도보도 못한 싱어의 존재를 알게 된 후 대체 뭣 때문에 사이몬이 저렇게 광분을 하는 건지 궁금해 알아보다가 어느 순간 빠져들어 버린 티아라였다.

그 김도준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하는 일은 사이몬과 자신, 그리고 원래부터 팬이었다는 캘리 그리고 프로듀서와 작가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비밀. 즉 대외비였다.

그리고 현재. 사이몬이 김도준이란 패를 꺼내 들었던 때와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전 세계가 김도준앓이를 하는 중이랄까.

S 전자의 아스트로폰 N10에 실린 김도준 앱을 중심으로 도준의 인지도는 급상승했고, 이를 바탕으로 월드 투어 중인 요즘 그를 모르는 이는 적어도 미국에서만큼은 없다고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사이몬의 고집 아닌 고집은 혜안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도준이 이렇게까지 뜨기 전, 미리 그의 소속사와 파트너 관계에 있는 CDM 측에 계약을 제안했던 그들로선 한마디로 월척을 잡은 셈.

말하자면 신의 한 수였다.

그리고 지금…….

“저나 사이몬은 모르겠지만, 할리우드에서 최고로 아름답고 엄청난 연기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캘리 조차 반하게 만든 남자입니다. 소개하겠습니다!”

티아라는 힘차게 손을 뻗어 비어 있는 남은 한자리. 마지막 심사위원석을 가리키며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그녀 특유의 음성이 스튜디오 안을 카랑카랑 울렸다.

“김도준입니다!”

순간, 조용해지는 스튜디오.

생각지도 못했던 건지, 관객들은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정적은 오래가지 못했다.

대기실에서 스튜디오로 통하는 통로의 끝,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김도준을 본 순간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스튜디오를 통째로 흔들어버릴 것 같은 함성이 들려왔다.

쑥스럽다는 표정으로 김도준이 손을 들어 올리자, 박수소리와 함께 함성이 몇 배로 커지는 걸 보면서 티아라는 미소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신의 한 수가 통한 것이다.

***

“오 마이갓! 오 마이갓! 정말 킴이에요?”

사전에 정보를 몰랐던 멜리나 J는 심사위원석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호들갑을 떠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티아라는 내가 자리를 찾아 앉는 것을 확인하곤 얘기했다.

“멜리나. 사심은 넣어두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 돼요. 당신도 엄청난 실력파 싱어잖아요? 자꾸 그러시면 팬들 다 떨어져 나간다고요!”

티아라의 농담에 멜리나가 먼저 깔깔 웃었고, 덩달아 관객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분위기에서 가만히만 있을 사이몬이 아니었다.

“나한테 밥 한번 제대로 사야 할 거에요, 멜리나. 당신을 위해 한 일은 아니었지만, 제가 킴을 저 자리에 앉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안다면요.”

또다시 웃음이 터지고 있을 때, 난 멋쩍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이 분위기는?

다들 왜 이러는 거지?

뉴욕을 떠난 지 불과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후우, 마루 누나가 이젠 미국에서 날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하더니만.

그땐 전혀 실감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팍팍 와 닿는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특히 내가 스튜디오에 들어온 직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눈길을 떼지 않고 있는 캘리와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한숨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고 있을 때였다.

“킴! 우린 다들 알고 있으니, 인사하세요. 시청자들한테.”

캘리를 제외하곤 다들 이 프로그램의 터줏대감들이니 신참인 나더러 알아서 자기소개를 하라는 뜻인가 본데.

뭐, 못할 것도 없지.

인사가 별건가?

그저 카메라를 향해 손이나 한번 흔들어주면 되지.

“안녕하세요. 김도준입니다.”

어라? 소개 끝났는데?

어째서 말이 끝나고 나서도 다들 나만 바라보는 거지?

살짝 고개를 갸웃하자, 옆에서 캘리가 킥 하고 웃는다.

반면 티아라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고.

그에 비해 사이몬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 죽겠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멜리나는 여전히 눈을 빛내며 날 보는 중이었고 말이다.

“와우. 그게 끝인가요?”

티아라가 눈을 살짝 찡그리며 되물어왔다.

어쩌라고?

뭘 더 말하라는 거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티아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요?”

“줄리아드에 다니고 있죠.”

“또요?”

“음……. A형?”

킥 하고 터지는 웃음소리에 캘리를 살짝 흘겨주고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다 쏟아냈다.

“많은 분들이 절 처음 보셨을 테고, 어쩌면 그 때문에 기분 나빠하실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싱어입니다. 그리고…….”

한참을 떠든 거 같다.

젠장!

진짜 탈탈 털리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았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티아라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이 될 때까지 한 오 분 정도는 떠든 거 같다.

그러고 나서야 물었다.

“근데, 참 이상하네요.”

“뭐가요?”

티아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걸 보면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잖아요. 제가 제안받은 건 분명 심사위원인데, 왜 이렇게까지 제 신상에 대해 털어놔야 하는 거죠? 저 정말 심사위원 맞는 거죠? 혹시 오디션 참가자로 착각하시는 건 아니죠?”

이번엔 사이몬보다 먼저 티아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관객석 역시 웃음으로 물들었고.

“오케이, 오케이! 그럼 이렇게 하죠.”

한참을 웃던 티아라가 손가락을 세워 보이곤 능숙한 솜씨로 쇼를 이끌기 시작했다.

“저흰 절대로 의심하지 않고 있는데, 오히려 본인이 의심하는 거 같네요. 제가 경험으로 아는데요. 이런 문제의 해결은 의외로 간단하답니다. 뭐냐고요? 우리가 킴을 심사위원으로 초대한 건 그의 노래 실력 때문이니까, 그가 심사위원인지 아니면 오디션 참가자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들어보는 거죠.”

와아아아아아!

다시금 터진 환호성.

격하다 싶을 정도로 반응하는 관객들이 다시금 조용해지길 기다렸다가 티아라가 이번엔 날 보며 얘기했다.

“킴! 오늘 우린 당신만 믿고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다고요. 무려 시즌 첫 방송인데도 말이에요. 그러니까, 오프닝 부탁해도 될까요?”

어라?

장난 좀 친다는 게 일이 묘하게 흘러가네.

노래한다는 얘기는 없었던 걸로 아는데?

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면 기타 좀 주실래요?”

내가 무대로 나가면서 스탭들을 향해 말하자, 누군가 일렉트릭 기타를 가져오려는 게 보였다.

“아뇨. 그거 말고, 그냥 통기타로 주시면 됩니다.”

곧바로 전달해주는 기타.

띵…띠딩…띵.

튜닝페그, 즉 줄감개를 풀고 조여 음을 조율한 후, 난 가만히 눈을 감았다.

***

티아라는 도준이 기타를 끌어안듯 들고서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현을 뜯기 시작하는 걸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듣기에도 연주는 더없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

기타 음은 잔잔하면서도 끊기지 않은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밀고 들어왔다.

‘뭐지? 이런 기분이라니!’

화려함이라곤 없는 연주.

그럼에도, 밋밋하지만은 않은 선율.

마치 스며들 듯이 조금씩 가슴을 적시는 기타 음에 그녀는 취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음….”

도준의 입술이 열리며 허밍이 튀어나왔다.

그 순간 티아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김도준이란 싱어에 대해 나름 연구하고 파고들면서 알게 된 노래 한 곡.

LONGING TIMES.

그녀는 지금 도준이 부르는 노래가 바로 그 ‘LONGING TIMES’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허밍이 기타 음과 어우러지며 묘한 느낌, 그리움이란 감정을 자아내는가 싶은 순간 곡조가 변한 것이다.

‘LONGING TIMES’의 초반부가 애달플 정도로 간절한 그리움을 억지로 억누르고 가둬둔 채 몸부림치는 느낌이라면 지금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느낌이었다.

허밍을 듣는 동안, 머릿속에 절로 그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산책을 하고.

때론 함께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고.

또 어떤 땐 격렬하게 다투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화를 풀고.

서로를 걱정하고.

그리워하고.

순간, 티아라는 깨달았다.

‘어?’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차오르는 눈물.

왜지?

의아해진 그녀였지만,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면서 잊고 지냈던 추억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리움이었다.

그 그리움의 끝자락에서였다.

기타 음이 변한 것은.

도준의 손이 현을 긁어 내리며 스트로크로 강렬하면서도 폭발적인 연주를 시작한 것이다.

***

단지 곡이 변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캘리는 몸을 떤 것은.

그렇다고 해서…….

매번 그렇지만, 이번에도 역시 반해서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물론 캘리는 알고 있었다.

이미 도준이 사귀고 있는 여자가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녀는 그에 대한 마음을 접기 어려웠다.

단지 팬심이라고 치부하기엔 이미 너무나 깊이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밀고 들어와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또한 알고 있었다.

요사이에 그에게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지를.

얼마 전 도준이 외할아버지를 잃었고, 그게 그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또한 너무나 잘 알았다.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기타 음이 바뀌는 순간 바로 알아챘다.

도준은 지금 눈을 감은 채 맹렬하다고 말할 정도로 기타를 쳐대며 허밍을, 아니 고함을 내지르고 있었지만 그것은…….

꾸욱.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쥔 그녀는 느끼고 있었다.

지금 도준은 외할아버지를 부르고 있는 거다.

마치 외할아버지가 눈앞에 있기라도 하듯이 그동안 못다 한 재롱을 부리고,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을 이제라도 함께하려는 듯 그렇게 그 감정들을 노래 속에 담고 있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날들에 대한 후회였고,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외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이기도 했다.

왜 조금만 더…….

많이도 아니고 조금만 더…….

함께 해줄 수 없는 거냐고.

그는 외치고 있었다.

눈썹이 떨릴 뿐 여전히 눈을 뜨지 않고 있었지만, 도준은 울고 있는 거였다.

소리로 울부짖고 있는 거다.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다는 걸 이제야 깨달은 자신을 탓하면서 말이다.

캘리는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아……!”

눈가에 차오르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 것도 그때였다.

그 상태에서 그녀는 두 손을 맞잡은 채 흔들리는 눈동자로 도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비단 캘리만이 아니었다.

티아라를 비롯해 심사위원들까지. 심지어 관객석에선 어느새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허밍이 그치고 기타 음이 점차 잦아들더니 서서히 흩어져 허공중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티아라가 목멘 음성을 내뱉었다.

“킴. 이거 무슨 곡이죠? 저, 킴의 웬만한 노래는 다 들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노랜지 모르겠어요. 혹시 다른 사람 노랜가요? 아니면 신곡?”

그새 눈을 뜬 도준이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을 지은 채 나직하게 얘기했다.

담담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느낌이 드는 음성이었다.

“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 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 중에 한 명을 잃었어요. 그분을 생각하면서 한번 연주해봤어요.”

고개를 끄덕이던 티아라가 어? 하는 눈빛이 되더니 입을 살짝 벌린 채 도준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더듬거리기까지 하며 물었다.

“그, 그러니까 지금 이 곡을 작곡한 거라고요? 바로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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