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13화 (213/260)

# 213

#213. 나는 손자다(3)

콘서트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정정해 보이시던 외할아버지께서 쓰러지신 건 호텔로 향하는 길에서였다.

다행히 이 실장님이 이럴 경우를 대비해 한국에서 함께 데려온 의료진들이 있었고, 그들 덕분인지 외할아버진 금세 정신을 차리셨다.

하지만, 병세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의사 한 분이 권하길, 장시간 비행을 하기보단 여기 있는 병원에 입원하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외할아버진 곧 죽어도 서울로 가시겠다고 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는 거였다.

적어도 우리 집안에선 그랬다.

부랴부랴 전세기를 빌렸고, 급하게 서울로 향했다.

그게 엊그제 일이다.

***

5월 1일.

창밖으로 보이는 병원 뒤뜰은 이미 초록으로 뒤덮여 있다.

도심과 담 하나를 두고 있는 정경에 나는 가만히 미소를 머금어본다.

동시에 떠올린다.

템스 강변을 따라 외할아버지와 함께 산책을 하던 그 시간들을.

꾹.

창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뚜우…뚜우…뚜우…….

등 뒤에서 들려오는 신호음이 가슴을 아프게 찔러왔다.

나직한 숨을 들이마시며 돌아섰다.

병실 침대 위에 누워계신 외할아버지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황달 때문인지, 아니면 그사이 많이 수척해진 탓인지는 몰라도 낯빛이 예전만 못하다.

숨소리도 거칠었고.

그나마 다행인 건, 혼수상태는 아니라는 점.

견디기 어려운 통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통제를 투여하고 있는 탓에 지금은 잠이 드신 상태지만, 깨어나시면 또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실지…….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돌아보진 않았다.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도준아.”

내 곁으로 다가온 희주가 낮은 목소리로 날 부르며 손을 잡아왔다.

“좀 쉬어.”

“응.”

내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대답은 건조하게만 느껴졌다.

표정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 상태로 미동도 없이 외할아버지 얼굴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다시 문이 열리고 부모님께서 들어오셨다.

두 분 다 내게로 다가오실 뿐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다.

아버지께서만 조용히 내 어깨에 손을 올리셨을 뿐.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 시간?

두 시간?

아니면 10분?

어쩌면 1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당장에라도 벌떡 일어나 고래고래 고함을 치실 것만 같은데…….

외할아버지는 깊은 잠에 빠져 계실 뿐이었다.

부르르르르.

주머니에 대충 찔러넣어 놨던 핸드폰이 울린 것도 그때였다.

부르르르르.

계속해서 받지 않고 있자, 끊길 생각을 안 한다.

“아들.”

어머니께서 날 부르고서야 외할아버지 얼굴에서 시선을 떼어냈다.

그러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예. 아저씨. 그럴게요. 예. 예.”

전화를 끊고 나서 세 사람에게 말했다.

“잠시만 나갔다 올게요.”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는 그들의 눈빛을 피하듯 돌아섰다.

그러곤 나가기 전 다시 한 번 외할아버지를 바라보고 나서 문을 열었다.

***

아까 병실에서 바라보고 있던 뒤뜰. 이름 모를 나무의 가지들이 가려주는 햇살 아래, 벤치에 나란히 앉아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께서 건네주었던 캔 음료는 따지도 않은 채였다.

기껏 불러낸 아저씨 역시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고.

아마도…….

이렇게라도 불러내지 않으면 내가 병실에 처박혀 나올 생각조차 안 할 거라고 생각하신 거겠지.

사실 지금 상황에서 무슨 얘기를 한들 제대로 대화나 될는지 모르겠다.

다음 공연이 5월 초순에 잡혀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관심도 없었다.

팬들한텐 미안하지만…….

외할아버지는 내게 그런 분이시다.

“공연은 신경 쓰지 마라.”

“예.”

“CDM하고도 얘기 다 끝났으니까. 지금은 외할아버지 일만 생각해.”

“예.”

“……힘드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랬다간 이제껏 버텨오던 게 전부 무너져버릴 것만 같아서.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아저씨께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위약금…….”

“…….”

“제가 메꿀게요.”

잠시 날 바라보던 아저씨께선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시더니 내 머리칼을 헝클어뜨리셨다.

그러곤 뒤이어 내 어깨를 한차례 가볍게 두드리곤 일어나셨다.

“힘들겠지만, 버텨라. 널 응원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서라도.”

아저씨는 떠나기 전 살짝 귀띔하셨다.

“나중에라도 한 번쯤은……. 팬 카페에 들어가 봐.”

그렇게 아저씨가 떠나신 후, 난 가만히 앉아서 앞만 보았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꽤 많다.

그중 태반이 환자와 보호자들이었다.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뒤늦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펜 카페에 접속하자, 수없이 많은 글들이 떠있었다.

- 오빠, 힘내세요.

- 형! 저희가 뒤에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 킴. 지난번 공연 정말 멋졌어. 힘들겠지만, 부디 이겨내서 다시 한 번 멋진 공연 보여줘!

- 응원할게, 김도준. 할아버지의 쾌차……. 빌어.

- 도준. 힘내!

정말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게시글은 말할 것도 없고, 댓글에 댓글까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스웨덴, 사우디아라비아……. 거의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몰려든 것만 같다.

언어도 제각각.

때문에 읽을 수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경우엔 한국 팬들이 친절하게 번역해서 댓글을 달아놓기도 했다.

꽉.

손에 힘이 들어간다.

핸드폰이 부서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목이 메고, 가슴이 먹먹했지만 참아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것 따윈…….

외할아버지께서 겪고 계실 고통의 백 분의 일도, 아니 만분의 일도 되지 않을 테니까.

난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글을 남겼다.

간단하게.

다들 고맙다고.

그런 뒤 핸드폰을 끄고 일어나 다시금 병실로 올라갔다.

***

새벽 두 시.

형 내외가 다녀가고 외삼촌들과 외갓집 식구들 역시 왔다간 후에도 난 계속해서 병실을 떠나지 않았다.

잠?

머리가 멍하긴 하지만, 졸리지도 않다.

누워계신 채 눈을 감고 있는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그저…….

병이라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로 누군가를 원망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다만, 후회가 될 뿐이다.

왜 난 깨닫지 못한 걸까.

어째서 외할아버지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까.

바빠서?

웃기는 소리다.

그럼 외할아버지께서 시간만 나면 날 보러오신 건?

바쁘면 당신이 더 바쁘셨겠지, 내가 더 바빴겠냐고.

난 손을 뻗어 할아버지 손을 잡았다.

앙상한 뼈 위로 살가죽만 남아 주름진 피부가 느껴진다.

이게 외할아버지 손.

어릴 때 버릇없이 굴던 날 혼내는 대신 귀엽다며 쓰다듬어주시던 그 손이다.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보네 마네 했어도, 결국에는 내게 먼저 손을 내미신 것도 할아버지셨다.

지나간 시간들이 하나하나 떠올라 가슴에 멍울을 만들어내고 있을 때였다.

꿈틀.

손이 움직인다.

그러더니 천천히 눈을 뜨시는 외할아버지.

“……할아버지.”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때였다.

내가 잡고 있던 손이 힘겹게 들어 올려진다.

부리부리하기만 하던 예전의 눈과는 달리 살짝 감긴듯한 눈으로 날 바라보시면서 들어 올리신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는 할아버지셨다.

“도…준아.”

“예. 저 여기 있어요.”

“노래…….”

“…….”

“……잘하더라.”

난 손을 들어 뺨을 어루만지는 손에 포갰다.

그러곤 애써 미소 지었다.

“제가…….”

뭔가 뜨거운 게 치밀고 올라오는 걸 도로 삼키며 말을 이었다.

“노래 좀 해요.”

외할아버진 옅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래…네가……내 손자지.”

그렇게 말씀하시더니, 이내 기침을 하시는 외할아버지셨다.

“하, 할아버지!”

“콜록 콜록!”

“여기요! 누가 좀! 여기요!”

후다닥 뛰어나가자, 의료진 한 명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레지던트인지 인턴인지는 몰라도, 의사로 보이는 남자는 외할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서둘러 병실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그날 밤.

가족들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 외할아버지는 평온한 얼굴로 눈을 감으셨다.

***

장례식 내내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빈소를 찾았다.

얼굴도 본 적 없는 재계와 정계의 인사들.

정 회장님과 몇 분을 빼고는 그들이 누군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그저 자리를 뜨지 않은 채 가끔 절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아니, 나오질 않았다.

가슴 한구석이 뻥 뚫린 느낌만 들뿐.

염습을 할 때도,

입관 때도,

발인 때도,

심지어 장지로 향할 때도.

눈이 따갑고, 뜨겁다고만 느껴졌을 뿐이다.

주위에서 흐느낌이 들려왔지만, 난 울지 않았다.

도저히 믿기질 않아서.

그리고 삽을 퍼 관 위로 흙이 덮이는 순간,

“큭!”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지자, 걷잡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를 안은 채로 오열했다.

“아, 아들!”

“도준아!”

사람들 소리가 아련히 들려왔지만, 시야가 빙글 돈다고 느껴지는 순간 하늘이 보였다.

내가 그날 마지막으로 본 것은…….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하늘이었다.

***

소연과 함께 복도를 걸어오던 민준은 문밖에 놓인 의자에 앉아 계신 아버지를 발견하곤 물었다.

“도준이는요?”

“깨어난 지 한 시간쯤 됐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민준이 서둘러 병실로 들어가려고 하자, 아버지의 손이 팔뚝을 낚아챘다.

그러곤 고개를 내젓자, 민준은 의아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실장이 와 있다.”

“예? 이 실장님이요?”

“그래.”

왜냐고 물으려던 민준이 뒤늦게 깨달았다.

도준이 기절한 건지, 아니면 그동안 못 잔 잠을 내리 잔 건지는 몰라도 하루가 지나도록 깨어나지 않고 있을 때 외할아버지의 유언 집행이 있었다.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사와 관련된 것들, 이를테면 지분 같은 건 대부분 외삼촌들 몫이었고, 나머지 재산 중 일부만 어머니께서 물려받았다.

특이한 건 외할아버지의 집을 도준이 물려받게 되었다는 건데, 그 때문에 이 실장이 와 있는 모양이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민준이 아버지 옆에 앉자, 소연 역시 남산만큼 부푼 배를 잡고서 조심스럽게 앉았다.

“어머니는요?”

고갯짓으로 병실을 가리키는 아버지.

“할머닌 큰외삼촌이랑 같이 살기로 하셨대요?”

“글쎄다. 잘은 모르겠는데, 도준이가 괜찮다고 하면 장모님은 계속 그 집에서 지내실 모양이더라.”

“확실히 그편이 낫겠네요.”

민준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섭섭하진 않냐?”

“저요?”

피식하고 웃더니 민준이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사촌들도 저랑 똑같은데요, 뭘. 도준이가 특별한 거지.”

“하긴…….”

그때였다.

병실 문이 열리며 이 실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 민준이구나.”

그는 민준의 어깨를 가볍게 짚고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곤 병실을 떠났다.

그제야 병실 안으로 들어간 민준은 볼 수 있었다.

침대에 몸을 기댄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도준을.

그 옆에선 어머니께서 도준의 손을 잡은 채 안쓰러운 눈빛을 하고 계셨다.

한데, 식구들이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도준은 정작 밝은 표정이었다.

의외라는 생각에 민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아?”

그러자, 도준이 고개를 끄덕이곤 그를 불렀다.

“형.”

“……?”

“나, 오늘 퇴원하려고.”

“좀 더 쉬지 않고?”

도준이 한차례 고개를 내저었다.

“파리로 가야 해.”

“파리?”

되묻는 형에게 도준이 말했다.

“콘서트 해야 하거든.”

민준은 생각 같아선 뜯어말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도준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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