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12화 (212/260)

# 212

#212. 나는 손자다(2)

부탁이라고 하셔서 살짝 긴장했는데, 들어보니 별거 아니다.

당연히 들어 드리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긴 해도 조금 이상하긴 했다.

맨체스터 공연까지 보러 오신다니.

요즘은 좀 덜 바쁘신가?

아니면 휴가?

음, 회장님이 휴가 간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하기야 요새 들어선 삼촌들이 거의 대부분 일을 분담해서 하고 있는지라 외할아버지도 마음먹기에 따라선 얼마든지 쉬실 수 있으실 테지.

뭐, 외삼촌들 일 처리가 마음에 안 든다며 매번 방방 뛰시긴 하시지만.

“잘 보이는 자리로 준비해 드릴게요.”

내 대답이 마음에 드셨는지 그저 미소만 지으시는 외할아버지셨다.

***

그 후로 사흘이 흘렀다.

공연 준비야 내가 하는 게 아니라 회사에서 알아서 하는지라 나로선 딱히 바쁠 게 없었다.

덕분에 외할아버지와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했고, 식사도 매번 같이 했다.

때로는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들도 나누었고.

물론 항상 웃기만 한 건 아니다.

세대차이가 나서인지는 몰라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꽤 큰 차이가 있어서 가볍게 투닥거리기도 했던 것이다.

뭐, 대부분은 내가 지는 걸로 끝을 맺었지만.

그렇게 외할아버지와 간만에, 아니 처음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세상은 난리법석이었다.

영국을 비롯해 미국 등지에서 내가 오투 아레나에서 공연한 게 기사로 나기도 했지만, 얼마 못 가 IS의 기사에 밀려 사라졌다.

그나마 한국에서만 계속해서 나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을 뿐이었다.

나머지 국가에선 러시아와 IS 간에 크나큰 충돌이 있을 거란 보도가 계속해서 나오는 중이었고, 그런 와중에 백악관에선 러시아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자 유럽과 일본 등이 잇따라 지지를 표명했다.

중국은 아직까지 관망하는 중이었지만, 머잖아 지지한다는 쪽에 손을 들어줄 거라는 게 모두의 예상이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종교적 관점에서야 누가 옳다 그르다 말하긴 어려울 테지만,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한다는 점에선 이번 사태는 어떻게 봐도 IS가 악역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한마디로 명분은 러시아 쪽에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이처럼 시리아 비무장지대를 둘러싸고 IS가 러시아, 아니 이제는 전 세계를 상대로 첨예한 대치를 하는 중임에도 빌보드 차트에선 내 노래가 여전히 1위에서 10위까지 휩쓸며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중이었다.

게다가 김도준 앱을 통해 발표된 곡들로 구성된 앨범이 벌써 세 번째로 발매되면서 각국 음원 차트에서 이른바 돌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덕에 내가 찍은 광고들, 즉 S 전자와 D 그룹의 제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나.

더불어 나와 손톱만큼이라도 관련 있는 것들은 모조리 수면으로 떠오르며 이른바 특수를 누리는 중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새롭게 불기 시작한 한류냐 아니면 단순히 김도준에 한정된 효과냐 하면서 말들이 많았지만, 어쨌든 한가지는 분명했다.

지금 현재 내 이름 석 자가 지니는 가치는 거의 산정이 불가할 정도라는 것.

외할아버지께서 가치만 놓고 보자면, D그룹보다 내가 더 나을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셨을 정도니 무슨 말이 필요할까.

물론 당사자인 나로서는 전혀 와 닿지 않는 얘기였지만.

것보다는 지금 당장이 신경 쓰였다.

“무슨 일이신데요?”

무슨 까닭인지 밤늦은 시각에 호텔 로비로 따로 날 불러낸 이 실장님을 보면서 묻자, 얼굴을 굳히시는 이 실장님.

그러고도 한동안 말씀을 아끼시더니, 불쑥 얘기하신다.

“회장님은 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

“아무래도 너한테만은 얘기를 하지 않으면 안될 거 같아서 말이다.”

뭔 얘기를 하시려고 하는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가슴이 뛴다.

까닭 모를 불안감에 속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뭔데 그래요?”

결국,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실장님은 날 한차례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려 들고 있던 음료수 캔을 만지작거렸다.

“도준아.”

그러다가 날 부르는데,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미치겠네.

안 그래도 불안해 돌아가시겠는데, 저 냉철하고 단단한 사람의 떨리는 음성을 들으니…….

입안이 말라 버석거리는 느낌이었지만, 음료수를 마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왜 그래요?”

“후. 지금부터 하는 얘긴 너만 알고 있어야 한다.”

“…….”

대답 대신 눈을 빛내자, 이 실장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를 털어놓았다.

담담한 척.

그러나 여전히 떨리는 음성으로.

“회장님……. 췌장암 말기이시다.”

지금 무슨 얘기를 들은 거지?

선뜻 이해가 가질 않아 되물었다.

“실장님.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이 실장님은 대답 대신 침음을 흘리셨다.

“뭔 얘기를 하시는 거에요? 지금?”

다그치듯 되묻자, 그제야 다시 말씀하시는 이 실장님이셨다.

“후우! 예후가 좋질 않아서, 병원에선 입원하라고 하는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손에 쥐고 있던 캔이 찌그러진 채 바닥을 굴렀지만,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지, 지금 장난하시는 거죠?”

“…….”

“실장님! 저, 그…런 장난 안 좋아해요. 그러니까…….”

“도준아.”

“아니라고 말해주면 안 돼요? 이렇게 부탁할 테니까…….”

“……도준아. 진정해.”

“어떻게……. 어떻게 진정할 수 있냐고요!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되실 때까지 전 아무것도 모르고……. 큭! 제가 지금 진정할 수 있겠……!”

로비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데, 이 실장님의 커다란 손이 내 손목을 콱 움켜잡는다.

그러곤 강렬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셨다.

“말했다. 그만 하라고.”

이를 악물었다.

눈이 따끔거렸다.

화가 났지만, 어디에다 대고 화를 풀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가슴만 터질 것 같았다.

그런 내게 이 실장님이 말씀하셨다.

“지금 우리가……. 아니, 네가 할 일은 하나뿐이다.”

가만히……. 이 실장님을 노려보고 있자,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가신다.

“회장님 옆에 있어라.”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손목을 놓아주는 이 실장님.

그러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리셨다.

자박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

췌장암 말기.

간이나 폐 등으로 원격 전이가 된 4기의 경우, 수술은 불가하고 수술이 가능한 1기조차 5년 생존율이 20%가 채 안 되어 암 중에서도 가장 독한 암으로 악명을 떨친다고 한다.

객실로 올라와 방으로 들어온 뒤, 멍하니 앉아 있다가 핸드폰을 꺼내 미친 듯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크흑!”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젠장!

콘서트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우고, 외할아버질 모시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여기저기 수소문이라도 해볼까?

혹시라도 엄청난 명의가 있어서 기적처럼…….

꽉!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런 채로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전화를 걸었다.

- 어머, 아들. 엄마가 아들 보고 싶어하는 거 어떻게 알고 전화했어?

말문이 콱 막힌다.

목도 잠기고.

침을 억지로 삼키고 말문을 열었다.

“응. 어머니…. 보고 싶어서 전화했죠.”

- 그랬어? 호호호. 엄마가 우리 아들 때문에 산다니까.

아무것도 모르시는 어머니의 웃음소리.

미치겠다.

말씀드려야 하나?

몇 번이고 입에서 튀어나올뻔한 말들을 삼키며 몇 마디 더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침대 끝자락에 앉아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채로 지쳐서 잠들 때까지 그대로 앉아 있었다.

***

4월 28일. 맨체스터 공연 날 아침이 밝았다.

아레나 경기장으로 향하면서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었다.

평상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주제……. 사실 주제라고 말하기에도 시답지 않은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아무튼 나는 쉴새 없이 떠들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무대가 설치되어 있는 경기장에 도착한 후였다.

“1층 가장 앞자리로 마련했다. 그걸로 되겠냐?”

아저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요?”

아저씬 내가 부탁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 채 내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경기장 측에 양해를 구했지. 다행히 VIP석이 몇 자리 남아 있더라. 거기로 바꿔준다니까, 좋아하더군.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고마워요.”

고개를 끄덕이신 아저씬, 내 어깨를 두들겼다.

“뭔 일인지는 몰라도…….”

말을 맺지 않으셨지만,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이 실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

계단을 올라 무대 위로 올라가기 전부터 음의 시공간이 펼쳐졌다.

전보다 한층 더 밝고 강렬한 느낌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함성으로 뒤덮인 공연장.

무대에 올라서자, 엄청난 수의 팬들이 뜨겁게 날 맞아주었다.

나보다 먼저 나와 있던 세션들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하곤 무대 중앙으로 나서며 관중들을 한차례 둘러보았다.

무대 바로 앞에서 손을 치켜들고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있는 팬들과 1층부터 시작해 빈틈없이 자리를 메운 채 함성을 내지르는 팬들까지.

천천히 그들을 둘러보다가 한곳이 이르러 시선을 멈췄다.

1층 객석, 맨 앞줄 정중앙.

그곳에 외할아버지께서 앉아계셨다.

양옆으론 이 실장님과 경호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보였지만, 내 눈길은 오직 외할아버지께로만 향해 있었다.

그 상태로 마이크를 감아쥐었다.

- 안녕하세요. 김도준입니다.

갈채가 쏟아지고,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이 스피커를 통해 공연장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 여러분을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크게 숨을 몰아쉬곤,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 갑니다! 나 지금 여기에!

뒤쪽에서 들려오는 연주소리에 맞춰 소리를 내질렀다.

<나 지금 여기에>는 락.

조금은 거친 느낌의 곡인지라 유난히 남성팬들이 좋아하는 곡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이 싫어한다는 건 아니었고.

전주만 흘러나오고 있는 상황임에도 공연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런 가운데 나는 마이크를 쥔 채 무대 위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내내 객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확히는 할아버지가 앉아계신 자리에서.

보세요.

여기 제가 있어요.

할아버지 손자가 있다고요.

이제부터 보여 드린다니까요.

할아버지 손자가 어떤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

또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전부! 전부 다 보여 드릴게요.

- 이제 더 이상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

전주가 끝나는 타이밍에 정확하게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아악!

눈앞에 펼쳐진 새하얀 음의 시공간.

그 안으로 금빛에 가까운 노란 빛이 섞여들었다.

그것은…….

할아버지…….

관객석 정중앙에 앉아계신 외할아버지에게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한없이 따뜻하고, 또 포근한 느낌의 빛.

그러면서도 강렬한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네가 내 손자라서 행복했다.”

순간 목이 메어왔지만,

울컥하며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었지만,

나는 노래했다.

이 순간, 내가 할아버지께 드릴 수 있는 건…….

노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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