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209. 월드 클래스(2)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거다.
당연히 물을 수밖에 없었다.
“콘서트는 괜찮을까요?”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모이는 게 느껴진다.
하지만, 누구 하나 말하지 않는다.
후우, 당연한 일인가?
다른 것도 아니고 테러다.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터질지 모르는.
누군들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입술을 잘근 씹었다.
하필이면 지금…….
국제 정세 따윈 나로선 알 수도 없거니와 설사 안다고 하더라도 깊이 연관되고 싶지 않다.
흔히들 말하듯 종교와 정치 문제는 말 그대로 십인십색이라서 어느 쪽이 옳다고 얘기하기 어려우니까.
물론 나도 나이가 있는 만큼 조금이나마 나름의 생각이란 걸 가지곤 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자유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를 내가 아니란 얘기다.
그러나 그게 날 보기 위해서, 아니 내 노랠 듣기 위해서 오는 수많은 팬들의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걸 정당화시키진 못할 터다.
“아무래도 월드 투어를 미루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한참 만에 내린 결론이었다.
객실의 거실엔 침음이 흘러나왔다.
누구 것인지 모를 정도로 여기저기서 흘러나온 소리에 난 고개를 내젓지 않을 수 없었다.
하기야…….
나야 팬들만 생각하면 끝이지만, 브라이언과 아저씨를 비롯해 마루 누나와 고 팀장님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만일에 하나라도 콘서트를 취소하게 되는 순간, 거액의 위약금이 발생하니까.
어쩌면 회사가 파산에 이를지도 모를 일이다.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안전에 대한 아무런 대비도 없이 이대로 콘서트를 강행한다는 건 한마디로 미필적 고의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걸 알기에 다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신음에 가까운 한숨들을 쉬고 있는 거겠지.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적어도 영국은 괜찮을 거야.”
한동안 깊이 생각에 잠기는 듯 보였던 브라이언의 얘기에 내가 물었다.
“어째서요?”
“음, 뭐라고 말해야 할까? 그래. 우선순위. 진짜 IS가 테러를 일으킨다고 치자. 지금 그들이 발표한 성명대로라면,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이들리브에 설치된 비무장지대 협상이지? 그럼 그들 입장에선 어딜 가장 먼저 위협하는 게 효과적일까?”
“후! 어디에서도 테러가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러시아와 터키겠죠.”
머리가 단단한 돌이 아니라면 간단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겠지? 그럼, 그 다음은?”
“서방이라곤 해도 아무래도 미국이 되지 싶네요.”
“하지만, 미국은 보안체계가 굉장히 철저하지. 특히나 지금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말이야. 모르긴 몰라도 미국 본토는 말할 것도 없고, 괌 같은 미국령에서도 출입국 통제가 몇 배는 강화되었을 거다.”
“미국을 상대로 테러를 일으키긴 어렵다는 거죠?”
“911때처럼 생각지도 못한 수단을 동원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흠, 영국이나 유럽 역시 비슷하겠네요.”
“아마도. 한곳만 제외하고.”
“……?”
“알잖아? 이런 시기에도 항상 개방적인 태도를 고수해온 나라를.”
잠시 생각하다가 되물었다.
“프랑스?”
고개를 끄덕이는 브라이언.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물었다.
“한국은 괜찮을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아저씨에게서 들려왔다.
“냉철하게 생각한다면, 저들이 동아시아에서 테러를 일으켜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거의 0에 수렴하지. 그렇긴 해도 장담하긴 어렵다. 한국 정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달라지긴 하겠지만, 그동안의 선례를 보아선 분명…….”
“지지하겠죠. 서방측의 결정을.”
결국, 무조건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럼 어쩌죠?”
내가 다시 묻자, 다들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브라이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사와 연락 좀 해볼게.”
그리고 객실을 벗어나 나가버렸다.
그가 사라진 곳엔 침묵만이 남아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느낌으로는 몇 시간은 더 지났을 것 같은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 별별 생각들이 휘몰아쳤다.
그 중심에는 안전이라는 두 글자가 있었고, 어떻게 하면 테러에 충분히 대비해 팬들과 스탭들 그리고 내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국가적 규모로 이뤄지는 대책에 한 개인에 불과한 내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경비를 늘리는 것 정도랄까.
심지어는 콘서트장에 입장하는 관객들에 대한 통제도 강화하기 어려울 터였다.
콘서트라는 것 자체가 즐기자는 목적을 가지고 그 비싼 돈을 주고서 티켓을 구한 것인데, 안전을 도모한다는 미명하에 함부로 검색 따윌 해봐라. 그거야말로 시작도 하기 전부터 찬물을 끼얹는 거나 마찬가지. 그럴 바에야 아예 하지 않는 게 나을 거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콘서트를 취소한다면 이미 티켓팅을 마치고 부푼 꿈을 안은 채 설레고 있을 팬들이 가만있을 리가 없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그들에게 내가 머리 숙여 사죄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들의 그 실망감은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단 말인가.
진퇴양난이 따로 없었다.
젠장! 이게 뭐냐고!
아무리 종교도 좋고 신념도 좋다지만, 폭력이라는 수단을 동원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고 하는 IS에 진심으로 화가 나 주먹을 꽉 쥐었을 때였다.
객실 문이 열리며 브라이언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갈 때보다 한결 나아진 표정으로.
***
“그러니까, CDM에선 적어도 영국에서의 공연은 괜찮을 거라고 예상한다는 거군요?”
“그렇지. 위쪽에서 믿을만한 정보통을 통해 알아본……. 아, 여기서 믿을만한 정보통이라는 건 정부 쪽이니까, 너무 깊게 파고들진 말고. 아무튼, 그 정보에 따르면 IS의 움직임이 현재까진 시리아 한정으로 관측된 모양이야.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까지 딱히 수상한 움직임은 보고되지 않고 있다고 하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요?”
아직까지 걱정을 떨쳐내지 못하고 묻자, 브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이런 문제에서 누군들 100% 장담할 수 있겠어?”
그렇게 말한 브라이언이 날 진지하게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맞아. 도준. 지금 네 자세는 분명 옳아. 누구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지. 새가슴이라고. 하지만, 그게 팬들을 위한 거라면 어떤 새끼가 돌을 던지겠어? 근데, 이것도 알아둬. 신뢰는 동료들과 스탭들 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
팬들이 티켓팅하는 순간, 이미 난 그들에게 약속한 거나 다름없다는 얘기다.
이유야 어떻게 되었든, 콘서트를 취소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프로페셔널하지 못하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는 거지.
한마디로 말해,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모를 위험을 피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날 기다려왔던 팬들의 기대에 부응할 것인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그때였다.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나직하지만 힘있는 목소리였다.
“이렇게 하지.”
아저씨였다.
“일단 하루만 더 지켜보자. 그동안 추이를 좀 보고, 안전하다고 판단된다면 일정대로 움직이고, 만일에 하나라도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보인다면, 콘서트를 취소하는 거지.”
직감했다.
피 말리는 하루가 될 거라는.
첫 번째 콘서트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그렇게 하죠.”
그럼에도, 나를 비롯해 모두가 찬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
결론부터 말하자면, 콘서트는 취소하지 않기로 결정이 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러시아의 반응이 매우 즉각적이었고 또한 격렬했기 때문이다.
터키 측 역시 한발 늦게 성명을 발표하는 등 IS의 협박에 강력하게 대응했지만, 러시아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때문에 IS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적대 국가는 러시아가 되었고, 러시아 대통령의 분노어린 외침과 함께 금방이라도 전쟁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항간에는 제2의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떠돌았고, 이로 말미암아 전 세계는 긴장 상태에 돌입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UN과 유럽 국가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브라이언의 얘기에 따르면 IS에 대해선 이미 유사시 군사적 행동을 취하기로 결정을 내렸지만, 일단 러시아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한다.
어찌 되었든 그로 인해 영국에서의 콘서트는 계획대로 치러질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게 겨우 하루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와, 진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네요.”
마루 누나의 얘기에 모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한쪽에서는 시리아 지역 한정이라지만, 일촉즉발의 상황에 처해 있는데 다른 지역에선 여전히 일상이 펼쳐지고 있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다.
“도준.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해?”
브라이언의 물음에 나는 씁쓸하게 웃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그냥…….”
후우.
내일이면 콘서트가 열린다.
월드 투어의 첫 번째 콘서트가.
그런데도…….
분명 원하던 대로 됐는데, 평화롭기만 한 지금의 상황에 위화감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애써 속내를 감추며 다시 한 번 고개를 내저었다.
“오케이. 그럼 문제없는 거지?”
“노 프라블럼!”
손을 들어 가볍게 털어내곤 돌아설 때, 저만치서 아저씨께서 날 보고 계시는 게 보였다.
어딘지 모르게 안쓰럽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쯧, 뭘 또 저렇게 보실까.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도 할 수 있는 거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아저씨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러곤 어깨를 펴곤 가슴을 내밀었다.
“실비아! 사진 안 찍어?”
“포, 포즈 취해줄 거에요?”
“어떤 포즈를 원하는데?”
양 갈래로 딴 빨강 머리를 흔들면 도도도 달려온 실비아가 초롱초롱한 눈을 빛냈다.
“……어, 어떤 포즈든 취해줄 건가요?”
“원한다면.”
아이고. 이 아가씨, 그게 뭐라고 그렇게 활짝 웃냐.
“그럼, 상의 탈의하고 땀 흘리는 모습으로 머리 한번 털어주면……. 뀌에에에엑!”
마루 누나의 암바에 걸려 캑캑거리는 실비아를 보다가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의 소원대로 머리를 털어주었다.
물론 상의는 탈의하지 않았지만.
콘서트 전날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
“준비됐어?”
마루 누나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들려온 함성.
대기실까지 밀려 들어오는 소리에 나는 픽하고 웃고 말았다.
벌써 삼십 분째 저러고들 있다.
그동안 팬들이 떼창으로 부른 노래만 몇 곡인지 모른다.
아니 어떻게 어제 김도준 앱을 통해 발표된 노래를 벌써 외워서 부르는지 이해 불가다.
문득 궁금해졌다.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에 방금 저들이 부른 노래가 빠져 있다는 걸 알면 팬들은 실망할까 안 할까?
뭐 상관없나?
무대 위에서 부를 노래만 열 곡이 넘으니까.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앵콜 때 부르면 되겠지.
“그럼, 갈까?”
“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스탭들을 둘러보았다.
마루 누나가 뉴욕에서 직접 고용해 데려온 스타일리스트와 코디네이터를 비롯해 경호원들. 그리고 아저씨와 고 팀장님, 실비아와 브라이언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난 그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춘 후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참았던 숨을 내쉬며 문을 열었다.
자박자박.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통로 바닥을 울리는 발소리가 점점 커져가는 함성에 묻혀 흩어지고 있었다.
화악.
계단을 밟고 올라가, 무대 위로 올라서는 순간 망막을 뒤덮는 빛.
동시에 공연장을 뒤흔드는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콘서트가 시작된 것이다.
더불어 월드 투어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