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08화 (208/260)

# 208

#208. 월드 클래스(1)

월드 투어의 시작점으로 고른 곳이 하고많은 나라들 중에서 왜 하필 영국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줄 수밖에 없을 거다.

영국이니까.

맞다.

난 한국 사람이고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니 한국에서부터 월드 투어를 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했었고, 또 계획도 그렇게 세웠다.

한데, 막판에 바꾸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이유?

간단하다.

현대음악의 발원지는 미국이 분명하지만, 부흥을 이끈 이들은 영국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비록 비틀즈를 비롯해 헤아릴 수도 없는 영국 밴드들이 밤마다 공연했던 클럽들은 아니지만, 오투 아레나에서 월드 투어를 시작하는 건 내게 의미가 있다.

더불어 그 여행의 종점은 한국이 될 거다.

그리고 그즈음엔 내가 현재 갖고 있는 문제점들, 이를테면 노인이 했던 경고…그릇이 어쩌고저쩌고했던 것들이 해결되어 있을지 모른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반드시.

“진짜 어마어마하네.”

마루 누나의 촌평이 아니더라도 피부에 확 와 닿는다.

지금 호텔 객실 소파에 앉은 채 아저씨가 펼쳐들고 있는 신문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입국장을 통과한 뒤 공항을 나올 때, 구름떼처럼 모여들어 있던 팬들이 광적으로 소리치던 모습이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아래 누가 썼는지는 몰라도 꽤나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한 기자가 기사를 써놨다.

- 이번에 월드 투어 중 첫 번째 공연지로 본국을 방문한 김도준은 이미 영국 내에 수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현재 S 전자와의 프로젝트 일환으로 아스트로 폰인 N10에 탑재한 김도준 앱을 통해 지속적으로 곡을 발표 중이다. 또한, 그는 미국에서 줄리아드 음대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편으로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결합을 목표로 실험적인 밴드인 <더 포어>를 결성해……(중략)……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교향곡까지 작곡했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 음악 천재가 이미 월드 클래스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피아노의 여제 마가렛 헤라시오네, 저항의 음유시인 밥 데일런, 비틀즈의 멤버이자 천재 아티스트인 폴 매카트넌, 당대 락계의 신화를 써내려나고 있는 레이크헬 등과 깊은 친분을 가진 것으로…….

이미 기사를 읽어봤는데, 다른 건 몰라도 한가지는 알 수 있었다.

무척이나 호의적이라는 것.

다만,

다 좋은데…….

기사제목이 마음에 안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미국의 역습]

나 한국사람이거든.

생각 같아선 당장 신문사에 전화해서…….

“그런 얼굴 할 거 없다. 고 팀장이 보자마자 바로 정정보도 요구했으니까.”

내 속을 다 들여다보시는지, 아저씬 픽하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글쎄요. 그쪽에서 이쪽 요구를 들어줄 거라곤 생각지 못하겠네요.”

“노노. 우리가 그런 건 확실히 하지. 넌 한국인이고, 미국사람은 나지. 물론 우린 파트너지만.”

브라이언이 정색을 하며 끼어들었다.

“그리고 난 비즈니스에 국적이나 인종 따윌 끼워 넣고 싶진 않다구. 사적으로 그게 우리 우정을 돈독하게 만들어줄 거라고도 생각지 않고.”

피식.

확실히 브라이언의 일 처리 방식은 나쁘지 않다.

돈만 된다면 모조리 팔아치우겠다는 악덕상인 냄새는 나지 않는달까.

대신 어떻게 팔아야 가장 높은 가격에 팔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는 거 같지만.

“오케이. 브란이 그렇게 말한다면야. 그건 그렇고, 여기선 어디 어디 돌기로 했죠?”

브라이언 대신 마루 누나가 대답했다.

공식적으로 미국 지부장이기도 한 누나가 이번 월드 투어의 스케줄을 총괄하기 때문이다.

“두 군데야. 런던하고 맨체스터. 그리고 지금쯤이면 이번에 월드 투어 돌 지역들도 각국 언론에 이미 보도되고 있을 거야.”

누나가 내미는 서류들을 살펴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빨강 머리 실비아가 저만치서 카메라를 치켜드는 게 보인다.

살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자, 실비아가 감격한 눈빛을 해 보이며 연방 셔터를 눌러댔다.

“예쁘게 웃어야지. 팬들을 생각하면서 말이야.”

한숨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으며 마루 누나 말처럼 웃어 보였다.

평상시 사진들을 찍어서 화보 등의 굿즈로 판매한다고 했던가?

그래, 팬들을 생각해야지.

내가 가수인지 모델인지 슬슬 헛갈리려고 하지만.

보자, 첫 번째 공연이 내일모레라…….

“각오하는 게 좋을 걸? 엄청 몰릴 거라고.”

브라이언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쳐간 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후우, 내가 아레나에서 공연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이야.

나름 감격에 겨워하고 있을 때였다.

부르르르.

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다.

010으로 시작하는 걸로 봐선 한국에서 걸려온 거 같긴 한데…….

잠시 망설이다가 받았다.

모르는 사람이 내 전화번호를 알리도 없거니와, 혹시라도 중요한 전화일는지도 모르니까.

“예. 김도준입니다.”

당연히 한국말로 얘기했고, 수화기 너머에서도 한국말이 들려왔다.

- 저, ONEZ 재단의 총무과장인 이재철이라고 합니다.

“아, 예.”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전화인지라 자연스러운 대화는 불가능했다.

쯧, 이럴 땐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게 낫겠지.

“근데, 무슨 일로 연락하셨는지……. 재단 문제라면 어머니께 전화하시는 게 맞는 거 같은데요?”

- 그, 그렇죠. 근데……. 지금 이사장님께 연락이 안 돼서요.

“그래요?”

- 아프리카에 계시는데, 전화가 안 터지는 곳인 거 같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연락드렸습니다.

이해했다.

뭔가 다급한 상황인듯한데…….

“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잠시 망설이던 이재철 과장이 대답했다.

- 그게……. 세무조사가 들어왔습니다.

하도 황당해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예? 세무조사요?”

- 네. 국세청에서…….

한참 동안 듣고 있다가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그러니까, 말인즉슨 국세청에서 ONEZ 재단의 탈세 의혹을 갖고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는 얘기?

참네, 김도준 앱에 수입은 물론이고 지출내역까지 적나라할 정도로 공개되고 있는 마당에 조사할 게 뭐가 있다고.

아무래도 누군가는 ONEZ 재단에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나 보네.

것도 아니면 나한테 불만이 있던가.

“진정하시고요. 자료들 잘 넘겨주세요.”

- 예? 지금 자료들 넘겨주라고 말씀하신 거 맞습니까?

“뭐, 제가 관여할 문제는 아니지만, 아마 어머니…이사장님께서도 그렇게 지시하셨을 거에요. 그게 아니더라도 결국 걔들이 싹 긁어가지 않겠어요? 아, 혹시 재단에서 세금 안 낸 거 있나요? 그것도 아니면 횡령이나 분식회계 같은……. 그런 일은 없었겠네요. 설립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럼 문제 될 거 없잖아요?”

- 그렇긴 한데, 이렇게 대놓고 밀고 들어온 걸로 봐선 어디선가 재단을 압박하기 위한 게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압박이라…….”

난 핸드폰을 든 채 턱을 만지작거리다가 얘기했다.

“하라고 하죠, 뭐.”

- 예?

거참, 과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새가슴도 아니고.

속으로 혀를 차며 말해주었다.

“이사장님이 알아서 하실 겁니다. 그러니까 과장님도 너무 걱정 마세요. 수틀리면 옮겨버리면 그만이니까요.”

-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뭐긴.

간단한 거지.

“재단이 꼭 한국에 있을 이유가 있나요?”

어차피 국제기구를 표방하는데.

내 얘기에 이재철 과장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어어 거리다가 결국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아까보다 한결 밝은 음성으로 말했다.

- 알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그럼 이사장님과 계속해서 연락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제가 직접 나서서 움직이겠습니다.

“예.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고 나서 어깨를 한차례 으쓱거리는데, 고 팀장님이 화장실에서 나오며 한마디 하신다.

“제정신들이 아니군. 거위 배를 가르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러게요. 막대한 돈이 오가니까, 탐이 나나 보죠. 어머! 혹시 우리 회사에도 세무조사 들어오는 거 아니에요?”

마루 누나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호들갑을 떨자, 아저씨께서 입꼬리를 추켜올리셨다.

그러곤 말씀하셨다.

“회사가 꼭 한국에 있을 이유가 있나?”

***

“조금 걱정했어요.”

오후 늦게 걸려온 전화.

어머니와 통화를 하면서 살짝 걱정을, 아니 불평을 늘어놓았다.

“지금 수단이라고 하셨죠? 열심히 하시는 건 좋은데, 굳이 직접 가실 필요가 있으세요? 거기 사막기후잖아요? 치안은 괜찮…….”

- 아들. 남자가 그렇게 말이 많으면 여자들이 싫어해. 다정한 남자는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수다쟁이를 뜻하는 건 아니란다. 그러니, 잔소리는 그쯤 해두고. 아까 이재철 과장한테 들으니까, 네가 그랬다며? 뭣하면 재단 자체를 다른 나라로 옮겨버릴 수도 있다고. 그 말 진심이니?

“반쯤은요.”

- 그래? 그럼 나머지 반은?

“그건 저쪽에서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다르죠. 근데, 누구예요? 압박 넣고 있다는 사람들이?”

어머닌 한숨을 내쉬더니 말씀하셨다.

- 미래 한국당의 강주환 의원이라고 있는데…….

참네, 외할아버지 말씀이 딱 맞네.

사업을 하려면 정치 쪽으론 더도 말고 한발만 걸치고 있어야 한다고 하더니만.

친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척을 져서도 안 된다고 하시던 외할아버지의 얘기가 떠올라 쓰게 웃었다.

확실히 그러네.

하여간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구나.

그래도 다행인가?

난 사업가가 아니니까.

“이상한 사람이네요. 우리한테 맡겨놓은 돈이라도 있대요?”

- 호호호. 그러게 말이다. 그래서 이 엄마가…….

아이고, 우리 어머니 맺힌 게 많으셨나 보다.

조금 맞장구를 쳐줬더니, 한참 동안 수다를 떠셨다.

대부분 여기저기서 들어오고 있는 압박, 혹은 구걸에 가까울 정도로 돈을 요구해오는 자들에 대한 뒷담화였다.

“잘하셨네요.”

- 그러어어엄. 누구 엄만데. 아들은 걱정할 거 없어요. 엄마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은 무슨.

내 어머니이기 이전에 외할버지랑 똑 닮았다는 소리를 듣는 딸인데…….

알겠다고 하곤 전화를 끊었을 때였다.

툭.

내 어깨를 치는 손길에 고개를 돌려보니, 마루 누나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요, 누나?”

이번엔 또 뭐지?

설마 전화 내용을 들은 건가?

“걱정할 필요 없어요. 재단 쪽 문제는 저희 엄마가…….”

고개를 내젓는 누나였다.

“.....?”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자, 마루 누나가 말했다.

“얼른 나와봐.”

“예?”

“테러야.”

테러?

갑자기 무슨 얘긴지 모르겠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을 나왔다.

그리고 거실에 모여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TV를 보고 있는 일행 뒤에 섰다.

뭐야, 저건?

BBC 방송에서 내보내는 뉴스.

화면에는 엄청난 폭발이 있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무너진 채 불타오르는 건물이 보였다.

“러시아 대사관?”

자막을 보곤 나도 모르게 외쳤다.

예루살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테러라는 건 알겠는데…….

그때였다.

화면이 바뀌었다.

[IS, 알 자지라 통해 성명 발표.]

하단에 흐르는 자막과 함께 화면에는 검은색 터번을 쓴 아랍인 한 명이 어딘지 모르게 위협적인 눈빛으로 말하는 장면이 떠있었다.

동시에 영어로 번역된 자막이 눈에 들어왔다.

- 러시아와 터키 양국이 이들리브에 설치하기로 합의한 비무장지대 설치 및 순찰감시 협상을 우리는 결코 묵과할 수 없다. 만일 사흘 안에 협상을 철회하지 않으면 ISIS 전사들이 러시아는 물론이고 터키를 비롯해 서방의 국가들과 성전을 불사할 것이다.

성전?

지금 대규모 테러를 일으키겠다고 하는 거야?

아이씨! 콘서트는 어쩌라고?

사람이 많이 모일 텐데, 설마 거기서 폭탄이라도 터지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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