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07화 (207/260)

# 207

#207. 코첼라 페스티벌(4)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 여태까지 골머리를 썩이던 고민 따윈 머릿속에서 싹 지워버렸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드넓은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딱 봐도 히피구나 싶은 관객들이 광란에 가까운 몸부림을 치면서 괴성을 질러대고 있었으니까.

와, 이건 이거대로 굉장하네.

왠지 조금만 더 흥분하면 티셔츠를 벗어 던지는 장면쯤은 우습게 볼 수 있겠는 걸?

여태까지 했던 콘서트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달까.

뭐랄까. 에너지가 넘쳐 흐르다 못해서 광적인 느낌마저 든다.

다들 약이라도 빨고 온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에단을 비롯한 세 명이 입만 벌린 채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하지.

클래식만 하던 애들이 이런 무대에 서보기나 했겠어.

콘서트라면 몇 번이나 해본 나조차도 이런 분위기는 처음인데.

한숨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으며 녀석들을 둘러보았다.

피아노를 대신해 가져다 놓은 신디사이저 앞에 앉아 있는 크리스티나.

커다란 첼로를 껴안은 채 서 있는 조안나.

바이올린을 턱에 바짝 붙인 채 눈알만 굴리고 있는 에단.

그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일제히 연주를 시작하는 그들이었다.

그렇지.

오프닝이 괜히 오프닝이 아니거든.

역할은 단 하나.

달구는 거다.

공연이 제대로 펼쳐질 수 있게 관객들을 무대로 바짝 끌어당겨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도록 만드는 것. 그게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인 거지.

난 기타를 잡은 채 스탠드에 고정된 마이크 앞으로 상체를 기울였다.

그리고 가볍게 내질렀다.

“우워어어어어어어어어어!”

큭큭큭큭.

이게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지는 둘째 치고,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근데…….

통한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이고. 이 사람들아! 약좀 작작 하지. 겨우 이 정도에 그러면 이따가 어쩌려고 그러나.

잘하면 오줌싸면서 실신할 애들 여럿 나오게 생겼다.

뭐, 그거야 내 알 바 아니고.

어차피 하는 거 나도 좀 즐겨보자.

지징! 지지징!

기타를 긁자, 또다시 터지는 함성.

그리고 그 순간, 눈앞에서 빛이 터졌다.

왔다!

이런 말 하면 좀 변태 같지만…….

이젠 이런 상황도 익숙해져서 그런가.

지금처럼 음악에 반응해 시야가 달라지고, 눈앞에서 새하얗게 빛나는 시공간이 생겨나는 느낌이 반갑기까지 하다.

역시 이거지.

확실하잖아.

이렇게 이유가 분명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니 왜 웃고 떠는데 그런 일이 생기는 거냔 말이다.

다시 생각해도 황당해서 속으로 혀를 찼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지.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란 얘기.

슬쩍 관객들의 반응을 한차례 본 후,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곤 마이크에 대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원곡, 사운드 오브 뮤직.

새롭게 편집해 락으로 완전 탈바꿈한 에델바이스.

어떻게 보면 지금의 무대에선 어울리지 않는 곡인데도 불구하고, 음악 자체가 락풍이다보니 다들 신경도 안 쓰는 눈치다.

아니, 오히려 미쳤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머리를 흔들고 어깨를 들썩이며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자니, 가슴속에서 불길이 치솟는 느낌이다.

이게 락의 본고장에서 하는 공연이구나 싶었다.

이런 기분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닌지, 에단은 물론이고 조안나 심지어는 크리스티나까지 흥분해서 미친 듯이 연주하고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격렬한 연주였다.

그게 또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들었고.

나?

말할 것도 없지.

부르는 나조차도 에델바이스가 이렇게 과격한 음악인 줄은 또 처음 알았다.

그렇게 전반부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난 자연스럽게 돌아섰다.

그러곤 손을 들어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세 사람, 크리스티나와 조안나, 에단이 숨을 헐떡이면서도 내 손가락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좋아. 잘들 하고 있어.

다시 손가락 하나를 꼽자, 펼쳐진 손가락은 두 개가 된다.

그리고 박자에 맞춰 재차 손가락을 움직이자 한 개가 되는 손가락.

그 순간이었다.

난 다시금 돌아서며 허리를 깊게 숙였다.

지이이이이이이이잉!

기타 음이 길게 울리는 순간, 세 개의 음이 동시에 터졌다.

웅장한 음색의 음악이 무대를 떠나 관객들을 뒤덮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제까지와는 질적으로 다른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럴 수밖에.

락풍으로 만들어진 에델바이스에 이번에 다시 끼워 넣은 이 곡은 그런 곡이니까.

난 기타 치는 걸 멈추지 않으며 허리를 폈다.

아니 활처럼 몸을 뒤틀며 소리 질렀다.

“프로-”

지이이이이이잉!

“메테우스!”

- Neural zone.

Fractal seed of resonance.

New binaural frequency.

Energetic stream of power.

신경대.

공진하는 프랙탈 종자.

또 다른 양이 주파수.

에너지 가득한 동력의 흐름.

진정 약 빨고 만든 노래가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선 이런 노래를 만들 수도 부를 수도 없었겠지.

뭐, 자기들은 아니라고 빡빡 우겨대고 있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으로선 그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내가 한 음절씩 끊어가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의미 불명의 가사들을 내뱉는 사이사이, 크리스티나와 조안나가 화음을 넣고 있었다.

- Soul gate.

영혼의 관문.

- 에델바이스!

- Telepathic contact.

정신 감응 접촉.

- 에델바이스!

- Qi's magnetic portal.

기로 통하는 자성 입구는.

- 에델바이스!

“To unlock the orgone state!(오르곤 상태의 속박을 푼다!)

광란의 도가니라고 들어나 봤나?

첼로와 피아노, 그리고 바이올린이 이처럼 잘 어울리는 락이 또 있을까?

당연하지만, 지금의 경우엔 가사 따윈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삘!

웃기는 일이지만, 그만큼 내가 랩소디즈라는 그룹을 좋아하기에 대놓고 오마주, 아니 커버를 한 거지만. 아무튼, 지금 관객들에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란 거지.

자, 이제 뛰어넘자.

정신 나간 음악도 정도가 있으니까.

더 들었다간 내가 미칠 지경이다.

- Alpha ignis

최초의 불꽃

- 에델바이스!

- Signum astralis

별들의 표지

- 에델바이스!

- Donum eius

바로 그자의 선물

- 에델바이스!

“Prometheus!(프로메테우스!)”

길게 이어지는 노랫소리에 관객들이 저마다 들고 있던 걸 내던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울고불고 난리다.

흥분을 넘어 광적인 분위기가 공연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렇게 곡이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면서 끝나지 않는 연주들.

가장 먼저 내가 노래를 그친 후 기타마저 멈췄고, 이어 첼로가 소리를 멈추고 얼마지 않아 바이올린 소리도 사라졌다.

홀로 남은 피아노만이 천천히 소리를 죽여가고 있었다.

그리고 점차 조금씩, 조금씩 살아난다.

꺼질듯했던 불씨가 되살아나듯.

그 사이 흥분을 가라앉힌 관객들에게 속삭이듯이 건반이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따단…따단…따단…….

방금까지 미쳐 날뛰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관객들은 멍한 표정이 되어 무대 위를 주시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

여기서 이 분위기가 아무 의미 없이 길어졌다간 당장 물병이 날아들 거라는 걸.

그래서 타이밍이 중요한 거다.

띠링.

첫 음을 뗀 후, 곧바로 현란하면서도 아름다운 곡조를 펼쳤다.

기타 현 한 줄 한 줄을 뜯었다.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어! 이 곡!”

“……SOMETHING OR NOTHING?”

관객들이 하나둘 지금 연주하는 노래가 무언지 알아채기 시작할 무렵 에단의 바이올린이 끼어들었다.

곧이어 첼로가 끼어들고.

맞다.

그들 말마따나 이 곡은 레이크헬의 대표곡인 ‘SOMETHING OR NOTHING’이다.

하지만, 같으면서도 다르다.

다르면서 같고.

클래식으로 완전히 탈바꿈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관객들의 가슴으로 스며들 수 있을 터였다.

그 증거로 지금쯤이면 물병은 말할 것도 없고 술병을 던져도 모자랄 관객들이 묘한 표정을 지은 채 숨을 죽이고 연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두 손을 가슴팍에 한데 모은 채로.

또 어떤 이들은 주먹을 꼭 쥔 채 눈썹까지 찡그리고서.

그러면서 다들 눈을 빛낸다.

잔잔하게 흐르며 무대를 떠나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들던 연주가 서서히 옅어져 갈 때였다.

지징!

현란 기타 음이 터져 나왔다.

당연히 내가 친 기타가 아니었다.

베릴.

그가 무대 위에 올라와 있었다.

둥! 둥! 둥!

제롬의 베이스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뒤이어 디알로의 폭발적인 드럼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리고…….

따단 따다다단.

유진과 크리스티나의 키보드가 동시에 경쾌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몽환적인 멜로디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더 포어’와 ‘레이크헬’의 콜라보레이션이 시작된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코첼라 밸리가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

“훅훅!”

연주를 끝내고 내려와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 마루 누나가 다가와 수건을 내밀었다.

힘없는 손으로 수건을 받아 얼굴을 닦으며 돌아보았다.

크리스티나는 모든 에너지를 이번 공연에 다 쏟아부었는지 얼굴이 핼쑥했고, 조안나조차 무릎을 집고 서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나마 에단이 좀 낫긴 하지만, 녀석 역시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천식 환자처럼 쌕쌕거리고 있었다.

한참이나 숨을 고른 뒤, 물었다.

아직도 무대 위에서 자신들의 노래를 연주하고 불러제끼고 있는 레이크헬을 힐끔거리며.

“반응……훅훅…어때요?”

“아직 안 올……. 어! 올라왔다!”

누나가 눈을 빛내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코첼라 사상 역대급 오프닝]

누가 찍었는지 모르겠지만, 유투븐에 동영상 한편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댓글이 좌아아아아악.

요즘은 이래서 좋다.

콘서트 온 사람들이 바로바로 올려주거든.

- 미친! 이게 뭐야! 약빨은 거야?

- 난 클래식이 이렇게 강렬한 사운드를 뿜어내는 줄 처음 알았음.

- 아냐, 아냐. 내가 아는 첼로는 이런 게 아냐!

- 바이올린으로 락이라니! 헐!

- 얘들 누구임?

- 더 포어.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합쳐보겠다고 저러고 있음.

- 와! 무슨……. 레이크헬 나왔을 때 나 심장 떨어지는 줄.

- 난 클래식으로 듣는 ‘SOMETHING OR NOTHING’ 듣고 쌀뻔함.

- 난 뭉클했는데…….

아직 SNS와 기사까진 뜨지 않았지만, 일단은 성공한 거 같다.

후우. 이 정도면 최소한 자격 미달이란 얘기는 나오지 않겠지.

씩 웃으며 핸드폰을 애들한테 보여주었다.

언제 헐떡거렸냐는 듯 활짝 웃으며 꺅꺅거리는 녀석들을 보고 있으니 나 역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다음날 솔로 공연도 별 탈 없이, 아니 관객들 중 누군가가 속옷을 벗어 던졌던 것만 빼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여전히 대기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은 상태였지만, 지금 당장 답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란 걸 알기에 미련없이 캘리포니아를 떠났다.

그리고 시작했다.

내 생애 첫 번째 월드 투어를.

꺄아아아아아아아아!

대서양을 횡단해 도착한 히드라 공항에선 비명인지 함성인지 모를 환호 속에서 팬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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