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206. 코첼라 페스티벌(3)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두 사람 다 이번 페스티벌에 참가한다는 얘기는 들은 바가 없었으니까.
“어, 어떻게 된 일이에요?”
나도 모르게 물었다.
“말했잖아? 시간 되면 보러 오겠다고.”
“하아. 정말 절 보러 온 거라고요?”
밥 데일런은 씩 웃어 보이더니, 폴 매카트넌에게 귓속말을 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몰라도 일단 인사부터 제대로 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 뵐게요. 김도준입니다.”
“폴이라고 부르게.”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해서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폴 매카트넌을 일별하곤 밥 데일런에게 말했다.
“지난번엔 정말 고마웠어요, 밥.”
그가 내게 제이미 핸드릭스의 수첩을 준 일을 말하는 거였다.
“뭘 좀 알아냈나?”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니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는 거지?
애당초 믿기나 하려나?
글쎄……. 밥의 성격상 미친놈 취급이야 안 하겠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말할 단계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음악은 단순히 소리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본 게 다인데, 노래방 얘기까지 꺼내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지.
게다가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남아 있는 상황이고.
아마 제이미 핸드릭스도 그런 이유로 밥에게 말하지 않은 게 아닐까?
씁쓸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아직 잘 모르겠네요. 제가 찾는 게 맞는지는. 아, 그래도 도움이 된 건 사실이에요. 확실하진 않지만, 단서는 잡은 거 같거든요.”
“그래?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군. 아마 제이미가 알았다면 좋아했을지도 모르겠어.”
“무슨 일인데? 혹시 나는 알면 안 되는 일이야?”
폴 매카트넌이 궁금해하자, 밥 데일런이 빙긋이 웃기만 했다.
“뭐야? 둘만의 비밀이다 이거지?”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폴 매카트넌이 이내 영국식 발음으로 농담이 섞인 말들을 던지기 시작하자, 그때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죠지 로브스와 미키 스카티, 트라비스 니콜슨 등이 끼어들어 금세 대기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거기에 크리스티나와 조안나까지 슬그머니 끼어들자, 북새통이 따로 없었다.
그때, 다시 문이 열리며 콜린을 위시해 레이크헬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콜린, 오랜만이야!”
“어머, 이게 누구야? 베릴이잖아!”
“히야! 제롬은 그동안 더 잘생겨진 거 같은데?”
“요새 너무 연락이 뜸한 거 아냐?”
이미 잘 아는 사이들인지, 서로서로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나누는가 싶더니 이내 한데 섞여서 대화를 시작했다.
한데…….
아니, 왜 얘기의 태반이 내 얘기냐고!
특히 디알로가 신나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들어봐요, 밥. 브라이언 알죠? 우리 모두 한국에 직접 갔었거든요. 대체 어떤 놈이 이렇게 신들린 연주를 하나 싶어서. 아, 그 영상 혹시 봤나요?”
얘기하다 말고 핸드폰을 꺼내 유투븐에 접속, 케케묵은 영상까지 틀어 보이며 열심히 썰을 풀고 있는 디알로. 그만큼 밥 데일런이나 폴 매카트넌하고도 친하단 얘기겠지만, 아니 왜 계속 내 얘기만 하는 건지…….
창피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미키가 갑자기 내게 다가와 눈을 빛내더니 핸드폰을 내밀었다.
뭐지?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녀가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꼭 숙녀가 먼저 묻게 만들어야겠어요?”
아, 전화번호 말하나 보다.
얼른 그녀의 핸드폰을 받아 전화번호를 찍어주고 있을 때였다.
“킴.”
밥 데일런이 날 부른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바라보니, 그가 묘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김도준 앱 말이야. 정말 굳 아이디어였어.”
설마 수익성 따윌 말하는 건 아닐 테고.
아마 기부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거겠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을 뿐이에요.”
“아니 아니. 어쩌다란 건 없어. 모든 건 다 의지에서 비롯되는 거지. 그만큼 넌 대단한 일을 해낸 거야.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도 함께하려고 하는 거 아니겠어?”
사람 참 쑥스럽게.
난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내게 밥이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
“언제 우리랑 같이 자선 공연 한번 안 할래?”
“자선 공연이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밥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방금 우리라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는 건?
시선을 살짝 돌리자, 폴 매카트넌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망설일 까닭이 없었다.
물론 회사에 얘기는 해야겠지만, 아저씨가 반대하실 이유가 없지.
“해요!”
선뜻 대답한 게 그렇게 놀라웠던 걸까?
밥 데일런도, 폴 매카트넌도 눈을 치뜨고 날 바라보다가 껄껄 웃었다.
“거봐! 내가 뭐랬어? 저런 친구라니까!”
“하하하! 정말이네. 아직 어려서 그런 거 같진 않고. 재밌는 친구잖아!”
“그러니까, 사이몬이 자기 쇼에 넣으려고 그렇게 애쓰는 거 아니겠어? 킴! 나랑 약속한 거야!”
“그럼요. 저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 아니에요!”
“와! 이 자식이! 우린 쏙 빼놓고 자기만 좋은 놈인 척하는 거 봐!”
“그래서 말했잖아요! 도준은 옆에 끼고 계속 감시해야 한다고.”
“제롬 말이 맞아! 저건 진짜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라니까!”
“밥! 우리도 끼워주는 거죠?”
“글쎄. 브라이언이 허락할…….”
“에이, 우리가 언제 누구 눈치 보는 놈들인가요? 걱정 말고 끼워줘요. 설마 좋은 일 한다는데 회사에서 반대하겠어요?”
“그렇다면야.”
밥이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죠지, 미키, 트라비스가 소리쳤다.
“저도 할게요!”
“설마 절 빼놓을 생각은 아니겠죠?”
“음, 짐하고 상의해봐야 하긴 하는데, 괜찮으면 저도 하고 싶군요.”
아이고, 이게 뭔 난리인지 모르겠다.
역시 폴 매카트넌과 밥 데일런이 나서니까 이런 일도 벌어지는구나 싶었다.
그나저나 자선 공연이라…….
왜 생각을 못했을까?
공연 한번 하는데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매번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생각해봤어야 하는데…….
그때였다.
화악 하고 눈앞이 밝아졌다.
응? 이게 무슨 일이지?
대기실에서 떠드는 소리가 마치 음표처럼 허공에 떠다니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웃음소리 또한 마찬가지.
그래서 그런가 눈앞이 하얗게 변하면 마치 음악을 들을 때처럼 새로운 시공간이 펼쳐졌다.
진짜 당황스럽네.
왜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음악을 듣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연주를 하는 것도 아니잖아.
뿐만 아니라 노래를 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의아해진 나는 사방을 둘러보며 두리번거렸다.
어떻게 해서든 지금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원인을 찾기 위해서.
그 모습이 이상해 보였던 걸까?
“도준?”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고, 그 순간 눈앞에 떠올라 있던 시공간과 음표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 뭐냐고, 진짜!
귀신한테 홀린 것도 아니고.
“괜찮아?”
어깨를 흔드는 느낌에 바라보니, 베릴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덕분에 정신을 차린 난 그제야 모두가 날 걱정스레 쳐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어젯밤에 잠을 설쳤더니 이러네요.”
어설프게나마 변명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
리허설은 실제를 방불케 할 정도로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프로그램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순서가 지켜졌고, 그 때문에 우리가 오프닝 무대에 서는 걸로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틀째 공연 역시 만찬가지.
난 네 번째였는데, 재밌는 건 첫째 날과는 반대로 레이크헬 다음에 무대에 오르기로 되어 있었다.
“히야! 순서 한번 기가 막히다, 그치?”
“그러니까요. 아무래도 우리랑 도준은 떼려야 땔 수 없는 관계인 거 같지 않아요?”
레이크헬이 낄낄거리며 얘기하고 있었지만, 생각에 잠기느라 대꾸하지 못했다.
뭘까?
아까 대기실에서 느꼈던 건.
새롭게 생겨난 감각은 음악에만 반응하는 거 아니었나?
어째서 그땐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말과 웃음에 반응한 거지?
그렇게 따지면 지금도 그래야 하는데 몇 번이고 눈을 깜박거려봐도 달라지는 건 없잖아?
바로 눈앞에서 레이크헬이 웃고 있는데도.
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거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자, 제롬이 걱정스러운 듯 물어왔다.
“도준. 무슨 일 있어?”
“아! 아냐. 좀 생각할 게 있어서 그랬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지만,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찜찜함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리허설을 전부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을 때였다.
전화가 걸려왔다.
확인해보니……. 응? 웬일이시지?
“예. 할아버지.”
난 사람들한테 양해를 구하곤 테라스로 나왔다.
“무슨 일 있으세요?”
- 헹! 내가 내 새끼 보고 싶어서 전화했는데 뭐가 잘못 됐냐?
피식.
이런 말을 들으면 오글거려야 정상일 텐데, 이상하게도 하나도 오글거리질 않는다.
“그런 거라면 만날 하셔도 돼요.”
- 이놈이! 네 할애비가 너 같은 반백수인줄 아느냐? 내가 일분만 놀아도 회사 매출이 반으로 떨어진다는 거 몰라서 하는 소리야?
아이고, 그새 허풍이 느셨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겨우 일분 논다고 회사가 안 돌아갈까.
“그러니까요. 할아버지께서 일분만 놀아도 지구가 안 돌아가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니까요.”
장단을 맞춰주며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진짜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니죠? 혹시 어디 편찮으시거나…….”
- 네놈보다 쌩쌩하니 걱정 말거라. 근데, 지금 미국이냐?
“미국이죠. 캘리포니아. 공연하러 왔어요. 왜요? 에이, 우리 할아버지 나 보고 싶어서 그러는구나. 다 때려치우고 갈까요? 비행기 타면 새벽에는 도착할 수 있는데…….”
예전 같으면 말도 안 되는 얘기 한다고 한소리 하실 분이신데, 어째 아무런 말도 없으시다.
그러더니 불쑥 물으셨다.
- 설렁탕……. 지난번에 네놈이 그거 먹자고 했지 않더냐?
“그랬었나요?”
- 이번에 나오면 그거 먹으러 가자.
“알았어요. 얼른 끝내고 갈게요.”
- 끊으마.
뚝 하고 끊긴 전화. 핸드폰을 내려다보는데 어째선지 마음이 아프다.
진짜 확 그냥 다 때려치우고 한국 갈까 보다.
그런 마음이 들 정도로.
***
다시 또 하루가 지나고,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
한산하기만 했던 어제와는 달리 코첼라 밸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인산인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무대 위에선 마지막 세팅에 박차를 가하느라 엔지니어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난 여전히 어제 있었던 일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사실 밤사이 고민한 결과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였는데…….
아무래도 자선 공연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정확히는 자선 공연을 하기로 결정한 뒤에 사람들이 보인 태도. 거기에 반응한 게 아닐까 싶다.
음악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전달될 정도로 강한 감정 표현. 그게 원인이 아니었을까?
“후우. 뭐가 이렇게 어려운 건지.”
머리가 살짝 지끈거려서 이마를 만지고 있을 때였다.
“도준아! 곧 너희 차례야!”
“아!”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일단은 공연부터.
무대 바로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는 서로를 한차례 바라보았다.
‘잘할 수 있지?’
내가 눈빛으로 묻자,
‘응!’
‘맡겨줘!’
‘노력해볼게.’
크리스티나의 눈빛이 살짝 떨리는 게 보였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녀석도 실전 타입이란 걸.
“가자.”
내가 앞장서자, 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곤 뒤따랐다.
그렇게 계단을 올라 무대 위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엄청난 환호가 우리를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