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205화 (205/260)

# 205

#205. 코첼라 페스티벌(2)

돌아오는 차 안.

누구 한 사람 말하지 않고 있었다.

에단을 비롯해 세 사람은 살짝 두려워하는 기색이 보였지만, 나로서는 그들을 다독여줄 여유가 없었다.

물론 녀석들처럼 겁을 집어먹은 건 아니었다.

아까 무대를 본 뒤부터 계속해서 가슴이 뛰는 탓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외할아버지를 닮긴 많이 닮은 모양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처음 맞이하는 상황에선 두려움을 가지는 게 정상일 텐데, 이상할 정도로 흥분되니 말이다.

셀렘이라고 해도 좋고, 기대감이라고 해도 좋다.

현대 대중음악의 시작점, 즉 본고장이라고 해도 무방한 미국에서의 공연.

물론 일전에 카네기 홀에서 공연한 적도 있어서 첫 공연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연주홀에서 하는 것과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무대가 탁 트인 야외라는 점도 다르지만, 무엇보다도 규모가 다르다. 국가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고까지 말하는 대중음악의 특성상 클래식에 비해 관객들의 반응도 다를 수밖에 없고.

비록 오프닝과 솔로 곡까지 합쳐봐야 채 십분도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미국인들 앞에서 공연을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손이 근질거리고 등골이 짜르르 한 게 흥분을 참기 어렵다.

그걸 눈치챘는지, 마루 누나가 물어왔다.

“기분 좋아 보이네?”

난 그저 웃어 보였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 내가 어떤 마음일지 눈치채지 못할 누나가 아닐 터였다.

누나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 다른 한 손으론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러면서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

“보니까 어때?”

“어떻긴 뭘 어땠겠어? 아직 아무것도 없을 텐데.”

“그래도 무대 설치는 다 끝났을 걸?”

“그럼 뭐하냐고. 사람이 없는데, 사람이……. 축제란 모름지기 쭉쭉빵빵한 여자들이 그냥…….”

“쯧. 너 그러다가 언제고 한번 제대로 끌탕 먹는 수가 있다.”

“후후. 날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레이크헬 멤버들이 소파에 앉은 채로 날 보며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를 들으며 씨익 웃고 말았다.

여유만땅이네.

이미 몇 번이나 이와 비슷한 페스티벌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그들로선 아마도 이번 공연은 별거 아닐 거다.

부럽냐고?

전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일인데, 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저들처럼은 될 것 같지 않다.

무대와 관객, 그리고 콘서트.

아마 몇 번이고 반복돼도 그때마다 흥분되고 설레지 않을까 싶었다.

이거 혹시 병인가?

그런 마음이 들 정도였다.

“좀 쉬어라. 모레가 리허설이잖아. 그래도 공연 전에 최상의 몸 상태로 만들어놓아야 할 거 아냐?”

간만에 콜린이 제법 괜찮은 얘기를 하기에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슬슬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캘리포니아의 하늘이 창문 사이로 보이고 있었다.

***

자선단체는 세계 곳곳에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곳은 뭐라 뭐라 해도 역시 유니세프였다.

하지만, 그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월드비젼, 그린피스, 세이브더칠드런 그리고 한국에서 설립된 굿네이버스까지.

수많은 국제기구들이 있었고, 오늘 열린 자선 파티는 세이브더칠드런 측에서 마련한 파티였다.

김도준 앱을 기반으로 설립된 ONEZ의 대표로서 도준의 어머니인 최혜원 역시 파티에 와 있었다.

물론 그녀의 옆에는 남편 역시 함께하는 중이었고.

“ONEZ에 거는 기대가 몹시 큽니다. 자금 규모도 그렇지만, 아무래도 세계적인 스타가 전적으로 밀고 있다는 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지요. 참으로 대단한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여기저기서 다가와 아는 척 해오며 ONEZ의 활동과 도준에 대해 얘기를 들을 때마다 최혜원은 뿌듯해지는 마음을 금할 길 없었다.

동시에 자신이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느끼는 중이었다.

그때마다 남편은 옆에서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주남아공 한국대사관 영사가 접근해온 것도 그때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대사관을 책임지고 있는 박영철입니다.”

“예. 최혜원입니다.”

“아, 그리고 이분은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외교부 차관님이시고. 여긴 미래 한국당의 의원님들이십니다.”

“김성한이오. 앞으로 잘 부탁하겠소.”

“아이고. 도준 군이 누굴 닮았나 했더니 어머닐 닮아 그렇게 훤칠했던 거였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미래 한국당의 조한식입니다.”

“하하하. 지난번 서울에서 뵐 때보다 더 아름다워지신 거 같습니다.”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최혜원은 살짝 인상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남편에게도 인사를 하긴 했지만, 사실상 크게 실권이 없다고 느낀 건지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 건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문제는…….

강주환이었다.

여당인 미래 한국당의 3선 의원.

오늘까지 치면 벌써 세 번째 만남이었다.

만날 때마다 느물느물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지만,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정치판에 오래 몸담은 사람치고 능구렁이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던가.

하지만, 그때마다 은근히 정치적 후원을 요구해오는 데엔 진짜 질려버렸다.

한데, 오늘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어째서 박영철 영사가 그들을 데려왔는지는 대충 감이 왔다.

‘후우. 오늘도 꽤 시달리겠네.’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았지만, 그녀는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래. 이것도 사업의 연장선에 있는 거니까.’

사업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온 그녀였기에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태연하게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하지만, 대화는 시작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VIP께서 심려가 크십니다. 자칫 국부가 빠져나가는 게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기가 막혔다.

최혜원으로선 여기서 왜 국부라는 말이 나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ONEZ는 엄연히 자신의 아들이, 아니 아들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사람들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운영되는 단체였다.

물론 그렇게 모인 돈이 너무 커서 정치권에서까지 욕심을 낼 정도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어찌 되었든, 김도준 앱을 통한 수익을 제외하곤 그 어디에서도 자금을 끌어오지 않고 있었고 집행 내역도 투명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웬 국부 타령?

더 황당한 건 지금 저 말을 입에 담는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다는 거였다.

한마디로 협박이나 마찬가지.

정치적인 후원을 해주지 않으면 도준은 물론 ONEZ 역시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이른바 압력이었다.

잠시 듣고만 있던 최혜원이 가만히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곤 강주환을 쳐다보았다.

입가엔 미소가 떠올라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질 않았다.

그런 채로 그녀가 담담하게, 그러나 확고한 어조로 물었다.

“지금 국부라고 하셨나요?”

강주환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다소 강하게 나오는 그녀의 태도에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도준 군이 한국인인 이상…….”

“그러니까, 의원님 말씀대로라면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돈은 전부 국가 돈이란 얘기군요?”

“그, 그건…….”

순간 최혜원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만일 도준이 보았다면, 영락없이 외할아버지의 표정이라며 혀를 차고 말았을 정도로 최 회장과 닮아 있었다.

그런 얼굴로 그녀는 같잖다는 눈빛을 날렸다.

‘웬만하면 적당히 상대해주면서 대충 넘어가 주려고 했더니만….’

그녀는 최 회장에게서 무슨 일이든 선이라는 게 있는 법이라고 배웠다.

상대방이 그걸 넘는다면 더 이상 웃어줄 이유가 없다는 것도.

차라리 굽실거리며 애걸을 해왔다면 또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협박을 해오는 건 참을 수 없다.

한 번 굽혀주면, 그것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는 건 금방이니까.

“재밌는 논리군요.”

그녀는 박영철 영사와 김성한 차관, 그리고 조한식 의원을 차례차례 바라보며 픽하고 웃어 보였다. 그러고 나서야 다시금 강주환을 바라보았다.

“그럼 의원님 재산도 마찬가지겠네요. 듣기로는 해외에 가지고 계신 부동산도 꽤 되시는 걸로 아는데……. 아! 그건 국부를 이용한 투자인가요?”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강주환이 입술을 씰룩거리다가 시선을 돌리고 말았을 때, 조한식이 나섰다.

“오해하신 거 같습니다. 강주환 의원님 말씀은 그저 걱정되는 마음에…….”

최혜원은 은근한 미소를 띤 얼굴로 그의 말 허리를 싹둑 잘라냈다.

어디서 초선 의원 따위가.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희 ONEZ는 국제기구를 지향하고 있고, 누가 봐도 투명할 정도로 김도준 군의 설립취지에 맞춰서 자금의 배분 및 공정한 심사와 절차를 거쳐 집행하고 있으니까요.”

아들임에도 마치 남처럼, 아니 재단의 설립자임을 내세우며 말하는 그녀를 이제 갓 금배지를 단 김성한으로선 당해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나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돌아서 할 말도 없었고.

하지만, 그보다 먼저 김성환 차관이 나섰다.

마치 어린아이 어르듯 말하는 그였다.

“좋은 말씀이십니다만, 세상 일이라는 게 그렇지 않습니까? 나라가 제대로 굴러가야 국민들도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지 않겠냐 이말입니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박영철 영사의 지원 사격이 이어졌다.

“맞습니다. 도준 군의 국위선양에 대해선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지만, 부의 재분배 측면에서도 이젠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합니다. 하하하. 응당 국민이라면 나라에서 받은 게 있으면 갚을 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혜원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네 남자를 가만히 쳐다만 볼 뿐이었다.

이런 태도가 그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자신들의 얘기가 먹힌 거라고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다.

“그러니 한국에도 조금 더 신경을 써주시고, 이왕이면 정치민주화를 위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라……. 좋은 말이죠. 한데, 그전에 좀 묻죠. 나라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는 건 세 살 먹은 애들도 아는 일이지만,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죠? 왜 나라에서 받은 걸 당신들한테 갚으란 건지 모르겠군요?”

아무 말도 못 하는 그들에게 그녀가 단단히 못을 박았다.

“국내에서도 지원 사업은 당연히 할 겁니다. 하지만, ONEZ는 여의도 근처엔 얼씬도 안 할 테니 그리 아세요.”

더 이상은 할 말 없다는 듯 돌아선 후 미련없이 자리를 떠나는 그녀를 네 남자가 당황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싸늘한 눈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

아침이 밝았다.

리허설을 앞두고 분주한 객실.

레이크헬과 CDM의 스텝들과 달리 에단 3인방 심지어는 니콜 교수마저도 허둥지둥거리긴 마찬가지였다.

처음 해보는 일들 투성이었기 때문이다.

단독 콘서트와는 달리 페스티벌은 여러모로 준비할 게 많았던 탓이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큰일은 뭐라 뭐라 해도 주최 측의 깐깐한 일정관리에 있었다.

“적어도 삼십 분 전에는 도착해야 해!”

브라이언의 말에 모두는 서둘러 리무진에 올라탔다.

잠시 후 스텝들 역시 버스에 나눠 타곤 코첼라 지역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정도가 흐른 후, 나와 에단 그리고 크리스티나와 조안나는 무대 뒤에 마련된 컨테이너 상자 앞에 서 있었다.

하필이면…….

레이크헬은 볼일이 있다고 먼저 가 있으라고 하면서 우릴 먼저 대기실로 보내버린 것.

후우. 하는 수 없지.

그렇다고 계속 밖에 서 있을 수도 없으니까.

똑똑.

긴장된 표정으로 노크했다.

아무 반응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기척이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안에선 분명 웃음소리와 함께 이런저런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난 긴장감이 가득한 눈으로 문을 바라보면서 떠올렸다.

이 안에 있을 싱어들의 얼굴을.

후우! 다시 한 번 숨을 들이마시곤 문 손잡이를 잡았다.

뒤쪽에서도 에단 3인방이 침을 꼴딱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달칵.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다섯 명쯤 되나?

대기실을 절반 정도 채운 채 의자와 소파에 앉아 방금까지 얘기를 나누던 모습들이었다.

그들이 누군지 확인도 하지 않고 일단 인사부터 했다.

“안녕하세요. 저흰…….”

아니, 막 인사를 하려는 찰나였다. 어디선가 거친 손길이 튀어나와 내 어깨를 움켜잡았다.

“하하하! 네가 김도준이구나!”

응?

누구……. 헉! 죠지 로브스 ! 힙합계의 전설 같은 남자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외쳐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들 봐! 누군지 알겠어?”

방금 내 이름을 외친 게 누구였더라?

웃긴 건 그걸 못들은 건지, 한쪽 구석에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있던 여자……. 섹시 퀸이라고 불리는 이 시대의 디바, 미키 스카티가 환호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는 거다.

“꺄아아악! 킴이잖아!”

“여어! 반갑다, 나 트라비스다!”

여기저기서 아는 척해오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무엇보다도…….

“반갑네.”

손을 내미는 남자.

폴 매카트넌의 모습에 몸이 굳어버렸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분명 명단에는 없었는데.

게다가…….

“오랜만이야, 킴.”

밥 데일런까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세상에!”

전설들이 눈앞에 있었다.

그것도 둘씩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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