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
#203. 혼자가 아니다(3)
“도준!”
브라이언의 외침에 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고 말았다.
쯧, 당연한 반응인가.
후우! 알면서 물은 게 바보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역시 힘들겠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던 브라이언이 인상을 확 구기며 소리쳤다.
“너, 거기가 어딘지나 알고 하는 소리야?”
말투도 바뀌었다.
이제까지 회의를 주도하는 비지니스맨으로서 정중함이 깃들어 있었다면, 지금은 말 그대로 친한 사이끼리 오가는 대화라고 할 수 있었다.
“알아요. 리비아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하! 미치겠네! 알면서도 그런 소리를 한다고? 미스터 강! 뭐 합니까! 지금 도준이가 벵가지를 가자고 하잖아요! 설마 거기가 어딘지 모르진 않을 테고……. 도대체 어디서 무슨 얘길 들었는지 모르지만, 거기서 콘서트를 하겠다니! 포탄이 언제 떨어질지도 모르는 전쟁터나 다름없다고 거기는!”
방방 뛰는 브라이언의 모습을 보면서도 아저씬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날 빤히 쳐다만 볼 뿐이다.
죄송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터다.
괜히 말했다는 후회도 들었다.
그렇긴 하지만, 아마도 말 한번 해보지 않았다면 더 큰 후회를 했을 거다.
그런 내 심정을 이해하신 걸까?
아저씨께서 물어오셨다.
“이유가 뭐냐?”
난 아저씨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런 채로 말했다.
“거기에 팬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될 수 있으면 거기서도 콘서트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에요.”
듣다 못한 브라이언이 끼어들었다.
“도준! 네 마음은 알겠어. 하지만, 거기 진짜 위험한 동네란 말이야! 것도 그냥 위험한 게 아니라고. 언제 전쟁이 벌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란 말이야. 게다가 거기 사람들 미국이라면 아주 이를 갈면서 쳐다본다니까. 그런데 거기서 콘서트를 하자고? 그건 그냥 죽으러 가자는 말이나 같은 말이야.”
“알아요. 저도.”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거기가 얼마나 위험한 동네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으로나마 조금 알아봤었다.
농담 하나 안 보태고 아이들조차 총을 들고 다니는 동네였다. 활동하고 있는 무장세력도 여럿이었고. 당연히 개중에는 친미 성향을 가진 이들도 있었지만, 것보다는 반미 성향이 더 많았다. 드러나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극히 위험한 곳이란 사실은 분명했다.
“알면서도 거기서 콘서트를 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거냐?”
그때까지 듣고만 있던 아저씨께서 물어왔을 때 난 뭐라 대답하기 어려웠다.
흔들림없는 눈동자가 날 향하고 있었으니까.
시선을 돌리자, 고 팀장님이 보인다.
무심한 얼굴로 그저 말없이 서류만 들추고 있을 뿐이었다.
마루 누나만이 날 안타깝다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꽈아악.
나도 모르게 꼭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왠지 오기가 생겼다.
안된다는 건 나도 안다.
그럼에도, 괜히 화가 났다.
이건 거기서 콘서트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말씀드렸다시피, 팬들이 있어요. 그들이 제 노래를 듣고 싶어 한다고요. 가수가 뭐하는 사람인데요? 혼자 잘난 척 노래하면 그게 가수예요?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뭣도 아닌 게 가수 아니냐고요!”
조금은 감정적이 되어 외치자, 아저씬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되물었다.
묵직한 어조였다.
“그래. 넌 가수지. 그러니 팬들을 위해 움직여도 누구 하나 욕하진 않을 거다. 아니 어쩌면 많은 이들이 박수를 쳐줄지도 모르겠구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고자 하는 말이 남았다는 느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말없이 듣고만 있자, 아저씬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을 이어갔다.
“그럼 스텝들은? 네가 무사히 돌아오길 기다리는 가족들은? 네 노래뿐만 아니라 너란 사람을 좋아해 주고 무사하길 바라는 나머지 팬들은? 그들의 마음은 어찌 되는 거지?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함께 움직이는 이들의 안전은 생각지 않는 거냐?”
“……!”
할 말이 없었다.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지금 내가 한 말은 억지에 불과하다는 걸.
하아, 누군 몰라서 거길 안 가는 거겠냐고.
나만 잘난 게 아닌데…….
모르긴 몰라도 레이크헬도 그럴 거다.
어지간히 벌어서 그런지 이제 돈에는 초탈해진 녀석들이니 더욱 그럴 테다.
아마 팬들이 있는 곳이라면 맨발로 뛰쳐나가 노래하고도 남을 놈들이었다.
그런 그들조차 아랍 쪽, 특히 분쟁지역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뭐겠나?
콘서트란 혼자서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머릿속에 떠오른 라일라와 싸미라 자매를 떠올렸다.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은 분명 내 팬이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팬들이 리비아에 있었다.
아니, 아랍 쪽을 비롯해 아프리카까지. 수없이 많은 오지와 격전지에 내 팬들이 있었다.
그들을 떠올리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런 내 귓가에 아까와 달리 차가운 기운이 가신 음성이 들려왔다.
아저씨였다.
“리야드, 두바이, 킨샤사, 케이프타운. 네 군데를 추가하는 것까진 우리도 양보할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인 리야드.
아랍에미리트의 최대 도시 중 하나인 두바이.
콩고민주공화국의 수도 킨샤사.
남아프리카공화국 웨스턴 케이프 주의 주도인 케이프타운.
만족스럽진 않지만, 아저씨도 최대한 양보를 한 거라는 게 느껴졌다.
브라이언도 여기까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다는 표정이었고.
나로서는 완전히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지금 회사식구들이나 브라이언이 표하는 우려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정도로 마냥 어린 것도 아니었다.
“알았어요. 그럼 거기만이라도 포함 시켜주세요.”
“도준. 잘 생각했어.”
브라이언이 내 어깨를 치며 덧붙였다.
“이번 월드 투어의 총책임자로선 반대할 수밖에 없었지만…….”
“…….”
“네 마음은 이해한다. 아니, 마음 같아선 나 혼자서라도 널 데리고 벵가지로 당장 날아가고 싶을 정도다. 이해해줘서 고맙다.”
“아뇨. 제가 죄송하죠.”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 끝난 거면 좀 가서 쉴게요.”
“그래라.”
사람들을 남겨놓고 회의실을 나왔다.
***
울적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예정에도 없던 일정을 욱여넣은 것만 해도 소기의 성과는 달성한 셈이니까.
하지만,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안다.
벵가지는 말할 것도 없고, 위험지역으로 제 발로 들어간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는.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당국에서 금지하는 노래를 숨어서 들었던 중국의 팬들도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계 곳곳에 팬들이 생겨나고, 그들이 내 행동 하나하나에 울고 웃고 있는데, 그들 모두가 언제나 좋은 상황에서만 노래를 듣고 있는 걸까?
아닐 거다.
젠장!
노래는 그저 노래일 뿐인데…….
단지 부르고, 단지 들으면 그만인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후우, 모르겠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해서 그런가 머리가 다 지끈거린다.
일단 한숨 자고 나서 생각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잘 오질 않았다.
그때, 문밖에서 희미하게 기타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누구지?
연습실에 누가 있나?
그럼 문을 닫아놓고 할 일이지, 왜?
난 그 소리에 이끌리듯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빼꼼히 열린 문틈 사이로 연습실 한쪽에 앉아 기타를 만지작 거리고 있는 리노의 모습을.
똑똑.
노크를 하자, 리노가 화들짝 놀라 날 쳐다보았다.
***
“여긴 좀 더 강하게 쳐야지.”
“이렇게요?”
리노에게 스트로크를 알려주다 보니, 예전에 기타를 연습하던 게 떠오른다.
아니, 그전에 노래방에서 혼자서 노래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땐 진짜 죽을 둥 살 둥 노래했었는데…….
한데 지금은 이렇게 누군가에게 악기 다루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기분 참 묘하다.
동시에 콘서트 문제로 기분이 다운되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리노 녀석이 기특하게만 느껴졌다.
아니, 어떻게 보면 녀석 덕분에 기운을 차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잘했어. 그런데 자, 봐봐. 이렇게 치는 거랑 이렇게 치는 거. 다르지?”
“그러네요. 확실히 달라요.”
참네. 이 녀석도 이 녀석이다.
눈빛 봐라.
아주 잡아먹겠다.
쯧, 이렇게 말하면 너무 속단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이 녀석도 악쟁이의 운명에서 벗어나긴 어렵겠다.
후우, 그렇다면 아예 제대로 배우는 게 좋을 텐데…….
난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리노.”
“예?”
작은 체구 때문에 기타를 껴안다시피 한 채로 피크를 놀리고 있던 리노가 날 의아한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음악이 좋니?”
활짝 웃는 리노.
더없이 환한 표정이었다.
더 이상 무슨 대답이 필요할까.
그런데도 리노는 크게 대답했다.
“예! 너무 좋아요!”
피식.
“부모님은 뭐라고 안 하셔?”
“처음엔 조금 걱정하셨는데요. 지금은 안 그러세요.”
“……?”
“레이크헬 형들이랑 도준 형이랑 같이 있다고 했거든요.”
“다행이구나.”
“왜요?”
자식이. 머리는 좋아서.
벌써 눈치를 챈 모양이다.
기대감이 넘치는 눈빛으로 날 보면서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번에 코첼라 페스티벌 가는 거 알지?”
“예.”
“함께 갈래?”
순간 고막이 터지는 줄 알았다.
“와아아아아아아! 진짜죠! 진짜, 진짜, 진짜죠!”
고개를 끄덕여주자 난리도 아니다.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어찌나 소리를 지르는지, 살짝 열린 문틈으로 터져나간 소리에 레이크헬 멤버들이 깜짝 놀라 들이닥쳤을 정도였다.
“뭐, 뭐야! 무슨 일인데!”
“얀마! 너 설마 리노 혼내고 있었던 거야?”
“에이, 설마요! 도준이가 폭력을 썼을 리가 있나요. 말로 조졌으면 몰라도.”
하아, 제롬 저 자식은 저런 말은 또 어떻게 알았대?
고개를 내젓고는 말했다.
“아니. 이번에 코첼라에 리노 데리고 가려고.”
순간 벙찐 얼굴이 되었던 레이크헬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더니 알 수 없는 말들을 나누기 시작한다.
“거봐. 붙여놓으면 된다고 했지? 내놔!”
“큭. 저 자식…. 오지랖도 넓지. 피 같은 내 돈!”
“후후후. 다 그런 거에요. 원래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아무튼, 잘됐네. 리노야, 잘 해봐라.”
대체 뭔 소리들인지.
겨우 코첼라에 함께 가자고 했을 뿐인데,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는…….
반짝이는 눈으로 날 쳐다보는 리노의 모습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강나리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흠, 이 문제도 아저씨랑 한 번쯤 얘기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쇠뿔도 단김에 빼란 얘기가 있다.
성격상 나랑 딱 맞는 얘기기도 했고.
“그러니까 네 말은 그 두 사람을 연습생으로 들이자?”
음, 연습생이라고 하니까 꼭 아이돌 같아서 좀 그렇긴 하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니까.
“일단 기본기부터 트레이닝 시키고, 봐가면서 진로를 결정하면 어떨까 싶어요.”
“무슨 말인진 알겠는데, 함부로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렇겠지.
애들 인생이 달린 문제인데.
“열정은 누구 못지않을 거에요.”
리노야 말할 것도 없었고, 강나리도 2년간 팬클럽 회장을 해온 걸 보면 내 판단이 크게 틀리지 않을 거다. 게다가 노래도 제법 하는 걸 봐선 평소에도 많이 부르는 거 같고.
“열정만 가지곤 부족한데……. 알지? 이 바닥?”
“예. 재능도 대단해요. 둘 다.”
“그래? 그럼 일단 얼굴 한번 보자. 리노야 내가 따로 얘기해보기로 하고, 강나리? 그 친구는 이번에 서울에 가면 내가 한번 만나볼게. 그럼 됐지?”
고개를 끄덕인 뒤였다.
뒤늦게 떠오른 생각에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 아저씨.”
“……?”
“씨크릿걸즈 말인데요.”
“걔들이 왜?”
“몇 개월만 있으면 소속사와 계약이 끝난다고 하더라고요.”
아저씬 날 가만히 바라보셨다.
그러다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너랑은 좀 경우가 다르다. 만일에 하나지만, 우리 식구가 되면 좀 빡세게 굴릴 건데, 그래도 되겠냐?”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거기까진 내 권한 밖의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씨크릿걸즈가 어떤 판단을 할지도 모를 일이고.
그저 난 그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을 뿐이다.
마음 한구석에 빚도 남아 있었고 말이다.
“그야 제가 어쩌고 할 문제가 아니죠.”
“오케이. 걔들도 이번에 서울 갈 때 한번 만나보마.”
“감사합니다, 대표님.”
“참네. 이럴 때만 대표라지.”
툴툴거리다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아저씰 보다가 방을 빠져나왔다.
그러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아, 교수님께 전화해야 하는데…….
생각난 김에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교수님, 저 도준…….”
- 흥. 제가 킴의 전임 교수가 맞긴 한가 보죠?
헉!
삐치셨다.
“아, 하하하…하. 자주 연락드렸어야 하는데…….”
- 뭐, 그럴 수도 있죠. 아, 근데 제가 얘기했던가요? 킴, 제적했다고?
“예?”
- 당연한 거 아닌가요? 벌써 며칠째 학교를 빼먹었는데……. 그럼 이만 끊어요.
뚝.
가차없이 끊어버린 전화.
핸드폰을 멍하니 쳐다보던 난 서둘러 집을 빠져나왔다.
아이, 씨! 설마 진심으로 하신 말씀은 아니겠지?
학교로 달려가는 길, 별의별 생각이 다 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