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
#198. 서프라이즈 (4)
진짜 놀랄 일 투성이다.
내가 단상으로 올라가자, 터진 함성은 그렇다 치자.
한데…….
8천 명이나 되는 팬들이 일제히 부르기 시작한 노래는…….
이거, 엊그제 김도준 앱을 통해 발표된 노래잖아.
근데 그새 외워서 떼창을 부른다고?
감격스러웠다.
그만큼 날 좋아해 주고, 또 응원해준다는 얘기니까.
난 단상의 중앙으로 나아갔다.
일부러 사회자를 따로 두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건 내가 알아서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잠시 팬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그치길 기다려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놀랍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말했다.
“와, 진짜 서프라이즈네요. 팬 미팅 하자고 했지, 누가 콘서트 한다고 했나요? 8천 명이나 왔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흐흐흐. 이 정도면 나도 인기 좀 있다고 말해도 되는 건가?”
슬그머니 농담을 던지자, 단상 아래부터 객석이 이르기까지 공간이라곤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채운 팬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꺄아아악! 오빠아아아아아!”
“도준아, 형아도 왔다아아!”
“노래 불러줘요오오오오오!”
“주니 오빠! 너무 좋아아아!”
큭큭. 이거 왠지 즐거운데?
난 마이크를 다른 손으로 바꿔 들며 다시 한 번 웃어 보였다.
“미치겠네요. 오늘 한 10분만 보고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그쵸? 회장님?”
내가 함께 나온 강나리에게 묻자, 화들짝 놀라는 강나리.
팬들의 눈에도 의아한 빛이 떠오른다.
누군지 궁금해하는 이들도 있었고, 또 누군가는 질투와 시기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다.
난 그들을 보며 강나리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조금 멀찌감치 서 있던 강나리가 주춤거리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 참, 카페 운영하는 거 보면 되게 강단 있던데, 직접 보니까 영락없는 여중생이네.
속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소개할게요. 절 응원해주시는 팬클럽을 만드시고 이제껏 이끌어오신 분이에요. 팬클럽 회장님이신 강나리 양을 소개합니다!”
잠깐의 침묵 뒤에 환호가 터졌다.
소리가 하도 커서 강나리는 다시 한 번 놀란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감격했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마이크를 넘겨주자, 강나리가 더듬거리며 인사를 했다.
“아, 아, 안녕하세요. 가가강나리에요.”
팬클럽 회장의 별명이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예. 가가강나리 회장님의 인사였습니다.”
웃음이 터지고, 다들 다시 한 번 환호했다.
어디에도 비웃음이나 질투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아마도 이처럼 어리고 귀엽고 또 수줍은 많은 소녀가 팬클럽 회장일 거라곤 상상도 못한 거겠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제껏 팬클럽을 운영하면서 큰 잡음 하나 없이 이끌어온 걸 보면 대단하다고 할지…….
“아까도 말했지만, 저 요즘 진짜 바빠요. 광고도 찍기 싫은데, 누가 하도 찍으라고 해서 찍어야 하고, 얼마후면 코첼라 페스티벌에도 참가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월드 투어…….”
꺄아아아아아아악!
콘서트 소식에 또다시 터진 함성.
난 귀를 막는 시늉을 해 보이곤 말했다.
“워워. 진정들 하시고요. 누님들, 형님들, 그리고 얘들아. 자꾸 이러면 내가 가만있을 수가 없잖아요? 회장님, 안 되겠어요. 분위기가 이렇게 달궈졌는데, 그냥 갔다간 전부 탈퇴각이네요. 그쵸?”
강나리가 그사이 적응했는지,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양 갈래로 묵은 머리가 찰랑거리는 걸 보면서 난 씩 웃어 보였다.
그러곤 곧바로 강나리에게 마이크를 넘기곤 입고 있던 외투를 벗었다.
그걸 샤오린이 다가와 받아주자, 난 다시금 마이크를 받아들곤 손가락을 튕겼다.
“빛 속으로! 음악, 주세요!”
이미 이럴 경우도 상정하고 있었기에 반주는 마련되어 있었다.
비록 앰프의 수준이 만족스럽진 않겠지만.
MR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팬들이 아우성쳤다.
그런 그들을 보며 다시 한차례 미소를 짓고는 샤오린에게 손짓해서 강나리에게도 마이크 하나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팬 미팅이라고 해야 할지, 콘서트라고 해야 할지 모를 시간이 시작되었다.
- 어둠 속에서 보낸 그 많은 시간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두려움들은 날 지치게 했지.
발표된 지 한 주밖에 안 된 노래였다.
그런데도 팬들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따라부른다.
기가 막히다.
아니, 감동 그 자체다.
떼창인데도 불구하고 음정 박자 어디 한군데 틀리는 게 없다.
저 정도까지 부르려면 도대체 얼마나 듣고 또 얼마나 불러야 하는 걸까?
모르긴 몰라도 거의 온종일 음악만 듣고 있어야 가능할 거다.
그건 내 옆에서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강나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난 강나리를 가만히 보다가 눈짓했다.
원래 파트 구분이 없는 노래였지만, 무슨 상관인가.
그냥 나눠 부르면 되는 거지.
강나리는 조금 머뭇거리는 거 같더니, 이내 적극적으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 그런 날 견디게 해준 건 한 줄기 빛.
힘들고 외로운 내게 그 빛은 뭐였을까?
흠칫.
놀랐다.
뭐야? 뭔데, 이렇게 노래를 잘해?
이건 상상 이상이잖아?
음감도 딱딱 맞고.
무엇보다 감정을 실을 줄 안다.
그런데도 쓸데없는 습관, 속된 말로 쿠세가 없다.
그렇다는 건…….
이것 봐라?
진짜 갑툭튀가 따로 없네.
단순히 팬클럽 회장이라고만 볼 수 없겠는데?
내가 놀람을 삼키며 강나리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도 팬들이 불러제끼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내 귀에는 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리듬감 넘치는 강나리의 노래만이 들려올 따름이었다.
- 그건 날 부르는 소리.
까마득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은 날 끌어올리는 소리.
이제 나 그 빛 속으로 나아가려 해.
딱히 나눈 것도 아니고, 합을 맞춰본 것도 아니지만, 후렴구에 해당하는 여기서부터 함께 부르는 게 맞다.
난 마이크를 들어 올려 강나리와 함께 노래했다.
- 나 빛 속으로 나가고 있어.
이제부터 너흴 위해 노래할 거야.
놀람의 연속이었다.
한없이 올라가는 강나리의 목소리.
아니, 옥타브가 몇이야?
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원석을 발견해버렸다.
어쩐다지?
그냥 놔두기엔 너무 빛나는데?
***
어쩌다 보니 광란에 가까운 팬 미팅이 되고 말았다.
노래만 몇 곡을 부른지 모른다.
그 와중에 팬들 몇 명을 앞으로 불러서 가볍게 포옹도 하고 사인도 해주고, 사진도 찍었다.
선물도 나눠주었으며 이런저런 대화도 나눴다.
그렇게 팬 미팅이 끝나고 나니, 벌써 8시. 해가 진 탓에 도시는 이미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오, 오늘……. 지지진짜 즐거웠어요. 다, 다음에 뵐게요.”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인지, 아니면 내성적인지는 몰라도 강나리는 여전히 말을 더듬으며 인사하고 있었다.
난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저, 괜찮으면 나중에 한번 올래요? 우리 회사 주소는 알죠?”
무슨 소린가 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강나리의 눈이 일순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입이 크게 벌어지며 좋아서 어찌할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그, 그래도 돼요?”
“그럼요. 강나리 양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그리고 또 할 말도 있고…….”
“예?”
“아뇨. 그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늦었으니 여기서 바이하죠.”
“예. 오늘 너무 즈, 즈, 즐거웠어요.”
흠, 감정을 드러내는 부분에서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는 모양이다.
뭐, 아직 어리니까 그럴 수 있지.
어찌 보면 저런 면이 순수해 보여서 보기 좋은 것도 사실이고.
“샤오린도 오늘 반가웠어요. 나중에 봐요.”
“며칠 뒤에 뉴욕 가니까, 그때 밥이나 먹죠.”
“맛있는 거 사주실 거에요?”
내가 웃으며 묻자, 샤오린이 눈을 흘긴다.
“요즘은 저보다 더 많이 버시면서.”
“그럼 뭐해요. 다 엄마 통장으로 들어가는데.”
“하아, 말이나 못하면……. 알았어요. 제가 살게요. 됐어요?”
“흐흐흐. 비싼 거 먹어야지. 아, 바쁘실 텐데 제가 너무 붙잡고 있었네요. 그럼 먼저 갈게요.”
그렇게 그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무슨 생각해?”
차 안에서 말없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더니, 고 팀장님이 물어오신다.
“아뇨. 별거 아니에요.”
“그래?”
고 팀장님은 묘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셨지만, 더 이상 묻지 않으셨다.
그러는 동안, 난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었다.
리노와 강나리.
정확히는 그 두 아이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는 중이었다.
***
바쁜 나날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이 많은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시간이 문제였다.
주어진 시간이 나흘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광고도 찍어야 하고, 석준이랑 준영이 형 그리고 이성원 형님까지 만나야 한다
무엇보다도 희주 생일 파티에도 가야 할 테고.
문제는…….
“커피만 찍으라면서요!”
외할아버지와 통화하는 건,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말이 왜 바뀌냐고요.”
- 내가 그리 키웠더냐? 사내란 모름지기 배포가 커야 한다고 그리 말했건만.
“아, 진짜!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인데요? 저 배포 커요! 누구 닮아서 꼭 써야 할 곳이면 돈 같은 거 아끼는 타입도 아니라고요! 그치만, 이건 아니죠. 나흘밖에 시간이 없는데 그동안 무슨 수로 광고를 세 개나 찍냐고요.”
- 큼. 그럼 어쩌냐? 두 놈이 날마다 찾아와서 징징거리는 것을.
“아, 그러니까 말씀드리잖아요. 안 찍는다는 게 아니라 나중에…….”
- 흥! 나중에 언제? 이제 돌아가면 콘서트 한다고 하지 않았냐? 그것도 이번엔 전 세계를 돈다며? 그 때문에 학교도 쉬어야 할 판이라고 하던데, 시간이 나겠느냐?
“그, 그건…….”
- 도준아. 일은 미루는 게 아니다.
“…….”
- 특히나 사람 문제는 더더욱.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다.
나도 그 정도는 안다.
어차피 해결해야 할 거, 미뤄서 될 일이 아니란 것쯤은.
조금 있으면 주총인데 그전에 삼촌들에 대한 판단을 마쳐야 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그러기 위해서 언젠가 한번은 만나야 한다는 것도.
그렇긴 한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삼촌들이다 보니 조심스럽기도 하다.
진짜 부담 백배다.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자, 수화기 너머에서 외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 늙은이가 잔소리하는 거 같아서 좀 그렇다만……. 갑과 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떡 줄 놈이 갑인 거야. 그리고 그런 기회는 늘 오는 게 아니다. 특히나 그놈들처럼 아쉬울 게 별로 없는 놈들은.
아, 그래서 어쩌라고요?
눈을 찡그리며 막 물으려는 찰나였다.
- 그렇게 알고 잘해라. 이만 끊는다.
가차없이 끊으시는 외할아버지.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그때였다.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형인가?
요즘 씨크릿걸즈가 컴백을 앞두고 있어서 바쁘다고 하더니 지나가다가 들렸나 보다.
현관문으로 향하며 외쳤다.
“제가 열게요.”
주방에 계신 어머니께서 알겠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으며 문부터 열었다.
흠칫.
그리고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두 사람이 현관 앞에 있었던 것이다.
큰 외삼촌과 작은 외삼촌이.
뒤로는 양복을 쫘악 빼입은 남자들이 뭐가 들었는지 모를 쇼핑백들을 한 아름 들고서.
“어……. 안녕하세요.”
뒤늦게 인사부터 드리자, 날 덥석 안는다.
큰외삼촌이.
“아이고! 우리 조카. 왜 이렇게 연락이 뜸해. 근데, 뭐야? 왜 이리 말랐어? 요즘 굶고 다니냐? 쯧, 그럼 안되지! 월드 스타가! 안 되겠다. 내가 보약이라도…….”
그때 작은 외삼촌이 날 지나치며 내 머리를 가볍게 헝클어뜨리신다.
“금방 갈 거니까, 너무 긴장하지 마라.”
그러더니 주방 쪽으로 향하며 물었다.
어머니께.
“매제는?”
“어? 작은 오빠?”
깜짝 놀란 어머니께서 손에 끼고 있던 고무장갑을 벗으며 주방을 벗어나더니 눈이 동그래지셨다.
“큰오빠?”
하아, 어머니 심정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삼촌들이, 그것도 우리 아버질 발톱의 때보다 못하게 보던 큰 외삼촌이 우리 집에 오다니.
놀랍다 못해서 황당할 지경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