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
#194. 한 걸음 더(3)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있는 모습을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귀빈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부 모르는 사람들인 건 아니다.
나와 관련되었거나 일행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을 제외하더라도 꽥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그래서 더 놀랍다.
BBC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마르세 자레이티를 비롯해 흔히들 마에스트로라고 부르는 지휘자들도 몇 명 보이고, 덴마크 국립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으면서 한편으로는 현대 교향곡의 맥을 잇는 작곡가 프렌츠레스키의 모습도 보인다.
그 외에도 꽤 이름이 알려진 음악 전문가들이나 기자들도 다수.
어느 쪽이 되었든 연주홀이 아닌 실외에서 하는 연주회에 참석하기엔 너무나 거물들이라 할 수 있었다.
그만큼 주목을 받고 있다는 얘기인데, 과연 저들은 연주가 끝나고 나면 어떤 반응들을 보일까?
지금 보이고 있는 몇몇의 표정만 보자면 그리 낙관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하긴 그럴 수밖에.
이미 대부분 보았을 테니까.
이른바 김도준 교향곡 1번의 악보를.
니콜 교수님이 곳곳에 초연 제안을 하느라 뿌려댄 덕분에.
그게 아니더라도 알 수밖에 없을 터다.
누군가의 얘기처럼 구성 자체부터 이단으로 불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이었으니까.
관심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긍정적인 시각이든 부정적인 시각이든 간에.
어찌 되었든 기분은 기묘했다.
내가 만든 곡을 듣기 위해서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로서는 충분히 놀랄만한 일이었으니까.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묘한 감정에 휩싸이고 있는 동안, 관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그 까닭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사전에 이 곡에 대해서 알고 있지 못하던 사람들, 이를테면 일반 시민들의 경우, 무대 위에 모습을 드러낸 현대적 악기의 연주자들 즉 일렉트릭 악기 연주자들을 보곤 놀라고 있는 걸 테다.
그것도 밴드 수준이 아니라 거의 십여 명에 가까운 연주자들이었으니까.
아니나다를까.
다시금 시선을 돌려 무대 쪽을 향하자, 무대 위 왼편으로 기타와 드럼 그리고 베이스. 심지어는 키보드를 치는 이들까지 속속 올라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수가 아홉. 보통 4개의 악장에 많아 봐야 4관 편성을 하는 악기편성에 현대 악기까지 더해지자 무대 위는 100명도 넘는 연주자들로 바글거렸다.
물론 음악의 어머니라고 일컬어지는 헨델의 경우엔 한때 200명이 넘는 연주자들을 동원해 거의 축제에 버금가는 연주회를 개최한 적도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축제. 즉 이벤트성이 강했고 통상은 70명 안쪽으로 단원을 구성하는 게 교향악 연주에선 보편적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관객들이 웅성거리는 것도 잠시.
뉴욕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 연주자인 캘러웨이 마에스트로가 등장하자 갈채가 쏟아졌다.
그 사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무대 중앙으로 나아간 캘러웨이가 관객석 쪽으로 시선을 향하곤 정중하게 인사하자 관객들의 반응은 한층 더 뜨거워졌다.
그 모습을 뉴욕의 로컬 방송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 각국에서 파견한 방송사 스텝들이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후우”
나직한 숨이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게 긴장이 돼서.
캘러웨이가 등을 돌리고 단원들을 비롯한 연주자들을 향해 지휘봉을 치켜드는 모습에.
빠바아아아아암.
트럼본을 비롯한 관악기의 연주로 1악장이 시작되었다.
“헉!”
그리고 그 순간, 열렸다.
내 눈앞에 새하얀 시공간이.
***
뜻밖의 상황이었다.
BBC 필하모닉 상임지휘자인 마르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치뜨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예상과는 너무 다른 느낌에.
자신에게도 초연에 대한 제안이 왔었고, 악보를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고 그 제안을 거절했던 그였다.
그렇기에 원래 그는 이곳에 올 생각이 없었지만, 초대장을 받는 순간 마음이 바뀌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니콜 교수와의 통화 끝에 이 곡은 교향곡이 아니다! 라고 외친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이곳으로 와서 자리에 앉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틀렸다곤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한차례 대충 훑어본 악보대로라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연주였기 때문이다.
연주 자체가 얼마나 난해한지, 아니 워낙 파격적이라 연주하는데 힘겨울 수밖에 없는 연주자들. 그들을 일일이 통제하고 지휘해 하나의 곡으로 승화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울지는 굳이 해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고 합을 맞췄는지는 몰라도, 작곡자의 의도대로 연주를 하기 시작하자,
‘이럴 수가!’
자신이 싫어했던 부분. 1악장부터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저 폭풍 같은 연주가 들려오는 순간, 마치 바다 한가운데로 던져진 듯한 느낌을 받은 그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흡사 격랑에 휘말린 배 위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쉴 새 없이 비바람이 몰아치고, 연이어 들이치는 파도 속에서 어떻게든 뒤집히지 않으려고 애쓰는 배. 그 배 위에서 죽음을 목전에 둔 자의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1악장이 끝날 때까지도 그는 손에 땀을 쥐며 긴장을 풀지 못했다.
그렇게 1악장이 끝났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몰입하고 있었던가?
자신의 주위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있던 걸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하……!’
기가 막혔다.
이게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청년이 만들어낸 곡이라고?
더구나 아직 본격적인 연주도 시작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절로 마른 침이 넘어간다.
아니나다를까.
2악장이 시작되자, 여태껏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일렉트릭 악기들이 하나둘 합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노, 놀랍다!’
이질적이질 않았다.
아니, 자연스럽다 못해서 마치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전자음들은 오케스트라의 연주 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고전적인 오케스트라로선 절대로 채워줄 수 없는, 그야말로 새로운 자극으로 흥분과 쾌감을 일깨우고 있었다.
멍한 표정이 되었다가 이내 눈을 감고 점차 곡을 듣는데 열중하기 시작한 마르세였다.
***
근대 음악의 뒤를 이어 현대로 넘어오는 클래식의 맥을 잇는 몇 안 되는 작곡가인 프렌츠레스키는 아까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표정 변화도 일절 없었다.
그저 눈을 감은 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모를 터였다.
현재 그의 가슴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이걸 이렇게 밀고 나간다고?’
곡이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에서 벗어났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흥미를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던 악보에는 곳곳에 교향곡의 한계를 돌파할 방법들이 나름대로 제시되어 있었더랬다.
화음을 건너뛰는 불협화음은 기본이었고, 불안정하기만한 불확정성의 기법과 파격적으로 음을 생략하는 주요음 기법까지. 하나같이 놀라웠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스무살 짜리 청년, 그것도 이제 겨우 클래식을 접한 대중 음악가, 현재 빌보트 차트를 도배하다시피 석권하며 전 세계를 뒤흔들면서 하나의 아이콘으로까지 떠오르고 있는 팝계의 신성이 만들어낸 것치고는 나쁘지 않은 시도였지만, 곡 자체만 보자면 형편없다는 게 그의 평가였던 것.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교향곡의 본질.
즉 악기 간의 화합이 무시된 편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듣는 음악은 전혀 달랐다.
마치 정교한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돌아가기 시작하자, 그의 예상대로라면 분명 따로 놀고 있어야 할 소리들이 어느샌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듣는 이의 가슴을 흔들어대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키보드 연주로 짐작되는 소리가 합세하면서 쓸데없이 화려하고 조잡스럽기만 할 거란 예상을 깨고 장엄한 느낌까지 더해주고 있었다.
폭풍의 격랑을 버티고 잔잔해진 바다에 서서 지난밤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을 때, 구름이 걷히며 쏟아지기 시작한 찬란한 햇살. 그 햇살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했다.
3악장의 도입부였다.
그리고 그 순간, 드럼과 기타의 현란한 연주가 이어지며 그 뒤를 타악기들이 밀어 올렸다.
동시에 관악기들이 불을 뿜었다.
그때, 불가능할 거라 생각한 놀라운 연주가 시도되었다.
옥타브를 제외한 모든 반음 11개가 한꺼번에 울려 퍼지는 충격적인 불협화음이 등장한 것이다.
그 순간 프렌츠레스키는 번쩍하고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벅찬 희열과 앞서 다가올 희망에 대한 찬미가 저곳에 있었다.
무대 위에는…….
자신이 이제껏 추구해왔던 것, 어쩌면 정체된 교향곡의 한계를 뚫어낼 수 있을지 모를 돌파구. 프렌츠레스키는 오늘 이 자리에서 그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
이거 정상 맞아?
미치겠네, 진짜.
아니 점입가경도 정도가 있지.
어째 갈수록 더 심해지는 거 같다.
여태껏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에 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이제까지는 내가 직접 연주하거나 노래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던 세계. 즉 소리가 지배하는 시공간이 지금 눈앞에 있었으니까.
그것도 무대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이 당연하다는 듯 모여들어 한바탕 축제를 벌이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게 또 황당한 게 전혀 기분 나쁘지가 않다는 거다.
정확히 표현하기는 어렵겠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화가 본인이 그린 그림이 눈앞에서 처음 붓을 잡을 때부터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까지 리플레이 되는 느낌이었다.
붓 대신 캘러웨이 마에스트로의 지휘가, 물감 대신 연주자들이 만들어낸 소리들이 대신한다는 점만 다를 뿐.
같았다.
눈앞에서, 아니 새로운 시공간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속에서 난 내 삶을 반추할 수 있었다.
이 곡을 만들 때의 의도 그대로.
노래방에 갇혔을 때 느꼈던 절망과 분노.
마침내 목표했던 점수를 획득하고 노래방을 빠져나왔을 때의 흥분.
어머니를 다시 만났을 때의 격정.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
처음 악기를 접하고, 무아지경이 되어 기타를 켜면서 느꼈던 쾌감.
그리고 팬들과 함께 호흡하며 천안문 일대로 퍼져 나가던 내 목소리. 그것은 내게 다시 주어진 새로운 인생의 신호탄이었다.
그것을 이 한 곡에 모두 담아내려 애썼는데,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그렇게 4악장까지 모두 끝났을 때, 내 입가에는 미소 한줄기가 떠올라 있었다.
왜냐하면…….
이제껏 불안하기만 했던 마음이 싹 사라졌기 때문이다.
뭐랄까.
비로소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느낌.
그렇다.
이 순간 난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모든 연주가 끝난 후, 관객석은 말할 것도 없고 무대 위 또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심지어는 지휘자인 캘러웨이조차 손에 든 지휘봉을 멈춘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길 한 참여.
마침내 정신을 차린 캘러웨이가 천천히 돌아섰고, 관객들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는 순간이었다.
일대를 가득 채우고 있던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서 갈채를 보내기 시작했다.
4월 13일, 토요일.
초연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불과 10분도 되지 않아 각국의 신문과 방송사 인터넷판 기사는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전하는 이의 언어도, 어조도, 감정도 다 달랐지만, 내용은 한결같았다.
결국, 그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다.
[김도준 교향곡 1번, 클래식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멈춰 있던 클래식의 시간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그들은 그렇게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