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싱어-193화 (193/260)

# 193

#193. 한 걸음 더(2)

화면 가득 떠오른 광고 문구.

- 오늘부터 김도준이 남친이 된다면?

어떻게 보면 여고생이라고도 볼 수 있고, 여대생이라고도 볼 수 있는 한유진이 해맑게 웃으며 집에서 나갈 채비를 한다.

과연 대한민국에 저처럼 감각적으로 지어진 집이 몇 채가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파주 헤이리에 있는 건물 한곳에서 나온 그녀는 집을 나서자마자 S 전자가 이번에 출시한 아스트로폰인 N10을 꺼내더니 함께 판매하는 허먼사의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그러곤 햇살이 쏟아지는 가운데 길을 걷는다.

몸의 굴곡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티셔츠와 짝 달라붙은 청바지 차림으로 걷는 그녀. 그러면서 광고 속의 한유진은 마치 남자 친구에게 말하듯이 다정하게 얘기한다.

“도준아. 잘 잤어?”

와, 온몸에서 소름이 돋으며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 이런 내 기분과 달리 공항 내 곳곳에선 비명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가 터져 나온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미치겠네.

“큭큭큭큭.”

뒤에서 형의 웃음소리가 들려왔지만, 애써 무시했다.

젠장!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내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희주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어도 차마 돌아볼 수가 없다.

그러는 동안에도 광고는 계속된다.

한유진의 목소리에 반응한 N10에서 ‘김도준’이 튀어나온다.

셔츠와 면바지를 입고 대학생처럼 머리를 세팅한, 깔끔한 차림으로.

그러곤 그녀와 나란히 걷기 시작.

그러자 한유진이 다시 말한다.

“나 자기 노래 듣고 싶어.”

아, 이젠 나도 모르겠다.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찍을 땐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직접 TV에서 보니까 장난 아니다.

손발이 오그라들다 못해 실종된 기분이었다.

그러는 사이, 화면 속의 나 ‘김도준’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한유진은 봄날의 햇살을 즐기듯 눈을 감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통해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

당연하겠지만, 옆에선 ‘김도준’이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마치 여친을 위해 노래해 주는 남자 친구처럼.

광고는 내내 이런 식이었다.

한유진이 버스를 기다릴 때도.

강의가 끝나고 나올 때도.

도서관에서 시험준비를 할 때도.

심지어는 술자리에서도.

압권인 건 그녀가 커피숍에서 친구들을 만났을 때였다.

“소개할게. 도준이야.”

목소리가 어찌나 다정한지.

큿. 누가 보면 진짜 사귀는 줄 알겠다.

유진이 누나가 연기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오글거리는 대사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토해내다니.

진정으로 존경스럽다.

나? 그녀의 부름과 동시에 핸드폰에서 튀어나와 그녀의 친구들에게 인사하는가 싶더니 이내 노래하고 자빠졌다.

미친다, 진짜!

이 감독님, 믿었는데…….

나 이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라고.

한숨을 푹 내쉬는 동안에도 광고 속의 ‘김도준’은 그녀 아니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주고 있다.

그러면서 떡하니 떠오른다.

카피 문구 한 줄이.

김도준과 하루를 시작하세요.

아스트로폰 N10.

마지막에 S 전자의 로고와 겹치듯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김도준 앱의 아이콘.

- 김도준 앱에서 발생한 수익은 전액 기부금으로 쓰입니다.

그나마 이건 좀 낫네.

어찌 되었든 재단 운영에는 도움이 될 테니까.

하지만…….

광고 내내 제대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사방팔방에서 들려오는 그놈의 꺅꺅 소리도 문제지만, 광고 속에서 유진이 누나가 ‘도준아.’라고 부를 때마다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난 이미 여기 없었다.

유체이탈을 하는 경험과 함께 내 몸은 이미 연탄불에 구워진 오징어 꼴이 되어 있었으니까.

이게 어디가 싼티 10%냐고!

MSG?

범벅이잖아, 범벅!

“꺄아악! 너무 멋져!”

“오빠아아아아아!”

“나도 핸드폰 바꿀까 봐.”

“힝, 김도준 앱 깔고 싶다.”

“저 이어폰 좋아 보이지 않아?”

“음질 장난 아니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리에 기가 막힐 따름이다.

이게 먹힌다고?

내가 보기엔 더럽게 촌스럽고, 징글징글하게 소름 돋는 저 광고가?

아이고, 다들 미쳤네 미쳤어.

한숨을 푹 내쉬었을 때였다.

토닥토닥.

어깨를 다정하게 두들기는 느낌과 함께,

“도준아.”

힉!

귓가로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

조건반사적으로 화들짝 놀란 내게 희주가 속삭이고 있었다.

“나도 노래 불…….”

“그만!”

홱 돌아서며 희주의 어깨를 잡고 애원했다.

“희주야, 할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저 광고 내리면 안 될까?”

“응. 안돼.”

“그렇겠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을 때 형이 옆에서 불을 지른다.

“뭘. 잘 찍었구만. 킥킥…. 도준아, 노래 불러줘∼”

오싹.

유진이 누나랑 희주가 했을 때랑은 또 느낌. 뭐랄까, 병맛 넘친달까.

생각 같아선 저 입을 꿰매버리고 싶다.

“나 갈게.”

괜히 봤다는 생각과 함께 희주와 마지막으로 눈을 한 번 더 마주치곤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형이 웃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정신이 살짝 혼미한 상태라 잘 보진 못했지만, 형수랑 희주도 입을 가린 채로 웃고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아, 젠장! 지금이라도 백억 돌려주고 광고 내리자고 해도…안 되겠지?

***

놀랍다.

이 싼티 작렬하는 광고를 보고 어떻게 이런 반응들을 보일 수가 있지?

기사들부터 난리다.

[김도준. 국민 남친 등극.]

[광고 한편으로 대한민국 여자들의 마음을 훔쳤다.]

[한유진의 멘트 유행. 도준아∼ 노래 불러줘∼ 이 말이면 다 통한다.]

[광고의 힘은 크다. N10 구매문의 쇄도 중?]

[김도준 앱이란 무엇인가?]

댓글들도 난리다.

하나같이 나에 대한 호평 일색이었지만, 그 글들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기만 했다. 아니, 손발이 닳아서 없어졌달까.

아무튼, 비행하는 내내 얼굴이 뜨거워져서 혼났다.

아, 씨! 어쩌지?

저 다음 편도 있는데…….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내쉬자, 옆에서 안대를 하고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있던 고 팀장님이 날 부르신다.

“도준아.”

“…….”

“돈 버는 거 힘들지?”

“……그러게요.”

“원래 그런 거다. 네가 그동안 좀 쉽게 벌었을 뿐이지.”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 마음 잊지 말자, 우리.”

우리라고 말해주는 팀장님이 고맙……. 흠, 근데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거 같았는데, 착각이겠지?

***

한국에서 내가 찍은 광고 때문에 난리가 난 동안, 비행기는 태평양 상공을 날아 무사히 공항에 내려섰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하드한 스케줄이 시작되었다.

한데, 놀라운 건 회사에 조금 변화가 있었다는 점.

정확히는 직원 한 명이 보충되었다.

그렇긴 한데 별로 달라진 거 같지가 않은 기분이랄까.

하긴 그럴 수밖에.

새로 입사한 직원이 다름 아닌 빨강 머리 실비아였으니까.

여전히 말수가 적은 그녀는 날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사진부터 찍어댄다.

무릎반사냐?

내가 망치도 아니고, 날 보면 무조건 사진부터 찍고 보네.

“오케스트라 준비는 거의 끝나가겠네요?”

“무대 설치 중이야.”

“벌써요?”

“무슨 소리야. 나흘 후면 공연인데.”

이젠 제법 지부장 티가 나는 마루 누나가 날 향해 곱게 눈을 흘긴다.

“후우, 드디어네요.”

“그러게. 감격스럽다. 도준이 네가 만든 교향곡이 뉴욕 한복판에서 울려 퍼진다니.”

어떤 느낌일지 잘 상상이 안 됐지만, 설렘에 미소를 베어 물었을 때였다.

“도준아.”

“……?”

“나도 노래 불…….”

텁!

얼른 누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곤 으르렁거렸다.

“누나까지 그러지 좀 마요.”

“아, 왜에에에!”

“왜긴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장난 아닌데……. 그리고 유진이 누나가 그렇게 말하진 않았거든요.”

“응? 그래? 내가 보기엔 똑같은데!”

“……진짜 느끼한 거 모르죠?”

진저리를 치며 연습실로 들어갔다.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부를 노래도 준비해야 하고, 이번 월드 투어 때 공연할 레퍼토리들도 연습해야 해서.

아, 그러고 보니 에단 3인방도 만나야 하는데.

코첼라 페스티벌에 초대된 건 나만이 아니니까.

“전화 한번 해볼까?”

연습실로 들어서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

3월 13일.

토요일이라서 그런가 센트럴파크엔 사람들이 넘쳐났다.

역시 주말이라 그런가 싶기도 했지만, 의외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대화를 들어보건대 꼭 그런 것만은 아닌듯하다.

“이번 공연, 김도준이 작곡한 거라며?”

“와아! 진짜 대단하지 않아? 교향곡까지 작곡하다니,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

“도준이 도준한 거지.”

저건 또 무슨 개소리람.

황당해서 쳐다보니, 마루 누나가 씩 웃으며 핸드폰에서 뭔가를 검색해 내게 내민다.

헐.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도준하다: 당연하다, 잘한다, 지극히 자연스럽다, 천재적이다. 등등 요즘 젊은 층 사이에서 쓰이는 은어. 원래 한국 네티즌 사이에서만 유행했었는데, 근래에 들어선 유투븐을 통해 전파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중이다.

인터넷 사전인 키위사전에 떡하니 올라와 있는 걸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그러고 있을 때, 차는 이미 주차장에 진입.

문을 열고 내려 막 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다.

“하이, 킴!”

크리스티나와 조안나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에단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날 보는 중이었고.

저 자식은 왜 저렇게 보는 거야?

의아했지만, 그런가 보다 했다.

원래부터 츤츤한 녀석이니까.

한데, 뒤쪽으로 보이는 얼굴이 익숙하다.

아즈마엘?

녀석이 와 있었네?

“그동안 잘 지냈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아즈마엘.

그를 대신해 크리스티나가 덧붙였다.

“전화로 얘기했잖아. 얼마 전부터 아즈마엘도 우리랑 같이 소모임 시작했다고.”

“아, 그랬지.”

익숙지 않은 일이라 까먹고 있었다.

그때였다.

“킴, 곧 공연한다는데 가봐야 하지 않아?”

조안나가 공원 내에 있는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방송을 듣더니 내게 묻고 있었다.

“어, 그래? 가봐야지.”

“얼른 가자. 아, 기대된다.”

잠시 후, 공연장 앞에 뿌리듯 놓인 간이의자들을 보곤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몇 개야?

뉴욕시민들은 벌써부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니 자리를 꽉 채우고도 모자라 서서 보는 이들까지 있었다.

그런 가운데 나는 일행들을 이끌고 귀빈석으로 마련된 자리. 즉 앞쪽의 빈자리로 향했다.

“킴, 오랜만이에요.”

아, 마가렛 헤라시오네도 왔구나.

“오올! 때깔 좋은데?”

“고향에 갔다 왔다고 혈색이 바뀌었네.”

“역시 집밥이 최고인 거에요.”

“근데, 선물은?”

염병하고 있네.

보자마자 선물 타령부터 하는 디알로를 한차례 쏘아보곤 오랜만에 만난 레이크헬 멤버들과도 인사했다.

스케줄을 끝내자마자 뉴욕으로 날아와 막바로 이곳으로 온 그들이 고맙기만 하다.

“광고는 잘 봤어요.”

니콜 교수님이 여전히 매력적인 미소로 날 보며 얘기한다.

유투븐을 통해 본 모양인데.

“하아, 그 얘긴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쭈욱.”

“왜? 난 좋던데?”

“그러게? 섹시하지 않았어?”

“섹시 쪽이라기보단 로맨틱하다고…….”

또다시 시작되는 레이크헬의 수다를 싹둑 자르고 들어갔다.

“허먼 교수님, 오랜만에 뵙네요. 죄송합니다. 좀 더 자주 찾아뵀어야 하는데.”

“하하하. 뭘 또 그런. 여기선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네. 자넨 어째 시간이 흘러도 여전한 건가? 원래 한국사람들은 그래?”

“그러게요.”

그때였다.

부르르르르.

핸드폰이 울린다.

이름을 확인한 난 반가운 표정을 해 보였다.

“아, 밥!”

- 어지간하면 시간을 맞춰보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되겠네. 아직 투어 중이라서 말이야. 중간에라도 다녀오려고 했는데, 스텝들 반대가 심해.

“신경 쓰지 말아요. 제가 공연하는 것도 아닌데요.”

- 그렇게 말해주니 한결 마음이 편하네. 직접 가서 보지는 못하지만, 위성TV로 보고 있을게.

“그래요. 바쁜 거 같은데 나중에 통화하죠.”

씨익 웃으며 전화를 끊자, 다들 눈이 동그래져서 날 쳐다본다.

입이 근질근질했는지 에단이 잽싸게 물어온다.

“누구? 설마 밥 데일런?”

고개를 끄덕이자, 일행들 사이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그때, 조안나가 외쳤다.

“시작하려나 봐!”

아닌게아니라 무대 쪽을 바라보자, 뉴욕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었다.

후우, 드디어 시작인가?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만든 첫 교향곡.

농담인지 진담인지 니콜 교수님이 김도준 교향곡 1번이라고 부르는 곡의 공연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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